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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 시의 리해
2015년 04월 20일 17시 01분  조회:4108  추천:0  작성자: 죽림
마리 A의 기억
              / 베트톨트 브레히트

 



 

브레히트 시의 이해
              /박찬일(연세대출판부)

 

 

1. 사용가치의 시

 

 

  브레히트는 예술의 사용 가치를 중시하였다. 그런 점에서 당시 독일시단에서 쌍벽을 이룬 고트프리 벤과 대조를 이룬다. 벤은 문학을 통한 현실 참여에 반대했다. “가난한 자들은 올라가려고 하고 부자들은 내려가지 않으려고 한다. 끔찍한 세계, 그러나 3천년이 경과한 후에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으며 다만 현상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벤은 문학적 형식만이 세상을 혼돈에서, 무의미에서, 구원할 수 있다고 보았다. “형식만이 신앙이고 행위이다./손에 의해 어루만져졌으나,/그 후 손을 떠난 조각품은/씨앗을 품고 있는 조각품이다”, “삶은 망상”이라는 것. 삶에는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형식만 남는다는 것이다. 형식이 “씨앗”이라는 것이다. 한편 브레히트는 상황을 알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상황은 “사회적 인과관계의 복합체”. 사회적 인과관계의 복합체를 알아내면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변화의 주체는 다수의 민중이고 변화의 객체는 소수의 지배계급이었다.

 

  브레히트의 사용가치의 예술관은 계몽주의 전통에 맞닿아 있다. 계몽주의 작가들은 문학의 과제는 ‘유익함과 즐거움’이라는 호라티우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레싱은 특히 문학의 유익함과 교술적 의미를 강조하여 무대를 “도덕 세계의 학교”라고 하였다. 브레히트의 예술관은 칸트 이래의 ‘예술의 자율성’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이다. 칸트에 의하면 “모든 이해관계에서 벗어난”것이 “미적 취미”, 혹은 “아름다움”이었다. 예술은 사회적 이해관계, 경제적 이해관계,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뷔르거는 칸트가 예술을 최대 이윤의 법칙에서 벗어나 있다고 한 것으로 풀이했다.

 

2. 논리의 시

 

  브레히트는 이성을 중시했다. 이때 이성은 시인의 이성이기도 하지만 독자의 이성이기도 하다. 브레히트는 독자에게 이성을 요구했다. 장미는 시 한편이며, 독자는 꽃잎 떼어내듯 시행 하나하나(혹은 단어 하나하나)를 냉정한 논리로 분석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훌륭한 시행과 잘못된 시행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능력 없이는 진정으로 시를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봐야 한다. 이 능력은 논리적 능력이며, 진정으로 향유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즐긴다는 것이다.

 

  브레히트의 창작미학상의 목표는 논리적으로 즐기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낯설게 하기 효과”(소외효과)이다. 낯설게 하기 효과는 시학적 개념이기도 하고 인식론적 개념이기도 하다. 소외시킨다는 것, 즉 낯설게 한다는 점에서 시학적 개념이고, 낯설게 하기를 통해 대상을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는 점에서 인식론적 개념이다. 낯설게 만드는 과정이 논리적이다. 독자는 이 낯설게 만드는 과정을 통과하면서, 하나의 논리를 통과하면서 하나의 인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한편 브레히트는 시가 원래 “비사교적 요소들”이기 때문에 “주석”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주석이 시와 청자 사이에 거리를 만들고 청자로 하여금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소외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낯설게 하기는 벤야민에 의하면 감정이입 대신에 ‘놀라움’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낯설게 하기는 또한 벤야민에 의하면 “중단”과 관계 있다. 시에서 <낯설게 하기>의 예를 보자.

 

 

아, 어떤 식으로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해야 할까

 

 

아, 어떤 식으로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해야 할까?

갑자기 짙은 빨강의 장미, 신선한 장미가 보이지 않는가?

아, 장미를 찾아온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 장미가 거기 있었네.

장미가 거기 있기 전에는 아무도 장미를 기대하지 않았는데.

장미가 거기 있었을 때 누구나 놀랐네.

출발하지 않은 것이 목적지에 도착한 것.

그런데 대체로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가?

 

 

  이 시에는 시를 중단시키는 자아가 있다. 시를 중단시키는 자아는 ‘낯설게 하기 효과’를 노리는 자아이다. 중단은 낯설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출발하지 않은 것이 목적지에 도착한 것./그런데 대체로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가?”라는 구절이 중단시키는 자아의 말이다. 특히 “그런데 대체로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가?”라는 구절이 그렇다.  중단시키는 자아는 서사적 자아이다. 끼어드는 자아이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서사적 자아는 첫째, 결론을 내리고 있다. “출발하지도 않은 것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라고 한 것이 그것. 둘째,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대체로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가?”라고 한 것이 그것.

 

  독자에게 시를 논리적으로 즐기라고 하고 시인에게는 낯설게 하기라는 논리적 형식을 요구하는 것은 헤겔로 연원하는 서정시 개념에 반대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서정시는 논리의 서정시가 아닌 ‘주관성’의 서정시이기 때문이다. 헤겔에 의하면 서사시는 “외적 실재의 형식”으로서 “사건 속에서 사실은 자유롭고 자립적으로 진행되며 서사적 자아는 뒤로 후퇴한다.” “객관적인 것”(내용)을 ‘주관성(형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주관적인 것은 내면적 세계이며 “주관성”은 “직관, 느낌” 등이다.

 

3. 醜의 시

 

  브레히트에게 보들레르의 쇼크는 부도덕적 쇼크로서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대도시의 정경, 대도시의 삶에 대한 기술은 부도덕적 쇼크의 판매로 간주되었다. 예를 들어 죽음, 주검, 파멸, 도박, 싸움, 신성모독 등에 대한 기술들이다. <악의 꽃>에 대해 도덕적 잣대를 적용하여 도덕적 단죄를 내린 것이다. 그러나 도덕적 쇼크에 관해서라면 브레히트도 보들레르 못지않다. 브레히트도 부도덕적 쇼크를 불러 일으켰으니 첫 시집 <가정기도서>의 많은 시편들이 ‘부도덕’의 기록, 혹은 신성모독의 기록이었다.

 

  악의 서술은 악(자본주의의 악)의 내용에 대해 ‘선의 방식’으로서의 대응이 아니라, 악의 내용에 대한 ‘악의 방식’으로서의 대응이라는 점에서 근대적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이전의 서술은 악의 내용에 대한 선의 방식으로서의 서술이었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진선미의 법칙, 즉 진리의 법칙, 도덕의 법칙, 아름다움의 법칙을 따를 것을 요구하였다.

 

  브레히트가 보들레르의 시편들을 부도덕적 쇼크라고 한 것은 그의 도덕적 엄숙주의 때문이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도덕적 엄숙주의자였다. 브레히트는 <가정기도서>의 시편을 쓸 때는 도덕적 엄숙주의자가 아니었다. 보들레르의 시편들을 비판할 때 도덕적 엄숙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추의 미학은 ‘몰락’과 ‘폐물’에 ‘아름다움’을 부여한 것이다. 그의 초기 시집인 <가정기도서>의 시편들은 19세기 말의 자연주의를 넘어 19세기 중반의 보들레르와 만나는 지점이 있다. 자연주의에 와서 추의 미학이 보편적으로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자연주의는 산업화 시대의 문학이었다. 노동자, 빈민, 창녀, 알코올 중독자, 정신병자들이 전면적으로 등장한 문학이었다. 가난, 고통, 질병, 매춘, 살인이 미학으로서 자리 잡았다. 추의 미학이 자리 잡았다. 근대문학은 자연주의에서 전면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실이 추하기 때문에 문학에도 추가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추의 미학’은 리얼리즘의 확장에 기여하였다.

 

* 전통적인 진선미의 코드는 쉴레겔에 와서 완전히 그 위력을 상실한다. 문학예술은 진선미에서 완전히 독립한다. 진리 법칙, 도덕 법칙, 아름다움의 법칙에서 독립한다. 악과 추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문학적 형상화는 심미적인 것으로 정당화된다. ‘흥미로움/지루함’이었다. ‘흥미로움/지루함’의 코드가 이후의 문학의 잣대였다. 악과 추는 흥미로운 악과 추일 수 있고 지루한 악과 추일 수 있다. 지루한 문학보다 흥미로운 문학이 의미 있다면 의미 있는 악과 추일 수 있고 의미 없는 악과 추일 수 있다. 보들레르와 자연주의 문학에서 나타나는 악과 추가 의미 있는 악과 추라면 ‘산업화 시대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 김수용 외, 악의 문학적 형상화 연구, 뷔히너와 현대문학, 제19호, 2002

 

마지막으로 브레히트의 시 두 편을 감상해보자.

 

 

마리에 대한 추억

 

 

1

푸르른 9월 어느 날

어린 자두나무 아래서

나는 그녀를, 그 고요하고 창백한 사랑을

조용히 품에 안았네. 마치 부드러운 꿈인 듯 했네.

우리 머리 위 아름다운 여름 하늘에는

구름 한 점 떠있었네. 그 구름을 나는 오래 쳐다보았네.

아주 하얗고 엄청 높은 곳에 있던 구름.

내가 다시 올려 보았을 땐 사라지고 없었네.

 

 

2

그날 이후 수많은 달, 수많은 세월이

조용히 흘러 흘러 사라져갔네.

자두나무들은 아마 베어졌을 것.

사랑이 어떻게 됐느냐고 그대가 물으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리.

그대가 말한 뜻을 나는 이미 알고 있지만

정말이네, 그녀 얼굴이 생각나지 않네.

다만 그녀 얼굴에 언젠가 키스를 했다는 사실뿐.

 

 

3

그 키스도 구름이 여기 있지 않았더라면

벌써 오래 전에 잊었을 것이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구름, 앞으로도 잊지 못할 구름은

아주 희었네. 위에서부터 온 것이라네.

자두나무들은 여전히 꽃을 피우고 있을지.

그녀는 일곱 번째 아이를 가지고 있을지도.

그러나 구름은 몇 분 동안만 피어올랐고

내가 올려다보았을 대 벌써 바람에 사라지고 없었네.

 

 

 

 

 

악한 자의 가면

 

 

 

내 방 한쪽 벽면에 일본 목각 작품 한 개가 걸려 있다.

금색 칠을 한 악마 형상의 가면이다.

이마에 툭 불거진 힘줄을

감전된 듯 나는 본다. 그것은

악한 것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보여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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