룡정에 “한락연 기념관” 선다
룡정이 낳은 걸출한 예술가이며 혁명가인 “한락연 기념관” 축성 기획 세미나가 일전 길림성 룡정시에서 열렸다.
세미나에는 원 국가통일전선부 부부장이며 원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주임인 리덕수를 비롯한 연변조선족자치주와 룡정시 정부 주요 책임자들이 참가했다. 한락연의 아들딸들인 한건행과 한건립이 특별히 세미나에 출석했다.
룡정시 당위원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참가자들은 “한락연 기념관” 축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락연은 일생을 혁명사업에 바쳤고 자신의 천부적인 예술재능으로 수많은 애국청년과 애국지사들을 감동시키고 격려하여 혁명사업에 투신하게 했다고 항일전쟁과 중국혁명투쟁의 승리를 위해 기여한 그의 위대한 업적을 높이 평가,한락연의 혁명정신을 더 넓게 선전, 발양하고 그의 예술성과를 깊이있게 연구하고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각계의 힘을 빌어 “한락연 연구회”를 결성함으로써 한락연 선생의 력사사적을 계속 연구하고 “한락연 기념관” 축성에 이바지할것을 호소했다.
리덕수는 총화발언에서 룡정시는 혁명시기 참전인수가 가장 많고 혁명렬사가 가장 많으며 동북 3성 혁명대오 가운데 조선족 당원수가 가장 많았고 룡정은 혁명간부와 혁명 지식인들을 가장 많이 양성해낸 고장이라고 하면서 룡정시가 한락연 기념관을 세우려는것은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한락연 연구회를 설립하는것을 지지한다면서 전문 기금회를 설치해 한락연의 혁명적 업적과 예술생애를 잘 연구하고 크게 선전함으로써 로세대 혁명가들의 혁명정신을 계속 발양해 나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리덕수를 비롯한 지도자들과 한락연 선생의 유가족 그리고 세미나 참가자들은 림시로 구성한 한락연 기념관을 참관하고 룡정시 해란강과 륙도하 합수목에 축건한 락연공원의 정자를 둘러보았다.
한락연은1898년 12월 8일 연길현 룡정촌(현재의 룡정시)에서 태여났다.
1919년 룡정 "3.13"반일운동에 참가, 1923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1925년 초 봉천(심양시)에서 동북에서의 첫 당지부를 건립했다. 1929년 당중앙의 명을 받고 상해에 가 중앙기관에서 사업하다가 신분이 폭로되자 유럽으로 건너가 미술공부를 했다. 유럽의 여러 나라를 전전하면서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한편 프랑스공산당이 령도하는 국제반파쑈투쟁에 참가하고 에스빠냐공화국보위혁명전쟁에도 참가했다. 1937년 "7.7"사변이 폭발한후 귀국하여 항일구국운동에 참가했다. 1943년부터 당조직의 파견을 받고 화가의 신분으로 감숙, 청해, 신강 등 지역에서 창작활동과 력사문물발굴사업을 하면서 평화적으로 서북지역을 해결하기 위해 련락사업을 했다.
1947년 7월 30일 비행기사고로 불행하게 조난당했다.
김혁 기자
“종합신문” 2010년 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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