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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시인이 된다는 말이 있다. 사랑에 빠지면 못 보던 것이 보이고, 안 들리던 것이 들리고, 못 맡던 냄새를 맡게 된다. 같은 아픔도 오감(五感)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 시인의 숙명이다. 나라를 사랑한 시인들도 그랬다. 일제강점기 민족적 울분의 때에 시인들은 누구보다 민족적 아픔을 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오는 3월 1일은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해 전 세계에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온 민족이 총궐기해 평화적 시위를 벌인 날이다.
일제강점기 민족적 고난의 시기를 지나며 많은 기성 문인들이 변절해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아픔을 노래하고 시를 써내려간 시인들이 있다. 누군가는 글을 소극적 저항이라고 폄하하지만 문인들에게 있어 ‘글’은 가장 적극적인 표현 방법이자 민족 해방을 향한 뜨거운 열망의 표출이었다.
일제가 우리 민족의 말과 글을 말살하기 위해 문인들을 말할 수 없이 박해했던 시대적 상황을 들여다보면 더욱 그렇다. 본지는 3.1절을 맞아 나라를 잃은 슬픔을 시로 승화시키고, 기독교 세계관으로 민족 해방의 열망을 표출했던 기독교 시인들의 삶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서시의 육필원고. |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
지난 2월 16일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라고 불리는 청년 윤동주의 서거 71주기였다. 최근 윤동주 시인의 삶을 다룬 영화 ‘동주’가 개봉했는데 규모가 작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흥행률을 보이고 있어 윤동주를 향한 많은 사람들의 애정을 엿볼 수 있다.
▲ 윤동주 시인(1917~1945). |
윤동주의 시는 가혹한 시대적 현실에 대한 고뇌와 처절한 몸부림을 그만의 투명하고 순수한 영혼의 목소리로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서시’는 일제 탄압에 신음하던 시민들의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한 시로,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 널리 애송되고 있다.
윤동주의 시는 결코 어렵거나 난해하지 않다. 그는 비참한 민족의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시인으로써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연약함을 부끄러워했고, 그러한 처절한 마음을 시로 표현했다. 그렇기에 그는 ‘부끄러움의 미학’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확립했다.
윤동주 시인의 시는 크게 두 가지 사상에 기초해 있는데 하나는 우리 민족에 주어진 시련을 극복하기 위한 민족주의며, 다른 하나는 기독교 사상이다. 서시, 참회록, 십자가 등을 비롯한 많은 그의 시 배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숭고한 사랑과 희생정신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특히 ‘십자가’는 속죄양 의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라도 민족을 구원하고 싶다는 시인의 간절한 열망을 느낄 수 있는 시다. 일제의 식민정책이 한층 강화되고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내세우며 창씨개명을 강요해 더욱 암울했던 1941년에 창작된 시로 그 의미가 있다.
연희전문학교 시절, 고종사촌인 송몽규와 함께 일본 유학길에 오른 윤동주는 1943년 항일운동 혐의로 수감돼 29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해방을 불과 몇 달 앞둔 1945년 2월 16일이었다. 그 후 3년 뒤, 정음사에서 윤동주의 작품 30편을 모아 유고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간행하게 된다.
시대의 아픔을 노래한 젊은 시인은 별이 바람에 스치듯 사라지고 말았지만,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사랑과 용서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노래한 그의 주옥같은 시들은 오늘까지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윤동주의 시가 일제강점기 내적 성찰이라는 소극적 저항에만 머물러 있었다는 것에는 평가가 엇갈린다. 김응교 교수(숙명여대)는 “윤동주 시는 자기성찰에 머물지 않고 나아가 사회를 변혁하는 데에 이르고 있다”며, “철저한 자기성찰로부터 출발해 궁극적으로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적극적 자세를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청록파 시인 혜산(兮山) ‘박두진’
“하나님이여, 내게 만일 조그만치라도 시를 쓸 소질을 주셨거든 이 길을 걸어감이 내 명예와 만족만을 위하는 것이 되지 말게 하시고, 오직 당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로써 유일한 목적을 삼고 그렇게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 박두진 시인(1913~1998). |
박두진의 문학적 틀은 바로 생명력 있는 자연이었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감각적인 기쁨을 기독교적 신앙과 결부시킴으로써, 자연과 인간의 존재 의미를 추구하는 시를 썼다. 그의 기독교 세계관은 대부분의 시에서 단호하고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자연을 노래하는 것도 신의 영광을 위해 써야했고, 인류는 궁극적으로 신의 사랑의 섭리 아래 하나로 완성된다는 것을 표현하려고 했다. 18세에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박두진은 죽을 때까지 청교도적인 신앙인의 모범이 되었으며, 이를 시로 형상화하기 위한 노력에 몸부림 쳤다.
특히 그의 시는 ‘자연·인간·신’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자연은 인간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일종의 ‘메시아’적 상징이자, 이상적 존재로 표현했다. 그렇기에 단순히 자연과 세계를 묘사하는 것을 넘어서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이 친히 창조한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고, 재창조했다. 또 ‘믿음·소망·사랑’의 성격적 정신을 그의 작품 세계에 함축해 담았으며, 예수그리스도의 행적과 함께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발견하기 위해 애썼다.
박두진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6·25전쟁과 독재정권 등의 역사적 격변기를 거치며 지성과 양심의 목소리를 잃지 않은 지사적 면모를 보였다.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 시인이 공동간행한 <청록집>(1946)의 시들은 대부분 일제 말기에 씌어졌다. 청
록파 시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인간의 염원과 가치를 성취하기 위한 공통된 소재로 ‘자연’을 활용했으며, 빼앗긴 땅과 자연을 복원시켜 그 속에서 파괴된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찾고자 했다. 일제 말 국어말살정책이 극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말로 된 <청록집>의 발간은 일제의 굴욕을 극복하려는 불굴의 의지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박두진은 기독교적 생명 사상에 입각해 자연과의 친화를 노래했는데, 초기 시는 현실의 고통을 참고 메시아가 올 것을 믿고 기다리는 자의 환희를 힘 있게 표현했다. 그 메시아는 8.15광복과 함께 도래하며 ‘해’로 표상된다.
시집 <해>는 한국시사상 유래 없이 맑고 희망적인 노래로 가득 차 있다. 환희의 감정을 절제하지 않고 발신하는 특유의 유장한 산문시의 리듬은 풍요로운 자연의 이미지와 독창적인 상징어들과 어울려 건강하고 활력에 넘치는 세계를 보여준다.
시기적으로 박두진의 시 세계는 해방과 6.25를 분기점으로, 민족의 구원에 대한 소명 의식이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전환됐으며, 기독교적 종말관이나 신앙적 갈구는 후기에 두드러졌다. 그는 1937년 ‘문장’지에 ‘묘지송’ ‘향현’을 발표한 이래 60여 년간 활동하며 한국현대문학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사람을 사랑하고 생명을 존중한 시인, ‘김현승’
시인 박두진은 김현승의 문학사적 의의에 대해, “가장 고도한 정신을 가장 순수한 정신으로, 가장 순순한 정신을 가장 인간적인 것에 둔 김현승 시인은 기독교적 시 정신에 바탕한 현대시의 서정성을 획득하고 구축한 지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밝힌 바 있다.
▲ 김현승 시인(1913~1975). |
‘가을의 기도’로 익히 알려진 김현승 시인은 사람을 사랑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시를 썼으며,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거나 내면화한 시들을 써내려갔다. 한일합병 직후 목사의 아들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기독교를 소재로 하거나 내면화한 시들을 써내려갔다.
그의 성품은 늘 의로움을 추구하며 자신에게 엄격했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1936년 숭실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그는 1937년 일본의 신사참배를 거부해 투옥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양심상 도저히 시를 쓸 수 없다며 붓을 꺾고 절필했으며, 광복 후 1949년 다시 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시는 초기에는 자연의 예찬을 통한 낭만주의적 서정시의 경향을 띠었다. 대표적인 시가 ‘가을의 기도’로, 가을의 계절감을 그리며 경건한 삶의 가치를 노래한 시다. 8·15 광복 후에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추구하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경건한 삶의 가치를 추구했으며, 말기에는 고독과 구원 등 인간의 본질을 노래하게 된다.
이 시기 대표적인 시는 ‘눈물’로서 어린 아들을 잃고, 그 슬픔을 기독교 신앙으로 극복한 내용을 담았다. 현상적 삶에 대한 그의 관심이 청교도적 윤리관 속에서 발전됐다면, 그의 존재 성찰의 문제 역시 기독교적 초월의식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윤동주 시모음/////////////////////////////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가 된 계집애들의 .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그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유언 후어-ㄴ한 방에 유언은 소리 없는 입놀림. 바다에 진주 캐러 갔다는 아들 해녀와 사랑을 속삭인다는 맏아들 이밤에사 돌아오나 내다봐라.... 평생 외롭든 아버지의 운명 감기우는 눈에 슬픔이 어린다 외딴집에 개가 짖고 휘양찬 달이 문살에 흐르는 밤. |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골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줄에 줄이자 ---- 만 24년 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든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줄의 참회록을 써야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든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
쉽게 씌어진 시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위로 거미란 놈이 흉한 심보로 병원 뒤뜰 난간과 꽃밭 사이 사람 발이 잘 닿지 않는 곳에 그물을 쳐 놓았다. 옥외 요양을 받는 젊은 사나이가 누워서 쳐다보기 바르게--- 나비가 한 마리 꽃밭에 날아들다 그물에 걸리었다. 노오란 날개를 파득거려도 나비는 자꾸 감기우기만 한다. 거미가 쏜살같이 가더니 끝없는 끝없는 실을 뽑아 나비의 온 몸을 감아 버린다. 사나이는 긴 한숨을 쉬었다. 나이보다 무수한 고생 끝에 떼를 잃고 병을 얻은 이 사나이를 위로할 말이 --- 거미줄을 헝클어 버리는 것밖에 위로의 말이 없었다. |
팔복(八福) -마태복음 5장 3~12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
새벽이 올 때까지 다들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검은 옷을 입히시요. 다들 살아 가는 사람들에게 흰 옷을 입히시요. 그리고 한 침대에 가지런히 잠을 재우시요. 다들 울거들랑 젖을 먹이시요.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 소리 들려올 게외다. |
바람이 불어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 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
봄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三冬)을 참아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나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
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 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가슴에 꽂고 병원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
가슴 1 소리 없는 북 답답하면 주먹으로 뚜다려 보오. 그래 봐도 후... 가아는 한숨보다 못하오. 가슴 2 불꺼진 화덕을 안고 도는 겨울 밤은 깊었다. 재만 남은 가슴이 문풍지 소리에 떤다. |
간판 없는 거리 정거장 플랫폼에 나렸을 때 아무도 없어 다들 손님들뿐 손님 같은 사람들뿐 집집마다 간판이 없어 집 찾을 근심이 없어 빨갛게 파랗게 불 붙는 문자(文字)도 없이 모퉁이마다 자애로운 헌 와사등(瓦斯燈)에 불을 혀놓고 손목을 잡으면 다들 어진사람들 다들 어진사람들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서로 돌아들고. |
간(肝)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우에 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사쓰 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든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지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 |
*개 눈 위에서 개가 꽃을 그리며 뛰오 *나무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도 자오 |
거리에서 달밤의 거리 광풍이 휘날리는 북국의 거리 도시의 진주 전등 밑을 헤엄치는 조그만 인어, 나 달과 전등에 피쳐 한몸에 두셋의 그림자 커졌다 작아졌다. 괴롬의 거리 재색빛 밤거리를 걷고 있는 이 마음 선풍이 일고 있네 외로우면서도 한 갈피 두 갈피 피어나는 마음의 그림자 푸른 공상이 높아졌다 낮아졌다. |
거짓부리 똑 똑 똑 문 좀 열어주세요 하루밤 자고 갑시다. 밤은 깊고 날은 추운데 거 누굴까? 문 열어주고 보니 검둥이의 꼬리가 거짓부리한걸. 꼬기요 꼬기요 달걀 낳았다. 간난아 어서 집어 가거라 간난이 뛰어가 보니 달걀은 무슨 달걀 고놈의 암탉이 대낮에 새빨간 거짓부리한걸. |
고추밭 할머니는 바구니를 들고 밭머리에서 어정거리고 손가락 너어는 아이는 할머니 뒤만 따른다. 시들은 잎새 속에서 고 빠알간 살을 드러내 놓고 고추는 방년(방년)된 아가씬 양 땍볕에 자꼬 익어 간다. |
고향집 헌 짚신짝 끄을고 나 여기 왜 왔노 두만강을 건너서 쓸쓸한 이 땅에 남쪽 하늘 저 밑에 따뜻한 내 고향 내 어머니 계신 곳 그리운 고향집 |
공상 공상... 내 마음의 탑 나는 말없이 이 탑을 쌓고 있다. 명예와 허영의 천공에다 무너질 줄 모르고 한 층 두 층 높이 쌓는다. 무한한 나의 공상 그것은 내 마음의 바다 나는 두 팔을 펼쳐서 나의 바다에서 자유로이 혜엄친다. 황금 지욕(知慾)의 수평선을 향하여. |
귀뜨라미와 나와 귀뜨라미와 나와 잔디밭에서 이야기했다. 귀뜰귀뜰 귀뜰귀뜰 아무에게도 아르켜주지 말고 우리 둘만 알자고 약속했다. 귀뜰귀뜰 귀뜰귀뜰 귀뜨라미와 나와 달밝은 밤에 이야기했다. |
그 여자 함께 핀 꽃에 처음 익은 능금은 먼저 떨어졌읍니다. 오날도 가을 바람은 그냥 붑니다. 길가에 떨어진 붉은 능금은 지나는 손님이 집어 갔읍니다. |
기왓장 내외 비오는 날 저녁에 기왓장 내외 잃어버린 외아들 생각나선지 꼬부라진 잔등을 어루만지며 쭈룩쭈룩 구슬피 울음 웁니다. 대궐 지붕 위에서 기왓장 내외 아름답든 옛날이 그리워선지 주름잡힌 얼굴을 어루만지며 물끄러미 하늘만 쳐다봅니다. |
길 잃어버렸읍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우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읍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꿈은 깨어지고 잠은 눈을 떴다. 그윽한 유무(幽霧)에서. 노래하는 종달이 도망쳐 날아나고 지난날 봄타령하든 금잔디밭은 아니다. 탑은 무너졌다 붉은 마음의 탑이... 손톱으로 새긴 대리석탑이... 하로저녁 폭풍에 여지없이도 오오 황폐의 쑥밭 눈물과 목메임이여! 꿈은 깨어졌다. 탑은 무너졌다. |
남쪽 하늘 제비는 두 나래를 가지었다. 시산한 가을날..... 어머니의 젖가슴이 그리운서리 나리는 저녁..... 어린 영(靈)은 쪽나래의 향수를 타고 남쪽 하늘에 떠돌 뿐..... |
내일은 없다 내일 내일 하기에 물었더니 밤을 자고 동틀 때 내일이라고 새날을 찾던 나는 잠을 자고 돌보니 그때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더라 무리여! 동무여! 내일은 없나니 ...... |
눈 1 처마 밑에 시래기 다래미 바삭바삭 추워요. 길바닥에 말똥 동그램이 달랑달랑 얼어요. 눈 2 지난밤에 눈이 소오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나리지 |
눈 감고 간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었든 눈을 와짝 떠라. |
눈 오는 지도 순이(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나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우에 덮인다. 방안을 돌아다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나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히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든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밑, 너는 내 마음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고만 발자욱을 눈이 자꼬 나려 덮여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어 나서면 년 열두달 하냥 내 마음에도 눈이 나리리라. |
달 같이 연륜이 자라듯이 달이 자라는 고요한 밤에 달같이 외로운 사랑이 가슴 하나 뻐근히 연륜처럼 피어 나간다. |
*닭 1 .....닭은 나래가 커도 왜 날잖나요 .....아마 두엄 파기에 홀 잊었나봐. *닭 2 한간 계사(鷄舍) 그 너머 창공이 깃들어 자유의 향토를 잊은 닭들이 시들은 생활을 주잘대고 생산의 고로를 부르짖었다. 음산한 계사에서 쏠려 나온 외래종 레구홍, 학원에서 새무리가 밀려 나오는 3월의 맑은 오후도 있다. 닭들은 녹아드는 두엄을 파기에 아담한 두 다리가 분주하고 굶주렸든 주두리가 바즈런하다. 두 눈이 붉게 여므도록..... |
돌아와 보는 밤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 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 같은데 비를 맞고 오든 길이 그대로 비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루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
둘다 바다도 푸르고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끝없고 하늘도 끝없고 바다에 돌 던지고 하늘에 침 뱉고 바다는 벙글 하늘은 잠잠. |
또 다른 고향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 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 (風化作用)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
또 태초의 아침 하얗게 눈이 덮이었고 전신주가 잉잉 울어 하나님 말씀이 들려 온다. 무슨 계시(啓示)일까. 빨리 봄이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어 이브가 해산하는 수고를 다하면 무화가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
만돌이 만돌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전보대 있는 데서 돌짜기 다섯 개를 주웠읍니다. 전보대를 겨누고 돌 첫개를 뿌렸읍니다. .....딱..... 두개째 뿌렸읍니다. .....아뿔사..... 세 개째 뿌렸읍니다. .....딱..... 네 개째 뿌렸읍니다. .....아뿔사..... 다섯 개째 뿌렸읍니다. .....딱..... 다섯 개에 세 개...... 그만하면 되었다. 내일 시험 다섯 문제에 세 문제만 하면-- 손꼽아 구구를 하여봐도 허양 육십 점이다. 볼 거 있나 공차러 가자. 그 이튿날 만돌이는 꼼짝 못하고 선생님한테 흰 종이를 바쳤을까요 그렇잖으면 정말 육십 점을 받았을까요 |
명 상 가츨가츨한 머리칼은 오막살이 처마끝 쉬파람에 콧마루가 서운한 양 간질키오. 들창같은 눈은 가볍게 닫혀 이밤에 연정은 어둠처럼 골골히 스며드오. |
모란봉에서 앙당한 소나무 가지에 훈훈한 바람의 날개가 스치고 얼음 섞인 대동강물에 한나절 햇발이 미끌어지다. 허물어진 성터에서 철모르는 여아들이 저도 모를 이국말로 재잘대며 뜀을 뛰고 난데없는 자동차가 밉다. |
무서운 시간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한번도 손 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 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
무얼 먹고 사나? 바닷가 사람 물고기 잡어먹고 살고 산골엣 사람 감자 구어먹고 살고 별나라 사람 무얼 먹고 사나. |
십자가 쫓아오는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놓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황혼이 바다가 되어 하루도 검푸른 물결에 흐느적 잠기고......잠기고...... 저--왼 검은 고기 떼가 물든 바다를 날아 횡단할꼬. 낙엽이 된 해초 해초마다 슬프기도 하오. 서창에 걸린 해말간 풍경화. 옷고름 너어는 고아(孤兒)의 설움. 이제 첫 항해하는 마음을 먹고 방바닥에 나뒹구오......뒹구오...... 황혼이 바다가 되어 오늘도 수많은 배가 나와 함께 이 물결에 잠겼을 게오. |
소 년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
삶과 죽음 삶은 오늘도 죽음의 서곡을 노래하였다. 이 노래가 언제나 끝나랴 세상 사람은 --- 뼈를 녹여 내는 듯한 삶의 노래에 춤을 춘다 사람들은 해가 넘어가기 전 이 노래 끝의 공포를 생각할 사이가 없었다. 하늘 복판에 알 새기듯이 이 노래를 부른 자가 누구뇨 그리고 소낙비 그친 뒤같이도 이 노래를 그친 자가 누구뇨 죽고 뼈만 남은 죽음의 승리자 위인들! |
*슬픈 족속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못 자는 밤 하나, 둘, 셋, 넷 ................ 밤은 많기도 하다. |
蒼空창공 그 여름날 열정의 포플라는 오히려 창공의 푸른 젖가슴을 어루만지려 팔을 펼쳐 흔들거렸다. 끓는 태양 그늘 좁다란 지점에서 천막 같은 하늘 밑에서 떠들던 소나기 그리고 번개를, 춤추던 구름을 이끌고 南方남방으로 도망하고, 높다란 창공은 한 폭으로 가지 위에 퍼지고 둥근 달과 기러기를 불러왔다. 푸르던 어린 마음이 理想이상에 타고 그의 동경의 날 가을에 조락의 눈물을 비웃다. 시집 : 하늘과 바람과 별의 詩/미래사 |
트루게네프의 언덕 나는 고개길을 넘고 있었다...... 그때 세 소년거지가 나를 지나쳤다. 첫째 아니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바구니 속에는 사이다병, 간즈메통, 쇳조각, 헌 양말짝 등 폐물이 가득하였다. 둘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셋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면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 잃어 푸르스럼한 입술, 너들너들한 남루, 찢겨진 맨발 아아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소년들을 삼키었느냐! 나는 측은한 마음이 움직이었다. 나는 호주머니를 뒤지었다. 두툼한 지갑, 시계, 손수건...... 있을 것은 죄다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줄 용기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작만지작 거릴 뿐이었다.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 하고 '얘들아' 불러보았다. 첫째 아이가 충혈된 눈으로 흘끔 돌아다볼 뿐이었다. 둘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셋째 아니도 그러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너는 상관없다는 듯이 자기네끼리 소근소근 이야기하면서 고개를 넘어갔다. 언덕 우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들 뿐 |
사랑스런 추억 봄이 오던 아침,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가다려, 나는 플랫포옴에 간신히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ㅡ 東京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게다. ㅡ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달갈이 연륜이 자라듯이 달이 자라는 고요한 밤에 달같이 외로운 사랑이 가슴 하나 뻐근히 연륜처럼 피어 나간다. |
코스모스 청초한 코스모스는 오직 하나뿐인 나의 아가씨 달빛이 싸늘히 추운 밤이면 옛 소녀가 못 겨디게 그리워 코스모스 핀 정원으로 찾아간다. 코스모스는 귀또리 울음에도 수줍어지고 코스모스 앞에 선 나는 어렸을 적처럼 부끄러워지니 내 마음은 코스모스의 마음이요 코스모스는 내 마음이다 |
둘다 바다도 푸르고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끝없고 하늘도 끝없고 바다에 돌 던지고 하늘에 침 뱉고 바다는 벙글 하늘은 잠잠. |
이별 눈이 오다 물이 되는 날 잿빛 하늘에 또 뿌연내, 그리고 크다란 기관차는 빼 ㅡ 액 ㅡ 울며, 조고만 가슴은 울렁거린다. 이별이 너무 재빠르다, 안타깝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일터에서 만나자 하고 ㅡ 더운 손의 맛과 구슬눈물이 마르기 전 기차는 꼬리를 산굽으로 돌렸다. |
장미 병들어 장미 병들어 옮겨 놓을 이웃이 없도다. 달랑달랑 외로이 황마차(幌馬車) 태워 산에 보낼거나 뚜--- 구슬피 화륜선(火輪船) 태워 대양(大洋)에 보낼거나 프로팰러 소리 요란히 비행기 태워 성층권(成層圈)에 보낼거나 이것 저것 다 그만두고 자라가는 아들이 꿈을 깨기 전 이내 가슴에 묻어다오. 오후의 구장 늦은 봄 기다리던 토요일날 오후 세시 반의 경성행 열차는 석탄 연기를 자욱이 품기고 한몸을 끄을기에 강하던 공이 자력을 잃고 한모금의 물이 불붙는 목을 축이기에 넉넉하다. 젊은 가슴의 피 순환이 잦고 두 철각이 늘어진다. 검은 기차 연기와 함께 푸른 산이 아지랭이 저쪽으로 가라앉는다. |
호주머니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만 되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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