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멍텅구리의 시학
2015년 02월 19일 17시 30분  조회:4614  추천:0  작성자: 죽림

21세기 현대시를 주역의 원리로 풀어서 현대시의 시론을 구축한 안수환의 시론은 동양철학을 현대화 한다는 면에서 매우 주목되는 시론이다. 독자들이 그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기 바라면서 블로그에 올린다. 

 

생각 안에서, 생각을 넘어

---‘멍텅구리의’ 시학

 

 

 

안 수 환(시인 문학평론가)

 

 

1

바보 같은 생각을 하게 되면, 그는 멍텅구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멍텅구리라고 불러야 옳을 것이다. 시를 쓰되 그는 멍텅구리의 생각을 가지고 시를 쓰기 때문이다. 생각은 말을 낳고, 말은 뜻을 품는다. 움직이는 방향으로 이것들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생각 (즉, 의意) → 말 (즉, 사辭) → 뜻 (즉, 지志)’으로 흔들리는 것들이다. 생각은 모습 (즉, 상象)에 붙어 있는 것. 모습은 실유實有로서의 근본과 여줄가리 root and branch (즉, 본말)를 가리키는 것. 모습이 이리저리 흔들리면 생각 또한 이리저리 흔들린다. 시인은 모습을 바라볼 뿐, 말과 혹은 뜻 따위에는 무심한 반응을 내보인다. 먼 옛날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 “시를 말하는 자는 글 (즉, 문文) 때문에 말을 해치지 않고, 말 (즉, 사辭) 때문에 뜻 (즉, 지志)을 해치지 않는다. 생각 (즉, 의意)을 가지고 뜻 (즉, 지志)을 맞이한다. 이것이 뜻을 얻게 되는 것” (설시자 불이문해사, 불이사해지 이의역지. 시위득지 說詩者 不以文害辭, 不以辭害志 以意逆志. 是爲得志..『맹자孟子』「만장장구⦁상 萬章章句⦁上」제4장). 맹자의 주장을 가만히 들어보면, 그는 생각보다는 말 (즉, 사辭)을 귀히 여기고 말보다는 뜻 (즉, 지志)을 귀히 여겨가며 글 (즉, 문文) 혹은 시를 바라본 것 같다. 그러나 그의 말을 거꾸로 들어보면, 시는 ‘뜻 (즉, 지志) → 말 (즉, 사辭) → 생각 (즉, 의意)’의 방향으로 흘러넘치는 문맥이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생각이 불붙고, 생각이 꺼지는 모습을 바라보자. 어떤 생각은 하늘의 모습 (즉, 천위天爲)에 닿아 있고, 어떤 생각은 지푸라기 (즉, 초개草芥)에 닿아 있다. 맹자의 어투로 말해보자면, 대인의 눈빛은 천위를 꿈꾸고, 필부의 눈매는 부귀를 꿈꾼다. 작은 것이 물러가고 큰 것이 돌아오면, 그것을 『주역周易』에서는 지천태地天泰 라고 불렀다. 혹은 큰 것이 물러가고 작은 것이 돌아오면, 그것을 『주역周易』에서는 천지비天地否 라고 불렀다. 태泰와 비否의 차이. 대인과 소인의 차이. 큰 것과 작은 것의 차이. 생각은 멀고, 뜻은 가깝다. 비유해서 말한다면, 촛불이 타오를 때는 심지가 불붙고 촉농燭膿이 흘러내리는 것. 심지는 남고 촉농은 소멸한다. 뜻 (즉, 심지 혹은 등심燈心)은 남고, 생각은 소멸한다. 심지와 촉농의 불가분의 관계. 촉농의 소멸을 통해 촛불은 빛나는 것. 빛이 본질인 것. 생각의 소멸을 통해 뜻은 빛나는 것. 빛으로 말미암은 뜻. 뜻은 분명할수록 좋지만, 생각은 아득할수록 좋다. 뜻은 하나이지만, 생각은 일만이다.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인 것.

 

2

그런데 먼 옛날 공자는 맹자와는 다르게 또 이런 말을 하고 있다 ; “글 (즉, 서書)은 말 (즉, 언言)을 다하지 못하고, 말은 생각(즉, 의意)을 다하지 못한다” (자왈, 서부진언, 언부진의, 子曰, 書不盡言, 言不盡意.『주역周易』「계사상전繫辭上傳」제12장). 글과 말의 모양은 생각의 깊이에 닿지 못한다는 뜻이리라. 이는 생각의 모습 (즉, 상象)이 크고도 큰 것이어서 혹은 중하고도 중한것이어서 말과 뜻으로는 그 생각을 다 퍼담을 수 없다는 뜻이리라. 쉽게 말하자면, 생각이란 최우선적으로 모습을 세우며 가벼운 듯 흘러가는 물결이라는 뜻이리라. 나는 방금 ‘생각은 모습이다’는 말을 했다. 이를 거꾸로 표현하자면, 모습이 사라지게 될 때 그때는 즉시 생각이 소멸된다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모습의 소멸은 생각의 소멸. 생각의 소멸은 시의 소멸. 아니다. 생각의 소멸은 시의 탄생인 것. 시는 생각으로 씌어지는 동시에 그 생각을 지워버리는 행위인 것. 나는 이 물결을 바라보면서, 그 움직임의 모습을 생각의 생각 [즉, (생각)2 ]이라고 달리 명명하고자 한다. 그것은 생각이 생각을 지우는 힘. 큰 생각인 것. 이를 이해하고나면 공자의 다음과 같은 말은 더욱 쉽게 귀에 들어온다 ; “성인은 모습을 세움으로써 생각을 다 보여주고, 괘卦를 지어줌으로써 실질과 거짓을 다 보여주며, 말을 걸어둠으로써 그 말을 다하고, 변하고 통하는 것을 가지고 이로움을 다 보여주며, 북을 두드리고 춤을 춤으로써 신명을 다하느니라’ (성인입상이진의, 설괘 이진정위, 계사언이진기언, 변이통지이진리, 고지무지이진신 聖人立象以盡意, 設卦 以盡情僞, 繫辭焉以盡其言 變而通之以盡利 鼓之舞之以盡神.『주역周易』「계사상전繫辭上傳」제12장). ‘모습을 세움으로써 생각을 다 보여준다 (입상이진의 立象以盡意)’는 이 말씀을 나는 주목한다. 이것이 곧 생각의 생각 [즉, (생각)2 ]인 것. 생각이 열리게 되면, 뜻은 저절로 그 생각을 좇아 달려가는 것. 생각의 생각 [즉, (생각)2 ]. 그것은 생각 안에서, 생각을 넘는 멍텅구리의 생각인 것. 시인 심상운은 다음과 같은 시「푸르스름한 끈에 대한 기억」을 쓴다 ;

 

폭염 한낮

산간도로 위에 말라붙어 있는 그 끈 같은 것은

 

숲에서 나와 끈적이는 아스팔트 도로를 횡단하기 위해

스르르 미끄러지던 뱀 한 마리가 한 순간 화물차 바퀴에 깔려

남겨 놓은 생의 흔적일 뿐이라고 하지만

 

 

나는 도로 한가운데

한 오리 길게 늘어져 있던 그 푸르스름한 끈에 대한 기억을

쉽게 지울 수 없다

 

그 푸르스름한 끈이

차 안에서 창밖 풍경을 내다보는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하여도 !

 

시인은 끝내 ‘그 푸르스름한 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푸르스름한 끈’에 대한 해석을 극도로 자제하려고 한다. 다만, “한 오리 길게 늘어져 있던 그 푸르스름한 끈에 대한 기억을 / 쉽게 지울 수 없다” 라고만 고백할 따름이다. ‘한 오리 길게’의 그 ‘오리’마저도 길고 가늘게 오린 조각 strip이라는 실질로서의 수치가 아닌 아무런 뜻도 없는 발어사發語辭로 읽히고 있을 정도다. 발화의 양화量化 quantification를 벗어던진 이 시의 화법으로 볼 때 낱말 (즉, 명사)의 단계화 differentiation of types가 지워지는 순간이다. 생각의 지움이 진행되는 순간이다. 시인은 말한다 ; “그 푸르스름한 끈에 대한 기억을 / 쉽게 지울 수 없다” “차 안에서 창밖 풍경을 내다보는 나와는 /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하여도 !” 이 발화의 의미 내용에 대한 사족 한 마디. ‘푸르스름한 끈’의 소재는 ‘산간도로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나의 기억 속’이라는 것. 생명에 대한 경외감의 활로는 비로소 그렇게 열리게 되었던 것. 좋은 시는 주장하지 않는다.

 

3

나는 앞에서 잠깐 낱말 (즉, 명사)의 단계화라는 말을 썼다. 생각의 지움을 나타낼 때는 꼭 낱말의 단계화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으로 그와 같은 표현을 썼던 것. 명사와 동사의 관계를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자. 명사는 정신이든 사물이든 그것들의 표상表象을 두고 하는 말. 동사는 그 표상들의 움직임을 두고 하는 말. 명사는 명사의 명사인 것 [즉, (명사)2 ]. 표상의 이름인 것. 동사는 동사의 동사인 것 [즉, (동사)2 ]. 표상의 움직임인 것. 명사가 이름인 반면, 동사는 관련인 것. 명사는 ‘지칭되는’ 몸이며, 동사는 ‘주장 assertion 하는’ 힘이다. 시인과 사물 (즉, 대상) 사이에 있는 주장이 소거消去된 다음에는 바로 이 순간 멍텅구리 생각이 드러난다. 낱말 (즉, 명사)의 질화質化 qualification가 나타날 때는 그 명사가 동사와 제휴할 때다. 말문이 열리고 말문이 닫힐 때 낱말의 질화는 출렁거린다. 시인의 생각은 이 낱말의 질화를 따라 출렁거린다. 그의 생각은 너무나도 깊은 것이어서 어떤 의중 (즉, 지志)으로도 그의 말을 규정할 수 없다. 멍텅구리 생각이 그의 의중을 대신하는 것.『주역周易』에서 말하는 태극太極 (즉, 20=1), 양의兩儀 (즉, 21=2), 사상四象 (즉, 22=4), 팔괘八卦 (즉, 23=8), 육십사괘六十四卦 (즉, 23×2=26=64) 등의 진행은 바로 이 생각의 진전도進展圖인 것. 1, 2, 4, 8은 1의 태극太極과 2의 음陰과 양陽, 4의 태양太陽 소음小陰 소양小陽 태음太陰, 그리고 8의 건乾,⋅태兌⋅리离⋅진辰⋅손巽⋅감坎⋅간艮⋅곤坤의 문자文字로 드러난다. 

‘ - 과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63 시인 - 허옥진 2015-03-08 0 5615
162 시인 - 주향숙 2015-03-08 0 4185
161 시인 - 김영춘 2015-03-08 0 4297
160 시창작의 1, 2 , 3. ㅡ 석화 2015-03-08 0 4173
159 시인 - 송미자 2015-03-08 0 4801
158 시인 - 김경희 2015-03-08 0 4626
157 시인 - 리순옥 2015-03-08 0 5390
156 시인 - 최기자 2015-03-08 0 4284
155 시인 - 석화 2015-03-08 0 5177
154 시인 - 김응룡 2015-03-08 0 4881
153 시인 - 김학송 2015-03-08 0 4220
152 시인 - 김영건 2015-03-08 0 4442
151 동시인 - 림금산 2015-03-08 0 4493
150 시인 - 리임원 2015-03-08 0 4440
149 시인 - 윤청남 2015-03-08 0 4434
148 시인 - 김파 2015-03-08 0 4319
147 시인 - 강효삼 2015-03-08 0 4101
146 명시인 - 괴테 2015-03-07 0 4754
145 보들레르 시 표절작? 2015-03-07 1 4765
144 명시인 - 랭보 2015-03-07 1 5259
139 민족시인 7위 분향단 2015-03-05 0 4775
138 아동문학가 - 고 윤정석 2015-03-05 0 4916
137 시인 - 박장길 2015-03-05 0 4233
135 시인 - 김동진 2015-03-05 0 4687
133 윤동주 생가 2015-03-05 0 4858
132 시인 - 김철호 2015-03-05 0 4472
131 동시인 - 한석윤 2015-03-05 0 4506
130 시인 - 고 한춘 2015-03-05 0 4781
129 시인 - 심련수 2015-03-05 0 4238
128 음악가 - 정률성 2015-03-05 1 4680
127 시인 - 고 리삼월 2015-03-05 0 4265
125 고독과 시인과 시 2015-03-04 0 4933
124 묘비명 - 자유 2015-03-04 0 4622
‹처음  이전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