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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시인 - 드라이든
2015년 04월 20일 22시 55분  조회:5197  추천:0  작성자: 죽림

 

정의의 여신의 귀환

이제 일련의 보다 흰 시대가 시작되어,
유연한 세기로 부드럽게 흘러,
그대의 아침을 덮고 있는 저 구름들이
하늘의 가장 먼 구석으로 쫓겨 날아가게 되리라.
우리 민족은 제 세력의 통합으로 축복받아
이제 균형 맞추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나머지 세계를 지배하리라.
그대의 제국은 해외에서 어떤 한계도 알지 못할 것이고,
끝없이 순환하는 바다처럼 흐르리라.
그대가 총애하는 함대는 넓은 제해권으로
육지의 작은 군주들을 포위하리라.
그리고 오래된 시간이 그의 자손을 집어삼켰듯이,
우리 대양도 깊이에서 모든 바다를 익사시키리라.
그들의 풍요로운 무역은 해적의 약탈로부터 자유로워
우리 상인들은 더 이상 모험가가 되지 않으리.
비천한 네덜란드가 여기서 숨기는
그런 위험을 근동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스페인은 그대의 선물에 인도 제국을 빚지고 있다,
강자는 취한 것을 주지는 않기에.
그리고 망명자의 존재를 두려워한 프랑스는
그대가 여전히 너무 가까이 있는 것을 정당하게 염려하네.
국내에서는 당파라는 증오스러운 이름들이 그치고
당파적인 사람들이 지쳐 평화를 찾네.
지금 불평분자들은 이전에 그대의 정당한 대의를
배신하는 죄를 저질렀던 자들뿐이다.
그들의 몇몇에 대해 그대의 칙령이 죄에서 벗어나도록 선도했고,
하지만 그대의 삶과 축복받은 모범이 대부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오, 행복한 군주시여, 하늘이 맹세를 지킴으로써
더 많은 맹세를 지키게 할 길을 가르쳐 주었으니!
오, 행복한 시대여! 위대한 아우구스투스 왕좌를 위해
운명에 의해 홀로 점지된 시대들과 같은 시대들이여!
그러한 때 무력과 문력의 조화로운 성장이 세상에게 한 군주를
미리 보여 주었는데, 그 군주가 바로 그대다.
(원전 292∼323행)
≪드라이든 시선≫, 존 드라이든 지음, 김옥수 옮김, 28∼30쪽

“일련의 보다 흰 시대”가 무엇인가?
황금시대를 가리킨다.

황금시대가 뭔가?
사회의 진보가 최고조에 이르러 행복과 평화가 가득 찬 시대다.

“행복한 군주”는 누구인가?
찰스 2세다. 정의의 여신도 찰스 2세다. 이 시는 드라이든이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1660년, 찰스 2세의 프랑스로부터의 귀환을 축하하기 위해 쓴 찬양시다.

이 시는 무엇을 겨냥하는가?
선전과 권고다. 로마의 정치 안정과 문화 융성, 경제 번영을 영국에서 이루려는 바람이다. 찰스 2세 시대의 영국이 새로운 로마 제국이 될 것이라고 선전하는 동시에 그가 진정한 군주, 아우구스투스 같은 군주가 되기를 권한다. 오거스턴 시다

오거스턴 시란?
Augustan poetry란 아우구스투스적인 세계를 이상향으로 제시하는 시다. 오거스턴은 아우구스투스 시대 로마 문인들을 모방하려는 18세기 시인들을 일컫는다. 드라이든은 베르길리우스나 호라티우스를 모방했다.

시가 왜 정치에 복무하는가?
드라이든은 공적, 사회적 문제에 대해 대중을 설득하는 공공의 웅변가(public speaker)를 이상적인 시인의 모습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세계관을 제시해 왕과 국민들에게 규범으로 삼도록 했다.

그의 이상적 세계관이란?
토리 세계관이다. 그는 야당인 휘그당과 대립하는 토리당을 지지했다. 휘그파의 과도한 정치, 경제 개인주의가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태도가 사회 혼란을 조장한다고 이해했다.

토리 세계관은 무엇 위에 서있나?
정치적으로는 왕정과 귀족 중심의 위계질서, 경제적으로는 도덕 경제를 토대로 삼는다.

그의 정치관은 문학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가?
공격성을 주된 특징으로 하는 풍자시를 주로 쓰게 되었다. 풍자시로 토리적 세계관을 규범으로 제시하는 한편 휘그파를 공격했다.

문학사에서 드라이든의 의미는?
영국의 신고전주의 시대를 열었다. 오거스턴 신화를 실현해 18세기 시인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영국 비평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비평적 혜안을 보여 주는 평론도 많이 남겼다.

어떻게 살다 갔나?
1631년 영국 노샘프턴셔에서 태어났다. 학생 때인 1649년에 첫 번째 시 <헤이스팅스 경의 죽음>을 발표했다. 1668년 계관시인이 되었다. 1700년 사망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드라이든John Dryden
 
출생 1631. 8. 19, 잉글랜드 노샘프턴셔 올드윙클
사망 1700. 5. 1, 런던
국적 영국

1631. 8. 19 잉글랜드 노샘프턴셔 올드윙클~ 1700. 5. 1 런던. 
영국의 시인·극작가·문학비평가.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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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드라이든

드라이든, Godfrey Kneller 경이 그린 유화

당대를 '드라이든 시대'라고 부를 만큼 당시의 문학계를 주도한 문인이다.

초기생애와 교육

시골 유지의 아들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다. 11세 때 청교도혁명이 일어났는데 친가와 외가 모두 왕에 맞서 의회 편에 섰으나, 당시 드라이든의 생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1644년경 웨스트민스터 스쿨에 입학, 유명한 리처드 버즈비로부터 주로 고전적인 교육을 받았다. 이러한 교육 덕분으로 그리스 로마 문학에 일생동안 수월하게 친숙할 수 있었으며 뒤에 그리스 로마 문학을 영어다운 영어로 번역할 수 있었다. 1650년 케임브리지대학교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했고, 1654년 문학사학위를 받았다. 1654년 대학을 졸업한 뒤부터 1660년 찰스 2세의 왕정복고 때까지의 행적은 확실하지 않다. 1649년 올리버 크롬웰을 위한 기념문집에 글을 실어 시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의 영웅시(heroic stanzas)는 원숙하고 깊이있고 격조가 높으며, 후기시의 특징이 될 고전적·과학적 인유(引喩)로 점철되어 있다. 그는 이런 종류의 공적인 행사시(行事詩)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1660년 5월 찰스 2세가 왕위에 복귀하자 그는 왕을 환영하는 시인의 한 사람으로 6월에 2행연구의 300행이 넘는 시 〈아스트리아 리덕스 Astraea Redux〉를 발표했다. 또 1661년의 대관식을 경축해 〈신성한 폐하께 To His Sacred Majesty〉를 썼다. 이 2편은 왕권을 강화하고 권위를 드높이며, 젊은 군주에게 영원한 신성함이 깃든 위엄을 부여하기 위해 계획된 시였다. 그뒤로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의 필치는 거의 변함없이 확신에 차 있었다. 1663년 12월 1일에 버크셔의 백작 1세인 토머스 하워드의 막내딸 엘리자베스 하워드와 결혼해 아들 셋을 두었다.

특정시기를 반영하는 가장 긴 시 〈경이로운 해 Annus Mirabilis〉(1667)는 영국 함대의 네덜란드 제패와 1666년 런던 대화재 때 살아남은 사람들을 축하하는 글이다. 이 시에서도 왕의 이미지를 미화하고 훌륭한 왕 아래 단합한 충성스러운 국민의 모습을 강조했다. 이로 미루어 보아 1668년 계관시인 윌리엄 대버넌트 경이 죽자 그 자리에 임명되었고 2년 뒤에 궁정사료편찬가로 임명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극작 활동

찰스 2세는 1660년 왕위에 복귀한 뒤, 1642년부터 닫혀 있던 극장에 2가지 특허를 내주었다. 드라이든은 다시 활성화된 극장에 공연할 희곡을 쓰는 소수의 극작가 그룹에 참여했다. 첫 희곡 〈The Wild Gallant〉는 유머와 음탕한 대화가 담긴 소극(笑劇)으로 1663년에 상연되었다. 이 작품은 실패에 가까웠으나, 1664년 1월에 로버트 하워드 경과 같이 쓴 2행연구 영웅비극 〈인도 여왕 The Indian Queen〉은 성공작이었다. 이 작품들은 사랑과 명예 사이의 갈등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아름다운 여주인공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던 남자들이 무릎을 꿇고마는 내용을 담은, 새로운 대중적 장르의 연극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1665년 봄에 〈인도 여왕〉의 속편 〈인도 황제 The Indian Emperour〉를 발표하여 처음으로 독자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667년에 발표한 희비극 〈은밀한 사랑, 처녀여왕 Secret Love, or the Maiden Queen〉도 대단한 인기를 얻었는데, 특히 왕이 이 작품을 좋아했다. 명랑하고 재담이 풍부한 궁녀 플로리멜 역은 왕의 애첩 넬리 그윈이 맡아 완벽하게 연기했다. 플로리멜이 셀러던과 수다를 떠는 대목에서는 재치있는 응답을 즐기는 왕정복고기의 성향이 새로운 수준에 도달해 있음을 보여 주었다. 1667년에는 몰리에르의 희극 〈얼간이 L'Etourdi〉(뉴캐슬의 공작인 윌리엄 캐븐디시가 번역)를 개작하여 〈마틴 매럴 경 Sir Martin Marall〉이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올렸다.

1668년에 발표한 〈극시론 Of Dramatick Poesie, an Essay〉은 드라이든(작품에서 'Neander'로 지칭됨)을 포함한 4명의 작가가 모여 여유있게 토론하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고대 고전극과 신고전주의 프랑스극에 맞서 영국극을 옹호하는 한편 극비평의 일반원리를 찾아보려는 의도에서 씌어졌다. 고대와 현대, 프랑스와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와 왕정복고기 등의 이미 굳어진 대립관계를 깨기 위해 작중의 논쟁자들을 알맞게 설정해 토론을 깊이있고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극시론〉은 현대 극비평을 다룬 최초의 비중있는 저서로서, 분별있고 신중하며 탐구적일 뿐 아니라 차분하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문체로 일반적인 원칙과 분석의 결합을 시도했다. 그는 이 글뿐 아니라 모든 비평에서 매우 사색적이고, 공정한 과학적 탐구자세를 취했다.

1668년 드라이든은 토머스 킬리그 루극단에 전속되어 1년에 3편씩 극을 써주기로 약속하고 극단 수입의 1/10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주주가 되었다. 실제로는 1년에 1편 정도밖에 못 썼지만 계약은 서로에게 이익을 주었다. 1669년 6월에는 거드름을 피고 신성을 모독하는 발언을 하는 주인공 맥시민이 등장하는 〈폭군 같은 사랑 Tyrannick Love〉을 썼다. 또 이듬해 12월에 〈스페인의 그라나다 정복 The Conquest of Granada by Spaniards〉의 1부를 썼고 1개월 뒤에 2부를 썼다. 이 세 작품은 대성공을 거두었는데 특히 〈스페인의 그라나다 정복〉의 대담무쌍한 주인공 알만조를 통해 표현했던 사랑과 명예라는 주제가 절정에 달한다.

그러나 1671년 버킹검의 공작 2세인 조지 빌리어스가 드라이든(작품에서 베이스 씨)을 풍자해 쓴 영웅극 〈예행연습 The Rehearsal〉의 재치있는 풍자에서 나타나듯이, 그의 희곡은 이무렵 거의 활력을 잃고 있었다. 그렇지만 〈예행연습〉이 드라이든의 영웅극을 완전히 매장시키지는 못했다. 1675년 11월 그가 쓴 영웅극의 마지막 작품이며 가장 잘된 작품 〈Aureng-Zebe〉가 무대에 올랐다. 여기에서는 압운을 갖춘 2행연구를 사용하지 않고 무운시를 썼다.

영웅극에서 드라이든은 드럼과 트럼펫, 장광설과 허풍, 무대 위의 전쟁, 화려한 의상, 이국적인 장면 등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으려 했다. 그러나 1672년에 발표한 희극 〈유행하는 결혼 Marriage A-la-Mode〉에는 대중의 구미에 맞는 장광설과 호언장담을 쓰지 않으려는 노력이 상징적으로 나타났다.

이 작품은 왕정복고기를 배경으로 남녀의 사랑싸움을 묘사하는데, 뒷날 조지 에서리지 경과 윌리엄 콩그리브의 훌륭한 작품에서나 나옴직한 기교를 부린 세련된 표현을 쓰고 있다. 비극 〈모두 사랑을 위해 All for Love〉(1677)는 다른 류이긴 하지만 역시 훌륭한 극으로, 셰익스피어의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모체로 하여 유창하면서도 절제된 무운시로 썼다. 드라이든은 이무렵에 신고전주의기에 들어섰으며, 그뒤의 비극들은 초기 작품의 과장된 성격으로부터 아주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구성이 탁월하며 상황이나 인물로부터 자연스럽게 발생한 사건을 다루었다. 1678년경에는 부실한 경영으로 심각한 곤경에 빠져있던 킬리그루 극단의 동료 주주와 다투게 되었다. 이 때문에 내서니엘 리와 함께 쓴 비극 〈오이디푸스 Oedipus〉를 경쟁상대가 되는 극단에 주고 주주로서의 권리를 포기했다.

풍자시

〈경이로운 해〉를 출판한 뒤 드라이든은 12년 동안 거의 극작에만 전념했다. 만약에 그가 1680년에 죽었더라면 극작가로서만 알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의 집필 활동을 통해 그의 이름은 영국 최대의 풍자시인으로 통하게 되었다. 1681년에 찰스 2세의 동생으로 요크의 공작이며 가톨릭 신자인 제임스가 왕으로 옹립될 것이라는 정치적인 의혹이 생겨서 왕은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자 샤프츠버리 백작의 주도 아래 휘그당의 지도자들은 가톨릭 음모사건을 이용하여 제임스를 왕위계승에서 배제하고 찰스의 서자이며 신교도인 몬머스 공작을 옹립하려 했다. 그러나 왕은 재빨리 손을 써서 여론이 휘그당의 편을 들지 못하게 했고, 샤프츠버리는 대반역죄로 투옥되었다.

드라이든은 계관시인으로서 몇 달 간의 위기를 방관만 할 수 없었으므로 1681년 11월 〈압살롬과 아히도벨 Absalom and Achitophel〉을 써 휘그파의 분노를 자기 쪽으로 돌림으로써 왕을 도왔다. 〈구약성서〉의 다윗왕(찰스 2세), 총애하는 아들 압살롬(몬머스), 아버지에게 반역하라고 압살롬을 부추긴 나쁜 아히도벨(샤프츠버리)을 시의 골격으로 삼아, 지난 몇 년 간의 사건들을 왕과 토리 당원의 관점에서 풍자하면서 왕과 심각한 정치상황에 알맞는 영웅시체로 썼다. 반(反)휘그 선전문으로써 휘그당의 지도자들을 우스꽝스럽게 풍자적으로 묘사해 비웃는 이 시는 공공연한 비난이 호소력있게 표현된 걸작이며, 한편 토리파 선전문으로서도 차분하고 설득력있게 토리당측을 옹호했다.

런던 대배심이 샤프츠버리를 반역죄로 기소하기를 거부하자 동료 휘그 당원들이 그에게 훈장을 주기로 결정했는데, 이에 대한 반응으로 드라이든은 1682년초에 〈훈장 The Medall〉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휘그당에 대한 신랄한 비난으로 가득 차 있으며 힘차고 솔직한 산문 〈휘그에게 보내는 서한 Epistle to the Whigs〉이 서문으로 실려 있다. 같은 해에 드라이든의 허락없이 익명으로 그가 약 4년 전에 쓴 유명한 긴 풍자시 〈맥 플렉노 Mac Flecknoe〉가 출판되었다. 휘그파 극작가인 토머스 섀드월을 신랄하게 공격한 이 글의 계기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려진 바 없으나, 분명한 점은 〈맥 플렉노〉에서 문학가와 비평가로서 섀드월의 재능이 너무나 유쾌하고 악의 없는 경멸을 받은 나머지 실제적 평판마저 나빠졌다는 사실이다.

섀드월을 바보 글쟁이로 만든 이 풍자는 벤 존슨의 위트에 대한 섀드월과 드라이든의 견해 차이에 기초를 두고 있다. 드라이든은 존슨이 위트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반면 섀드월은 엘리자베스 시대 극작가라면 무조건 흠모했던 것이다. 이 재미있는 희극적 풍자문은 영어로 된 최초의 의사(疑似) 영웅시이며 알렉산더 포프가 쓴 〈던시아드 The Dunciad〉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후기작품

새로 등극한 제임스 2세가 가톨릭교도에 관용적인 움직임을 보이자, 드라이든은 1685년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가 쓴 가장 긴 시이며 동물 우화인 〈암사슴과 표범 The Hind and the Panther〉(1687)에서는 영국국교회와 다른 종파들에 맞서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옹호했다. 1688년 제임스 2세가 왕위에서 물러나면서부터 드라이든의 정치적 전도(前途)는 막히게 되었고 계관시인 칭호도 섀드월에게 빼앗겼다. 그는 다시 극장으로 돌아왔다. 비극 〈돈 세바스찬 Don Sebastian〉(1689)은 실패했으나, 헨리 퍼셀의 음악 덕분에 〈암피트리온 Amphitryon〉(1690)은 성공했다. 퍼셀과 합작한 〈아서 왕 King Arthur〉(1691)도 성공을 거두었다. 비극 〈클레오메네스 Cleomenes〉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소재를 썼다고 하여 공연허가를 얻지 못했고, 1694년에 쓴 희비극 〈승리한 사랑 Love Triumphant〉이 실패하자 그는 극작을 그만두었다.

1680년대와 1690년대에는 출판업자 제이콥 톤슨을 도와 시문집을 주간했고 주베날리스와 페르시우스의 작품을 번역했다. 1692년 애빙던 백작부인의 남편으로부터 많은 후원금을 받고 긴 기념시 〈엘리오노라 Eleonora〉를 써서 출판했다. 그러나 후기의 대표작은 1694년에 톤슨과 계약을 맺고 집필하여 1697년에 출간한 베르길리우스의 번역서이다. 이무렵 드라이든은 영국문단의 원로로서 윌스 커피하우스에서 젊은 작가들과 한담을 나누곤 했다. 톤슨이 출판한 그의 마지막 작품은 오비디우스·초서·보카치오 등의 작품을 개작한 〈고대와 현대의 우화 Fables Ancient and Modern〉(1700)로서, 비평적 서문으로 시작한다. 1700년에 죽었으며, 웨스트민스터 대사원의 시인들 코너(Poet's Corner)에 제프리 초서와 에이브러햄 카울리를 양옆에 두고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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