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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感의 詩쓰기
2015년 05월 12일 22시 59분  조회:4220  추천:0  작성자: 죽림

오감(五感)의 시, 긍휼(矜恤)의 시 쓰기

ㅡ시의 이미지즘과 영혼

 

 

 

​                                                                                   전해수(문학평론가)

 

 

  정민나의 시는 푸르다. 젊다. 지천명이 한참 지난 시인이 이처럼 푸르고 젊은 시상(詩想)을 펼쳐 보인다는 점은 주목된다. 아무 시나 무작위로 끄집어내어 함부로 읽어보아도 시인의 시에는 손아귀에서 팔딱거리는 푸른 고등어의 매끈한 촉감과 생동하는 저 바다의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들리고, 보인다. 바다를 소재로 한 시가 아닌데도 이처럼 선명한 색채와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짠 소금 맛과 비린 냄새가 전신을 휘감는 듯한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시인이 주로 사용하는 오감(五感)의 시는 거칠고 메마른 현실세계를 아름다운 몽환의 세계로 이끈다. 그 세계는 매우 선명해서 이것이 과거의 기억인지 현실세계인지 시간을 무화시킬 뿐만 아니라 시간 너머 미래의 갈망까지 불어넣는다. 시인이 지향하는 감각적 이미지와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자유영혼의 세계는 마치 샤갈의 그림 속 색채의 미학을 마주할 때의 놀라운 환상 체험처럼 이미 저만치에 가 사라지고 없는, 잃어버린 동심을 그리워하게 하면서도 오색 창연한 미지의 세계 속으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

 

  아마도 이처럼 예견할 수 없는 생경하나 선명한 이미지의 원천은 정민나 시의 이미지즘이, 독자에게 잊혀진 시간의 기억들을 뜻밖의 순간에 재생시켜 유년으로 되돌아가 보게도 하고 청년의 뜨거웠던 열망을 다시금 떠올리게도 하며 중년의 현재에서 바라봐야 할 현 지점을 깨닫게 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한마디로 그것은 영혼과 만나는 이미지즘의 세계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정민나 시의 특징은 오감이 작동하는 그의 시적 배경에 ‘긍휼의 시 쓰기’가 내장되어 있어 더욱 이채롭게 다가온다. 정민나의 시는 몽환적 이미지즘을 드러내면서도 현실 밖에 존재하는 떠도는 비현실적 환각의 세계를 막연하게 추구하지는 않는다. 긍휼. 세계를 어여삐 여기며 따뜻한 시선으로 껴안으려는 어미의 마음이 정민나 시의 밑바탕을 이룬다. 그것은 정민나의 시에서 매우 개성 있는 특징이다. 요컨대 시인 정민나가 지향하는 시는 오감을 통한 생생한 이미지즘이 시의 외연에 흐르면서 사랑과 용서, 화해와 평화를 대면하게 하는 긍휼의 시세계라 할 만한 것이다.

 

  싸이렌 울긋불긋 폭발하는 밤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를 누군가 신고한 모양인데

 

  저 리얼한 演技는 안개 낀 날 솟아오르는 煙氣라서

 

  그 벽 아래 물에서 자라는 속새는 얇은 대궁이 가는 막대기처럼 흔들

리네

 

  불도 나지 않았는데 시내 소방차가 다 쏟아져 나온

 

  이 시간엔 똑바로 등을 세운 속새는 말도 하지 말아요

 

  노를 저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카누처럼

 

  자기가 가고 싶은 날 자기가 먹고 싶은 날 푸른 잎을 복사한 봄은 짙

은 연무 속으로

 

  누가 손바닥을 탁 쳐서 이 한 밤 울긋불긋 사라지네

  ㅡ「연기緣起」전문

 

  시집(詩集) 맨 끝자리에 놓인 위 시는 정미나 시가 오감(五感)을 잘 사용하고 있는 이미지즘 시임을 제대로 보여준다. 시인이 의존하는 공감각적 이미지는 “울긋불긋”이란 시어처럼 의태어나 때로 의성어를 통해 더욱 선명한 감각적 이미지를 연출해낸다.

 

  위 시에서 연기(緣起)는 연기(煙氣)에서 비롯한다. 연기(煙氣)에서 발생한 “싸이렌” 소리는 “리얼한 연기(演技)”를 생생하게 재연시킨다. 시끄러운 싸이렌이 울려 퍼지고 소방관이 출동하는 모습이 쉽게 연상된다. 이처럼 정민나의 시에서 청각은 시각화를 동시에 유발하여 공감각적 이미지를 끌어내며 그러한 공감각적 이미지는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전 신경계를 더듬는 촉각으로 이어진다. 촉각은 딱딱하게 무디어 가는 우리의 영혼을 일순간 긴장하게 만든다. 최소 세 가지 이상의 감각적 이미지를 한꺼번에 사용하는 시인의 시는 오감과 색채, 첩어의 빈번한 사용으로 이미지즘적 성향이 강한 시들을 자주 선보이며 이를 통해 영혼의 죽은 목소리를 오감의 이미지를 통해 회생시킨다.

 

  위 시에서 시제로 사용된 ‘연기(緣起)’의 단어적 의미는 모든 현상이 생기고 소멸하는 원인이자 법칙을 말하지만,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연기(緣起)는 “싸이렌 울긋불긋 폭발하는 밤”에 불길이 내뿜는 붉은 색채의 “리얼한 연기(煙氣)”를 감각적 이미지로 선명하게 재현하여 ‘연기(緣起)’의 발생을 내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사실 화재(火災)의 상황은 급박하기 마련이며 시끄러운 싸이렌 소리는 우리의 청각을 넘어서서 말초신경계의 모든 감각을 흔들어 깨운다. 위 시에서 화재는 실제로 확인되지 못하고 소문에 불과한 것으로 사그라진다. 그런데 화재진압에 사용되는 ‘물’의 이미지는 “불”의 도전적 속성에 반(反)하는 것인데 위 시에서는 “속새”의 이미지로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시인이 싸이렌 소리를 듣고 화재진압 현장을 상상하며 “그 벽 아래 물에서 자라는 속새”가 “얇은 대궁이 가는 막대기처럼 흔들리”는 모습을 동시에 떠올리는 것은 독특한 대조를 이룬다. 물의 이미지가 푸른 “속새”의 이미지와 융합하고 있다. 다만 폭발적인 불의 속성에 비하여 물은 싸이렌의 요란한 청각적 이미지에 의해 ‘연약하게’ 유추될 뿐이다.

 

  시인은 위 시에서 실제의 화재진압 행위를 배제하면서 “자기가 가고 싶은 날 자기가 먹고 싶은 날 푸른 잎을 복사한 봄”의 푸른 생명력과 자유로움을 찬미하는 심정으로 연기(煙氣)의 상황을 연기(緣起)로 승화시키고 있다. 실제로 싸이렌 소리는 그저 “짙은 연무 속”에서 “울긋불긋” 화려한 (불의) 색채를 띠지만 “탁”소리와 함께 무대조명이 꺼지듯 일시에 헛소문으로 “사라지”고 만다. 청각에 의해 상상된 시각적 연출이라 할 수 있겠다. 다급한 “싸이렌 소리” 하나로 움튼 시상(詩想)이 공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새로운 감각의 이미지즘 시로 재탄생되었다.

 

뇌의 두 돌기는 맞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백만분의 이 센티 정도 시냅스 공간이라는 간격이 있지요 

 

 

  뇌의 두 돌기는 맞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백만분의 이 센티 정도 시냅스 공간이라는 간격이 있지요

 

  마음이 명랑하면 저절로 태양과 빗소리가 저절로

 

  구름과 꽃들도 번갈아 말이 달려요

 

  불확실한 상황이 계속될 때 급등 종마가 탄생하지요 악어가 점점 입을 벌리듯이

  간격이 멀어지면 당신은 점점 무거워져요

 

  무작정 뛰어 가면 안 돼요 천둥소리에도 베팅을 하는, 당신 몸속의 말들은 중독된 지 오래

 

  검사를 한 번 해 보세요 당신 몸에 어떤 적혈구가 섞여 있는가 세포가 어떻게 감각의 판을 건너가는가

 

  뜨거운 탕에 오래 몸 담그면 쪼글쪼글해 지는 날씨 불안하게 휘감기는 저 운동장 마음부터 고치려면 진눈깨비 휘날리듯 징검다리 건너뛰듯

 

  꽃샘바람으로 놔두는 게 좋겠어요 이 시간이 지나 삼박 사일이 지나 흙탕물이 가라앉으면 유리조각의 담장을 넘어

 

  고양이도 사뿐, 4월 꽃봉오리에 착지할 거예요

  ㅡ「선천성 면역에 관한 보고」전문

  뇌의 피돌기와 적혈구의 흐름을 증가시키는 사건에는 무엇이 있을까. 증상과 처치와 면역에 이르는 병마와의 싸움이라든가 선천성 면역이 절실해지는 이별의 후유증같은 치유의 불가능성 혹은 위 시에서 이미지화된 무릇 경마장의 흥분된 열기를 문득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흥분과 불안, 분노와 절망의 순간에 우리는 뇌의 피돌기가 거꾸로 도는 듯한 아찔한 찰나를 겪는다.

 

  위 시는 사람들의 함성 속 “불안하게 휘감기는 운동장”의 포효하는 흔들림과 “베팅하는 당신 몸속의 말”들을 중독된 “적혈구”의 예민한 촉수로 대비시키고 있다. 위 시에 등장하는 “악어”와 “고양이”의 이미지는 정민나의 다른 시에도 자주 보이는데 매우 대조적인 이미지의 대립적 상관물로 작용한다. 악어는 “불확실한 상황이 계속될 때” “입을 벌리”며 다가오는 “적혈구”가 섞여있는 불안의 감각적 이미지로 작동하면서 우리의 내면을 공격하고, 고양이는 이 시간이 지나 흙탕물이 가라앉으면 “4월의 꽃봉오리”에 기대어 부드럽고 순한 털과 순결한 눈동자로 우리에게 안식의 세계를 꿈꾸게 한다. 때로 고양이 이미지는 ‘아이’의 모습에 견주어지거나 ‘악어’로 표상되는 공격적 생존의 세계를 제거하는 순수의 세계로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 애는 눈밭 위 고양이로 앉아 있고요

  먹을 것 없는 덤불 속을 헤매다가 추위 속을 뛰쳐 나왔구요

  아무도 아랑곳 하지 않는 개울가를 노려보고 있고요

  그러나 우리 애는 햇살의 계단 거꾸로 내려오며

  계단의 햇살 뒤집는 까치들 공격하지 않아요

  어느 새 우리 애는 조용히 얼음 밑 소라로 걸어가고 있고요

  하얀 물의 뼈로 자라고 있고요 얼마 전부터 물챙이 다리

  우리 애는 자잘한 꼬챙이를 엮어 엄마인 나를 촘촘히 걸러내고 있습니다

  더는 못 가겠어 소리를 질러도

  우리 애는 빨간 통로에서 하얀 미끄럼틀을 주르르 내려가고 있고요

  겨울 음수대는 단수되었습니다 눈의 꼭대기에서

  엄마는 여기 갇혔어 소리를 지르면 냇물아 냇물아 어디로 가니

  입장권을 뽑아오는 물챙이 방죽

  우리 애는 호루라기를 불고요 얼음 밑 물고기를 잠그고 있고요

  그러면 꽁꽁 언 빙판 위에도 더 이상 헐벗은 고양이 보이지 않아요

  우리 애는 초고속 범선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요

  활처럼 휘어지는 만국기 휘날릴까요

  상류에서 하류로 흐르는 냇물 고단한 우리 애는

  아랫마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엄마가 보이지 않나 봐요

  꼼꼼히 물챙이만 칩니다

  ㅡ「물챙이 여울」전문

 

 

  고양이는 시인의 시에서 ‘아이(애)’의 순수하고 호기심어린 동심과 치열한 생존의 천지간에 놓인 순결성과 상통하고 있고, 그리하여 “고단한 우리 애”는 “눈발 위의 고양이”처럼 아찔하게 위험천만의 위기를 맞닥뜨리기도 한다. “꽁꽁 언 빙판 위”의 “헐벗은 고양이”는 그러나 동심이 오래도록 남지는 못한다. 동심은 “냇물아 냇물아 어디로 가니” 꽁꽁 얼어붙은 “단수대”의 그것처럼 시간 속에 다른 모습으로 바뀌며 마침내는 소멸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동심을 놓친 세계. 그것은 악어가 살고 있는 준호의 그림 속에서 이미 예견된 어른들의 치열한 생존의 동물적 세계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다만 표현의 방식이 오감의 선명한 이미지로 동심에 의해 채색되어 있다는 점이 좀 다르다.

   

 

  악어가 사는 이글라우로 가 보지도 못한 준호는 책에서 본 악어를 색과 선으로 잘 이어 놓습니다

 

  배가 고플 때 아장아장 걸어서 물가에 도착한 악어

  물을 마시는 사슴을 사냥해 사뿐사뿐 뜯어 먹는 악어

  초롱초롱 빛나는

 

  -중략-

 

  준호는 악어를 본 적 없고 바람이 불어서 모자가 날아간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놀이터에 악어가 나타나자 아이들에게 ‘빨리 달아나’ 말한 뒤   자기도 곧장 주루주룩 도망갑니다

  ㅡ「준호의 만화」중에서

  아직 순수의 세계 속에 놓여있으므로 악어를 본 적 없는 준호의 악어 그림은 “아장아장 걸어서 물가에 도착”하거나 “사슴을 사냥해 사뿐사뿐 뜯어 먹”는 모습으로 비치는데, 이것은 현실과는 다른 그림으로 그려진 것이다. “초롱초롱” 빛나는 악어라니! “악어가 사는 이글라우”로 가 보지도 못한 준호는 “책에서 본 악어를 색과 선으로 잘 이어” 새로운 ‘예쁜’ 악어를 탄생시킨다. 그것은 아수라장 적자생존의 동물의 왕국에서 보던 잔혹한 세계와는 매우 다른 “만화(漫畵)”같은 세상이다. 준호가 그린 소리나 모양을 흉내 낸 악어의 그림은 “아장아장”, “사뿐사뿐”, “초롱초롱” 귀여운 모습으로 등장하고, “뿡뿡거리고 뚝딱거리며 하루 종일” 준호가 만들어낸 만화의 세계는 두 세계(동물성과 식물성으로 나뉘는)의 차이와 공존의 (불)가능성을 우리에게 질문처럼 던지고 있다.   

 

  쇼팽의 즉흥 환상곡도 현재 상영 중인 환타지 공상 영화도 에로스를 탐색한

  미학 여행도 메뉴판에 있는 것은 너무 자주 먹던 것

 

  뭐 새로운 느낌이 드는 맛난 것은 없나요 말하자면 데리다의 경첩 같은 것 보르헤스의 알랩 같은 것 연암의 코끼리 기호학 같은 것

 

  메뉴판에 있는 것만 시키세요 식당 주인의 시큰둥한 목소리에 어제의 신작시 샐러드와 다시 쓴 명상록 조림과 희망의 경제학 무침이 기본으로 놓인 식탁 앞에서

 

  젓가락을 들고 한참 들여다보아도 도무지 식욕이 되살아나질 않아 기운이 푹 죽은 언어의 비름나물 한 가닥 질겅질겅 씹고 있는 여름 한낮

 

  툭 밀어놓는 물병 속에 죽음은 어떻게 사는가 메디컬 에세이가 출렁이지 않는가

 

  마지막 감동 한 컵 따라 마실 때 목 줄기를 타고 퍼지는 죽음 한 줄기

쌉싸롬한 이 맛이 원기가 될까 비릿한 죽음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ㅡ「뭘 먹을까?」중에서

  시인의 상상세계는 시 속에서만은 모두 현실로 가능해진다. 즉흥 환상곡, 환타지 공상 영화, 에로스를 탐색하는 미적 세계는 ‘시’라는 요리의 마지막 미각이 되어 독자에게 전달된다. 20세기 해체시나 아방가르드, 무의미의 시, 모던한 실험시들은 “너무 자주 먹”어 이미 새롭지 않은 것.

 

그러나 시인이 지향하는 시적 세계는 데리다의 형식으로서의 새로움이 아니라 “경첩 같은” 오래된 진리탐구이며 그렇다고 해서 쾌쾌 묵은 전통을 갈구하는 것이 아니라 “보르헤스의 알랩”같은 이단적 새로움도 있고, 연암의 실용성 뒤편의 “코끼리 기호학”같은 참신한 형식미도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이다. 마치 시인이 천착하고 있는 시세계 즉 오감을 자극하는 상상력의 세계와 닿아 있는 “쌉싸름한” 세계라 하겠다. 시고 맵고 짜면서도 달콤한 시 맛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죽은 우리의 말초신경들을 깨어나게 하는 ‘오감의 시 쓰기’로 시도된다.

 

  위 시에서 “메뉴판에 있는 것만 시키”라는 주인장의 말에 “어제의 신작시 샐러드와 다시 쓴 명상록 조림과 희망의 경제학 무침이 기본으로 놓인 식탁 앞에서” 시인은 한참동안을 “도무지 식욕이 되살아나질 않”아 “뭐 새로운 느낌이 드는 맛난 것은 없나” 이런 저런 시어들을 살핀다.

 

시제 ‘뭘 먹을까’는 시인의 시세계가 이러한 시적 탐색을 겪으며 얻어진 열매라는 사실을 제시해준다. 구태의연한 메뉴판(‘詩板’)에 식욕(‘詩慾’)이 되살아나질 않아 “죽은 언어의 비름나물 한 가닥 질겅질겅 씹고 있는” 순간에도 시인은 “죽은 언어”를 살리는 방법을 곰곰 모색하고 있으며, 시인의 충천하는 치료법이 내장된 “메디컬 에세이”를 고안하여 시원한 “감동 한 컵”으로 건조한 목 줄기를 적시고 죽음의 시를 되살리려는 고군분투를 보여주고 있다. 무작정 달콤하지만은 않을 “쌉싸롬한” 시적 고뇌의 대가(代價)는 그렇게 ‘오감의 시’로서 다시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정민나 시의 근원에는 죽음에 이른 시의 피돌기를 재생시켜 인간으로 혹은 시인으로 살아있음의 의미를 살피고, 처연한 긍휼의 정신을 끊임없는 시적 고민과 이미지즘의 재구성으로 시화하려는 노력이 깃들어 있다. 

 

  문이 열리면 사람들이 걸어 나온다 자세히 보면 그들은 千態萬象이다

 

  시천동 입구에서 토마토 함지박을 인 아주머니 빨강 한 분이 올라타고 유성전기 모터 유니폼을 입은 아저씨 회색 두 분이 내리신다

 

  사자를 물리치고 먹이를 구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일상이다

 

  좌동마을 입구에서 선두고물상의 기사 빨강 두 분이 올라타고 아파트 광고 전단지를 말아 쥔 청년 검정 한 명이 더 오른다

 

  그들은 알고 있다 파피루스의 사자들 압박의 붕대를 조이면서 물소를 좇는 거인들 간격이 좁혀지는 물살 사이로

 

  방향 전환이 필요할 때, 사자들

  손발이 맞지 않는 허름한 틈새를 공격한다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으로 마른번개가 지나가고

  비석을 깎는 할아버지 주황 한 분이 내리신다

 

  향동 입구에서 해맑은 약국의 노랑 한 분이 머뭇거리는 찰나,

  물소는 목덜미를 물린다 비틀, 붉은 살점이 뜯겨져 나간다

 

  풀꽃들이 어두워질 때

  고대의 파피루스지를 달리는 사자와 물소들

 

  버스는 마을 입구에서 정차했고 물길을 건너온 사람들 몸 안에서 뛰어내린 저마다의 비릿함

 

  자세히 보니 그것은 초록동색이었다

  집요하게 물소를 좇아가는 일 집요하게 사자를 따돌리는 일

  ㅡ「파피루스의 기록들」전문

 

 

 

 

 

  위 시에서 빨강, 회색, 주황, 노랑은 파피루스지에 새겨진 이름들 즉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이 다양한 색채들은 그들이 입은 옷의 색깔이거나 특징을 지칭하는 것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초록(은)동색”이듯이 구분이 실상 필요치는 않은 것들이다. 파피루스지를 통해 오색창연한 색으로 변신한 즉, “빨강, 회색, 주황, 노랑”으로 물들은 모습의 사람들은 유사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물길을 건너온 사람들 몸 안에서” 짙게 나는 파피루스지의 “비릿함”이 같기 때문이다.

 

  다만 “자세히 보니 그것은 초록동색이었다”는 깨달음을 만나는 지점이 “집요하게 물소를 쫓아가는 일”과 “집요하게 사자를 따돌리는 일”의 연속되는 궁극의 삶의 지난함으로 새롭게 투시되고 있다.

 

  너는 검은 흙을 묻히고 검은 햇볕을 입히고 던지면 검은 돌이 되는 웃음을 네 귀퉁이 울퉁불퉁 펼쳐놓고

 

  너는 모래 같은 어머니를 쌓고 텐트 같은 아버지를 매고 자갈밭에 앉아

 

  발가락에 묻은 모래알 염기의 바람 속 너는 휘어지고 너는 넘어지고

 

  뻘의 딸이라도 된 것처럼 질척질척 허리를 잡고 끈적끈적 씨름을 하고

 

  번쩍 들린 여름을 털썩 뻘 안으로 던져 놓고 한쪽 눌러놓은 섬이 뻘 밖으로 튕겨 나가면 두 손 두 발로 기어가 신발 속 꽉 찬 매미울음을 털어놓고

 

  빙빙 돌다 힘이 들면 뻘 묻은 신발을 높이 하늘로 차올리고 기러기처럼 뻘 바닥이 가볍게 날아오를 때

 

  갯벌 돛자리에 떨어지는 햇살은 펄떡이는 아이들 금 밖의 세계를 보일 듯 말 듯 밀어내고 뻘의 손자손녀처럼

 

  가족사진을 찍다가 물이 미는 오후 누군가 지나가다 돌맹이를 툭 차면 펄럭 뻘 한쪽이 저물고

 

  물고기를 잡는 가장자리 촘촘한 말뚝을 내려놓고 이제 옷 갈아입자 뻘 묻은 팔을 떼어놓고

 

  너는 이 검은 섬 놓고 가야지 뻘 속에 빠져 더듬거리는 길을 건져 뻘 묻은 손으로 새들을 다 날려 보내고

ㅡ「마음 갯벌」전문

 

  마음 갯벌에서 바라보는 “너”는 ‘나’고 ‘나’는 “너”다. 그것은 객관적 투시의 대상으로 “너”를 ‘나’로 지시했다기보다는 궁극의 ‘너’는 ‘우리’자신이며 그것은 ‘하나’라는 의미로 작용하는 “너”라고 할 수 있다. “가족사진을 찍다가” 마음 갯벌에 빠져 “더듬거리는 길”을 찾아 “모래 같은 어머니를 쌓고 텐트 같은 아버지를 매고” “휘어지고” “넘어지”는 마음 갯벌을 뒹구는 “뻘의 딸”들의 마음을 읽어보려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이 잘 느껴진다.

   

 

  뿌리인 듯 올려다보기 새싹 돋듯 바람 불기 꽃피듯 젖어들기 열매 맺듯 열어보기

  (다음 주 해맑은 동물 병원 옆 크로커다일에서 만나자구?)

 

  안마하며 뒤집어 보기 시청하며 돌아눕기 청소하며 다시 펴기 통화하며 문 잠그기

  (그래 알았어 유천 산부인과 앞 새천년 장례식장 왼편으로?)

 

  귀 아프게 바라보기 손 떨리게 걸어보기 배터지게 잠자기 눈부시게 소리 지르기

  (엘림 순복음 교회 앞 큰 대문 보살집은 이사 간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문 닫고 하늘보기 어둠열고 낙서하기 꿈속에서 기도하기

  (침, 뜸, 부항의 달인 희천 한의사님이 내려다보는 가보시끼 맥주 집 앞으로)

 

  집을 짓듯 너를 지우기 시를 짓듯 밥 짓기

  (아래 역에서 숨차게 올라온 익스프레스 대형차가 지나가네)

 

  뜸들이듯 밥을 짓기란 이다지도 힘이 드는구나

  (유리창 앞 가판대에 사기 전문 도박꾼 얼굴들 지워진지 오래인데)

 

  푸근하게 익어가는 쌀밥 속으로

  (해맑은 동물 병원 보이지 않고…… 새 옷을 줄까 헌 옷을 줄까…… 악어도 보이지 않고)

 

  축산물 도매 센타 지나  본스 삼계탕 지나 해피 돼지방 지나……

  ㅡ「딴전」전문

  ‘딴전’은 ‘집중’과는 영 다른 말이지만 ‘집중’의 다른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생소하나 주의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시선이 정미나의 시에는 존재한다. 딴전부리듯 모른 척하는 시인의 내면에는 관심과 고민의 자리가 깊고 넓다. 그의 시는 사소한 것들을 지나치지 않는 시적 깊이와 “힐끗”거리며 지나치는 듯이 보이나 결코 모른 척 지나가지 못하는 ‘자기 앞의 생’에 대한 ‘긍휼’이 숨겨져 있다. 이 긍휼을 통해 내 생에 대한 긍휼의 마음은 점차 넓어지며 세상과의 소통을 끊임없이 노크하게 한다.

  시인은 오십 이후의 생이 결코 “딴전”으로 사라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는 듯 “뜸들이며 밥 짓기”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지워지고 지우려 해도, 지나가고 지나치려 해도, 그의 시 속에는 한시도 정신을 놓을 수 없는 ‘악어’가 어슬렁거리는가 하면 ‘종마’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달리고 있고, ‘고양이’가 반짝이는 여리고 선명한 눈알을 굴리며 시의 위대한 순수성을 주시하고 있다. 이처럼 시인의 시에 대한 애정과 언어의 진폭, 시적 상상력은 시적 이미지를 창출하려는 시인의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태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오감(五感)’의 생생한 이미지화를 통해 생동감 있게 출렁이고 있다.

 

 

 

 

 


 

   

전해수 문학평론가

본명 전영주. 1968년 대구에서 출생. 수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학위 취득. 2005년 계간 《문학 선》을 통해 문학평론 등단. 저서로는『1950년대 시와 전통주의』가 있음. 동국대학교 한국어교육센터 한국어 강사, 同 대학 문화학술원 연구교수, 同 대학 BK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동국대학교, 강남대학교, 용인대학교 출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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