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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와 치료
이언 김동수
1. 시쓰기와 치료 글쓰기는 정신병과 우울증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것은 글쓰기가 혼란스런 현실에서 우리의 삶에 질서와 감정의 분출구를 마련하여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주는 역할을 해 주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나서 후련한 느낌을 갖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글쓰기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요즘 나의 고민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만약에 내가 ......을 하게 된다면....’ 등과 같이 처음엔 기본적인 감정에 대해 글을 써 보면서 내부적 저항을 완화시켜 주는 것이 좋다. 그러다가 점차 자신 안에 내재된 불안과 고통을 서사적 혹은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해 보게 하거나, 자기의 감정과 닮아 있는 시를 읽게 하여 내적 갈등을 완화시켜 가도록 한다. 그것은 글쓰기라는 감정의 전이와 공유를 통해 그간 무의식 속에 억압된 심리를 해방, 고통을 소산(clean up) 시키는 정신의학적 치료효과(abreaction)가 있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 어느 가을 여학생 한 명이 내 연구실을 찾아왔다. 직장 생활을 하다 그만 두고 글이 쓰고 싶어 우리 과(문예창작과)를 찾았던 학생이었다. 대뜸 “교수님, 저 외로워요 했다” 느닷없는 그의 발언에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이다가, 평소 그의 남달랐던 인상,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우울해 보였던 모습이 떠올라 정호승의 「수선화에게」 라는 시를 꺼내 읽어 주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정호승 「수선화에게」 전문
시를 다 읽고 난 후, “너도 외롭고, 나도 외롭고, 생명을 가진 것치고 이 세상에 외롭지 않는 것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랬더니 “ 교수님, 인제 됐어요” 하고 밝아진 표정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연구실 문을 나가던 일이 있었다. “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정호승의 「수선화에게」를 통해 그는 어느새 이처럼 힐링이 된 것이다. ‘외로운 것’은 자기만이 아니라 ‘삼라만상에 외롭지 않는 것이 없다’는 통찰, 곧 정서적 동일시(同一視)로 세계와의 화해를 이루게 된 셈이다.
어둠은 출발이다 깊은 나락에서 즈믄 밤을 뒤척이다가도 끝내 홀로 일어서야 하는 침묵 그것은 안으로 안으로 덮쳐오는 어둠을 살라 먹고 산처럼 다가오는 아픔을 살라 먹고 때가 되면 밖으로 튀어나오는 빛살의 물결 어둠은 결코 어둠이 아니다 길고 긴 인고의 세월 끝에 쌓이고 모인 말씀과 말씀들이 이렇게 두 손 털고 일어서는 생명의 숲이다 찬란한 탄생의 눈부심이다
- 김동수 「어둠의 역설」 전문
실패 그리고 패배라는 객관적 사실보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 하는 주관적 자세가 더 중요함을 깨닫는 순간, ‘어둠’은 더 이상 어둠이 아니었고. 그것은 오히려 새로운 출발의 시작이요, ‘찬란한 탄생의 눈부심’이라는 깨침(覺)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선언적 아포리즘(aphorism)으로 그간 어둠의 고투를 딛고 일어설 수가 있었던 것이다. 시쓰기는 이처럼 자기 콘트롤(super-vision), 자기 정화로 자신의 삶을 순화시키고 강화시켜 가는 힘이 있다.
2. 정신질환 시(詩)로 고친다. -임상실험
노이로제·조울증 환자 자작시 낭송 -시작(詩作) 동기 등 발표 유도로 불만·갈등 해소하다.
문학의 한 장르인 시가 정신질환을 진단, 치료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동안 연극 음악 그림은 임상예술로서 정신질환진료에 활발하게 응용돼왔었으나 국내에서 시(詩)가 정신과 환자의 진료수단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 아직 일반인에게 생소한 시치료에 관해 최근 「시치료의 이론과 실제-B병동 시화전」을 펴낸 정신과 전문의 김종주 박사(인천 기독병원 정신과 과장)로부터 정신질환과 시 치료에 관해 들어본다. 국내에서 최초로 시 치료를 시도 한곳은 몇 년 전 김종주 박사가 근무했던 원광대병원, 김 박사는 정신질환으로 범죄를 일으켜 감호를 받는 50명의 환자에게 시치료를 시도 하여 빠르고 높은 치료효과를 거뒀다. - 이후 연세대 의대에서도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시치료가 소개돼 앞으로 정신과 진료에 널리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박사에 따르면, 시치료는 개인치료에도 응용되나 보통 집단치료에 활발하게 이용된다. 집단치료의 경우, 우선 잘 짜인 시치료팀을 구성해야 한다. 시치료에 대한 충분한 이론과 경험을 가진 정신과 전문의가 치료를 주관하게 되는데, 환경 요법 등 임상경력 2년 이상의 정신과 전문의 1명, 간호원 2명, 봉사원 1명의 보조를 받는게 보통, 치료대상은 노이로제 약물 및 알콜중독, 조울증, 정신분열증 등 광범위한 영역의 정신질환에 적용되지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못 참는 환자는 제외된다. 즉 기질성 뇌증후군 환자나 반사회적 인격 장애 급성정신병원의 환자에게는 시치료가 적용이 안 된다. 치료대상이 정해 있지만 치료팀은 시간을 충분히 주어 환자들에게 가능한 10행이내의 시를 짓게 한다. 환자가 시를 다 지으면 각자의 시에 그림을 그려 별도의 치료실 벽에 붙이도록 한다. 치료 시간이 되면 환자들을 모아놓고 작품을 낸 환자가 직접 시를 낭송토록 한다. 환자의 시낭송에 앞서 명상의 시간이나 기성 시인의 시를 함께 낭송케해 분위기를 조성한다. 환자에게 자신이 쓴 시를 낭송하게 한 다음, 다른 환자, 의사, 간호원이 다시 낭송을 해준다. 시를 쓴 환자에게 시를 쓰게 된 동기, 시 해설을 하도록 한다. 그 다음 치료팀은 참석자들에게 자유토론을 유도한다. 치료팀은 토론내용을 정리하는 한편 시를 쓴 환자에게 토론결과에 대해 의견을 말하도록 하고 다시 스스로 쓴 시를 낭송케 한다. 이 과정에서 환자는 가슴속 깊이 감추고 있던 갈등을 표현함으로써 정신적 통풍, 즉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시를 통해 불안 분노의 물꼬를 트는 한편 죄책감이나 부끄러운 감정을 느끼지 않고도 고백 욕구를 해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시낭송 토론과정에서 환자에게 자신감과 의사소통능력 정신집중력을 증진시켜줄 수 있다. 자신의 문제가 자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주고 자기 성찰을 통해 갈등을 풀 수 있는 능력을 키워 환자 스스로 병을 다스릴 수 있도록 돕는다. 한편 치료 의사는 환자들의 시작(始作)과 낭송·토론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진단정보를 얻게 된다. 환자의 적나라한 감정 표출, 때로는 교묘하게 감춰진 의식, 무의식의 세계를 읽어낼 수 있는 마치 X선 사진같이 확실한 진단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의사는 이를 근거로 약물치료 환경요법 그리고 다음 시치료 때의 처방을 보다 정확하게 내릴 수 있다. 시치료는 1950년대 후반 미국 뉴욕의 정신과의사 엘리 그라이퍼가 사용하기 시작했다. - 처음에는 10대 미혼모들의 선도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나 실제 임상실험을 통해 이론이 정립됨에 따라 정신과 영역에서 진료수단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1989, 6,24, 경향신문 노영대 기자)
3. 시치료는 해석이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없는 억압 심리를 은유나 상징으로 포장하여 표현한 경우가 많다. ‘환자가 자신의 자존심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로 여과된 언어, 곧 과장과 왜곡, 흥미유발을 위한 이차 가공 등 기술적인 언어로 소통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꿰뚫어 해독하는 능력이 시 치료의 본질이다’(김종길) 시치료사는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기호화된 그들의 잠재의식을 해독하면서 심리 상태에 접근, 오랫동안 심연에 웅크리고 있던 감정을 글로 표출케 함으로써 자율적 면역체계를 갖추게 한다. 그래서 문학치료는 해석이라고 주장한 이들도 있다.
혀끝에 머물던 격렬함이 사라지자 그는 무덤처럼 입을 다문다
그의 침묵 속에는 그가 겨누었던 대상을 향해 파르르 떨며 날아간 그러나 결코 적중하지 못한 흔적이 우울한 갈증에 섞이고 있다
그의 꿈은 바깥을 향하지만 한 때 그를 긴장시켰던 오금 저리고 팔뚝마다 소름 돋았던 몸 밖의 세상은 여전히 까마득하다
거미줄에 걸린 거미처럼 축축한 사유의 달팽이처럼 제 몸이 바로 존재의 집이라는 것
모든 언어에는 제 몸을 쥐어뜯은 상처가 있다
- 강연호, 「언어의 꿈은 바깥에 있다」 전문
‘입을 다문’ 그의 ‘언어에는/ 제 몸을 쥐어뜯은 상처’ 아니 ‘무덤처럼 입을 다문’ ‘침묵’들이 들어 있다. 이처럼 행간에 감추어져 있는 침묵의 언어들을 보물찾기 하듯 찾아내어 풀이해 주는 일이 시치료사의 임무이다. 다시 말해 기표(記表) 아래 감춰져 있는 기의(記意)의 숨은 그림을 찾아 환자의 심리 상태를 해독하여 처방하는 일이다. ‘프로이드학파에 의하면 시와 심리치료 사이의 밀접한 관계는 내면의 감정을 탐색하기 위해 전의식과 무의식적인 요소를 끄집어 내, 그것을 형상화하여 내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 있다고 한다. 이때 상징화와 치환 이 두 가지가 다 쓰인다. Pattison은 상징화가 자기(self)를 조직화하고 통합하여 표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시는 심리 치료적 의사소통의 상징 매체로써 강력한 방법이 된다’고 발표(한국시치료연구소)한 바 있다. 은유는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대신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수사법이기 때문에 암유(暗喩)라고도 한다. 영어 ‘metaphor’의 어원(그:metapherein)도 ‘다른 곳으로 전이하다’, ‘옮겨가다’의 뜻을 지니고 있어, 이 또한 자신의 감정을 비유적으로 숨겨 에둘러 표현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욕망이 상징으로 재현된 것이 꿈이다. 때문에 해몽을 통해 내담자의 심리 상태를 풀이하듯이, 환자의 복합감정이 그대로 응축된 문장을 통해 시치료사는 말로써 설명할 수 없는 환자의 심리 상태를 읽어 내야 한다. 예컨대 ‘직선은 곡선이다’라는 하나의 은유로 된 문장을 보면, 여기에는 정 반대의 두 속성(직선/곡선)이 하나의 등가(等價)로 연결되어 있다. 어느 환자가 이런 표현을 하고 있다면 그의 속내를 알아내기가 쉽게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은유를 보다 심층적으로 들어가 해독해 보면, 그것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직선이 아닌, 구불구불한 것들이 어떤 물리적 강압에 의해 당겨지고 뽑혀져 나와 본의 아니게 휘어진 곡선들의 전신(前身)이었음을 알리고자 하는 시인의 억압 심리가 내재·함의 되어 있음을 간취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에게 알리고자 하는 시인의 메시지(신호)이다. 그러기에 묵묵히 뽑혀져 나와 가지런하게 늘어선 저 직선들의 침묵 속에서 ‘길게 잠들어 있는/수많은 곡선들의/휘어진 함성’(김동수의「직선」), 곧 곧게 뻗어 있는 직선의 침묵 속에서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수많은 곡선들의 내재된 신음 소리를 읽어내는 것이 시치료사의 임무요 해독법이다.
4. 시와 통찰(通察) 미국의 경제학자인 제레미리프킨은 이 세상의 인간을 세 부류로 나눈 바가 있다. 세상을 이끄는 0.1%의 천재와, 천재를 보고 다음 세상을 준비한 0.9%의 통찰력을 가진 사람, 그리고 나머지 99%는 잉여 인간, 곧 유기물 덩어리이다. ‘통찰’을 영어로 ‘insight’, ‘vision’이라 하는 데 그 뜻이 ‘안을 본다’, ‘꿰뚫는다’, ‘미래를 예견하거나 꿰뚫어 본다’ 이다. 때문에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은 눈앞에서 수시로 변해가고 있는 현상(change)에 얽매어 복작이지 않고, 그 밑바닥에서 사태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본질, 곧 항상성(constant)을 깨달아 내적 고민을 스스로 풀어가고 있다. 이러한 자가 치료 원리를 환자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시쓰기 치료의 근본 원리이다.
삶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행복의 날이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모든 것은 일순간에 사라진다 그리고 사라지는 것은 또 그리워지는 것이다.
- 푸쉬킨. 「삶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고달프고 힘든 오늘도 일순간에 지나간다. 그러고 나면 이처럼 고달펐던 오늘의 순간도 훗날에 가서는 다시 그리워지는 추억의 하나가 된다는 생(生)의 통찰, 그로인해 필자 또한 힘들고 혼란스러울 때마다 이 시를 통해 큰 힘을 얻곤 하였다. 통찰력을 지닌 사람들은 눈앞에 닥친 현상에 매몰되지 않고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사건의 시말(始末)과 그 변화의 과정을 총체적으로 꿰뚫어 보면서 그에 따른 정보의 취합과 분석 그리고 예측력이 남다른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 객관적 시각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현실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일을 설계하여 상황을 돌파해 가는 자기 제어 능력과 추진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일상적 체험(actual emotion)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시적 체험(art emotion)은 통찰을 통해 현상을 뛰어 넘어 또 다른 차원의 세계로 진입하는 생성(生成)의 계기가 된다. 그러고 보면 결국 시쓰기란 내 안에 숨어 있는 사태의 숨어 있는 본질을 꿰뚫어 그것을 표현해 냄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는 자기 고양(高揚), 자기 정체성( identity) 회복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관조와 성찰에 따른 통찰의 세계요 시쓰기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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