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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 고 정몽호
2015년 03월 02일 00시 27분  조회:5566  추천:0  작성자: 죽림
고 정몽호 문학인 그는 누구인가

연변작가협회시가창작위원회, 연변작가협회평론위원회, 연변작가협회아동문학창작위원회에서 공동 주최한 '정몽호 문학세미나'가 지난 6월 21일에 연길시에서 열렸다. 이번 세미나는 중국조선족문단에서 마멸할 수 없는 공헌을 세운 정몽호선생의 평생을 기리는 장으로 자리매김을 하기에 충분했다. 

이번 세미나 사회를 맡은 연변작가협회시가창작위원회 김영건 주임은 "고 정몽호선생은 한마디로 우리중국조선족 문단의 한 버팀목으로, 창작에 모범으로, 후대양성에 아버지로 마멸할 수 없는 공헌을 한 사람"이라 일축하면서 이번 세미나의 의미를 밝혔다. 

 

1961년에 동북사범대학 중문학부를 졸업한 정몽호씨는 선후로 연변한어사범학교 중문교원, 도문시당교 철학교원, 도문시 문련주석 등 사업을 력임하면서 수십년 동안 시를 포함한 문학창작에 혼신을 불태웠다. 

 

'두만강 여울소리'시가탐구회는 중국조선족 문단 특히는 시가창작에 전념하고 있는 문인들로 볼 때 '시 탐구에는 만남의 장'으로 자리매김을 하기에 손색이 없었는데 이 시가탐구회가 바로 정몽호씨의 발기로 시작되였으며 올해까지 23년간 진행 되여오는데는 그의 노력을 갈라놓고 생각할수 없었다. 

이 탐구회를 통해 많은 중견시인들은 자기의 창작을 보다 깊이하게 되었고 도문시 청년시인들을 중심으로 많은 시인들이 본격적인 시창작의 길에 올라섰다.  

 

정시인이 후대양성에 심혈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도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 도문시작가협회 중임을 메고 있는 윤청남시인을 비롯하여 남철심, 박성훈, 김경희, 김영춘 등등 십여명의 시인들은 이미 연변작가협회 회원으로 시창작에서도 많은 성과를 냈는바 그들은 정지용문학상, 연변문학상, 아리랑 문학상, 해란강문학상, 등 많은 성과적인 작품을 내놓았다. 

 

이번 문학세미나에서는 문학평론가 최삼룡 씨의 '정몽호 시에서 꿈의 이미지' 전국권 씨의 론평 '정몽호선생의 리론계공헌', '최문섭 씨의 아동문학평', '남다른 애착 독특한 발견 끈질긴 추구'가 발표되였고 리상각, 조성일, 김득만, 김응준, 림원춘 등 원로시인작가들은 고 정몽호 씨를 기리며 생전에 그의 인품과 열정 문단에 공헌을 높이 평하였다. 

 

 

훌륭한 독서가, 투혼을 불사른 문학인

림원춘 소설가는 "독서를 하지않는 오늘의 현실에서 정몽호 씨를 반드시 현시대의 우상이돼야 할 독서가", 조성일 평론가, 리상각 시인은 "정몽호 씨는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이고 또 시탐구에서 혼신을 다 바친 문학인이며 후대양성에서 투혼을 불사른  문학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정 시인은 생전에 책 읽기를 즐겨하는 독서가였다. 고금동서의 도서들을 탐독하는 것은 그의 일상생활로 되였다고 미망인 엄금단 씨가 설명했다.그에 따르면 모든 원고료는 모두 책을 사는데 지불했고 한달에 적어도 몇백원어치의 책을 사서 탐독했는데 연변에서 구하지 못한 책들은 북경 등지 서점에서 사다가 보았다.  

 

정몽호 씨는 중문과를 졸업했기에 중문에 조예가 깊어 중문으로 된 철학서적들도 많이 탐독했다고 한다. 특히 그는 헤겔, 맑스,엥겔스 등 철학서적들을 많이 탐독했기에 자기의 독특한 철학 체계가 구축되여 있어 문단에서 유일한 철학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산지식을 보유한 문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유지인들은 설명하고 있다. 

 

이런 연박한 지식이 있기에 정몽호 시인은 일찍 1983년도에 도문시에서 ‘두만강여울소리 시가탐구회’를 발기하고 문우들과 나란히 중국조선족시탐구를 시작했던 것이다. 이 탐구회의 발족으로 연변은 물론 제반 동북3성 더 나아가서는 멀리 북경 등지까지 이 탐구회를 만남의 장, 탐구의 장이라는 점에서 문우들이 몰려오군 했다.  

 

일년에 한번씩 열리는 탐구회는 시인들의 대잔치여서 시인마다 탐구한 글들을 발표하는 장으로 자리매김을 했고  또 이 기회에 우수작품평의 시랑송,평론,등 다양한 행사를 벌였다. 

자고로 문인들은 가난하다. 어떤 행사를 치르자해도 자금마련은 여전히 골치아픈 일로 대두되고 있다. 도문시라 하게 되면 실지 시골도시임이 분명하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그리 부유하지 못한 변경 도시임을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다.  

 

이런 지역에서 ‘두만강여울소리 시가탐구회’를 정규적으로 연다는 것은 사실 힘에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당시 정몽호 시인은 비록 도문시문련주석을 담임하고 있지만 이런 시간탐구회에 지불할 자금은 없는 것이였다. 그래서 그는 자기집에 온 손님들은 주숙케하고 각 기업 혹은 민족사무위원회 등 단위들을 찾아다니면서 자금을 마련해 행사를 치렀다. 참으로 선비의 옷을 벗고 체면을 불구하고 도처로 다니면서 구걸했던 것이다. 

 

흑룡강조선족출판사 김두필 씨는 "정몽호 씨와 이 출판사와의 인연은 '은하수','꽃동산'잡지부터 시작되였다"고 한다.1983년도에 정몽호 씨가 도문시문화관의 관장으로 있을 때 도문시의 문학을 한단계 추진시키려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여 먼저 합작의 손을 내밀었고 도문에서 문학창작강습반을 조직하고 은하수와 꽃동산 편집들을 청했다고 한다. 그래서 '은하수'가 연변진출을 대담하게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뒤로 정몽호 씨의 댁을 우리의 련락사무소로.  

만남의 장소로 삼아 연변의 많은 작가들과 손을 잡았고 적지않은 원고들이 이 도경으로 흑룡강조선족출판사에 흘러왔단다. 흑룡강조선족창작위원회 한춘 회장은 "시가탐구의 홰불을 추켜든 정몽호선생의 시정신은 언제까지나 칭송받아 마땅할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이렇듯 훌륭한 인품을 가진 문학인이 있음으로 해서 수많은 문우들은 그와 대화하기를 즐겨했단다 

 

훌륭한 문인, 아름다운 미망인 

 

정몽호 시인의 이런 문학탐구에서의 열정은 훌륭한 동반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미망인 엄금단 씨이다. 흑룡강조선민조출판사 김두필 씨는 "정몽호 선생의 5권의 작품집이 한국에서 무난히 출판될 수 있은 것도 사모님의 뜨거운 마음과 노력의 결실이라고 심심히 느낀다"며 "우리 출판사에서 정선생의 댁을 모르면 ‘왕따’를 당한다"고 했다."그렇게 많은 문우들이 집을 찾아왔고 또 잠자리도 마련하고 술상까지 푸짐이 마련했다는데 싫지 아니한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 미망인 엄금단 씨는 "종래로 싫은 적이 없었거니와 반갑기만 했다"고 답복했다. 

 

정몽호 시인이 대학교시절 약혼녀인 엄금단 씨는 화룡의 한 시골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여느 연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사이에도 늘 편지로 애정을 토로를 했지만 대부분 편지의 내용은 정시인에게 시상이 떠 오르겠끔 당지의 상황을 소개했단다.  

 

그러던 중 엄금단 씨가 '병아리가 부러워'라는 동시를 약혼시절 즉 50년대에 발표하게 되였는데 이로해서 그들의 애정은 더욱 깊어만 갔고 안해의 창작을 크게 도와 주었단다. 이렇게 두 남녀사이에 문학이라는 무지개가 징검다리로 이어졌기에 엄금단 씨는 후세에 남편을 찾아오는 문우들을 자기 집사람처럼 후하게 환대하게 되였단다. 

 

하여 결혼해서 째지게 가난해 귀동냥을 하면서라도 남편의 창작활동을 사심없이 도와주었던 것이다. 참으로 "정으로 가는 길엔 강물이 푸르고 실력으로 가는 길에 청산이 높다"는 정몽호 씨의 생전의 유언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몽호 씨는 생전에 자식에 대한 교양에서 책을 읽지않으면 소경이 될 수 밖에 없으므로 항상 책을 보라고 자식(아들 하나, 딸 두명)들을 타일렀고 언제 어디서나 덕을 쌓으라고 자식들을 교양했다고 엄금단 씨는 설명했다. 

 

문우들과의 만남은 말그대로 시가탐구인 것만큼 어떤 경우에는 치열한 쟁론이 불가피하다. 그때마다 정몽호 시인은 자기의 관점으로 극구 다른 문우들의 관점을 반박하지 않았단다."각자가 자기의 관점이 있는데 누구나 관점이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으니 세월이 흐르면 자연히 자기의 관점의 정확성과 비정확성을 판단할 수 있다"고 정시인은 늘 생전에 안해하고 얘기했단다. 

 

정몽호 시인은 어느 한 글에서 이렇게 적어내려 갔다."동북3성조선족 시가탐구회-두만강여울소리가 도문에서 열리게 된 것은 어찌보면 우연한 것 같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중국조선족 시 발전의 필연성의 결과로서 력사적인 해탈과 지역성적인 각성이 새로운  시 형식의 탄생을 잉태하고 있는 것이다… 권위자의 리론에 대한 간단화와 절대화에서 해방되는 것은 문예관 해방을 예고하는 새벽종소리였다…” 

정몽호 씨는 생전에 여러편의 시집과 '정몽호 문집', '재미나는 동시 창작방법', '실용수필 창작기교' 등 수편의 저서들을 출간했고 또 많은 작품들이 '아리랑문학상','해란강문학상'등을 수십번 수상했고 많은 평론도 펴냈다. 시인은 갔지만 그의  숨결만은 남아있다. 정으로 살아온 그의 숨결로 강물은 푸르고 탐구로 불타던 그의 메아리는 청산이 읽어주리라. 고 정몽호시인님 고이 잠드시라. 

[흑룡강신문 2007년 06월 28일]
 



 
두만강 여울목에 새겨진 시혼
- 정몽호시인 타계 5주기, 시비제막식 가져
 

 
도수안경에 강마른 몸매, 소탈한 웃음, 입을 열면 쏟아지는 달변… 항용 지성과 열정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했던 정몽호 시인이 타계한지도 어언 5주년이 지났다.

가을바람 소슬한 10월 12일, 정몽호시비제막식이 두만강변에서 있었다. 정몽호시비는 조선족시단의 최대 시탐구회로 자리매김한 《두만강여울소리시가탐구회》의 발기인의 한분이며 후배양성과  조선족시단의 의식갱신과 시발전을 위해 헌신해왔던 고 정몽호시인을 기리기 위해 도문시 문련과 작가협회의 협력으로 건립됐다.

시인의 5주기를 맞아 시비 제막식등 기념활동을 가지며 문단은 다시한번 학자형 시인으로서 문단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던 정몽호시인의 문학과 생애를 반추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시인 정몽호는 1935년 룡정시 동불향 요구촌에서 태여났다. 
1961년 동북사범대학 철학계를 졸업, 도문시 당교에서 철학과를 가르치기도 했다. 1983년 도문시문련에 전근하여 정년퇴직하기까지 붙박이로 두만강변의 작은 도시에서 문련비서장, 도문시문련주석등직을 지냈다.
1950년대 국가청년축구팀의 선수로 까지 활약했던 정시인은 1958년 대학시절에 처녀작 동시 “대롱다롱 보배봉지”을 발표하면서 문학창작의 일로에 발길을 돌렸다.

 “아버지”, “어머니와 나”등 굵한 장시들을 비롯하여500여수의 시, 동시, “양가령 언덕길”, “주총리 우리마을에 오셨네” 등 가사를 발표했고 시집, “두만강의 아들”, 합저 “문학학습사전”, 번역서 “외국 아동명곡집” 리론저서 “실용수필의 장작기교”, “백일장의 길동무- 시와 수필의 창작기교”등 저서들을 펴내였다.

오래동안 문화관사업을 해오면서 시인은 문학신인 양성에 로고를 아끼지 않았다. 10여명으로 무어진 도문시청년과외작자들을 이끌어 시협회를 뭇고 글짓기지도를 해주고 철학사조, 문학사조에 대해 때때로 주입해주었다. 그중 정시인이 보듬었던 후배 윤청남, 김영춘, 김경희 등 수명이 현재 조선족 문단의 중견시인으로 성장했다.
 

조강지처 엄금단 녀사와
엄금단 녀사는 남편의 숙원을 받들고 사재를 털어 "정몽호신인상"을 설립했다.

 
80년대초, 극좌의 쇠사슬에서 벗어나 윤활해진 문예정책에 동조해 작가들의 작품이 봇물처럼 쏟아져나오고 박래품에 대한 수용, 그리고 향후의 창작방향에 대한 제시가 박절히 수요되는 시점에서 당시 도문시 문련비서장으로 있던 정몽호 시인은 그러한 사조에 편승하여 시효성있는 문학탐구회를 조직할 의향을 뼈무르게 되였다. 마침 도문행차를 했던 김성휘 시인이 그들의 의취를 받아들이고 좋은 아이디라고 의기투합을 보였다. 이 발기는 “문학과 예술”, “아리랑”, “은하수” 등 문학지와 종합지들의 동조의 박수를 받았다. 드디여
 
1984년 5월 3일 제1회 “두만갇 여울소리 시탐구회”가 도문시에서 열렸다. 김성휘, 임효원, “, 리행복, 정몽호, 김문회, 최문섭, 김동호, 림창연 등 시인들이 정몽회 시인의 집에 모여앉아 시작품을 읊고 합평회를 가지고 문학도들을 불러 시랑송 모임도 가졌다.

이렇게 맨처음 온돌방에서 무릎을 마주하고 앉은 시우들의 작은 모임으로부터 시작되였던 두만강 여울소리는 그후 연변뿐아니라 동북삼성 나아가 전국조선조시인들을 상대로 한해에 한번씩 열리는 정규적인 세미나로 발돋움하였다. 
시 탐구회 10돐을 맞던해,  탐구회의 장구적인 발전, 장대를 기원하는 뜻에서 지인들은 “두만강 여울소리 시비”를 세우기로 결정, 정몽호 시인은 다시한번 시비의 자금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정몽호 시인은 새로 산 구두창이 끊어지는 등 신고끝에 도문, 훈춘등지의 석장을 헤집고 다니면서 드디여 시비의 원석을 골라냈다. 경비가 적어 쪼개써야 했기에 토목에 대해 좀 알고있다는 이웃이며 지어 사돈까지 동원했고 도문시 청년시회의 애송이 문학도들과 함께 바줄로 비끄러매고 당기고 하여 마침내 두만강반에 시비를 일떠 세웠다.
 
1993년 6월 25일 전국각지에서 모여온 시인, 평론가들이 두만강변에서 시비 제막식을 가졌고 《두만강여울소리시가탐구회》의 발기인의 한분으로서의 정몽호시인의 로고에 대해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지금 이 시비는 중외 유람객들이 운집해 드는 두만강변에서 하나의 문화경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두만강여울소리 시비" 제막식에서 (왼쪽 첫번째가 정몽호 시인)
 
만년에 젊은 시인들에 대한 양성과 문학리론서 집필에 주력하던 정몽호 시인은 불행하게도 간암진단을 받았다. 병상에서도 “병원 시초”를 창작하고 리론서 “동시창작기교”를 다그치며 문학에 대한 의욕의 끈을 놓지못하던 시인은 2005년 3월 23일 병이 깊어져 끝내 문단과 영결하고말았다.
 

 
두만강변에 세워진 정몽호 시비
"두만강 여울소리" 시비와 더불어 도문시의 일대 문화경관으로 자리잡았다.
 

정몽호시비제막식과 더불어 정몽호시인의 미망인 엄금단 녀사를 비롯한 유가족은 사재를 털어 《정몽호신인문학상》을 세웠고 지난 12일 제26차 두만강여울소리시가탐구회의 일환으로 제1차 수상식을 가졌다. 시인의 높은 작가정신을 기리고 시인의 생전 숙원대로 문학신진들을 위한 디딤돌을 마련하고자 설치된 문학상이다.

정몽호시인의 시비는 신축중인 도문광장옆, 두만강강변공원에 경립돼 있다. 정면에는 고 정몽호시인의 시 《접어둔 날》이 뒤면에는 시인의 략력과 대표작 목차가 새겨져있다. 
시인의 불같은 시혼이 오롯이 음각되여있는 시비는 오늘도 두만강여울의 작은듯 큰 흐름을 면면히 지켜보고있다.
 
 
김혁 기자

 
 
 "연변일보" 週刊 "종합신문" 200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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