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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시를 써보기
2015년 04월 20일 17시 58분  조회:4564  추천:0  작성자: 죽림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시를 써보자

-- 엄숙주의를 벗어나기 위하여

 

 

  여러분은 혹시 우리 시에 ‘웃음’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없습니까? 시하는 것이 엄숙하기만 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는 지난 100년 동안 엄숙주의로 일관해왔던 것이 아닐까요. 이번 호에서는 시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웃음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승하 (시인/중앙대 교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하는 시들

 

보들레르 시 두 편부터 읽어보겠습니다.

 

 

내 마누라가 죽어서, 난 자유로워졌다!

그러니 취해 떨어지게 술을 마셔도 돼

빈털터리로 집에 돌아오면

그녀의 고함소리 내 가슴 찢었지

        

                                           -김인환 역, <살인자의 술>

 

 

오, 구더기여! 귀도 눈도 없는 검은 동료들이여!

보라, 자유롭고 즐거운 죽은 자 너희들에게 왔도다

호색적인 철학자, 부패의 아들들이여

이제 후회 없이 내 육신 파고 들어가라

그리하여 나에게 말하라, 아직도 무슨 고통 남아 있는지

주검들 사이에 끼어 있는 영혼 없는 이 늙은 죽은 몸에!

        

                                           -김인환 역, <즐거운 사자> 마지막 연

 

 

제가 《악의 꽃》에 실려 있는 이 두 편의 시를 읽은 것은 대입 수험생일 때였습니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엄숙한 시들을 수십 번씩 읽으며 예비고사 대비 공부를 할 때 이런 시를 읽어보니 얼마나 재미가 있던지요. <살인자의 술>은 잔소리가 심한 마누라를 죽인 사리인자가 다시금 술에 취해 허우적대는 모습을 그린 시입니다. 사람을 죽여놓고 다시 술을 마시는 섬뜩한 광경이 펼쳐지지만 “내 마누라가 죽어서, 난 자유로워졌다!”라고 외치는 술꾼에게 왠지 동정심이 갑니다. <즐거운 사자>에서는 시적 화자가 구더기들에게 자기의 영혼은 이제 육신과 나누어졌으니 육신을 파고 들어가 배를 채우라고 말합니다. 죽음의 세계를 자유롭고 즐거운 세계로 묘사한 이 시를 보고 “야, 참 시가 이렇게 엉뚱하고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프랑스 시인들 가운데 앙리 미쇼, 앙드레 브르통, 자크 프레베르 같은 시인의 시는 별로 심각하지 않고 아주 재미가 있습니다. 지면 관계상 소개를 못 해드리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우리 시에 ‘웃음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없습니까? 시라는 것이 엄숙하기만 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는 지난 100년 동안 엄숙주의로 일관해왔던 것이 아닐까요. 언제가 ’풍자‘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지금부터 시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웃음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시를 쓸 때 어깨에 너무 힘을 주지 말고, 재미있게 쓰는 훈련을 해보십시오. 김영승의 다음과 같은 시는 어떻습니까.

 

남들 안 입는 그런 옷을 입었으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왜 으스대는가. 왜 까부는가. 왜 어깨에 목에 힘이 들어가 있는가. 왜 꼭 그렇게 미련을 떨어야 하는가. 하얀 가운을 걸치고 까만 망토를 걸치고 만원 버스를 타봐라. 만원 전철을 타봐라. 얼마나 쳐다보겠냐. 얼마나 창피하겠냐. 수녀복을 입고, 죄수복을 입고, 별 넷 달린 군복을 입고……

 

왼쪽 손가락을 깊이 베어 며칠 병원을 다녔는데 어떤 파리 대가리같이 생긴 늙은, 늙지도 않은 의사새끼가 어중간한 반말이다. 아니 반말이다. 그래서 나도 반말을 했다.

 

“좀 어때?”

“응 괜찮어”

그랬더니 존댓말을 한다. 그래서 나도 존댓말을 해줬다.

“내일 또 오십시오.”

“그러지요.”

 

                        -<권태 72> 전문

 

 

김영승은 아마도 병원에 갔다가 직접 겪은 일을 갖고 이 시를 썼을 것입니다. 제복을 입었다면 봉사 정신에 투철해야 할 텐데 그들 중 다수는 사람을 깔보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맞대응을 했던 것이고, 의사는 그때서야 말을 높여서 환자를 대합니다. 사회풍자라고 해야 할지, 시인이 한 방 멋지게 펀치를 날렸군요. 김영승은 시집 《반성》에 이어 《권태》를 낸 바 있는데 두 시집 모두 연작시로만 이루어진 독특한 시집입니다. 《반성》에는 이런 구절이 있는 시가 나옵니다. “신문에 난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 수필집 광고에 나온/ 李外秀 사진을 보며 어머니는 또 그러신다 그러더니 또 별안간/ ‘야 저 새끼 장가갔냐?’ 하신다”. 소설가 이외수의 얼굴을 떠올려도 그렇거니와 어머니의 말투가 거칠기 이를 데 없어 독자는 씩 웃게 됩니다.

 

웃음에 대한 개념들과 전통속의 웃음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보통 이하의 열등한 인물을 모방하는 데서 희극이 성립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또, 웃음은 타인에게 고통이나 해악을 끼치지 않는 일종의 과오나 추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내용은 움베르토 에코가 쓴 《장미의 이름》의 모티브가 됩니다. 17세기에 와서 홉스는 웃음이란 타인의 약점을 통해 느끼는 우월감 내지는 갑작스러운 승리감이라 했습니다. 18세기의 칸트는 웃음이란 긴장했던 기대가 갑자기 무로 전화해서 발생하는 정서라고 했습니다. 홉스와 칸트 두 사람은 ‘불일치’의 관점에서 웃음을 이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세기에 와서 베르그송은 《웃음-희극의 의미에 대한 시론》에서 웃음을 ‘생명적인 것에 덧붙여진 기계적인 것’으로 설명합니다. 인간은 사회의 변화에 주의하고 이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긴장감과 유연성을 가집니다. 그러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기계처럼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경직성과 방심 상태에 놓일 때, 웃음을 자아내게 됩니다. 웃음의 사회적 성격을 강조하는 베르그송에게 있어서 웃음의 원인인 ‘불일치’는 바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비사회성’입니다. ‘비사회성’에서 오는 기계적인 경직성이나 방심상태를 단죄하는 사회적 징벌이 베르그송이 말하는 웃음의 사회적 기능입니다.

웃음은 미적 개념으로는 골계미에 해당됩니다. 미의 기본 범주로 숭고미, 우아미, 비장미, 그리고 골계미의 4분법 체계를 드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골계의 유형 중 가장 비중이 큰 풍자는, 현실 개선의 의도를 가지고 인간의 어리석음과 악덕을 폭로하고 공격하는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외부 상황의 자극과 그 고통의 감정을 웃음으로 넘겨 자아를 손상하지 않고 지키는 데 해학의 본질이 있다고 했습니다. 풍자가 공격성의 골계라면, 해학은 방어의 골계입니다. 또한 풍자가 사나운 골계라고 한다면 해학은 부드러운 골계에 해당합니다. 우리 문학에는 예로부터 골계미가 풍부했습니다. 골계미는 서양 말로 하면 ‘유머 센스’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서양에서는 골계의 하위 범주로 풍자․해학․아이러니․위트 네 가지를 설정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풍자(satire)는 사회의 모순과 허위를 능란한 궤변으로 까발리거나 과장하여 공격하는 비우호적인 태도입니다. 해학(humor)은 현실을 포용과 융화로 여유 있게 보면서 현실로 인한 슬픔이나 분노를 익살스럽게 드러내는 태도입니다. 아이러니(irony)는 겉으로 나타난 말과 실질적인 의미 사이의 괴리로 생겨나 반어적 표현입니다. 위트(wit)는 서로 다른 사물에서 남이 보지 못하는 유사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경구나 격언 같은 압축되고 정리된 말로 능숙하게 표현하는 지적 능력입니다. 아래의 시는 위트가 넘치는 작품이죠.

 

 

가만히 지구를 두들겨 본다

뗑 뗑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

발밑을 내려다본다 밑을

자식 뭘 보냐

씩 웃는다

               ― 김용길,<물방울 별> 전문

 

 

  여기서의 지구는 물방울 하나입니다. 지구가 아무리 크다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물방울 하나, 지구본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인의 상상력은 독자가 지구를 물방울 하나로 인식하게끔 유도합니다. 지구를 두들겨보니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시인의 발밑을 내려다  봅니다. 물론 이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처럼 상상의 공간이지요. 시인은 마지막에 두 행에서 웃음의 미학을 보여줍니다. 지구 저쪽의 누가 자기의 발밑을 보니까 화자는 “자식 뭘 보냐”하고 한마디 했고, 그러자 상대방이 씩 웃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지구는 하나의 촌(村)이며, 그보다 더욱 작은 물방울 병인 것입니다.

국권상실의 시대에 근대적인 의미의 시가 출발한 탓인지 눈물과 한숨, 좌절과 절망은 1910~1920년대의 종합지 시단과 동인지를 수놓은 주된 정조였습니다. 기나긴 일제 36년 동안 이 땅의 많은 시인들은 광복을 생각하며 우국지사의 정신 내지는 선비 정신을 가져야 했습니다. 광복의 날이 오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친일의 대열에 합류해 일제의 침략전쟁을 고무, 찬양하고 일군에 자진해서 입대할 것을 종용하는 친일작품을 썼던 시인도 많았습니다. 나라를 되찾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남북으로 분단이 되고 6․25 전쟁을 겪어야 했습니다. 남쪽의 시인들은 1980년대가 저물도록 독재자가 아니면 군인 출신이 나라를 통치한 탓에 민주투사의 길을 가거나 정치에 환명을 느끼고 서정시인의 길을 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농담 질하는 시인을 우리는 그리 많이 갖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도 이제껏 인간의 슬픔과 설움, 아픔과 절망의 세계를 탐구해온 시인입니다. 제 시에는 재미있는 구석이 별로 없지요. 다만 두 번째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에 나오는 몇 편의 시가 다소 재미있는 시의 유형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웃음은 인간의 전유물입니다. 동물이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이나 동물의 웃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저는 아직 동물이 웃는 모습을 못 보았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웃을 줄 아는 존재이고, 남을 웃길 줄 아는 존재입니다. 요즘 젊은 여성들은 신랑 될 사람이 갖추어야 되는 조건 중 하나로 유머 감각을 제시할 정도라고 합니다. 숫기 없는 사람은 장가도 못 가게 생겼습니다.

우리 시사에서 웃음이 전통은 〈처용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신라의 향가 〈처용가>는  내용이 아주 익살스럽습니다. 처용이 밤늦게 집에 와서 보니 이불 밖으로 다리가 네 개 나와 있습니다. 외간 남자(역신)가 아내와 동침 중이었던 것입니다. 처용은 그 충격적인 광경을 보고 화를 내기는커녕 얼씨구나 하고 한바탕 춤을 추었으니 그 배포가 보통이 아닙니다. 판소리 가운데 〈흥부전〉과 〈춘향전〉에는 청중을 웃음의 도가니에 빠뜨리는 대목이 몇 번이나 나옵니다. 탈춤과 들놀이〔野遊〕의 양반춤 과장에서는 꼭 관중의 웃음을 유도하는 장면이 나오며, 유랑광대의 인형극ㄱ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문학에서 웃음의 전통은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을 징검다리 삼아서 김유정과 채만식으로 이어지집니다. 저는 윤흥길과 심상대, 성석제의 소설을 읽으며 키득키득 웃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웃음의 전통은 우리 현대시에서 김영승  외에 어떤 시인들이 계승하고 있을까요?

 

우리 현대시 속에서의 웃음

 

김지하는 풍자의 올바른 방향이 민중이나 소시민의 자기 풍자가 아니라 민중의 반대편에 서 있는 특권 지배계층에 대한 신랄한 풍자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재벌․국회의원․고급공무원․장성․장차관을 을사오적신에 빗대어 비판한 〈오적〉은 단형 판소리 요소를 차용한 작품입니다. 그는 일련의 담시를 통해 군사독재정치 시대의 비리에 가득 찬 특권 지배계층과 반민주적인 지배이데올로기, 그리고 반민족적인 친일 세력에 대해서도 통렬하게 풍자했습니다. 황지우의 웃음은 우리 사회의 죄악상이나 불미스런 점들을 비꼬아 찌르는 촌철살인의 웃음입니다.  조롱과 야유가 담긴 싸늘한 웃음이지요. 황지우의 냉소는 현실부정의 소산이어서 삶의 끔찍스러움을 긍정하는 고소(苦笑)와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박남철은 산문체와 요설체, 금기어, 욕설, 야유 등의 해체적 문법에 의해 전통적인 시적 규범을 깨뜨림으로써 사회의 규범과 문학적 엄숙주의를 타파하고자 애쓴 시인입니다. 〈주기도문〉이나 〈주기도문, 빌어먹을〉같은 시에서 보이는 신성에 대한 반발도 그의 초기 시세계의 중요한 특징이었습니다. 냉소를 선사했던 그들의 뒤를 이어 유하와 함민복은 우리에게 유쾌한 웃음을 주었습니다.

 

경천동지항 무공으로 중원을 휩쓸고 우뚝 무림왕국을 세웠던

무림패왕 천마대제 만박이 주지육림에 빠져 온갖 영화를 누리다

무림의 안위를 위해 창설했던 정보기관 동창 서열 제 2위

낙성천마 금규(金圭)에게 불의의 일장을 맞고 척살되자,

무림계는 난세천하를 휘어잡으려는 군웅들이 어지러이 할거하기 시작했다

(…)

무력 19년 가을, 광도일귀는 승산의 영웅대회에서 잔혹귀존 폭풍마독 등

형식적인 비무를 거친 뒤 무림맹주의 권좌에 등극하였다

그날 무협신문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표하며

혈의방 무사들이 통천가공할 무공을 익히며 호시탐탐 중원을 노리는 이때

강력한 무공의 소유가자 중원을 다스려야 한다고

수심에 가득한 기사를 썼지만 대부분 인면수심들이었다.

                ―〈武歷 18년에서 20년 사이 ― 무림일기1〉부분

 

유하는 저급한 대중문화의 대명사인 ‘키치’를 이용하여 지난 시대의 정치적 억압상황과 대중문화, 그리고 현대문명을 비판한 시인입니다. 이 시에서 유하는 정치인들을 무림계의 고수들로 형상화하여 그 행태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무림패황 천마대제 만박”은 박정희를, “낙성천마 금규”는 김재규를 가리킵니다.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피살된 후 군사정권 존립에 위기감을 느낀 전두환이 김재규와 정승화를 몰아내고 대통령이 되는 일련의 정치적 일정이 무협지의 세계로 풍자되고 있습니다. 유하가 당시의 정치현실을 무협지에 빗댄 의도는 ‘허구 같은 역사적 사실’을 표현하고자 한 데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인은 시대적 소명을 저버리고 한결같이 “환영의 뜻을 표하며” 강력한 무력의 소유자가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며 ‘인면수심’을 보인 당대 신문들을 풍자하는 것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시의 제목은 군사정권 18년에서 20년 사이를 의미합니다. 1980년대의 군사정권도 바로 박정희 정권의 연장이라는 유하의 시대의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잘 벗겨지지 않아요

―제비(?)표 페인트

알아서 빨아줘요

―대우 봉(?) 세탁기

구석구석 빨아줘요

―삼성(?) 세탁기

빨아주고 비벼주고 말려주고

―금성(?) 세탁기

우리는 그이가 다 빨아줘요

잘 빨아주니 새댁은 좋겠네

―럭키슈퍼타이

 

무엇이, 무엇을 의도적으로 빠는 이 광고에

우리는 무엇을 꼭 집어넣으라고 욕해야 할지

 

                ―〈내 귀가 섹스 쪽으로 타락하고 있다〉전문

 

  함민복은 상업광고의 언어를 패러디하여 우리 사회의 타락상을 비판한 시인입니다. 패러디란 원래 어떤 작품이 지닌 특징을 포착해서 만든, 모방적 측면을 지닌 작품이지요. 함민복은 육체적 이미지와 관련된 먹고 사는 것, 성적인 것, 배설로 말미암은 것이 유쾌한 것으로 찬양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또 기존의 신성과 권위, 이데올로기 및 가치는 얼마든지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차원으로 격하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당시의 세탁기 광고 언어를 모른다고 해도 함민복의 시가 지닌 웃음의 의미는 약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시는 패러디가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현실을 첨예하게 반영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단적인 예입니다. 다음 시에도 웃음의 미학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나 어느덧 입덧 심한 임산부 되어

배만 찾는다

값비싸고 큰 배만 맛있게 먹는다

아, 배!

아그 배!

아그, 아그으, 아그 배!

아크 배!

아크, 아크, 아, 크, 큰 배〔腹〕!

아흐으으으 배!

        ―이선영, 〈아그배〉전문

 

아그배는 아그배나무의 열매로 아주 작고 맛이 시며 떫습니다. 이 시는 먹는 배를 탐하던 임산부가 점점 커져만 가는 자신의 배를 보고 경악해 마지않는 장면을 담아 임신한 여성의 심리를 절묘하게 묘사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의성어와 감탄사가 웃음의 효과를 배가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듣기 체험의 산물인 〈굴비〉나 재미있는 상상력의 산물인 〈교통사고의 기쁨〉을 보면 앞으로 우리 시의 활로는 눈물의 시가 아니라 웃음의 시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비록 체질에 안 맞아 웃음이 시를 쓸 수 없지만 여러분은 시를 쓰실 때 농담이나 육담 한마디를 곁들려 보십시오. 골계미와 풍자․해학․아이러니․위트를 적절히 구사한 시를 써보십시오. 그러면서도 사회를 풍자하고 세태를 비판하면 일거양득이 아닙니까.

 

나는 편해, 도로에 볼썽 사나운 모습

으로 누워 있지만, 고통도 더 이상 없고

아주 편해, 그래, 페허를 헤매는

늑대 같은 직장 동료 안 만나도, 이젠

되고, 이젠 자녀의 앞날도, 사랑하는

사랑한다는, 남편이나 아내의 기분도

하루 세 끼, 그 지겨운 식사도,

                ―이만식,〈교통사고의 기쁨〉부분

 

교통사고를 강해 죽은 한 가장의 영혼의 독백으로 전개되는 이 시는 역설의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 왜 기쁨이냐 하면, 죽음으로써 온갖 의무의 사슬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저승세계로 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통도 더 이상 없고 아주 편하다는 죽은 자의 말에서 우리는 샐러리맨의 비애가 어떤 것인가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오탁번의 시 〈굴비〉는 웃음 없이 읽을 수 없습니다. 시의 대화 부분만을 따서 제시합니다.

 

―굴비사려, 굴비! 아주머니, 굴비 사요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그거 한 번 하면 한 마리 주겠소 (이상 제 1연의 대화)

―웬 굴비여?

―앞으로는 절대로 하지 마!(이상 제 2연의 대화)

―또 웬 굴비여?

―앞으로는 안 했어요(이상 제 3연의 대화)

 

이 시의 재미는 굴비 장수와 ‘김매던 계집’의 화간이나 “앞으로는”이란 말의 뜻에 있는 것 같지만 제가 보건대는 “사내는 계집을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박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 불렀다”라는 마지막 4행에 있습니다. 사내는 아내의 굴비 봉사(?)에 오히려 그날 밤을 뜨겁게 밝힙니다. 개똥벌레들과 베짱이들도 사라의 하모니를 연주하지요. 우리 시에는 이러한 웃음이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요? 우리의 웃음보를 터뜨리게 하는 영화가 얼마나 많습니까. 시인이라고 우스꽝스러운 시를 쓰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골계미를 분출하는 시, 웃음 속에 눈물이 얼비치는 시를 저는 읽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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