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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의 정착
2015년 06월 12일 21시 26분  조회:4313  추천:0  작성자: 죽림
자유시의 정착과정 

한국 현대시는 일본 식민지시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을 통해 서구 문학의 새로운 경향과 접할 수 있게 된다. 초창기 시단에서 활동한 김억, 황석우, 오상순, 변영로, 주요한, 노자영, 양주동, 유엽 등은 대부분 일본 유학을 통해 문학적 소양을 키운 사람들이다. 이들은 3․1운동을 계기로 민족의식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이루면서 민족적 정서와 그 시적 표현에 관심을 집중한다. 이 시기의 시인들이 한국어를 매체로 하는 새로운 시 형식의 발견이라든지 시적 율격의 표현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지니게 된 것은 자유시의 정착 과정에서 이루어진 초기 시학의 방향을 말해준다. 여기에 김소월, 이상화, 한용운 등이 가세하면서 한국 현대시는 자유시의 시적 형식을 정착시키고 민족적 정서를 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이 시기에 등장한 ≪태서문예신보≫(1918)는 문예를 전문으로 하는 주간 신문으로 서구의 현대시를 본격적으로 소개하여 한국 현대시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창조≫(1919), ≪폐허≫(1920), ≪장미촌≫(1921), ≪백조≫(1922), ≪금성≫(1923) 등의 동인지 발간에 여러 시인들이 각자 자신의 문학적 취향에 따라 참여하게 되면서 창작활동의 기반이 더욱 넓어진다.
김억은 ≪태서문예신보≫를 중심으로 프랑스 상징주의 시를 소개하면서 창작활동을 전개한다. 김억이 보여준 시적 탐구 작업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시적 형식과 시적 리듬에 대한 자각이다. 그는 최남선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수용한 전통적인 시가의 리듬을 보다 새롭게 변형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준다. 김억의 초기 시들은 시조나 가사와 같은 고정적인 형식의 잔재가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그의 서구 현대시의 번역 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김억의 서구 시 번역은 최초의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1921)를 통해 집약되고 있다. 이 시집에는 베를레느, 꾸르몽, 보들레르 등의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의 작품이 주로 번역 소개되고 있다. 김억은 이러한 번역 작업을 통해 시적 서정성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를 가지게 되었으며, 서구시의 시적 리듬을 한국어로 재현하는 데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 특히 시적 언어의 표현에 있어서 구어체의 적극적인 활용이라든지, 비유적인 시적 표현 기교의 다채로운 활용은 한국 시의 새로운 전개 과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이후에도 「신월」(1924), 「잃어진 진주」(1924), 「망우초」(1934), 「동심초」(1943) 등의 많은 번역시집을 출간한 바 있다. 김억의 시작 활동은 그의 첫 창작시집 「해파리의 노래」(1923)를 기점으로 「봄의 노래」(1925), 그리고 「안서시집」(1929) 등으로 이어진다. 김억의 시적 경향 가운데 주목해야 할 것은 새로운 시적 형식에 대한 추구 작업이다. 그는 시적 형식의 긴장과 이완을 그 길이의 장단을 통해 시험하면서 4행시의 창작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인다. 그의 후기 작품에서 4행시는 거의 정형화된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최남선은 개화계몽시대에 신체시의 형태적 개방성과 시 정신의 자유로움을 실험하였으며, 1920년대에는 시조부흥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시조부흥운동은 전통적 문학 형식이었던 시조를 현대적으로 다시 창작하자는 데에 그 목표를 둔 것으로서, 현대시조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인정된다. 최남선의 뒤를 이어 이병기, 이은상 등이 시조부흥운동에 동참하고 이광수, 주요한, 김동환 등도 시조 창작에 관심을 보이면서 시조문학의 시학을 정립할 수 있게 되었고, 시조의 전아한 기풍을 현대시조를 통해 다시 살려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최남선이 주장하고 있는 시조부흥은 ‘조선적인 것’의 시적 형상화의 가능성에 대한 탐구를 의미한다. 그는 신시운동 자체가 서구적인 새로운 시형태에 대한 무분별한 몰두로 시종하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조선의 시는 무엇보다도 조선스러움을 갖추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그는 시조라는 것이 “조선의 국토, 조선인, 조선어, 조선 음률을 통하여 표현한 필연적인 양식”임을 강조하면서 시조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신하고 있다. 최남선은 그의 시조집 「백팔번뇌」(1926)를 통해 스스로 시조부흥운동의 실천적 가능성을 입증해 보인다. 최남선의 현대시조는 시적 형식 면에서 연작의 방식을 활용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시조의 창작에서 연작 방식의 활용은 단형시조의 형식적 제약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욕과 상통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조 자체가 지켜온 단형의 형식적 완결성을 이완시키게 되는 문제점도 드러낸다. 그러므로 연작의 방법이 단순한 단형시조의 병렬적인 결합이 아니라 전체적인 형식의 긴장과 통일에 기여할 수 있어야만 그 의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민족 정서의 시적 발견

김소월은 한국 근대시의 형성 과정에서 시 정신과 시적 형식의 조화를 통해 한국적인 서정시의 정형을 확립한 대표적인 시인으로 손꼽을 수 있다. 김소월은 그의 대부분의 시에서 서정시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개인적인 정감의 세계를 중요시하고 있다. 그는 자연을 노래하면서도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그려내기보다는, 개인적인 정감의 세계 속으로 자연을 끌여들여 그 정조에 바탕을 두고 그것을 노래하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진달래꽃」, 「산유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접동새」 등이 모두 이같은 예에 속한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에는 
말업시 고히 보내드리우리다

寧邊에藥山
진달내
아름다 가실길에 리우리다

가시는거름거름 
노힌그츨 
삽분히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에는 
죽어도아니 눈물흘니우리다
―「진달내」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의 시적 정황은 ‘나보기가 역겨워 떠나는 임’과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는 ‘나’ 사이의 내면 공간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에서 서정적 자아는 떠나가는 임에 대한 원망 대신에, 오히려 자신의 변함이 없는 사랑을 드러내고자 한다. 여기서 자기 사랑의 표상으로 선택하고 있는 것은 ‘진달래꽃’이다. 봄이 되면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것이 진달래꽃이기 때문에, 진달래꽃은 한국인들 누구에게나 친숙하고 그 느낌도 자연스럽다. 이 시의 표현대로 ‘영변의 약산’에 피어 있는 진달래꽃은 바로 우리네의 곁에 있으며, 일상의 체험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이같은 체험의 진실성에 근거하여 자기 정서를 표현하고, 그 표현에서 새로운 감응력을 끌어내고자 한다.
김소월이 그의 시에서 즐겨 노래하고 있는 대상은 ‘가신 님’이거나, ‘떠나온 고향’이다. 모두가 현실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임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의 심정은 어떤 면에서 자못 퇴영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시는 다시 만나기 어렵고, 다시 찾기 힘든 그리움의 대상을 끈질기게 추구하면서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낭만적이기도 하다. 

김소월의 시가 지니고 있는 미덕은 토착적인 한국어의 시적 가능성을 최대한 살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언어를 그대로 시 속에 끌어들이고 있다. 경험의 현실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일상의 언어는 정감의 깊이를 드러내어 보여줄 수 있으며, 짙은 호소력도 지닌다. 그의 시가 실감의 정서를 깊이있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이같은 언어적 특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특히 그의 시의 율조는 민중의 호흡과 같이하면서 유장한 가락에 빠져들지 않고 오히려 간결하면서도 가벼운 음악성을 잘 살려내고 있다. 김소월의 시가 포괄하고 있는 정서의 폭과 깊이는 서정시가 도달할 수 있는 궁극적인 경지에 맞닿아 있다. 흔히 정한(情恨)의 노래라는 이름으로 소월시의 정서적 특질을 규정하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민족적 현실에 대한 비극적 인식이 가로놓여 있다. 
한국 근대시의 형성 과정에서 시인 한용운은 특이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는 당대 문단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한국 불교의 근대화를 위해 앞장섰던 승려였고, 민족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였던 저항적인 지식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 가운데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으로 남아있는 부분의 하나가 시작 활동이라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한용운이 오랫동안 한학 수업을 받았을 뿐, 정상적인 근대적 학교 교육을 통해 신학문에 접근하지 못했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시집 「님의 침묵」(1926)을 통해 이루어낸 시의 위업은 더욱 이채로운 시적 성과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님은갓슴니다 아아 사랑하는나의님은 갓슴니다
푸른산빗을치고 단풍나무숩을향하야난 적은길을 거러서 참어치고 갓슴니다
黃金의가티 굿고빗나든 옛盟誓는 차듸찬글이되야서 한숨의微風에 나러갓슴니다
날카로은첫<키스>의追憶은 나의運命의指針을 돌너노코 뒷거름처서 사러젓슴니다
나는 향긔로운 님의말소리에 귀먹고 다은 님의얼골에 눈머럿슴니다
사랑도 사람의일이라 맛날에 미리 날것을 염녀하고경계하지아니한것은아니지만 리별은 밧긔일이되고 놀난가슴은 새로운슯음에터짐니다
그러나 리별을 쓸데업는 눈물의源泉을만들고 마는것은 스스로 사랑을치는 것인줄 아는닭에 것잡을수업는 슯음의힘을 옴겨서 새希望의 정수박이에 드러부엇슴니다
우리는 맛날에 날것을염녀하는것과가티 날에 다시 맛날것을 밋슴니다
아아 님은갓지마는 나는 님을보내지 아니하얏슴니다 
제곡조를못이기는 사랑의노래는 님의沈黙을 휩싸고돔니다

―「님의 침묵」 

한용운은 그의 시를 통해 ‘님’을 노래하고 있다. 그의 시적 관심은 모두 ‘님’이라는 존재에 집중되고 있으며, 시를 통해 ‘님’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구체적으로 형상화시켜 놓고 있다. 한용운의 시에서 ‘님’의 존재는 ‘침묵’이라는 말을 통해 역설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는 ‘님’이 떠난 현실을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객관적인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님’은 떠나갔고, 그렇기 때문에 ‘님’이 부재하는 현실은 비극적인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용운은 대상으로서의 ‘님’의 존재를 부재의 비극적 공간에서 끌어내고, 오히려 그 존재의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용운의 시는 비탄과 정한의 노래는 아니다. 한용운은 ‘님’이 떠나버린 슬픔은 말하면서도, 그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님’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신념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한용운은 비극의 현실 속에 빠져있는 개인의 정서적 파탄을 그리지 않고, 오히려 존재의 본질과 새로운 삶의 전망을 노래한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의지적이며 강렬한 어조가 돋보인다. 이러한 특징은 한용운 자신의 혁명적 기질과도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지만, 역사의식의 투철성을 말해주는 것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상화의 시적 출발은 ≪백조≫ 동인 활동에서부터 이루어진다. 이상화의 초기 시는 병적 관능과 퇴폐성을 주조로 하고 있다. 이같은 특징은 주로 시적 대상으로서의 현실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물론 식민지 현실과 직결되는 것이다. 이상화의 초기작을 대표하는 「나의 침실로」는 ‘마돈나’라는 구원의 대상을 앞에 두고 시적 화자의 애절한 정감을 실감나게 표현한다. 이 시의 관능적 요소는 육체에 대한 탐닉이나 애욕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내적 감정의 격렬성을 시의 형식을 통해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다는 것, 시적 화자의 정서의 격렬성과 자제할 수 없는 욕망을 시의 언어를 빌어 이처럼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 현대시의 형성 과정에서 매우 소중한 경험이 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화는 자기 내면의 정서에 대한 탐닉에 머물러 있지 않고, 시적 관심을 역사와 현실의 영역으로 확대한다. 그는 어둡고 암담한 현실 속에서 시를 통해 자기 의지를 세우고자 한다. 

지금은 남의― 앗긴들에도 봄은오는가?

나는 온몸에 해살을 밧고
푸른한울 푸른들이 맛부튼 곳으로
가름아가튼 논길을라 속을가듯 거러만간다.

입슐을 다문 한울아 들아
내맘에는 내혼자온것 갓지를 안쿠나
네가엇느냐 누가부르드냐 답답워라 말을해다오.

바람은 내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섯지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조리는 울타리넘의 아씨가티 구름뒤에서 반갑다웃네.

고맙게 잘자란 보리밧아
간밤 자정이넘어 나리든 곱은비로
너는 삼단가튼머리를 앗구나 내머리조차 갑분하다.

혼자라도 갓부게나 가자
마른논을 안고도는 착한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하고 제혼자 엇게춤만 추고가네.

나비 제비야 치지마라.
맨드램이 들마에도 인사를해야지
아주리 기름을바른이가 지심매든 그들이라 다보고십다.

내손에 호미를 쥐여다오
살찐 젖가슴과가튼 부드러운 이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어도보고 조흔조차 흘리고십다.

강가에 나온 아해와가티
도모르고 도업시 닷는내혼아
무엇을찻느냐 어데로가느냐 웃어웁다 답을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고
푸른웃슴 푸른설움이 어우러진사이로 
다리를절며 하로를것는다 아마도 봄신령이 접혓나보다.
그러나 지금은―들을앗겨 봄조차 앗기것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1920년대 후반에 이상화가 발표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같은 작품은 시적 대상으로서의 현실세계를 역동적으로 포괄하면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절실하게 추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자연의 질서와 역사적 현실의 불일치가 빚어내는 모순된 삶의 공간을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구체화시켜 놓고 있다. 빼앗긴 들과 다시 찾아온 봄이라는 현실적 공간과 자연적 시간에 대한 인식을 통해 시인은 ‘봄은 빼앗길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다. 결국 이 시는 ‘여기’와 ‘지금’이라는 현실적인 공간과 시간이 빚어내는 역설적 의미 구조를 통해, 지금은 ‘들’을 빼앗겼지만 회생의 봄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사실을 노래하고 있다. 빼앗긴 국토에 대한 상실감과 그것을 다시 회복시켜야 한다는 강한 의지력이 힘찬 리듬과 가락을 통해 격정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상화의 시는 식민지 현실의 모순 구조를 시적 진술을 통해 비판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역사 의식과 함께 민족의 삶에 대한 전망을 함께 담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계급시의 등장과 경향성

일본 식민지 시대 한국 근대시가 계급적 이념과 대응하게 되는 과정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1925)을 중심으로 한 계급문학운동의 전개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계급 시단의 창작적 성과로는 박세영, 박팔양, 임화, 김해강, 김창술 등의 시를 꼽을 수 있다. 
박세영이 초기 시에서 관심을 보여주었던 시적 대상은 일본의 강압적인 식민지 지배와 함께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농민들의 삶의 참상이다. 그는 초기작에 속하는 「타작」이나 「산골의 공장」 같은 작품을 통해 착취에서 신음하고 있는 농민들의 삶의 고통을 그려보이고 있으며, 「향수」, 「최후에 온 소식」과 같은 작품에서는 고향을 상실한 채 곤궁한 삶을 꾸리면서 만주 벌판을 떠도는 한국인들의 비극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1930년대 초기 작품에 해당하는 「화문보로 가린 이층」, 「산제비」 등에서 시인의 이념적 지향을 고양된 시 정신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모두 시집 「산제비」(1938)를 통해 그 성과가 집약되고 있다. 이 작품들은 초기 계급문단의 이념적 열정보다는 계급문학 운동 자체가 조직적인 분열과 이념적 와해를 겪게 되는 시기에 등장하기 시작한 내성적 어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의 시는 시적 진술 자체가 서술적이며, 긴장도 다소 이완되어 있다. 하지만 계급문학 운동의 대중적 진출을 위한 투쟁적 열기를 직설적으로 그려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내밀한 언어로 서술하고 있다.
박팔양은 계급문학운동에 참여하면서도 서정적인 시편들을 많이 발표한다. 그러나 그의 시 가운데에는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예리하게 관찰하면서 그 비극적 상황을 진단하고 있는 「밤차」, 「태양을 등진 거리 우에서」와 같은 작품들도 적지 않다. 박팔양이 보여준 현실적 관심은 주로 궁핍한 현실의 고통이거나 왜곡된 근대 도시 문명의 어두운 그림자들이다. 그는 어두운 조선의 현실 앞에 무기력한 지식인으로서의 시인의 형상을 그려냄으로써 시적 자아의 내면을 치밀하게 표출하고 있다. 이러한 시적 경향은 진취적인 계급 의식이나 투쟁적인 자세와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것이지만, 계급문단에 관여했던 그가 「1929년의 어느 도시의 풍경」, 「점경」, 「하루의 과정」과 같은 시에서 보여주고 있는 도회의 일상과 권태와 우울은 매우 특이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가 1930년대 후반 이후 오히려 도시적 체험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를 자연 속에서 구하며 전원을 예찬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는 것은 이 같은 시적 경향과 대조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시집 「여수시초」(1940)에는 이 같은 다양한 그의 시적 성과가 그대로 담겨 있다. 

임화의 시작 활동에 대해서는 계급문단의 시적 창작과 그 실천 과정 가운데 가장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의 작품 가운데 사화집 형태로 출간된 「카프시인집」(1931)에 수록된 「네 거리의 순이」, 「우리 옵바와 화로」 등은 계급문학운동의 정치적 진출과 대중화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1920년대 말에 발표된 것으로 계급시의 대표적인 형태로 손꼽히고 있다. 임화는 이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대표적인 프롤레타리아 시인으로 부상하게 되었으며, 이 작품들이 보여주고 있는 계급적 현실에 대한 시적 인식 과정 자체가 계급시의 일정한 성과를 의미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랑하는 우리 옵바 어적게 그만 그러케 위하시든 옵바의 거북紋이 질火爐가 깨여 젓서요
언제나 옵바가 우리들의 <피오니ㄹ> 족으만 旗手라 부르는 永男이가
地球에 해가 비친 하로의 모든 時間을 담배의 毒氣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온 그 거북紋이 火爐가 깨여젓서요

그리하야 지금은 火젓가락만이 불상한 永男이하구 저하구처럼
똑 우리 사랑하는 옵바를 일흔 男妹와 가치 외롭게 壁에가 나란히 걸렷서요

옵바…… 
저는요 저는요 잘 알앗서요
웨 그날 옵바가 우리 두 동생을 떠나 그리로 드러가실 그날 밤에
연겁히 말는 卷煙을 세개식이나 피우시고 계셧는지 
저는요 잘 알앗세요 옵바

언제나 철업는 제가 옵바가 工場에서 도라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옵바 몸에서 新聞紙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옵바는 파란 얼골에 피곤한 우슴을 우스시며
…… 네 몸에선 누에똥내가 나지 안니 하시든 世上에 偉大하고 勇敢한 우리 옵바가 웨 그날만
말한마듸 없시 담배 煙氣로 房속을 메워 버리시는 우리 우리 勇敢한 옵바의 마음을 저는 잘 알엇세요
天穽을 向하야 기여 올라가든 외줄기 담배연기 속에서 옵바의 鋼鐵 가슴속에 백힌 偉大한 決定과 聖스러운 覺悟를 저는 分明히 보앗세요
그리하야 제가 永男이의 버선 한아도 채못기엇을 동안에
門지방을 때리는 쇳소리 마루로 밟는 거치른 구두소리와 함께 가버리지 안으셧서요

그러면서도 사랑하는우리 偉大한 옵바는 불상한 저의 男妹의 근심을 담배煙氣에 싸두고 가지 안으셧서요
옵바! 그래서 저도 永男이도
옵바와 또 가장 偉大한 勇敢한 옵바 친구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뒤줍을 때
저는 製絲機을 떠나서 百장의 一錢짜리 封筒에 손톱을 뚜러 뜨리고
永男이도 담배냄새 구렁을 내쫓겨 封筒 꽁문이를 뭄니다
只今 萬國 地圖 가튼 누덕이 미테서 코를 고을고 잇습니다

옵바! 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勇敢한 이나라 靑年인 우리 옵바와 핏줄을 가치한 계집애이고
永男이도 옵바도 늘 칭찬하든 쇠가튼 거북紋이 火爐를 사온 옵바의 동생이 아니에요
그리고 참 옵바 악가 그 젊은 남어지 옵바의 친구들이 왓다 갓습니다
눈물 나는 우리 옵바 동모의 消息을 傳해주고 갓세요
사랑스런 勇敢한 靑年들이 엇습니다
世上에 가장 偉大한 靑年들이 엇습니다
火爐는 깨어져도 火적갈은 旗ㅅ대처럼 남지 안엇세요
우리 옵바는 가셧서도 貴여운 <피오니ㄹ> 永男이가 잇고 
그리고 모든 어린 <피오니ㄹ>의 따뜻한 누이품 제 가슴이 아즉도 더웁습니다

그리고 옵바……
저뿐이 사랑하는 옵바를 일코 永男이뿐이 굿세인 兄님을 보낸 것이겟습닛가
슬지도 안코 외롭지도 안습니다
세상에 고마운 靑年 옵바의 無數한 偉大한 친구가 잇고 옵바와 兄님을 일흔 數업는 계집아희와 동생 
저희들의 貴한 동무가 잇습니다

그리하야 이다음 일은 只今 섭섭한 憤한 事件을 안꼬잇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와질 것입니다 

옵바 오늘밤을 새어 二萬장을 부치면 사흘 뒤엔 새솜 옷이 
옵바의 떨니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

이러케 世上의 누이동생과 아우는 健康히 오늘날 마다를 싸홈에서 보냅니다

永男이는 엿해 잡니다 밤이 느젓세요 

―「우리 옵바와 화로」 

「우리 옵바와 화로」의 경우에는 노동 일가의 남매가 겪고 있는 수난을 여동생의 목소리를 통해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노동 운동을 하다가 경찰에 끌려간 옵바의 이야기와 함께 깨어진 옵바의 질화로가 시적 정황의 구체성을 드러내는 요소가 된다. 집에 남겨진 동생 남매의 모습을 벽에 걸린 화젓가락으로 표상하고 있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짙은 정감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작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같은 시적 정황은 그 내용이 곧바로 노동 계급이 직면하고 있는 계급적 현실 모순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호소력을 더하고 있다. 특히 모순의 현실에 굴하지 않고 옵바를 기다린다는 동생 남매의 굳은 다짐을 보여줌으로써 시적 주체의 의지가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네거리의 순이」의 경우는 여동생을 향한 오빠의 목소리를 부각시키고 있는데 그 정서적 기반은 「우리 옵바와 화로」의 경우와 비슷하다. 이 작품에서 시적 화자는 고통 속에서도 서로 힘을 합쳐 함께 일했던 지난날을 상기하면서, 구속된 청년 동지를 위해 다시 힘을 모아야 한다고 절규하고 있다. 이처럼 임화의 계급시는 계급적 정황을 시적 공간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독자들의 관심을 촉발하고 있다. 

임화가 조선프로예맹이 해체된 이후에 쓴 1930년대 후반의 시들은 「현해탄」(1938)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 시집의 작품들은 앞의 계급시들과는 달리 민족의 운명과 식민지 현실에 대한 초극의 의지를 노래한 서정적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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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3 [안녕?- 아침 詩 한송이]- 미친 약속 2016-03-10 0 4062
1162 <노을> 시모음 2016-03-10 0 4904
1161 詩作初心 - 시의 제목 잘 선별하기 2016-03-10 0 5122
1160 詩作初心 - 시는 두겹으로 그림을 그려라 2016-03-09 0 5585
1159 詩作初心 - 시는 20행이하로... 2016-03-09 1 6879
1158 <개> 시모음 2016-03-08 0 4385
1157 [안녕?- 아침 詩 한송이]ㅡ 봄소동 2016-03-08 0 4020
1156 "나는 단어를 찾는다"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 2016-03-07 0 3695
1155 [동시야 놀자]- 지각 대장 싸움 대장 2016-03-07 0 4135
1154 [동시야 놀자]- 쫑마리 2016-03-07 0 3712
1153 [동시야 놀자]- 오줌싸개 지도 2016-03-07 0 4194
1152 [동시야 놀자]- 아름다운 국수 2016-03-07 0 4263
1151 [동시야 놀자]- 까만 밤 2016-03-07 1 4208
1150 [동시야 놀자]- 봉숭아 2016-03-07 0 4219
1149 [안녕?- 아침 詩 두송이]- 들깨를 터는 저녁 / 뜨개질 2016-03-07 0 4452
1148 {안녕? - 아침 詩 한송이} - 白石 詩 2016-03-06 0 5348
1147 詩作初心 - 좋은 시를 모방하되 자기 색갈 만들기 2016-03-06 0 7874
1146 詩에서 상상은 허구, 가공이다... 2016-03-04 0 5052
1145 {안녕?- 아침 詩 두송이} - 나무들의 목소리 2016-03-04 0 4292
1144 詩는 그 어디까지나 상상의 산물 2016-03-04 0 4612
1143 [아침 詩 두수] - 황지우 시 두수 2016-03-03 0 4515
1142 산문시가 산문이 아니다라 詩이다 2016-03-03 0 4628
1141 산문과 산문시의 차이 알아보기 2016-03-03 0 4795
1140 산문시와 산문을 구별해보자 2016-03-03 0 4300
1139 "시의 본질" 이라는 거울앞에 서보자 2016-03-03 0 4209
1138 독자가 없으면 詩는 존재할수 있다... 없다... 2016-03-03 0 4609
1137 밀핵시(密核詩)란? 2016-03-02 0 4662
1136 [아침 詩 한수] - 내가 뜯는 이 빵 2016-03-02 0 4106
1135 눈물보다 독한 술은 없다... 있다... 2016-03-02 0 4046
1134 詩의 천하루밤 2016-03-02 0 4126
1133 詩作初心 - 독자 없는 시대를 독자 있는 시대로... 2016-03-02 0 4507
1132 詩作初心 - 詩를 읽는다는것은... 2016-03-01 0 4380
1131 詩作初心 - 한편의 시를 탈고하기 위하여... 2016-03-01 0 5211
1130 [아침 詩 한수] - 어떤 평화 2016-02-29 0 4614
1129 詩作初心 - 좋은 詩 없다... 있다... 2016-02-26 0 4352
1128 詩作初心 - "詩의 본질"이라는 거울앞에서ㅡ 2016-02-26 0 4344
1127 [아침 詩 두수] - 늙은 꽃 / 기적 2016-02-26 0 4297
1126 [아침 詩 한수] - 가벼운 농담 2016-02-25 0 4322
1125 민족시인들을 찾아서... 2016-02-25 0 4898
1124 詩作初心 - 詩의 출발은 사춘기, 고정관념 벗어나기 2016-02-24 0 4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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