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는 낭만의 인간으로 삶을 살지 않았다. 미래를 사지 않으며 추억마저도 끌어들이지 않고, 그저 고통과 마주하는 생명이고자 했다. 인간 존재를 형이상학적 초월세계로 이송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릴케적인 삶의 본령이다. 운명과 싸웠던 한 시인의 숭고한 모습에 우리는 전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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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약해서 군사학교를 5년 만에 그만두었지만, 그곳에 다닐 동안은 자주 결석을 했음에도 성적은 우수한 편이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의 어설픔은 계속 이어졌다. 군사학교 생활을 못 견뎌 했던 그였지만 그곳에서 자퇴하여 고향 프라하에 돌아와서는 줄곧 군사학교 유니폼을 입고 카페를 전전하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1916년 초, 빈에서 징집당했을 땐 입대 판정을 하던 하사관으로부터 ‘마리아’라는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기도 했다. 릴케의 외형적 삶은 그야말로 ‘쪼다’라는 말에 어울리게 허술하고 속이 들어차지 못했다. 그렇기에 시인으로서 그에겐 진정한 자아, 즉 ‘나’를 찾는 일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릴케는 독일 시문학사에서 처음으로 ‘나’를 탐구대상으로 하여 시를 쓴 시인으로 평가된다.
스물 이후 방랑의 삶을 살았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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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해주소서,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진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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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연과 제2연에서는 아름다운 계절의 초입에서 외치는 감사의 감탄과 소망이 주를 이루지만, 마지막 연에서는 시인으로서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생활의 면면들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집과 책 읽기, 편지 쓰기, 산책 등 평생토록 릴케에게서 떠나지 않았던 것들이다. 독일의 어느 평론가는 이 시가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이유로 ‘집’ 이야기를 들었다. ‘집’의 표상이 집 없이 떠도는 시인의 삶과 대조를 이루면서 아늑함과 자유의 이중감정을 연출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 ‘집’ 이야기가 없이 초·중반의 풍요로운 기도만 있었다면 이 시는 그만한 호소력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릴케는 스무 살에 고향 보헤미아를 떠나 그 이후로 줄곧 방랑의 삶을 살다간 시인이다. 그에겐 고독과 방랑과 책 읽기와 편지 쓰기 그리고 산책이 삶의 모든 것이었다. 타향의 외딴 다락방에서 책을 읽고 편지를 쓰다가 파리의 오래된 플라타너스 가로수길 사이로 쓸쓸하게 방랑하는 가을날의 릴케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이 시는 ‘가득 참’에서 ‘텅 빔’으로 변해가는 시인 자신의 가슴의 벌판 모습을 그려 보인다. 계절의 풍요로움이 시인의 풍요로움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그는 그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늘 가슴으로 느낀다. 이 시절 릴케는 조각가 로댕의 비서로 일하면서 “불안으로부터 사물을 만든다”고 말한다.
릴케의 삶의 등대는 루 살로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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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를 기려서 만든 우표는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스위스에서 각각 발행되었다. 릴케가 독일어권 시인으로서 이 세 나라에 자신의 흔적을 깊이 남겼기 때문이다. 첫 번째 사진의 우표는 릴케 탄생 125주년을 맞이하여 2000년에 독일에서 만든 것이다. 공모를 통해 릴케의 문학과 관련하여 설득력을 확보한 이 우표가 당첨되었다. 릴케의 초상도 없이 하트 모양으로만 장식된 것이 특이하지만, 사실 이 우표는 그만큼 릴케의 삶을 잘 드러내고 있다. 가운데에 옛 독일어 서체로 쓰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라는 이름이 먼저 보이고 아래쪽에 출생 연도(1875년)와 사망연도(1926년)가 적혀 있다. 그 이름 주위를 수많은 하트가 에워싸고 있다. 그 하트 중 가장 뚜렷한 하트가 되는 인물은 릴케보다 열네 살 연상의 여인인 루 살로메다.
러시아 장군의 딸로 당시에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대학교육까지 마친 그녀는 1897년 5월 12일 뮌헨에서의 첫 만남 이후 릴케의 삶에서 항성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정규교육을 제대로 마치지 못한 릴케에게 많은 지적 자극을 주고 이탈리아 여행을 권유하기도 한다. 르네 마리아 릴케였던 릴케를 독일식으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로 이름을 바꾸게 한 것도 그녀였다. 시인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이름을 선사하여 릴케가 시인으로서 더욱 유명하게 되는 외형까지도 갖게 해준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아닌, 이를테면 ‘압둘 핫산 릴케’였다면 어땠을까? 릴케는 루 살로메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시로 표현하는 가운데 절실한 사랑의 시를 쓸 수 있었다. ‘내 눈의 빛을 꺼주소서’는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또 다른 하트는 릴케의 부인 클라라 베스트호프에게 바쳐진 것이다. 북부 독일 출신의 조각가로 파리에서 로댕 밑에서 조각을 공부한 여인이었다. 릴케가 그녀를 만난 것은 1900년 러시아 여행에서 돌아와 찾았던 독일의 예술가촌 보릅스베데에서였다. 그녀와의 결혼생활은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결혼을 하면서 “서로를 위해 고독의 파수꾼이 되어주자”고 했던 사이였던 것은 예술가로서 각자의 삶을 잘 도모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었지만, 릴케는 늘 자유를 꿈꾸었다. 그렇게 자유를 꿈꾸던 그는 제1차 대전이 한창일 무렵, 여류화가 루 알베르 라사르를 만나 뮌헨 근교에서 동거에 들어간다. 릴케를 위한 또 하나의 하트다. 그들의 동거는 아내 클라라의 분노를 일으켰고, 루 살로메가 나서서 중재를 함으로써 릴케는 이혼은 면하게 된다.
사랑의 고통은 릴케로 하여금 ‘소유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모토를 말하게 한다. 사랑에서 소유를 버림으로써 진정한 사랑을 위해 더 넓은 공간을 지향하는 것은 시인으로서 자기만의 자유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사랑의 체험은 릴케가 나중에 <두이노의 비가>에서 ‘위대한 사랑의 여인들’을 말하는 계기가 된다. 그밖에 릴케와 한 번이라도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여인들은 스스로를 릴케의 하나뿐인 애인으로 여겼으니 이들이 또 다른 하트들을 차지한다.
사랑과 죽음을 가장 순수한 의미대로 복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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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릴케가 생의 만년을 보냈던 스위스에서 1979년에 발행한 릴케 우표다. 만년의 대작 <두이노의 비가>를 완성했던(1922년) 저택 뮈조 성관이 그의 등 뒤에 서 있다. 릴케는 대작의 탄생을 비호해준 이 중세의 돌집에 감사를 표한 바 있다. 시인이 평생 사랑하여 정원에 몸소 키우곤 했던, 그의 묘비에도 들어간 장미의 모습도 보인다. 오스트리아 우표에 있는 릴케의 모습보다 훨씬 더 근엄해 보인다. <두이노의 비가>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를 완성시킨 시인의 내면의 모습이 겉으로 드러난 것 같다.
릴케의 마음속에 늘 감돌던 낱말은 사랑과 죽음이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그에게 유명세를 가져다 준 시적 산문의 제목은 ‘기수 크리스토프 릴케의 사랑과 죽음의 노래’이다. 릴케의 생애 전 작품을 통해서 보아도 사랑과 죽음은 늘 그의 가슴속에 들어 있었다. 사랑과 죽음을 그 가장 순수한 의미대로 복권 시키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사랑과 죽음의 개념과 그 본질을 우리가 평소에 관습에 의해 길들여진 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두이노의 비가> 중 첫 번째 ‘비가’ 안에는 릴케가 평생 품었던 기본적인 생각들이 응축되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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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의 첫머리와 끝머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천사다. 초반에는 시인이 이 세상에 없는 천사를 향해 애잔한 하소연을 띄우지만, <비가>의 끝에 가서는 천사가 기쁜 표정으로 시인의 솜씨와 사명감에 찬사를 보낸다.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간신히 견디어내는 무서움의 시작일 뿐이므로”라는 구절처럼 천사는 미적인 것의 총화다. 기독교의 냄새가 점점 가시고 릴케만의 천사와 신이 모습을 드러내는 단계가 릴케가 시적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이다.
“위대한 사랑 어디에도 머무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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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유명한 감정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리.
네가 시기할 지경인 사람들, 그들이 너는 사랑에
만족한 이들보다 훨씬 더 사랑스러움을 알았으리라.
결코 다함이 없는 칭송을 언제나 새로이 시작하라,
생각하라, 영웅이란 영속하는 법, 몰락까지도 그에겐
존재하기 위한 구실이었음을, 그의 궁극적 탄생이었음을.
그러나 지친 자연은 사랑의 여인들을,
두 번 다시는 그 일을 할 기력이 없는 듯,
제 몸 속으로 거두어들인다. 너는 가스파라 스탐파를
깊이 생각해 보았는가, 사랑하는 남자의 버림을 받은
한 처녀가 사랑에 빠진 그 여인의 드높은 모범에서
자기도 그처럼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느끼는 것을?
언젠가 이처럼 가장 오래된 고통들이 우리에게
열매로 맺지 않을까? 지금은 우리가 사랑하며
연인에게서 벗어나, 벗어남을 떨며 견딜 때가 아닌가?
발사의 순간에 온 힘을 모아 자신보다 더 큰 존재가 되기 위해
화살이 시위를 견디듯이. 머무름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일상의 사랑은 사랑의 파트너로 인하여 자유를 맛보지 못한다.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소유로 제한을 받는 사랑이다. 사랑을 잃고도, 아니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버림을 받고도 사랑의 대상을 향한 사랑의 감정을 오히려 강화하여 사랑의 대상을 넘어선 사랑을 구현하는 것을 ‘소유하지 않는 사랑’이라고 한다. 이것을 제대로 실현한 인물로 릴케는 16세기 이탈리아의 여류시인 가스파라 스탐파를 들고 있다. 보통의 사랑은 인간의 태생적 사고의 한계를 잠시 눈앞에서 가려줄 뿐이다. 잠시 조화로운 세계 속에 사는 것 같을 뿐이다. 파트너의 존재는 오히려 열린 세계를 향한 눈길을 막는다. ‘생물’은 오히려 ‘열린 세계’를 바라본다.(‘제8비가’) 차라리 천사처럼 완벽하게 정신적으로 순수하며 완전한 존재이든가, 아니면 일반 생물처럼 순수하게 육체적 존재이면 좋으련만 이 두 가지가 묘하게 뒤섞인 인간은 중간자로서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않아 반쪽 존재일 뿐이다. 반쪽의 상황은 인간에게 결핍의 존재상황을 낳는다.
이제 그 어려서 죽은 자들이 너를 향해 소곤댄다.
네가 어디로 발을 옮기든, 로마와 나폴리의 교회에서
그들의 운명은 조용히 네게 말을 건네지 않았던가?
아니면 얼마 전의 산타 마리아 포르모자의 비문처럼
비문 하나가 네게 엄숙히 그것을 명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내게 무엇을 바라는가? 내 그들의 영혼의
순수한 움직임에 때때로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옳지 못한 감정을 조용히 버려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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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삶과 화해시키는 것, 그것이 릴케의 의도다. 죽음을 삶의 절반으로서, 아니 더 큰 부분으로서 받아들여 ‘온전한 세계’(훌레비츠에게 쓴 1925년 11월 13일자 편지)를 만드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저승으로 보낸 죽음을 다시 이승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시인 릴케가 할 일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확실하게 그어놓는 것에 대해 릴케는 반대한다.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나쁜 것으로 여겨 쫓아버린 삶의 요소들을 다시 구제하여 우리 것으로 만들려는 자세를 견지한다. 단순한 말의 차원이 아니라 인식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존재의 완전성은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보는 데서 창출된다. 1923년 1월 6일 자 그래핀 지초에게 보낸 편지에서처럼 죽음을 ‘달의 뒷면처럼 우리에게 늘 등을 지고 있는 쪽’으로 보는 것이다. 죽음은 삶의 절반이 아니라 삶과 함께 존재의 총체를 이룬다. 아니, 그렇게 해서 삶이 완전해지는 것이다. 근대적 인간이 의식적으로 갈라놓은 것을 합쳐놓음으로써 인간은 본래의 삶대로 온전한 존재를 누릴 수 있다. ‘제8비가’의 ‘열린 세계’를 바라보는 ‘생물’처럼. 삶의 절반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 자체를 삶과 합쳐서 삶의 온전한 전체를 이루는 것으로 볼 때 릴케의 지상주의적 사고는 완성된다. 그리고 릴케는 시인의 사명을 노래한다. 지상의 삶은 한번뿐이다. 여기서 시적 변용의 중요성이 나온다.
대지여, 그대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 아닌가? 우리의 마음에서 보이지 않게 다시 한 번 살아나는 것. 언젠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그것이 그대의 꿈이 아니던가? 대지여! 보이지 않음이여!
변용이 아니라면, 무엇이 너의 절박한 사명이랴?
릴케는 암시하는 말투로 말한다. ‘대지’는 이 지상의 모든 사물을 대변하는 표현이다. 보이는, 즉 무상한 사물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정신화하는 것, 그것이 시적 변용의 사명이다. ‘보이지 않게’의 본격적인 의미는 원문에 제대로 드러나 있지 않다. 그러나 “세계는, 사랑하는 이여, 우리의 마음속 말고는 어디에도 없다”는 ‘제7비가’의 말에 비추어보면 변용은 시인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것임이 분명해진다. 감정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으로서 그것들만이 시적 체험의 대상이 된다는 말이다. 시인의 감정을 통해 마음속에서 정화, 승화된 사물은 지속적인 존재를 누릴 수 있다.
죽음은 삶과 함께 존재의 총체를 이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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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다리, 우물, 성문, 항아리, 과일나무, 창문”, 특히 ‘기둥’과 ‘탑’(‘제9비가’) 같은 사물들은 세속과 초월의 세계를 이어주는 중간자 역할을 한다. 나아가 천사는 인류문명의 큰 업적들을 기억하는 집단적 기억의 상징이 된다. 시간을 초월하여 인간의 존재를 확증해주는 천사 앞에서 시인의 불안은 극복의 길을 걷게 된다. 결국 천사를 이야기하던 <비가>는 시인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천사는 인간으로서의 시인을 돌아보게 만드는 존재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릴케는 시인으로서의 자신도 구하고 인간으로서 불안 속에 빠진 자신의 존재도 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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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 너, 내가 알아보는 마지막 존재여,
육체의 조직 속에 깃든 고칠 수 없는 고통아.
정신의 열기로 타올랐듯이, 보라, 나는 타오른다.
네 속에서. 너 넘실거리는 불꽃을
받아들이기를 장작은 오랫동안 거부했다,
그러나 이제 나 너를 키우고, 나는 네 속에서 타오른다.
이승에서의 나의 부드러움은 너의 분노 속에서
여기 것이 아닌 지옥의 분노가 되리라.
아주 순수하게,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 없이 자유로이
나는 고통의 그 어지러운 장작더미 위로 올라갔다,
속에 든 모든 것이 이미 침묵해버린 이 심장을 위해
그토록 빤한 어떤 미래의 것도 사지 않기 위함이다.
저기 알아볼 수 없이 타고 있는 것이 아직도 나인가?
불꽃 속으로 추억을 끌어들이지는 않겠다.
오 생명, 생명이여, 저 바깥에 있음이여.
그리고 불꽃 속의 나여, 나를 알아보는 이 아무도 없구나.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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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 세상을 바라지도 넘보지도 않으며,
죽음을 피하려 하지 않는 마음,
이승에서 모습을 새로이 하지 않고
순리에 따르려는 애틋한 마음만이 있습니다.
고통은 그 강도로 말미암아 오래 기억된다. 기억은 상처를 간직하는 그릇의 역할을 한다. 상처가 말을 한다. 고통을 느끼는 것은 육체뿐만 아니라 마음이다. 고통은 마음에 푸르게 새겨지는 문신과 같다. 시인의 경우도 그의 말투와 어조를 가로지르고 또 결정하는 것은 고통의 내용들이다. 기억 속 사건이 인지과정을 통해 시적 언어로 재구성되는 것이다. 릴케는 생의 마지막을 위해 미리 자신의 묘비명을 죽기 1년 전에 써놓고 지상의 모습을 영원히 보려는 듯 눈을 뜬 채로 의사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둔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겹겹이 싸인 눈꺼풀들 속
익명의 잠이고 싶어라.
- 김재혁 시인·고려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김재혁 - 현재 고려대학교 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시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복면을 한 운명> <릴케와 한국의 시인들> 등의 저서와 <딴생각> <아버지의 도장> <내 사는 아름다운 동굴에 달이 진다> 등의 시집이 있다. <딴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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