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단에서 시단의 ‘열혈시인’이며 수필문학의 개척자이며 소설계의 정서파인 문창남 문인이 지난 10년전(1996년) 53세를 일기로 우리곁을 떠나고 그의 유골이 진황도 발해바다에 뿌리졌다.
문창남 문인의 작고 10주년을 맞는것을 계기로 한때 창녕집단에서 선전부장을 담당한 문창남의 비서로 있었던 후학 안영수가 ‘문창남문집’ 간행발기자가 되여 선배를 기념하고 스승의 업적을 정리하고 문인을 새롭게 조명한다는 문학도의 진정을 살려 출판비용을 마련, 드디여 지난 11월 민족출판사에서 ‘문창남문집’(전 5권)을 출판하는데 이르렀다.
‘문창남문집’의 출간은 아래 두 방면에 의의가 있다.
첫째 이번 대형도서 ‘문창남문선’은 조선족사회 최초의 민간모금으로 이뤄진 작가문집으로서 안영수 발기인과 의기투합이 된 겨레의 젊은이들(조충복, 서명, 박양, 김정섭, 김창영, 현룡남, 안협)이 힘을 모아 문집출간에 이르렀다. 이 사실은 문단에 제시하는바가 크다. 우리의 문화유산은 우리의 힘을 모아 정리한다는 이 발상이 새롭고 돋보이며 감사한 일이다.
둘째 우리 문단에서 어느 한 작자의 작품 총괄 문집을 출판한 전례가 없는 공백을 깨고 한 작자를 문집형태로 집중조명할수 있는 편리한 조건을 제공하여 주어 문창남연구에 큰 도움이 될것이다. 우리 문단에 굵은 발자취를 남기고 간 문인들의 작품을 문선으로 출판하는것은 문학유산을 정리하는 작업이다. 이것은 후대들이 공유할수 있는 귀중한 정신적 자산 내지 밑거름을 정리, 축적하는데’ 큰 기여를 할수 있을것이다.
전집에 가까운 장장 150만자에 달하는 ‘문창남문집’은 고인이 생전에 공개지면에 이미 발표한 작품을 쟝르에 따라 편성했다. 제1권은 시집(해설문 산천), 제2권은 수필집(해설문 서영빈), 제3권은 중단편소설집, 제4권은 장편소설 ‘흰돛’제1부, 제5권은 장편소설 ‘흰돛’제2부로 편성했다.
‘문창남문선’간행발기자 안영수는 ‘문집을 엮으며’라는 발기문에 문창남 문인이 창녕에 있을 때 원래의 창작계획을 포기하고 새로 신작 장편소설(전 3부 설정) 제1부(56만자)를 창작했는데 그 추고가 류실되여 소설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파악이 미비할수 있어 소설 해설문을 조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문창남시인은 투옥, 실련, 조기사망 등 참으로 불행했지만 그는 또한 복도 많은 사람이다. 그를 항상 존경하여온 제자 안영수씨가 그가 못다한 일을 훌륭하게 해내여 마침내 ‘문창남문집’이 출간되였다. 발해바다 물결너머 출렁이는 문인의 혼은 우리의 심금을 울리며 그제날 우리가 걸어온 삶의 자세들을 전달해주는 싱그러운 문학의 향기를 자아올릴것이다.
1. 문창남 략력 및 관련내용
략력
조선족시인, 작가. 필명은 문암, 바위
1944년 1월 15일 길림성 길림시에서 출생
1967년 연변대학 중문학부 졸업
1967년- 1977년 반혁명분자의 루명을 쓰고 옥중생활
1979년 1991 년 길림시 《도라지》 잡지사 편집
1991년부터 중국 창녕그룹 선전부 부장
1996년 7월 6일 하북성 진황도시에서 간암으로 별세
중국 작가협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리사, 중국 소수민족작가학회 리사
대표작으로 서정시 《도라지》, 수필 《동집게》 , 중편소설 《옥중비사》 등이 있음.
2. 문창남문집 출간에 깃든 일화
우리 민족문학사에서 친지들이 자체로 모금하여 작가의 문집을 출간하여 내놓은 례는 거의 없었다. 문창남씨의 문집은 작가의 문하인이고 제자인 안영수씨에 의해 출판되였다.
금년에 38살에 나는 안영수씨는 길림성 교하사람이다. 일찌기 문학에 남다른 애호가 있었으며 연변대학 중문학부에 입학하여서는 문창남시인을 마음속의 스승으로 정하였다.
그 리유는 안씨가 교하에서 소수민족이라는 리유로 멸시를 받으며 자라온것과 문창남씨의 작품은 언제나 민족의 얼을 지키고 민족과 전통의 우수성을 지켜가려는데 기본 사상이 있어 공명을 얻었다는것이다. 그러던 어느 방학에 자기가 쓴 수필을 가지고 문창남시인을 찾아 갔다. 그 만남에서 시, 수필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 진실성, 폭과 깊이가 있는 선생의 작품세계와 더불어 한없이 호방한 그의 성격에도 매료되였다.
이때로부터 스승으로 모시고 작품의 지도를 받기도 하고 일상의 문제들에 대해서 서로 열띤 토론도 하였다.
안영수씨가 대학을 졸업한후 교하의 교원으로 배치 받았으나 문창남은 그를 당시 자기가 편집으로 있는 길림 《도라지》잡지사에 근무시키려 한다. 안영수를 보고 길림 어디도 좋으니 호구만 옮겨 놓으라고 《명령》한다. 충실한 제자인 안씨가 각고의 노력끝에 몇달만에 길림학교 교원으로 호구를 옮기고 문창남을 찾아갔는데 그때 문창남은 창녕그룹으로 이적하느라 이사준비가 한창이였다. 그래서 다시 선생을 따라 창녕그룹으로 가서 문창남의 비서로 근무하게 된다.
문창남은 이때 창녕에서 그룹 회장인 석산린의 가정을 모델로 조선족의 이민사, 투쟁사, 개척사를 망라하는 12부 작의 력사대하소설을 기획하고 있었다.
그러던 1996년 문창남은 간암 확진을 위해 1년전 회사를 그만둔 안영수를 찾아 북경에 온다. 그때 안영수씨가 롱담으로 간암이 아니다. 만약 선생이 세상을 뜨게 되면 내가 선생의 전집을 만들어 드린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해 7월 문창남선생이 간암으로 세상을 뜰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그리하여 안영수씨의 롱담은 진담으로 되고 늘 마음속으로 스승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였다고 한다.
그후 안영수씨는 사업이 순탄치 않아 방황하게 되며 다시 한국 성균관대학에 류학의 길에 오른다. 그때 그는 한국의 언론재단을 통해 가급적 비용부담이 없이 전집을 출간할 계획을 세웠다가 그것이 스승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립장을 바꾸어 자체로 출간하기로 마음 먹었다. 근 2년간의 자료 확보, 고증끝에 스승의 별세 10주년을 맞으며 문창남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후원회를 조직하고 그들의 도움으로 문집으로 세상에 내놓게 되였다.
3. 문창남선생에 대하여
문단에서는 문창남선생이 창녕그룹으로 자리를 옮기자 작가로서 붓을 꺽고 기업총수의 일가를 형상하는 어용문인으로 전락되였다는 설, 및 창녕을 그만둔 리유에 대한 억측과 설이 란무하였다.
안영수씨가 곁에서 근 2년 함께 일하며 묵격한 바로는 문창남선생은 절대로 그렇게 개인의 가족사나 써서 아부하며 살아갈 인간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우연한 기회에 석산린씨를 알게 되고 여러번 만나 담화하는 과정에 서로의 마음이 맞게 되였다고 한다, 석산린씨와 해후에서 알게된 바로는 옥중생활을 같은 시기 같은 감옥에서 하였다는것. 당시에는 서로 몰랐지만, 문선생이 석씨를 만났을 당시 석씨는 기업이 상승일로를 거듭하는때라 기업의 홍보와 개인의 홍보가 필요했고 민족의 발전사를 력사대하적인 소설로 쓰기를 갈망하던 문선생으로서는 석씨의 가정 환경, 이민사, 감옥살이, 기업창설, 성공 등 일로가 중국조선족 근 100여년 이민사의 주인공으로 적합한 인물이라고 판단하고 그를 모델로 한 소설을 쓰기 위해 창녕으로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흰돐이라는 제목으로 력사소설 1, 2권을 쓰게 되였다. 그러나 문단의 전반적인 생각은 아직도 미묘한것이 사실이다.
그에 안받침하듯이 문창남선생이 창녕을 그만두게 된 원인, 병마에 시달리며 쓴 근 70만자에 달하는 원고를 창녕측에서 내놓지 않은 리유, 이번 문집출간도 이미 통보를 받아 알고있음에도 창녕에서 협조가 없는 사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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