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유적으로 시쓰기 / 윤석산
자아 이제 서정적 줄거리를 완성했으니 환유적 어법으로 시를 써보기로 할까요?
지금 쓰자면 ‘나중에 쓰지요’라고 말할 테니까 저랑 함께 써보기로 합시다.
어떤 것을 쓸까요? 앞에서 시인이 직접 나서서 이야기하는 1인칭 화제로 쓴 경우는 예문을 통해 확인했으니
3인칭 화제로 써보는 건 어떻겠어요?
대답이 없으니 제 경우를 예로 들겠습니다.
어느 날 글을 쓰다가 피곤해 차를 몰고 해안도로에 있는 카페에 갔습니다. 커피를 시켜놓고 창 밖으로 펼쳐지는 바다 풍경을 보면서 피로를 풀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커플 가운데 한 사람이 ‘자기 말 속에는 또 다른 말이 있는 것 같아’라고 하더군요.
순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대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 ‘말 속’에 말이 있다면 ‘말 밖’에도 말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안’과 ‘밖’이 있다면 말은 입체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간이라면 사람도 살고, 도시도 있고, 빌딩도 있고, 구멍가게도 있고, 그 구멍가게 안에는 사탕항아리도 있을 테고, 그 아래에는 지하실도 있을 수 있고, 밤마다 고양이가 계단에 올라와 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더군요.
그러다가 언어철학(言語哲學)을 공부하느라고 읽은 책들의 구절들이 떠오르대요.
그러니까, ‘언어는 이데올로기’라든지, ‘언어는 존재다’라든지, ‘존재에 이르는 통로’라는 말들입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는 폭력을 낳는다’는 말도 떠오르대요. 평소 이 지구상의 모든 전쟁은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말이 떠오른 모양입니다.
그러더니 다시 언어가 존재라면 화살로도 만들 수 있고, 고래로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대요.
그 때 아마 바다 저편에 여객선이 지나가고, 그 여객선을 고래의 모습으로 바꿔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종업원에게 종이를 달라고 해 다음과 같이 메모하기 시작했습니다.
①글을 쓰다가 피곤해서 해안도로 드라이브를 하고 카페에서 차를 마심
②옆자리의 젊은 커플이 ‘당신 말 속에는 또 다른 말이 있다’고 말함.
③순간 말 속에 말이 있다면 언어는 입체적 공간이고 사물이며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음.
④그리고 또 언어는 이데올로기라는 생각이 떠올랐음 - 이 세상의 모든 분쟁은 언어로부터 시작됨…
뭐, 이런 식으로 시의 줄거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어떻게 쓸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3인칭 지향형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물론 어느 지향형으로도 쓸 수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형을 택한 것은 언어에 대한 제 느낌이나 말 속에는 말이 들어 있으니 말할 때 상대에게 오해받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교훈보다 언어 그 자체의 속성을 드러내고 싶어서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화제 지향형은 자기감정을 자제하면서 객관적으로 말하기에 적합한 유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줄거리를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가운데에서 제일 먼저 제외한 것은 ①번이었습니다.
이 모티프는 과정을 나타내는 <동적(動的) 모티프>로서, 이들을 그냥 놔둘 때는 서사적 산문이 되기 때문입니다.
‘동적 모티프’가 뭐냐구요? 이 용어는 러시아 형식주의자인 토마쉐프스키(B. Tomaševski)가 쓴 것으로서, 그는 이야기를 이루는 최소 단위인 모티프의 유형을 <고정(固定) 모티프>, <동적(動的) 모티프>, <자유(自由) 모티프>, <정적(靜的) 모티프>로 나눕니다. 그리고 고정 모티프는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단위로서 탄생이나 죽음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단위를 말하고, 동적 모티프는 ‘뛰었다’든지 ‘결혼했다’와 같이 정황(情況)의 변화를 알리는 단위를 말합니다.
그리고 자유 모티프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갈 때 날씨가 화창했다든지 음악을 들으며 갔다는 식으로 생략해도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단위를 말하고, 정적 모티프는 ‘그녀는 아름답다’와 같이 묘사하는 단위를 말합니다.
하지만 완전히 동적 모티프를 배제하면 화자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를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능한 축소하고, 자유 모티프와 정적 모티프를 이야기할 때 포함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흔히 시를 평할 때 ‘서사성이 강하다’든지 ‘산문적’이라는 소리를 듣는 작품들은 이들을 그냥 놔두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을 다 뺀 다음 줄거리에 따라 쓰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쭉 쓰다가 보니까 주제가 잘 드러나지 않대요. 그리고 어떤 곳은 너무 장황하고, 설명으로 흐르는 곳이 생기데요.
그래서 주제에 해당하는 ‘말 속에는 말이 있다’와 ‘말 밖에도 말이 있다’라는 구절을 적당히 바꾸면서 각 연마다 배치했지요. 그리고 줄줄이 이어지는 곳을 잘라 연(聯)을 바꾸면서 자른 빈 틈에서 독자들이 상상하도록 만들어 작품으로 완성했습니다.
한번 보실래요?
말 속에는 말이 있고
말 밖에는 말이 있다.
말과 말 사이에는 빌딩이 있고
빌딩과 빌딩 사이에는 구멍가게가 있고
구멍가게 한 가운데에는 꿈을 담은 사탕 항아리가 있고
그 뒤 쪽 지하실 계단 아래에는 빨간 장화를 신은 고양이가 있고
그 고양이는 밤마다 층계 위에 올라와 밤새도록 운다.
말과 말 사이에는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숲이 있고
발랑발랑 뒤집히는 물푸레나무 이파리들 뒤엔 명털 뽀얀 소녀들이 있고
깔깔대는 그 소녀들 웃음은 화살이 되어
산등성이를 달리는 사슴 정갱이를 꺼꾸러뜨린다.
그러나
지상의 말과 말 사이에는 또 다른 말이 있고
또 다른 말 내부에는 눈부신 이데올로기가 있고
이데올로기는 도시 상공에서 펄럭이는 깃발이 되고
펄럭이는 깃발은 저를 위해 다른 말들을 공격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간혹 전쟁터에서 혼자 죽는다.
말과 말 사이에는
쓸쓸히 비가 내리는 바다가 있고
비 내리는 바다에는 죽은 고래 한 마리가 있고
그 고래는 밤마다 제 짝을 찾아 울며 지구 저쪽으로 떠나고
그래서 지상의 우리 사랑은 언제나 슬프다.
-필자, 「지상의 말과 말 사이에는」
어때요? 재밌지요? 환유적으로 시 쓰는 방법을 정리해드릴 테니 여러분들도 앞에서 만든 줄거리를 가지고 작품 한편을 완성해보세요.
□ 환유적으로 시 쓰기 순서
① 화제가 떠오르면 자유연상(自由聯想)을 하면서 시상을 풍부하게 만든다.
② 시상을 검토하면서 지향성을 결정한다.
③ 시적 인물과 배경, 어조 등을 결정한다.
④ 줄거리를 검토하면서 고정모티프와 동적 모티프를 제거하거나 자유모티프와 정적 모티프에 포함시키면서 이야기를 만든다.
⑤ 주제에 해당하는 모티프를 군데군데 배치하여 주제를 강화하고, 모티프 단위로 연을 구성하면서 작품을 완성한다.
동적 모티프를 어떻게 약화시키느냐구요? 아, 그에 대한 설명을 빠뜨렸군요.
흔히 시의 제재로 택한 화제에 과거의 이야기를 오버랩(overlap)하거나 몽타주(montage)하는 방법을 쓰지요.
다시 예를 들어볼까요? 어떤 사람이 쓸쓸해서 하루 종일 방황하고 아래와 같은 시적 줄거리를 만들었다고 합시다.
① 그녀가 떠난다게 해서 항구로 갔다.
② 하루 종일 밀려오는 파도 소리와 갈매기의 울음을 들으며 방황했지만 여전히 쓸쓸했다.
③ 해가 지고,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포장마치에서 소주를 마셨지만, 여전히 쓸쓸했다.
만일 이 이야기를 차례대로 쓴다면 틀림없이 ‘산문적’이라든지 ‘서사적’이라는 평을 들을 겁니다.
그러므로, 아래와 같이 마지막 모티프인 포장마차에서 술 마시는 장면에 그녀가 떠나는 장면을 비롯하여 바다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겹쳐 놔야 합니다.
차가운 소주잔 아래 항구로 가는 사내가 보인다.
파도는 밀려오고, 갈매기는 울고
차가운 소주잔 아래 바바리코트 깃을 여미며 돌아서는 여인이 보인다.
여객선은 부우부우 고동을 울리며 항구를 빠져나가고
차가운 소주잔 아래 늦가을 저녁 혼자 술마시는 사내가 보인다.
술잔 밑으로 저녁 해가 지고, 포장마차 비닐 포장이 펄럭이고…
뭐, 이런 식으로 겹쳐 놓거나 비유하면 지나간 일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아, 그럼 써봅시다. 나중에 쓰겠다구요? 한 마디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자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은 그럴 능력이 없거나 운이 없어 그런 게 아닙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길러야 할 기초적인 능력을 내일 하지 모레하지 미루고, 그렇게 미룬 것들이 누적되어 그렇게 된 겁니다. 이 강의가 끝나기 전에 시인이 되고 싶은 분들은 어서 쓰기 시작하세요.
자아, 씁시다. 시자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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