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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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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19일 18시 42분  조회:3909  추천:0  작성자: 죽림

사람이 나이가 들면 깊어지는가 보다 
나만 철이 없어 도무지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아 자꾸 속 쓱쓱하다 
난 언젠가 읽은 구절 중에 "충격을 주는 시가 좋은 시다"라는 말에 공감한다. 일반인들이 대개 좋아하는 시는 편안한, 편안함을 주는 시인것 같애. 근데 시는 어떤 대상이나 정황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표현 이기에 그건 충격을 줄 수 밖에 없다. 새로움을 주는 시라고 해도 좋겠지. 어디선가 본 것 같고, 한 번 쯤 들어본 것 같은 시는 많지만 그런만큼 참신함은 떨어지고 그만큼 감동은 줄어드는 것일거라는 생각 해 
어려운 시에 대한 반발은 그 시를 쓰는 사람들의 세계관과 역사관, 혹은 반동적 행동에 기인하는 것이 더 큰 것 같애. 동시에 어렵다는 건 그만큼 대상에 대한 이해와 관조가 덜되었거나 표현미숙일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고. 물론 전혀 새로움을 전혀 새롭게 표현하는 경우, 어려운 시가 나올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미숙에 기인한 경우가 더 많다는데 관해 고개가 끄덕여진다... 



--------------------- [원본 메세지] --------------------- 
예전에 나는 쉬운 시가 좋았습니다. 
한번 읽어 시란, 눈에 썩 들어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게 무슨 시란 말인가? 
그래서 쉬운 시, 상징이 적은 시, 내면보다는 외적인 형상이 묘사된 시,언어의 술수를 부리지 않은 직설적인 시, 반드시 민중의 아픔과 분노가 섞인 시, 그런데 한정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 기준을 두고서 나는 시를 대체로 네 가지로 분류하여 보았습니다. 
첫째, 한 번 읽으면 이해는 되나 다시는 펼치지 않는시, 
둘째, 금방 이해는 되나 다시 펼쳐지는 시(이런 시는 거의 음악같은 시일 것이다), 
셋째, 여러번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시, 
넷째, 처음에는 어려운데 여러번 읽을 수록 그 의미가 새록새록 돋아나는 시 

요새 내가 재미있게 읽는 시는 두번째와 네 번째에 해당하는 시들입니다.(*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제 취향일 뿐입니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시들과 창비의 몇 몇 시들이지요. 창비의 장석남의 시들은 두번째와 네번째를 걸쳐서 존재하는 것 같고, 고형렬의 시는 네 번째, 그리고 최근에 읽은 박용하의 시들은 네번째의 시들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체로 땅끝문학회 회원들이 읽고 쓴 시들은, 첫번째 아니면 두번째에 해당하였지 않나 생각됩니다. 물론 이 말은 '대체로'입니다. 저도 거기에 속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10년 전의 제 시들을 보니 그런 생각이 더 절실하게 듭니다. 세상에, 겨우 10년 전에 쓴 시들이, 몇 편을 제외하고는 어설픈 감정이 느껴진다니. 
깊은 사유와 세상의 모습이 담겨있는 시를 써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어제 글을 쓰다가 오류가 있어 수정합니다. 장석남의 시는 두번째와 세번째가 아니라 '두번째와 네번째'로 수정합니다. 
그럼 지난번엔 고형렬의 시를 보았으니, 이번엔 장석남의 시를 보지요. 

오동꽃(장석남) 

다른 때는 아니고, 
참으로 마음이 평화로워졌다고 생각하고 한참만에 고개를 들면 거기에 오동꽃이 피었다 
살아온 날들이 아무런 기억에도 없다고, 어떡하면 좋은가... 그런 평화로움으로 고개를 들면 보라 보라 보라 
오동꽃이 피었다 오오 
무엇을 펼쳐서 이 꽃들을 받을 것인가 

위의 시는 정말 쉬운 시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어의 행간에서 주는 상징은 끝이 없습니다. 저는 이 시를 수십번은 읽은 것 같은데 아직도 여운이 그득하게 느껴집니다. 
한 사람이 사랑에 실패하고, 그 사랑을 잊으려 애쓰던 중, 어느날은 바람부는 언덕에 오래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아, 이제는 잊었구나 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자신이 앉았던 자리의 위로 보라색 오동꽃이 피어 있습니다. 아직 그는 그 사랑을 못잊은 것 같습니다. 
'마음이 평화로워졌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들면 거기 오동꽃이 피었다'니! 
'보라 보라 보라'는 시각적 심상도 느껴지지만 오동꽃의 색깔이 '보라'색임을 심상으로 더불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못자리에 들어가는 못물처럼(장석남) 

누구나 혼자 있을 때는 
돈걱정 여자 걱정 같은 거나 좀 면하면 
못자리에 들어가는 못물 같은 것이나 생각해 보면 좋다 
그 못물이 못자리 한바퀴 빙 돌아 
새로 한 논둑에 생긴 손자국 발자국 앞에 슬몃 머무는 것 
생각해 보면 좋다 

그것도 아니면 
못자리에 들어가는 그 못물의 소리를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 가운데다 
앉혀보는 것은 어떤가 
그 소리로써 잠자리의 곁을 삼아보는 것은 어떤가 

모두들 못자리에 들어가는 못물을 아시죠? 
새로 한 논둑에 생긴 아버지의 손자국 발자국 앞에 슬몃 머물던 못물들의 조용함, 자연스러움, 그 앞에 곁에 잠 덜 깬 눈비비며 날아와 앉던 잠자리의 가벼움! 그 잠자리의 가벼움과 못물의 조용함을 시인은 '그 소리로써 잠자리의 곁을 삼아보는 것은 어떤가'라고 표현했습니다. 더 이상 할말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의 자연스러움을 한껏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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