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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가 형식의 붕괴
2015년 06월 12일 18시 23분  조회:4756  추천:0  작성자: 죽림
전통 시가 형식의 붕괴

개화계몽시대는 전통적인 시가의 양식적 변혁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새로운 시 형식이 모색되는 시기이다. 조선시대 시가 양식의 주축을 이루었던 가사와 시조는 이 시기에 그 주제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새로운 분화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당시에 국문 글쓰기를 기반으로 하여 새로이 등장한 신문 잡지가 가사와 시조를 널리 수록하면서 나타난다. 
개화계몽시대 가사는 「창의가」와 같은 의병가사, 동학운동의 교리를 노래한 동학가사, 독립신문과 대한매일신문에 발표된 「애국가」 등과 같은 개화가사 등으로 소재 내용이 분화된다. 동학가사는 동학의 이념을 구현하고자 하는 종교적 성격이 강하며 주로 농민층의 동학교도들이 널리 암송했던 것으로 보인다. 의병가사는 의병 활동에 참여했던 보수적인 지식인들이 의병활동을 널리 격려하기 위해 창작한 것이다. 개화가사는 진보적인 지식층에 의해 창작된 것으로 당대의 현실 문제와 관련된 주제를 중심으로 신문 잡지에 발표됨으로써 가장 폭넓은 독자층을 가지게 된다. 이 가사 양식은 전통적인 4.4조의 율격을 고수하면서도 그 주제 내용의 효과적인 전개를 위해 하나의 작품을 몇 개의 단락으로 구획하는 분장 형태를 취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개화가사의 형태적인 변화가 변형되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10년을 전후한 시기부터이다. 이 시기에 개화가사는 4.4조의 율격이 무너지고 새로운 율격적인 패턴이 나타나게 된다. 이 새로운 변형된 시가를 흔히 창가라고 부른다. 최남선의 「경부철도가」, 「세계일주가」와 같은 창가는 개화가사와는 달리 그 율격이 7.5조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형태적인 면에서 길이도 제한이 없이 개방적이다. 창가는 최남선이 일본 유학과정에서 받아들인 일본 창가의 영향 아래 성립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창가는 독자적인 시가 양식으로서의 장르적 성격을 인정하기 어렵다. 창가의 범주에 속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최남선의 개인적인 창작에 해당하며, 가사 형식의 변형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개화계몽시대에 가사 양식과 함께 널리 창작된 것이 개화시조이다. 개화시조는 주로 신문과 잡지 등에 발표되었지만 대부분 그 작가가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대개 작품마다 제목이 붙어 있고 주로 단형시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개화시조는 창곡과 분리되어 그 전통적인 존재방식이었던 음악과의 공존관계를 벗어난다. 개화시조는 국문으로 창작되고 지상에 발표되고 널리 읽혀지면서 시로서의 새로운 출발을 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개화시조의 시적 형식의 변화는 최남선의 시조 창작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남선은 그가 편집 발간한 잡지「소년」을 통해 여러 편의 시조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데, 평시조의 연작 형태인 연시조를 주로 창작하고 있다. 연작시조는 단형의 평시조를 중첩시켜 시적 형식과 주제 의식을 확장시켜 놓은 것으로, 단형시조로서의 평시조가 지니고 있는 형태적인 고정성과 제약성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시의 형식적 모색 

개화계몽시대 현대시의 초기 형태는 가사나 시조의 형태에서 볼 수 있는 고정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적 형식을 추구하는 과정을 통해 성립된다. 가사의 형식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분장의 방식이라든지, 개화시조가 연시조의 형식을 통해 형태적 개방성을 추구하고 있는 점 등은 새로운 시 형식의 등장을 위한 예비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여러 변화가 시적 형식을 유기적인 형태로 이끌어 간 것이 바로 새로운 시 형태로서의 신시 또는 신체시라고 할 수 있다. 
최남선의 개인적인 실험에 의해 시도된 새로운 시 형식으로서의 신시는 형태적인 면에서 개화가사의 형식적 개방성과 개화시조의 형식적 완결성을 결합한 새로운 절충적인 형태에 해당한다. 신시에서는 가사 형식의 개방성과는 달리 시적 형식의 완결성이 시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시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작품들은 어떤 일관된 고정적인 형식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작품마다 개별적으로 완결성을 지닌 유기적인 시 형식을 확립하고 있다. 이같은 신시의 형태적 모색이 결국 자유시형을 지향하는 것임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시 형식의 모색 과정을 근대시 성립의 첫 단계로 규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당시의 새로운 시 형식이 신체시라는 하나의 장르를 형성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지 않다. 그 이유는 이 무렵에 등장한 신체시라는 명칭이 특정의 문학적 양식과 그 경향에 대한 의식적인 호칭이 아니라 일반적인 개념의 새로운 형식의 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두 사람에 의해 실험적으로 그 새로운 시 형식이 시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남선에 의해 시도된 새로운 시 형식은 잡지 「소년」에서부터 「청춘」지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수에 있어서도 몇 편에 불과하며, 실험적인 성격을 벗지 못하고 있다. 
개화계몽시대의 시가 양식 가운데 장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은 개화가사와 개화시조에 불과하다. 창가라는 것은 가사의 율격적인 변형에 불과하며, 신시 또는 신체시는 자유시를 지향하는 형식적인 실험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창가와 신체시는 일시적인 문단적 현상일 뿐 하나의 문학사적인 장르의 성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문학 형태가 장르적인 위상을 부여받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향의 작품과 함께 그 형태를 공유하는 창조적 주체가 폭넓게 존재해야 하며, 그 형태를 향유하는 사회적 기반이 형성되어야만 한다. 창가와 신체시는 이 모든 조건을 제대로 구비하지 못하고 있다. 
개화계몽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시 형식은 개화가사나 개화시조가 유지하고 있던 형식의 고정성을 벗어나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규칙적인 율격과 고정적의 형태의 파괴 현상으로 그 특징이 집약된다. 율격의 규칙성과 형태적 고정성을 벗어나는 것은 시적 형식의 자유로움과 그 개방성을 지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나 「두고」와 같은 작품을 보면 기존의 가사나 시조가 지니고 있었던 고정적인 형식에 비해 파격적인 율조와 산문화된 자유로운 형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나 최남선은 자신이 창안한 이 새로운 시 형식에 대해 확고한 장르 의식을 지니고 있었던 같지는 않다. 그는 이 새로운 시 형태를 신체시가나 신시라고 지칭하였는데, 이 명칭은 기존의 시가 형식과 다른 ‘새로운 형태의 시가’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을 뿐이다.

1

텨ㅡㄹ썩, 텨ㅡㄹ썩, 텩, 쏴ㅡ아.
린다, 부슨다, 문허바린다,
泰山갓흔 놉흔뫼, 딥턔 갓흔 바위ㅅ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나냐, 모르나냐, 호통디 하면서, 
린다, 부슨다, 문허바린다, 
텨ㅡㄹ썩, 텨ㅡㄹ썩, 텩, 튜르릉, 콱.

2

텨ㅡㄹ썩, 텨ㅡㄹ썩, 텩, 쏴ㅡ아.
내게는, 아모것, 두려움 업서, 
陸上에서, 아모런, 힘과 權을 부리던 者라도, 
내압헤 와서는  못하고, 
아모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디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압헤는.
텨ㅡㄹ썩, 텨ㅡㄹ썩, 텩, 튜르릉, 콱.

3

텨ㅡㄹ썩, 텨ㅡㄹ썩, 텩, 쏴ㅡ아.
나에게, 뎔하디, 아니한 者가, 
只今디, 업거던, 통긔하고 나서 보아라.
秦始皇, 나팔륜, 너의들이냐,
누구누구누구냐 너의 亦是 내게는 굽히도다, 
나허구 겨르리 잇건 오나라.
텨ㅡㄹ썩, 텨ㅡㄹ썩, 텩, 튜르릉, 콱.
-「海에게서 少年에게」(「소년」, 1908. 11)


최남선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국문 글쓰기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새로운 시적 형식을 보여준다. 신체시의 형식은 율격의 고정성을 탈피하고 개개의 작품마다 서로 다른 독자적인 시 형식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새로운 시 형식으로서의 신시는 형태적인 면에서 개화 가사의 형식적 개방성과 개화 시조의 형식적 완결성을 결합한 새로운 절충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신시라는 이름으로 최남선이 발표한 작품들은 고정적인 형식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작품마다 개별적으로 완결성을 지닌 유기적인 시 형식을 확립하고 있는 것이다. 
최남선의 신체시에서 주목되는 것은 시적 형식의 요건이 되는 시행의 발견이다. 시에서 행을 구분하는 일은 신체시 이전의 시조나 가사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신체시에서 최남선이 의도적으로 구분해 놓고 있는 시행은 신체시라는 새로운 시 형식에 상응하는 본질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최남선의 신체시는 행의 발견을 통한 새로운 자유시에의 접근에도 불구하고 시적 의미 단위가 되고 있는 연의 구분에 지나치게 규칙성을 부여함으로써 개방적이면서도 유기적인 시 형식의 창조에게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이것이 신체시의 시적 형식에 대한 실험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전통 율격의 변화와 시 형식 

개화계몽시대부터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한 초기 현대시의 성격을 규정해 주는 요소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이 시의 언어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시적 리듬이다. 일반적으로 시의 리듬은 시의 매체가 되는 언어의 소리에서 비롯된다. 시의 리듬은 시 속에서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일정한 언어적인 특성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시의 형식과 의미를 규제하는 독특한 미적 기능을 수행한다. 시의 리듬은 언어가 지니는 음성적 요소들을 규칙적으로 배열하고 이를 반복하여 다양한 패턴의 음악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때 나타나는 음성적 요소의 규칙적인 반복은 시적 텍스트 내에서는 행을 단위로 하여 동일한 시간적 지속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시의 리듬의 기본적인 패턴은 언제나 하나의 시행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원리는 시적 체험을 조직하고 새롭게 질서화할 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시는 음악적 리듬에 맞춰 시의 언어를 배열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시적 텍스트의 통일성과 연속성과 동일성의 감각이 여기서 가능해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시의 리듬이라는 것이 반드시 규칙성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의 리듬이 규칙적인 것으로만 생각하여, 시에서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언어적인 요소만을 리듬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리듬이란 것이 원래 규칙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시에서는 불규칙적 요소가 얼마든지 포함될 수 있다. 더구나 시의 리듬은 언어의 음성적인 요소와 그것의 일정한 배열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안에서 의미를 규제하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한국의 전통 시가에서는 특정한 음의 강약이라든지 고저와 같은 요소의 반복과는 관계없이 몇 개의 음절이 결합되어 만들어내는 이른바 음보 형태의 반복에 의해 시의 리듬이 형성되고 있다. 전통적인 시조나 가사의 경우를 보면 각각의 시행 안에서 3-4음절로 구성되어 있는 어절이 서로 짝을 이루어 반복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를 3.4조 또는 4.4조라고 부른다. 이러한 음절 수의 규칙적 반복으로 이루어지는 율격을 음수율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음절 수의 규칙성만으로는 시의 리듬의 미적 속성을 제대로 헤아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특히 시조나 가사의 경우에도 각각의 시행에 반복되는 음수율이 3.4조 또는 4.4조라는 고정적인 틀을 지키는 경우가 거의 없다. 각 단위가 2-5음절까지 변화가 많고 가변적이기 때문에 음수의 고정과 그 규칙적 반복을 설명할 수가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국 전통시가의 리듬을 헤아리기 위해 새로이 생겨난 율격 분석 방법이 음보율이다. 음보율에서 음보라는 개념은 서구 시에서 사용하는 음보 개념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그러나 율격의 기본 단위로서의 음보는 2-5음절이 결합되어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음수율의 규칙성에 기반을 둘 수밖에 없다. 음보율에 의거하면 하나의 시행 안에 2-5음절로 구성되는 음보가 시간적으로 동일한 길이로 인식된다. 2음절로 이루어진 음보이든 4음절로 이루어진 음보이든 그것이 하나의 시행 안에서 실현될 때에는 그 시간적 길이가 동일하다. 그리고 동일한 시간량을 지닌 음보가 하나의 시행 안에서 규칙적으로 배열되면서 율격의 패턴이 결정된다. 이때 하나의 시행에 세 개의 음보가 규칙적으로 배열되면 3음보격, 네 개의 음보가 규칙적으로 배열되면 4음보격이 된다. 3음보격과 4음보격의 율격적 패턴은 전통 시가의 형태에서부터 근대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분포되고 있다.
한국의 현대시는 전통시가로서 시조나 가사에서 볼 수 있는 시적 형식의 고정성을 벗어나는 데에서 출발한다. 율격의 규칙성과 형태적 고정성을 벗어나는 것은 시적 형식의 자유로움과 그 개방성을 지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주목되는 것이 시의 리듬 조성의 단위가 되는 시행의 변화이다. 시의 형식에서 행의 변화가 시인의 창조적 개성을 말해주는 하나의 표현 구조의 변형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서구의 경우는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일어난 상징주의 시운동과 함께 이른바 ‘자유시형(vers libre)’의 등장이 가능해진다. 한국의 경우에도 개화계몽시대부터 일어난 신시 운동은 고정적 율격의 틀을 벗어난 시행의 변화를 개성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특히 운문으로서의 시가 구술성보다는 기록성에 의존하여 발전하면서 타이포그래피를 통한 시적 텍스트의 시각화 경향이 시행과 연의 구분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한다. 그러므로 행과 연의 구분이 율격이라는 음악적인 요소만이 아니라 시적 텍스트의 시각적 공간 구조를 보여주는 미적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현대시의 등장은 최남선이 시도한 이른바 신체시의 시적 실험이 그 첫 단계에 해당한다. 최초의 신체시로 지목되고 있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전통적인 시가 형식에서 볼 수 있는 어떤 형식적인 틀에 얽매여 있지 않다. 각각의 작품 자체 내에서 일정한 행과 연의 구분을 시도하면서 그 자체가 지향하는 새로운 시 형식을 창조하고 있다. 시적 텍스트에서 행이나 연의 구성이 어떤 기존의 관습적인 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틀을 무너뜨린다. 이 과정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이 시행의 발견이다. 시적 텍스트에서 행을 구분하여 놓는 일은 시조나 가사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작품에서 의도적으로 구분해 놓고 있는 시행의 구성과 그 배열은 이 작품이 지향하고 있는 자유시라는 새로운 시 형식에 상응하는 본질적인 의미를 가진다. 
최남선의 신체시는 리듬이나 율격을 통해 그 형식적 특성을 규정하기 어려운 새로운 시적 형식이다. 신체시의 범주 안에 들어오는 모든 작품들은 각각 다른 독자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그 형태적인 공통점을 찾아내기 어렵다. 신체시의 시적 형식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시행의 발견이다. 시에서 행을 구분하는 일은 신체시 이전의 시조나 가사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행 구분의 단순 기능이라면 띄어쓰기라든지 줄 바꾸기와 같이 간격을 조정하는 구두점의 대치 효과라고 할 것이다. 앞의 작품에서도 쉽게 확인되는 것처럼, 시행의 어떤 자리에 빈칸이 와야 하는지, 어디서 띄어쓰기를 하는지, 어느 정도 길이에서 행 가름이 이루어지는지를 일일이 따지지 않고서는 이러한 행의 구성을 보여줄 수 없다. 이 같은 시각적인 요건을 강조하고 있는 기록성의 특징은 국문 글쓰기와 관련되는 것이다. 국문 글쓰기를 선두에서 시행한 ≪독립신문≫의 경우 띄어쓰기의 활용에 의해 어휘와 어휘 사이의 간격 조정이라는 시각적 효과를 통한 의미 전달의 명료화를 실천한 바 있다. 신체시에서 최남선이 의도적으로 구분해 놓고 있는 시행은 신체시라는 새로운 시 형식에 상응하는 본질적인 의미를 가진다. 
결국 한국 현대시의 출발은 곧 자유시에의 지향을 의미한다. 현대시에서는 규칙적인 시적 율격이나 음악성을 따진다는 일 자체가 별로 중요한 일로 생각되지 않는다. 현대시에 관한 수많은 연구 가운데 시의 본질에 해당하는 율격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것을 보면 이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시가 지향하고 있는 시적 형식의 ‘자유’라는 것은 전통적인 시 형태에 대한 반성적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이것은 시적 형식 그 자체의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창조적 개성에 따라 이루어지는 형식적 변화와 이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대시가 지향하는 자유시라는 것은 시라는 양식 자체의 본질적 속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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