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다시 요약하면 상징은 하나의 낱말, 어구, 이미지가
복잡한 추상적 관념을 암시하지만 그 의미는 전체 시를 전제로 알수 있다는 것.
말하자면 그 낱말이 나오는 시행에서는 생략된다는 것.
따라서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상징은 은유보다 고급이고
한편 은유보다 난해한 기법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기법이 나오고
이런 기법, 말하자면 상징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시에서 상징을 강조한 것은 19세기 말 상징주의 시인들이고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보들레르 이다. 그는‘교감’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자연은 하나의 신전神殿, 거기 살아 있는 기둥은
이따금 어렴풋한 말소리 내고
인간이 거기 상징의 숲을 지나면
숲은 정다운 눈으로 그를 지켜본다.
밤처럼 그리고 빛처럼 아득한
어둡고 그윽한 통합 속에
긴 메아리 멀리서 어울리듯
향기와 빛깔과 소리가 상통 한다.
ㅡ 보들레르,[교감](정기수역)
‘교감’ correspodence 은 ‘만물 조웅’ 으로도 번역된다.
자연은 인간이 모르는 가운데 저희들끼리 무엇인가를 주고 받는다는뜻.
이 시에서 보들레르가 강조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
인간과 자연의 관계, 자연이 주고받는 것들이다. 낭만주의자들의 경우
자연의 시인의 정서를 환기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치만 여기서는 ‘
신의 궁전’으로 노래된다. 신의 궁전 이기 때문에
자연은 이 세상을 초월하는 이상의 세계,
혹은 그런 세계로 갈 수 있는 수단이 되고 그런 점에서 자연은 신, 초월자, 절대자의 목소리를 상징하는 ‘상징의 숲’이 된다.
시인은 이런 숲의 목소리를 듣는자 이고, 그 목소리는 만물 조웅, 곧
'향기와 빛깔과 소리’가 서로 주고받는, 상통하는 것을 들을때 알 수 있다.
만물 조웅은 향기(후각), 빛깔(시각), 소리(청각), 가 서로 통합 하는 것
이라는 점에서 이른바 감각의 교감이고, 교감의 세계가 된다.
물론, 현대시를 쓰는, 혹은 쓰고자하는 분들은
반드시 이런 상징의 미학에 구애될 필요는 없다. 그
러나 최소한 상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역사적 문맥에 대한 지식이 요구된다.
요컨대 상징을 강조하는 시들은 이 시가 암시 하듯이
관념을 전제로 사물을 보는 게 아니라
감각에 의해 사물을 보고 그 감각이 환기하는 혹은 암시하는 여러 관념들을,
자신도 모르는 그런 관념들을 이미지로 전달해야 한다.
앞에서 인용한 기형도의 경우 ‘빈 집’은 상징적 이미지 이고 그는 살아가면서 ‘빈 집’ 을보고 혹은 감각적으로 체험하고 그 체험의 내용을 시로 노래한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는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ㅡ 기 형도,[빈 집]
그가 쓰는 것은 ‘사랑을 잃은 마음’이고
따라서 ‘빈 집’ 은 이런 마음을 상징 한다.
상징적 이미지는 시에서 반복되는 수도 있고 이 시처럼 변주되는 수도 있다.
이 시의 경우 ‘빈 집’ 은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는 나’,
그리고‘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로 변주된다. 한편 이런 마음,
그러니까 ‘빈 집’이 상징하는 것들은 ‘짧았던 밤들’, 창밖을 떠돌던 안개들’,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 ‘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 ‘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로 변주된다.
이런 변주는 상징적 이미지가 보여주는 난해성을 극복하기 위한 시적 책략이고
따라서 상징을 강조하는 시인들은 하나의 상징적 이미지를 선택하면
그 이미지를 시에서 여러번 반복하거나 다양하게 변주 시켜야 된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한 시인이 개인적으로 체험하고 혹은 상상력에 의해
창조한 이미지를 개인적인 상징 이라고 부른다.
상징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는바
첫째는 개인적 상징, 둘째는 인습적 상징, 셋째는 원형적 상징이다 (좀더 자세하 것은 이승훈, 시론, 고려원, 1979, ‘상징의 유형’, 206ㅡ211면 참고바람).
개인적 상징은 사물에 대한 시인의 개인적 감각을 중심으로 그 내면성 혹은 상상의 세계를 강조하고, 이때는 그 의미가 모호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구조에 의해
혹은 시 전체의 문맥에 의해의미를 암시해야 한다. 인습적 상징과
원형적 상징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다루기로 한다. 개인적 상징을 중심으로
특히 그 상징적 이미지를 변주 하면서
한편의 시를 완성하는 시들을 좀더 살피기로 하자.
결국 그것은 제 몸 치근대는 바람 때문일 거야 큰 송아지만한 사
냥개 절뚝절뚝 저녁 어스름 이끌고 날 찾아왔지 큰 채와 사랑채
이음새 헛간에서 주먹밥을 나누어 먹던 한철을 잊을 수 없네 헛간 고
요에 상처 아물고 주먹밥의 유순柔順에 길들여졌다 할지라도 어느 날
훌쩍 사냥개 사라지고 텅 빈 고요만 비에 젖어 슬펐네
ㅡ 강 현국,[가난한 시절4]
이 시에서 ‘사냥개’는 ‘가난한 시절’을 상징한다.
그러나 '사냥개‘ 라는 이미지에는 단순히 먹이를 사냥하는 동물 이라는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 공포, 사냥이 암시하는 야수성, 짐승이 짐승을 잡는
아이러니 등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강현국이 노래하는 가난은
단순히 배가 고프다는, 굶주린다는 의미가 아니고 또한 이 시에서 그는
사냥개가 ’절뚝절뚝 어스름 이끌고 나를 찾아 온다‘고 노래함으로써
그것이 병든 가난, 어스름이 표상하는 무력감을 동반하는 가난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는 현재 ’컹 컹 컹 밀려오는 저녁놀‘을 본다/듣는다.
그 가난은 밀려오며 무너진다. 말하자면 아직도 그를 지배하는 것은
옛날의 가난이다. 그는 지금도 저녁놀에서 사냥개 울음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석탄을 적재한 무개화차들이 굴러가는 철길 너머에 저탄장이 있다. 거대한 재의
무덤, 바람에 석탄 가루들이 일어난다. 그것은 흩어진다. 그것은 바람에 불려간다.
검은 바람, 펄럭이는 검은 작업복, 탄부들이 움직이고 있다
ㅡ최 승호[재]
이 시의 경우‘재’는 석탄 가루를 표상하고 그것이 재라는 점에서
죽음을 상징한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불타고 나면 재가 된다.
그러나 이재, 죽음은 이 시에서 일어나고 흩어지고 불려간다.
물론 바람을 매개로 하지만 재의 이미지는 이런 변주에 으해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낳고 개인적 상징의 한 개를 초월한다.
재라는 이미지가 이렇게 변주 됨 으로써 그 상징적 의미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시에서 ‘재’는 죽음을 상징 하지만 그 죽음은 바람에 의해 일어나고
흩어지고 불려간다. 결국 재는 바람과 동일시된다.
바람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 속에 바람이 있다.
쾌락으로 가는
길목에 털이 있다. 궁창이 열리고
땅이 혼돈을 멈추었을때,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인간을
가장 나중에 완성 시킨건, 아무래도 털이다. 당신이 떠나고
세상에서 가장 싼값으로
인생을 구겨버리고 싶을 때, 낡은 침대나
주전자 옆에서, 꼼지락거리는
털.
ㅡ 원 구식,[털]
이 시의 지배적 이미지는 ‘털’ 이지만 그 이미는 분명치 않고,
따라서 상징이 된다. 무엇을 상징 하는가? 이 ‘털’은 ‘쾌락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는 점에서 쾌락과 관계되고, 따라서 머리털이나 수염이 아니라
음모를 의미하고, 시인은‘당신이 떠난’ 방에서 낡은 침대와 주전자 옆에 떨어진 음모를 본다. 이 털은 육체에서 떨어진 것이므로 털로서의 기능이 없고,
따라서 죽음을 표상 하지만 이 시에서는 꼼지락거린다. 살아있다.
그리고 이 털은 대지의 풀에 비유된다. 말하자면 풀은 ‘땅의털’ 이다.
도대체 정사가 끝나고 ‘당신이 떠난 다음’ 낡은 침대에 떨어진 털을 보는 것도
이상하고 이 털이 살아 꼼지락거린다고 노래하는것도 이상하고 풀을 땅의 털이라고 노래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러나 모든 진리는 이렇게 이상한데 있고
이상한 것이 진리이다. 상식, 기준, 표준이 깨질때 진리가 태어나기 때문이다.
털은 육체를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고, 머리털은 신체 정상에서 자란다는 점에서
정신적 힘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음모는 생식, 성행위를 돕는다는 의미가 있지만 이 털은 그런 의미를 벗어난다.
그러나 이 털은 죽은 것이 아니라 생명을 상징한다. 죽은털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는 모두 상징적 이미지의 변주를 통해 변주와 함께 변주를 먹고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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