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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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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풍류시인 - 김삿갓
2015년 05월 15일 22시 29분  조회:5661  추천:1  작성자: 죽림

 

 

 

 

 

시인 김삿갓(金炳淵, 1807∼1863)은 실존 인물이면서도 마치 전설처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인물입니다. 전설처럼이라고 굳이 표현한 것은 그와 그의 문학에 대해 정작 제대로 아는 이가 드물다는 뜻입니다.그에 대한 인생이 삿갓과 죽장, 그리고 뜬구름과 같은 방랑의 이미지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하는 유행가가 나온 지도 벌써 60년이 되어 갑니다. 이처럼 김삿갓이 숱한 전설과 일화를 남기며 방랑하던 풍류시인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아직도 그의 본명을 모르는 사람이 많고, 더군다나 그가 언제 어디에서 태어나 무슨 까닭으로 한평생 방랑을 했으며, 언제 어디에서 세상을 떠나 어디에 묻혔는지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의 생전 행장을 살피고 그의 시를 통해 그의 삶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삿갓으로 하늘을 가리고 죽장 짚고 미투리 신고 한평생을 떠돌아 다닌 천재시인 김삿갓, 풍자와 해학과 기지로 어우러진 파격적 시풍과, 보통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 넘는 기행으로 가는 곳마다 전설을 남기고 사라진 방랑시인 김삿갓, 그는 바람처럼 구름처럼 물결처럼 이 땅의 산수와 저자 간을 마음대로 넘나든 영원한 자유인이요 풍류 가객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이미지는 냉전 시대엔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데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1964년부터 무려 30년간 KBS 제1 라디오 전파를 탔던 반공 드라마 ‘김삿갓 북한 방랑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드라마는 김삿갓의 가상 여행을 통해 북한주민들의 비참한 생활상과 북한 지도부의 실상을 고발한 뒤, 끝부분에 4행의 풍자시를 붙이는 형식으로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데 일조를 하였습니다. 결국 30여 년간 방송된 이 드라마가 김삿갓과 관련해 전한 진실은 그가 풍자 시인이라는 것 정도인데 김삿갓이 평생 방랑하면서 상류사회를 풍자하고 재치와 해학으로 서민의 애환을 읊었으니 일면 김삿갓을 알리는데 일조를 한 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으로 순조 7년(1807)에 김안근과 함평 이씨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출생지는 경기도 양주군 회천읍 회암리로 밝혀졌는데, 김삿갓은 어찌하여 방랑 길에 나섰을까 하는 것이 오래 된 의문이었습니다. 최근까지는 김삿갓이 21세 되던 해에 영월 동헌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논정가산충절사 탄김익순죄통우천(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의 시제에 따라 그의 조부 선천부사 김익순을 욕하는 시를 지어 장원한 것이 가출, 방랑의 계기라는 설이 정설처럼 굳어져 왔었습니다. 여기서 ‘정가산’은 홍경래의 난(1811) 때 반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가산군수 정시를 말하고, 김익순은 반군에 항복하였다가 난이 평정된 후 역적으로 처단된 선천부사를 말합니다. 집안의 내력을 모르고 있던 그는 조부인 김익순을 탄핵하는 글로 장원급제를 하게 되고, 뒤에 이 사실을 알게 된 그의 절망과 비탄은 헤아리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역적의 자손인데다 그 조부를 욕되게 하는 시를 지어 상을 탔으니 하늘을 쳐다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여 삿갓을 쓰고 욕된 이름을 버리고 감삿갓으로 자처하며 방랑 길에 나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사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비상한 천재 김병연이 나이 스물이 되도록 치욕스러운 집안의 내력을 전혀 몰랐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가 역적으로 처형당하고 집안이 망할 때 그의 나이 다섯 살이었으니 어렴풋이나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했을 것이고, 그 뒤 이리저리 떠돌며 숨어살던 일이며, 아버지가 울화병으로 젊은 나이에 죽은 이유도 알고 남았을 것입니다. 김삿갓의 가출과 방랑은 빼어난 재주를 타고 났건만 출신성분 때문에 구 만리 장천과도 같은 앞길이 막혀버린 좌절감과 울분이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떠도는 인생, 세상잡사 초탈하여 풍류 한마당으로 천지간을 배회하니 신선이 따로 없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김삿갓을 가리켜 뒷날 사람들이 한국의 시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선도 지상에 머무는 동안은 먹어야만 했으므로 때로는 마을에서 문전걸식도 했고 때로는 절에서 공양 신세를 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어쩌다 운율깨나 아는 주인을 만나면 제법 그럴듯한 환대도 받았을 것이고, 또 기막히게 운수 좋은 날이면 풍류를 알아주는 어여쁜 기생으로부터 아래위(?)로 극진한 사랑을 받기도 했을 것입니다.

다음 시는 방랑 생활 속에서 들른 어느 시골 농가에서 죽 한 그릇을 대접받고는, 미안해하는 주인에게 오히려 자신도 청빈하고 초탈한 삶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는 칠언절구입니다. 더 볼 것 없이 농민의 삶에 대한 연민과 위로와 배려가 짙게 스며 있는 시입니다.

四脚松盤粥一器(사각송반죽일기) 네 다리 소반 위에 멀건 죽 한 그릇.

天光雲影共排徊(천광운영공배회) 하늘에 뜬 구름 그림자가 그 속에서 함께 떠도네.

主人莫道無顔色(주인막도무안색) 주인이여, 면목이 없다고 말하지 마오.

吾愛靑山倒水來(오애청산도수래) 물 속에 비치는 청산을 내 좋아한다오.

풍류호걸 김삿갓이 가는 길에 시와 술과 여자도 있었으리니 은근하고 감칠맛 나는 사랑의 시편도 어찌 없었겠습니까? 다음은 ‘회양을 지나며(淮陽過次)’라는 시입니다.

産中處子大如孃(산중처자대여양) 산골 처녀 다 커서 어른 같은데

緩著粉紅短布裳(완착분홍단포상) 분홍빛 짧은 치마 헐렁하게 입었네

赤脚踉蹌羞過客(적각랑창수과객) 맨 살 허벅지 다 드러나니 길손이 부끄러워

松籬深院弄花香(송리심원롱화향) 솔 울타리 깊은 집엔 꽃 향기도 물씬하리

이 시에서 ‘솔 울타리 깊은 집’이니 하는 것은 모두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가리킨다는 사실은 두말하면 잔소리가 되겠습니다.

김삿갓이 금강산으로 가다가 강원도 양양 산골마을의 어느 서당에서 신세를 질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서당의 훈장에게는 십 칠팔 세 되는 과년한 딸(홍련)이 있었습니다. 김삿갓이 달밤에 잠이 오지 않아 뒷산 완월정에 올랐는데 그 때 정자의 누각에 아리따운 여인의 모습이 비쳤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아래와 같이 시 한 수를 읊었습니다.

.樓上相逢視目明 (누상상봉시목명) 다락 위에서 만나 보니 눈이 아름답도다

有情無語似無情 (유정무어사무정) 정은 있어도 말이 없어 정이 없는 것만 같구나.

그러자 여인이 즉시 아래와 같이 화답하고 정자를 내려가 총총히 집으로 향하는 게 아닌가.

花無一語多情蜜 (화무일어다정밀) 꽃은 말이 없어도 꿀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법

月不踰薔問深房 (월불유장문심방) 달은 담장을 넘지 않고도 깊은 방에 찾아들 수 있다오.

김삿갓은 처녀가 한시를 알아 듣지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즉시 화답까지 하는데다 운율까지 정확하여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는지라 한 동안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이 서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 화답이 노골적인 유혹이 아닌가? 그날 밤 김삿갓은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홍련의 방문 앞에서 아래와 같은 시 한 수를 읊었습니다.

探花狂蝶半夜行 (탐화광접반야행) 미친 나비 꽃을 탐내 한밤에 찾아 드니

百花深處摠無情 (백화심처총무정) 깊은 곳에 숨은 꽃들은 다 무정하구나

慾探紅蓮南浦去 (욕탐홍련남포거) 붉은 연꽃(홍련)을 따려고 남포에 갔더니

洞庭秋波小舟驚 (동정추파소주경) 동정호 가을 물결에 조각배가 놀라네

그러자 방 안에서 홍련이 기다렸다는 듯이 화답을 합니다.

今宵狂蝶花裏宿(금소광접화리숙) 오늘 밤 미친 나비가 꽃 속에서 자고

明日忽飛向誰怨(명일홀비향수원)내일 홀연히 날아간들 누구를 원망하리오.

김삿갓이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홍련은 잠시 멈칫하였다가 김병연 선생님이시지요? 하고 묻는 게 아닌가? 이내 김삿갓이 어찌 나를 아는가 하고 묻자 아버지로부터 들어서 처음 알게 되었고 풍문에 자주 들어 평소에 흠모하고 있었답니다. 이윽고 김삿갓이 기응포치(飢鷹抱雉즉 굶주린 매가 꿩을 덮치듯 홍련과 운우지정을 나눈 후에 순결을 너무 쉽게 바치고 부끄러움이 없는 걸 보고 놀리려는 심산으로 불을 밝힌 뒤 지필묵을 꺼내어 아래와 같이 한 수를 적습니다.

毛深內闊 (모심내활) 털이 깊고 속이 넓은 걸 보니

必過他人 (필과타인) 필시 다른 사람이 지나갔나 보구나

이를 본 홍련이 발끈하여 즉시 붓을 잡아 일필휘지로 써 내려 가는 데, 꾸짖기를

溪邊楊柳不雨長 (계변양류불우장) 시냇가 버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절로 자라고

後園黃栗不蜂坼 (후원황율불봉탁) 뒷동산 밤송이는 벌이 쏘지 않아도 절로 터진다오

세게 한방 먹은 김삿갓이 다시 홍련을 어르고 달래 그날 밤 늦도록 다시 정을 나누었답니다. 다음 날 새벽 김삿갓은 홍련이 깨기 전에 작별 시를 써 놓고 도망치듯 그 곳을 떠납니다. 이튿날 이별하면서 써놓은 시 한 수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昨夜狂蝶花裏宿 (작야광접화리숙) 어젯밤에 미친 나비 꽃 품에서 잤건만

今朝忽飛向誰怨 (금조홀비향수원) 오늘 아침 훌쩍 날아가니 누구를 원망하랴.

어젯밤 홍련이 화답한 시구를 그대로 인용하여 미안한 마음을 표현한 시를 홍련의 하얀 속치마 폭에 써 놓았는데, 홍련 또한 김삿갓이 머물 사람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건만 그래도 매우 섭섭했으리라.

김삿갓은 이 외에도 시문을 아는 기생들과 사귀며 시와 사랑을 주고받은 흔적이 그의 작품 곳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기생에게 주다(贈妓)’라는 시가 그렇습니다.

却把難同調(각파난동조) 잡는 손도 뿌리치고 어울리기 어렵더니

還爲一席親(환위일석친) 되돌아와 한자리에서 친해졌구려

酒仙交市隱(주선교시은) 이 주선(酒仙저자에서 숨은 여인과 사귀니

女俠是文人(여협시문인) 이 여인 글 잘하는 문인이구려

太半衿期合(태반금기합) 우리 서로 옷고름 풀기까지 가까웠을 때

成三意態新(성삼의태신) 그대 모습 달빛에 술잔에 새로이 어리네

相携東郭月(상휴동곽월) 이제 서로 껴안고 동녘 성곽 달빛 아래서

醉倒落梅春(취도락매춘) 술 취해 쓰러지듯 봄날 기듯이 정을 통하네.

삿갓은 함경도 단천에서 한 선비의 호의로 서당을 차리고 3년여를 머문 적이 있었는데 가련은 이 때 만난 기생이었습니다. 그의 나이 스물 셋 혈기 방장한 청년 김삿갓은 힘든 방랑 길에서 모처럼 갖게 되는 안정된 생활과 함께 아름다운 젊은 여인과 모처럼 사랑의 회포를 풀어 놓는데, 기생 가련의 이름을 운을 삼아 읊는 시가 기가 막힙니다.

可憐妓詩 (가련기시) 기생 가련에게

可憐行色可憐身 (가련행색가련신) 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몸이

可憐門前訪可憐(가련문전방가련) 가련의 문 앞에 가련을 찾아왔네

可憐此意傳可憐 (가련차의전가련) 가련한 이 내 뜻을 가련에게 전하면

可憐能知可憐心(가련능지가련심) 가련이는 내 가련한 마음을 알아주겠지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그의 방랑벽을 막을 수 없었으니 그는 다시 삿갓을 쓰고 정처 없는 나그네 길을 떠납니다. 그래서 쓴 이별이라는 시입니다.

離別(이별)

可憐門前別可憐(가련문전별가련) 가련의 문 앞에서 가련과 이별하려니

可憐行客尤可憐(가련행객우가련) 가련한 나그네의 행색이 더욱 가련하구나.

可憐莫惜可憐去(가련막석가련거) 가련아, 가련한 이 몸 떠나감을 슬퍼 말라

可憐不忘歸可憐(가련불망귀가련) 가련을 잊지 않고 가련에게 다시 오련다

또한 그의 詠笠(삿갓을 읊다)이라는 시는 병연이라는 이름을 숨기고 스스로 표연 자적하는 자연과 풍류 속의 자기 운명을 그린 자화상으로 풀이되는 시입니다.

浮浮我笠等虛舟(부부아립등허주) 가뿐한 내 삿갓이 빈 배와 같아

一着平生四十秋(일착평생사십추) 한번 썼다가 사십 년 평생 쓰게 되었네

牧堅輕裝隨野犢(목견경장수야독) 목동은 가벼운 삿갓 차림으로 소 먹이러 나가고

漁翁本色伴沙鷗(어옹본색반사구) 어부는 갈매기 따라 삿갓으로 본색을 나타냈지

醉來脫掛看花樹(취래탈괘간화수) 취하면 벗어서 구경하던 꽃나무에 걸고

興到携登翫月樓(흥도휴등완월루) 흥겨우면 들고서 다락에 올라 달 구경 하네

俗子依冠皆外飾(속자의관개외식) 속인(俗人)들의 의관은 모두 겉치장이지만

滿天風雨獨無愁(만천풍우독무수) 하늘 가득 비바람 쳐도 나만은 걱정이 없네

그에게 삿갓은 자유로운 방랑자의 삶의 상징이고 그것은 허위와 가식을 벗어 버린 진솔한 삶이자, 무소유의 자유와 흥취, 생활에 뿌리 내린 현실적 삶의 지향이었던 것입니다. 김삿갓 시는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표현 기교의 측면에서 한시의 정형성을 파괴하여 언어의 유희성과 구비성 면에서 조선 후기의 전통적 한시의 장벽을 무너뜨리는데 가장 큰 기여를 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의 시는 한시임에도 민요, 잡가, 사설시조 등의 구비 시가처럼 민중의 사랑을 받으며 구전되어 온 까닭이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김삿갓 시에는 파격적 해학성과 외설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는 파자(破字)는 물론, 동음이의어를 활용하고 비속할 만큼 희작화 한 방식으로 민중들의 삶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의 희작시(戱作詩)는 민간의 한자 사용 기법을 이용해 점잖은 사대부의 감춰진 독설을 시격(詩格)으로 승화시켰다고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의 한시가 대중적 인기를 얻는 데는 이러한 정서적 성격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세태를 꼬집는 풍자적 내용과 함께 한자를 파격적으로 사용한 희작시는 엄숙한 사대부들에게 비판의 대상이었지만, 궁벽한 시골의 농민들이나 서당아이들에겐 훨씬 친근하게 다가갔으리라 짐작이 가는 대목입니다. 어느 날 길을 가던 김삿갓이 어느 서당에 들러 잠시 쉬고 있자니 버르장머리 없는 학동 녀석들이 거지나 다름없이 초라한 행색의 김삿갓을 깔보고 놀려댔습니다. 그러자 김삿갓이 칠판 아닌 벽판에 시 한 수를 써 붙인 뒤 이렇게 일러주고 떠났다고 합니다. “이 시는 글자 뜻으로 새기는 것이 아니라 소리 나는 대로 새기느니라.” 하고 말입니다.

書堂乃早至(서당내조지) 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와 보니

房中皆尊物(방중개존물) 방안에 모두 귀한 분들일세

學生諸未十(학생제미십) 생도는 모두 열명도 못 되는데

先生來不謁(선생내불알) 선생은 와서 뵙지도 않는구나

또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유식한 척 하는 부부가 식사 때가 되어도 식사 대접을 할 생각은 안하고 딴에 암호 같은 파자로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마누라 : 인량차팔(人良且八 = 食具 밥상 차릴까요?)

서방 : 월월산산(月月山山 = 朋出 이 친구 가거든.)

파자 시의 대가인 김삿갓 앞에서 이럴 수가! 그야말로 공자 앞에서 문자 쓰고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이었습니다. 김삿갓이 자기도 이렇게 파자로 암호 같은 한마디를 툭 던지고 떠났다고 합니다. “이 견자화중(犭者禾重)아 정구죽천(丁口竹天)이구나(猪種可笑 이 돼지새끼들아, 가소롭구나!)”

방랑 시인 김삿갓이 남긴 시중 풍자시는 많지만 숫자로 엮어 나가는 절묘한 시로는 이십수하(二十樹下)로 시작되는 시를 꼽을 수 있습니다. 김삿갓이 함경도 땅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김삿갓은 날이 저물고 추위와 허기가 견딜 수 없자 어느 집에 한끼의 밥과 하룻밤의 잠자리를 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동냥하러 온 모양이니 아무거나 좀 갖다 먹여 보내라. 그러나 잠자리는 절대 안 된다."하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주인의 호된 면박을 받은 그는 화가 치밀었지만 당장의 굶주림 때문에 꾹 참고 뜰 앞에 서 있는 스무나무 아래에 서서 밥이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낡은 소반에 밥을 차려 내왔는데 찬밥에다 된장뿐입니다. 그래도 시장한 김에 숟갈에 밥을 떠서 한입에 넣으니, 쉬다 못해 썩은 밥이었습니다. 그러나 배가 고프니 안 먹을 수도 없어, 억지로 먹고 난 후 일어서며 설움이 복받쳐 지은 시가 바로 이 시입니다.

二十樹下三十客(이십수하삼십객) 스무나무 아래서 서러운 나그네가

四十村中五十食(사십촌중오십식) 망할 놈의 동네에서 쉰 밥을 먹네

人間豈有七十事(인간기유칠십사) 인간으로서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오

不如歸家三十食(불여귀가삼십식) 차라리 집에 돌아가 선 밥을 먹느니만 못하구나

여기서 스무나무는 느릅나무과로 시무나무로 더 많이 알려져 있으며, 옛날에는 오리마다 오리나무, 십리마다 스무나무를 이정표로 심었다는 나무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고지식하게 해석을 하면 김삿갓의 시 맛이 떨어 집니다. 여기서 二十樹下(이십수하)라는 시 제목을 잘 보면 상당히 심한 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수'를 나무 또는 놈 등 훈으로 읽으면 '수하'는 '놈아'가 됩니다. 이십은 된소리로 읽으면 욕이란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점잖게 해석하면

스무(스물)나무 아래서 서러운(서른) 나그네가(二十樹下三十客) / 망할(마흔) 동네에서 쉰(오십) 밥을 얻어 먹으니(四十村中五十食) / 인간으로서 어찌 이런(일흔) 일이 있으리오(人間豈有七十事) / 집에 돌아가 설은(서른) 밥 먹느니만 못하리로다(不如歸家三十食하고 읊었습니다.

어느 날 고려의 옛 도읍지 개성에서 해가 떨어진 황혼 무렵에 잠 잘 곳을 찾아 어느 집을 찾아가 하룻밤 자고 가자 하니 주인 하는 말이 방이 하나 있긴 한데 땔나무가 없어서 군불을 지필 수가 없다 하며 거절하자 아래와 같은 시를 지어 개성인심을 탓하였다 합니다.

邑號開城何閉門(읍호개성하폐문) 고을 이름은 성을 열라는 데 어찌해 집집마다 대문을 걸었으며,

山名松嶽豈無薪(산명송악기무신) 산 이름은 소나무가 많다는데 나무가 없다니 웬 말이냐

黃昏逐客非人事(황혼축객비인사) 황혼에 손님을 쫓아 냄은 사람의 도리가 아닐진 데,

禮儀東方子獨秦(예의동방자독진) 동방 예의의 나라에서 자네 혼자 되놈일세

또 다른 외딴집을 힘들게 찾았으나 이 집 역시 거절하자 이 날은 김삿갓도 별 수 없이 송악산 토굴에서 잠을 자야 했다고 합니다.

斜陽鼓立兩柴扉(사양고립양시비) 석양에 사립문 앞에 우뚝 버티고 섰으려니,

三被主人手却揮(삼피주인수각휘) 주인은 손을 휘이휘이 내저어 세 번씩이나 가라고 한다.

杜宇亦知風俗薄(두우역지풍속박) 두견새도 풍속이 야박한 것을 알고 있는지,

隔林啼送不如歸(격임제송불여귀) 저 건너 숲 속에서 돌아감만 못하다고 울어 여이네.

김삿갓이 날이 저물어 하루 밤 신세 지려고 어느 양반 집에 들렀습니다. 문 앞에서 그 집 머슴이 하는 말“우리 주인 어른은 손님을 맞아 들이는데 까다로우니 직접 찾아가 부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덧붙이며 하는 말인 즉 “주인 어른이 이마를 만지면 귀한 손님이니 저녁상을 푸짐하게 차리라는 표시이고, 콧등을 만지면 보통 손님이니 적당히 대접하고, 수염을 만지면 귀찮은 손님이니 한술 먹여 보내라는 표시”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김삿갓은 이 말을 듣고 주인 영감에게 찾아갔으나, 행색이 초라한 김삿갓을 아예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는데, 그때 머슴이 달려와 주인의 분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삿갓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영감님, 이마에 모기가 앉았습니다.”라고 말하자 주인영감은 허둥대며 이마를 수 차례 비벼 대는 게 아닌가. 그 모양을 본 하인은 무척 귀한 손님인 줄 알고 대접을 잘 해서 다음 날 아침까지 밥을 잘 얻어 먹은 뒤 작별을 고하면서 “하룻밤 잘 머물다 갑니다. 제가 가진 것이 없으니 시나 한 수 지어 드리고 갈까 합니다”하고 단숨에 시 한 수를 써 주고 떠났는데 그 시가 바로 이 시 犬子(개새끼) 시입니다.

天脫冠而得一点(천탈관이득일점) 천()자가 모자를 벗고 점을 하나 얻어 달았고

乃失杖而橫一帶(내실장이횡일대) 내()자는 지팡이를 잃고 허리에 띠를 둘렀구나

양반인 주인영감 체면 때문에 무슨 뜻인지 물어보지 못하고 낑낑거리다가 나중에야 뜻을 알고 노발대발 날뛰었었다고 합니다. 그 뜻은 대략 이러했습니다. 천()자가 모자를 벗고 점을 하나 얻었다는 것은 개 견()자이고, 내(내)자가 지팡이를 잃고 허리에 띠를 둘렀다는 것은 아들 자()로 즉, 개새끼라는 뜻이었습니다.

방랑시인 김삿갓이 어느 집 앞을 지나는데, 그 집 아낙이 설거지물을 밖으로 홱 뿌린다는 것이 그만 김삿갓에게 쏟아졌습니다. 구정물을 지나가던 객이 뒤집어썼으니 당연히 사과를 해야 마땅하지만, 삿갓의 행색이 워낙 초라해 보이는지라 이 아낙은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그냥 돌아섭니다. 그래서 삿갓이 등 뒤에 대고 한마디 욕을 합니다. 하지만 양반 체면에 암만 그래도 상스런 욕을 할 수는 없어서 단 두 마디를 던지고 그 자리를 떠납니다. "해. 해." 아니 이게 무슨 욕입니까? 그러나 잘 풀어보면 해는 이니까 "해. 해." 하면 년()자가 2개니까 2(이 년)이든지 아니면 두 번 연속이니까 쌍, 곧 雙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한자를 빌어 우리말을 표현하기도 하며 한시를 한글의 음을 빌어 멋지게 풍자하고 조롱하는 그의 솜씨는 우리나라 고대문학사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는 요새 같으면 분명 노벨 문학상 감입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죽시(竹詩)입니다. 그 시의 첫머리는 이렇습니다

此竹彼竹化去竹(차죽피죽화거죽)

風打之竹浪打竹(풍타지죽랑타죽)

이것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대나무 저 대나무 되어가는 대나무, 바람이 치는 대나무, 물결이 치는 대나무"입니다. 그러나 그럴 듯 하지만 해석이 틀렸습니다. 이 시를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한 비결은 대죽()에 있습니다. 여기서 김삿갓은 대를 대나무가 아니라 "...대로"의 '대'로 썼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이 시의 첫 구절을 다시 읽어보면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가 됩니다.

竹詩(죽시)

此竹彼竹化去竹(차죽피죽화거죽)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風打之竹浪打竹(풍타지죽랑타죽)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飯飯粥粥生此竹(반반죽죽생차죽)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생기는 이대로

是是非非付彼竹(시시비비부피죽) 시시비비는 따르는 그대로

賓客接待家勢竹(빈객접대가세죽)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市井賣買歲月竹(시정매매세월죽) 시장에서 사고 파는 것은 시세대로

萬事不如吾心竹(만사불여오심죽) 만사는 내 마음과 같지 않은 대로

然然然世過然竹(연연연세과연죽) 그렇고 그런 세상 흘러가는 그대로

얼마나 멋진 시입니까?

그의 시에는 또 구월산이란 유명한 시가 있습니다.

昨年九月過九月(작년구월과구월) 작년에는 구월에 구월산을 넘었는데

今年九月過九月(금년구월과구월) 금년에도 구월에 구월산을 넘는구나

年年九月過九月(년년구월과구월) 해마다 구월에 구월산을 넘으니

九月山光長九月(구월산광장구월) 구월산 경치는 언제나 구월이로다

방랑시인 김싯갓의 애수가 녹아 있는 이 감상적인 시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쓰인 ‘구’자 때문에 담담하게 승화되어 있습니다. 이 시를 읽다 보면 가을 산에 흠뻑 빠진 산 객의 마음을 담고 있어 자주 흥얼 거리는 시입니다.

천하를 방랑하던 김삿갓이 금강산의 한 절에서 글짓기 내기를 하는데 선비를 놀리는 대목이 나옵니다. "좋소, 그럼 내가 먼저 운을 부를 테니 즉시 답하시오." 선비는 이왕 내친 김에 이렇게 말하고는 잠시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습니다. "타." "타라니, 이건 한문 풍월이요, 아니면 언문 풍월이요?" 김삿갓은 눈을 빛내며 선비에게 물었습니다. "그야 물론 언문 풍월이지." 김삿갓을 완전히 무시하는 말투였습니다. "좋소이다. 내 답하리다. 사면기둥 붉게 타!" "또 타!" "석양 행객 시장타!" "또 타!" "네 절 인심 고약 타!" "........" `타`자가 떨어지기 바쁘게 김삿갓이 시를 지어 나가니 선비는 어이없는 모양입니다. 갈수록 듣기 거북한 말만 나오니 다시 더 부를 용기가 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김삿갓은 선비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다시 그가 `타!`하고 뱉으면 `지옥가기 꼭 좋타!` 하고 내 쏠 작정이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해가 질 무렵 어느 마을 서당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재워달라는 김삿갓의 요청에 서당 훈장이 내기를 거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운을 띄울 터이니 시를 지어 보시오. 잘하면 따뜻한 저녁에 술상이 나가지만 그렇지 못하면 어림 없소” 김삿갓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시제를 청합니다. ˝멱!˝ ˝무슨 멱 자입니까?˝ ˝구할 멱().˝ 김삿갓은 빙그레 웃고는 마치 운을 알고 있었다는 듯 곧바로 시구를 댑니다.

許多韻字何呼覓(허다운자하오멱) 많고 많은 운자에 하필 멱자를 부르는가?”

˝다시 멱!˝훈장은 두 번째로 멱 자를 불렀습니다.

彼覓有難況此覓(피멱운자황차멱) 첫 번 멱자도 어려웠는데 이번 멱 자는 어이 할까?”

˝또 멱!˝

一夜宿寢懸於覓(일야숙침현어멱) 오늘 하룻밤 자고 못 자는 운수가 멱 자에 달렸는데”

˝멱!˝

훈장은 마지막 멱 자에 힘을 주어 운을 띄웠습니다.

김삿갓은 마지막에도 주저하지 않고 마치 준비된 듯이 남은 시구를 완성합니다.

˝山村訓長但知覓(산촌훈장단지멱) 산촌의 훈장은 멱 자 밖에 모르는가.”

산골 훈장은 이렇게 당하고도 그의 뛰어난 시재에 놀라 깍듯이 대접하여 보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 시대를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으로 일관했던 일세의 풍류시인 김삿갓은 철종 14년(1863)에 전라도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에서 57세로 세상을 뜨게 됩니다. 조선왕조 말 어지러운 시대의 그늘에서 좌절과 실의를 딛고 죽을 때까지 외로운 발길을 멈추지 않았던 김삿갓의 방랑 또한 그 나름대로 깨달음에 이르러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구도 행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입니다.

 

 


방랑시인 김삿갓 / 명국환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구름 뜬 고개 넘어 가는 객이 누구냐

열두 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잔에 시한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세상이 싫던가요 벼슬도 버리고

기다리는 사람 없는 이거리 저 마을로

손을 젓는 집집마다 소문을 놓고

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김삿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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