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겉장이 나달나달 했다 전동균
말기 췌장암 선고를 받고도 괜찬타, 내사 마, 살 만큼 살았데이, 돌아 앉아 안경 한 번 쓰윽 닦으시고는 디스 담배 피워 물던 아버지 병원에 입원하신 뒤 항암 치료도 거부하고 모르핀만, 모르핀만 맞으셨는데 간성 혼수에 빠질 때는 링거 줄을 뽑아 던지며 살려달라고, 서울 큰 병원에 옮겨달라고 울부짖으셨는데, 한 달 반 만에 참나무 둥치 같은 몸이 새뼈마냥 삭아 내렸는데, 어느 날 모처럼 죽 한 그릇 다 비우시더니, 남몰래 영안실에 내려갔다 오시더니 손짓으로 날 불러, 젖은 침대 시트 밑에서 더듬더듬 무얼 하나 꺼내 주시는 거였다 장례비가 든 적금통장이었다
간성혼수 ㅡ 간이 해독 작용을 못해서 암환자들이 겪는 발작, 혼수상태
귀여운 아버지 최승자(1952 - )
눈이 안 보여 신문을 볼 땐 안경을 쓰는 늙은 아버지가 이렇게 귀여울 수가 박씨보다 무섭고, 전씨보다 지긋지긋하던 아버지가 저렇게 움트는 새싹처럼 보일 수가
내 장단에 맞춰 아장아장 춤을 추는 귀여운 아버지
오, 가여운 내 자식.
나팔꽃 정호승
한쪽 시력을 잃은 아버지 내가 무심코 식탁 위에 놓아둔 까만 나팔꽃씨를 환약인 줄 알고 드셨다 아침마다 창가에 나팔꽃으로 피어나 자꾸 웃으시는 아버지
담요 한 장 속에 권영상(1953-2008) 강릉
담요 한 장 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꿈쩍하며 뒤척이신다 혼자 잠드는 게 미안해 나도 꿈쩍 돌아눕는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 주시고 다시 조용히 누우신다 그냥 누워 있는 게 뭣해 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 ㅡ , 하고 부르고 싶었다 그 순간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ㅡ 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못 정호승
벽에 박아두었던 못을 뺀다 벽을 빠져나오면서 못이 구부러진다 구부러진 못을 그대로 둔다 구부러진 못을 망치로 억지로 펴서 다시 쾅쾅 벽에 못질하던 때가 있었으나 구부러진 못의 병들고 녹슨 가슴을 애써 헝겊으로 닦아놓는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늙은 아버지 공중목욕탕으로 모시고 가서 때밀이용 침상 위에 눕혀놓는다 구부러진 못이다 아버지도 때밀이 청년이 벌거벗은 아버지를 펴려고 해도 더이상 펴지지 않는다 아버지도 한때 벽에 박혀 녹이슬도록 모든 무게를 견뎌냈으나 벽을 빠져나오면서 그만 구부러진 못이 되었다
별 박완호
목수였던 아버지는 죽어서 밤하늘 가득 반짝이는 순금의 못을 박아놓았네
텅, 빈, 내 마음에 화살 처럼 와 꽂히는 저 무수한 상흔들
부모 김소월(1902 -1934)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옛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을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생애 전길자(1944 - ) 서울
길게 이어진 몇 겹의 고통이 덕장에 걸려 있다 내장 다 빼버리고 얼었다 녹아내리기를 반복하지 않고서는 제 값을 받을 수 없다 살얼음 품어야만 제 맛을 내는 빳빳하게 긴장한 삶이어야 깊은 맛 우려내는 생애 한 번쯤 덕장을 빠져나가 겨울바람 피하고 싶었을까 한 번쯤 사랑에 녹아 허물어지고 싶었을까 하얗게 쏟아지는 눈발 끌어안고 곧추서서 기다리는 먼 날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렇듯. 현대시 2006년 1월
세살 아버지 강경호
부지런하고 셈을 잘하던 아버지 늘 엄하고 잘 웃지 않던 아버지 지팡이 짚고 세 발로 걸으시네 어머니 말씀 잘 안듣고 말썽만 부리시네 대꾸는 안하고 히죽히죽 웃기만 하시네 팔십 년 전 세 살 적 아이 되어버렸네
맛난 것만 골라 잡수는 아버지께 생선 가시 발라 숟가락에 얹어드리면 내 막내딸 세 살처럼 잘도 받아 잡수시네 길을 가다 힘에 부치면 업어 달라 조르는 철없는 우리 아버지 장성한 자식들 바라보며 아침 나팔꽃처럼 환해지네
점점 나이를 까잡수는 아버지 팔십 년 기억 방전되고 있네 덧셈 뺄셈 구구단 모두 잊고 오늘은 배부른 젖먹이처럼 곤하게 낮잠을 주무시네
<창작21> 2007년 봄호
쉬 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이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었다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 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이 자꾸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 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ㅡ 쉬! 우주가 조용했겠습니다
아버님의 일기장 이동순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남기신 일기장 한 권을 들고 왔다 모년 모일 종일 본가 <終日本家>가 하루 온종일 집에만 계셨다는 이야기이다 이<종일본가>가 전체의 팔 할이 휠씬 넘는 일기장을 뒤적이며 해 저문 저녁 침침한 눈으로 돋보기를 끼시고 그날도 어제처럼 <종일본가> 쓰셨을 아버님의 고독한 노년을 생각한다 나는 오늘 일부러 종일 본가를 해 보며 일기장 빈칸에 이런 글귀를 채워 넣던 아버님의 그 말할 수 없이 적적하던 심정을 혼자 곰곰이 헤아려 보는 것이다
아버지 강경호
고향을 떠나 아들네 집에 살러 갈 때 평생하던 고생 끝이라며 좋아하던 아버지는 집안의 나무를 뽑아 아들네 정원에 심었다 무딘 삽이며 괭이, 쇠스랑 하다 못해 농약통이며 쓸 일이라곤 없는 얼개미까지 차에 실었다 그 중에서도 농사 지은 쌀가마니를 아들네 창고에 가득 채운 일이었다
한 쪽 구석에서 농기구들이 벌겋게 녹이 슬어가지만 쌀가마니를 만져보며 세어보는 재미로 살았다 이태가 지나고 슬금슬금 창고의 쌀이 바닥나고 아들네가 마트에서 새 쌀을 실어올 때 아버지는 묵은 쌀처럼 풀기를 잃었다 이제 아버지의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장성한 아들도, 집도, 손주놈들까지도 모두 아버지의 손 밖이었다
한 삼십 년 쯤 후 지금 내 손아귀에 노는 놈들 중 어떤 놈에게 얹혀 사는 아버지가 된 나를 생각했다 땅 한 평 갖지 못하고 쇠스랑이며 농기구도 없는 나를 쌀 한 톨도 갖지 못한 나를 아들네 정원에 심을 나무 한 그루 키우지 못한 나를 주변에 널브러진 쓰레기만 가득한 나를 그래서 갈 길이 바쁜 나를
아버지 김경호 노래
가슴깊이 묻어도 바람 한 점에 떨어지는 저 꽃잎처럼 그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나 돌아갈 수 있을까 날 기다리던 그곳으로 그 기억 속에 내 맘 속에 새겨진 슬픈 얼굴 커다란 울음으로도 그리움을 달랠 수 없어 불러보고 또 불러봐도 닿지 않는 저 먼 곳에 빈 메아리 되돌아오며 다 잊으라고 말하지만 나 죽어 다시 태어나도 잊을 수 없는 사람
단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나의 두 눈이 먼다 해도 난 그래도 그 한 번을 택하고 싶어
가슴 깊이 묻고 있어도 바람 한 점에 떨어지는 저 꽃잎처럼 그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나 떨어진 꽃잎처럼
아버지 김주택
아버지의 몸에선 바람소리가 들린다 늦가을 바람소리가 들린다 추수 끝난 빈 들판에 선 허수아비의 아랫도리 마른 수숫궁대 서걱이는 소리 그게 아버지의 모습이다 아버지의 음성이다 소리 없는 침묵의 공간을 홀로 살아온 거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황토흙 속에 원죄인 양 지게 하나 걸머지고 그걸 지탱하고 살아온 거다 소나무 등걸처럼 생로병사의 70성상이 염주처럼 꿰어진 육신 아버지의 몸에선, 분명 바람소리가 들린다 늦가을 바람소리가 들린다
아버지 김형수(1959 - ) 전남 함평
머슴였던 울 아버지 바지게에 꼴짐지고 두렁길을 건널 때 등에 와서 얹히던 햇살은 얼마나 무거운 짐이었을까 울 아버지 혼자 남아 밤 늦도록 일하실때 둠벙 속에 살고 있는 색시 같은 달덩인 얼마나 얼마나 처량한 친구였을까 그마저 구름이 가렸던 밤엔 어떻게 지냈을까 울 아버지 아버지의 그늘
아버지 문인수 붉새 아래 아버지 황소 너머 서 계신다
붉새 아래 아버지 황소 빗질하시며 서 계신다
아버지 허이연 입김 훅 훅 뿜어 소에게 불어넣는 것인지 소의 거친 콧김이 아버지를 휘감고 있는 것인지 자욱한 안개 서서히 걷히면서 소는 점 점 부풀어 오르고 소는 바깥 마당에 스무마지기 한곳지기 안에 꽉 차서 소잔등 둥두렷한 등성이 넘어 불쑥이
해 떠오르고 붉게 아버지 떠오르는 이른 아침
아버지 박완호
아버지 내내 말이 없네 몇 년만에 다녀온 종친회 무슨 설움 깊었는지 무거운 듯 내리 덮은 눈꺼풀 옴짝달싹 않고 담배만 거푸 피우시네 해마다 여름이면 깊어가는 병, 이십 년이 지나도록 떨구지 못하고 상처처럼 새겨둔 아내 얼굴 탓일까 그토록 좋아하는 술 한 모금 못 마신 탓일까 제 심연에 갇힌 채 날개 꺾인 새처럼 돌아눕는 그의 마른 어깨가 한겨울 논바닥의 볏단 마냥 쓸쓸하다 온 몸의 털을 다 뽑아가도 아파하지 않을 손주녀석 장난해도 아랑 곳 없는 침묵 안, 낙엽 같은 상처 속으로 누구도 가 닿지 못하네
아버지 이윤학
활처럼 휜 논두렁을 걷는다 하나 둘 셋 튕겨나가는 개구리를 만난다
너라도, 새벽부터 불려나와, 논두렁 이슬을 털지 말아라 불쌍한 개구리를 쫓지 말아라
지게를 지고 걸어가시는 아버지 뒤를 지게 끈이 졸졸 따른다
아버지 이상진
아버지는 나무 쟁기를 지고 얼미 밭에 가서 밭을 가는데 소도 힘들고 아버지도 힘들어하신다 쟁기 옆으로 흙이 싹싹 갈려 넘어가는데 만져 보면 보릅보릅하다 소가 헛군데 가다가 밟으면 아버지는 또 다시 간다 아버지는 밭 하나를 가는데 그렇게 고생를 하신다 이 상진(경북 울진 진복분교 4학년) 1989년
아버지 임길택
말 한마디 없이 불쑥 들어오시어 그냥 앉아만 계시는 아버지는 오늘처럼 술에 취해 흥겨워하시는 아버지가 더 좋습니다
어머니가 뭐라시며 눈 흘겨도 못 들은 척 흘러간 노래를 틀어놓고 흥얼흥얼 따라 하십니다
옆 방 이불 속 잠든 동생 옆에 누워 나도 아버지의 노래를 따라 불러 봅니다
아버지 정대구
새벽마다 나의 잠을 깨워 주시던 아버지, 아버지는 지금 내가 나의 아이들의 새벽잠을 깨우는 새벽 다만 벽 위에 매달린 긴 잠이 무거우셨던게지 먼저 먼지 털고 일어나 내려오시는 걸 나도 어느 새 아버지가 되어 벽에 걸리고 지금 내가 잠을 깨워놓은 아이가 또 아버지가 되어 제 아이의 새벽잠을 깨우는 새벽 몇 삼년의 긴 잠에서 먼지 툭툭 털고 일어나 내려올 것인가 아버지여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들이여 아들의 아들의 아버지여 정대구(1936 - ) 경기도 화성. 서울대
아버지 정영자
심부름 가는데 보니 아버지는 그 추운 데서 나무를 줍고 있었다 장갑도 안 찌고 손을 비비면서 나무를 줍는다 아버지요 춥니더 집에 가시더 알았다 한다 심부름 갔다가 뛰어가니 야야, 넘어질라 한다 정영자(경북 울진 온정초등 3학년) 1985년 12월
아버지 하청호
풀짐이 걸어온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풀짐만 삽짝문을 들어선다
쿵, 아버지는 산처럼 무거운 하루의 일을 부려놓고 성큼성큼 거인처럼 다가온다
얘야, 싱긋 웃으며 꼭 쥐어주는 산딸기 송이 아버지의 하얀 이빨이 산딸기처럼 상큼하다
아버지 함순녀
봄 여름 가을 겨울 지게를 내려놓을 줄 모르는 아버지.
남이 놀 때도 일하시고 무슨 일이 그렇게도 바쁜지 신발을 신고 밥 먹을 때가 많다
병이 나도 병원에 가실 생각은 않고 곧 낫겠지 하고 말하신다
일을 쉬었다 하라고 하면 내가 너희들 위해 이렇게 일하니 공부 열심히 하라 하신다
난 그러는 우리 아빠가 불쌍하다 함순녀(강원도 정선 봉정분교)
아버지가 보고 싶다 이상국
어떤 날은 자다 깨면 소 같은 어둠이 내려다보기도 하는데 나는 잠든 아이들 얼굴에 볼을 비벼보다가 공연히 슬퍼지기도 한다
그런 날은 아버지가 보고 싶다
지금은 희미하게 남아 있지만 들에서 돌아오는 당신의 옷이나 모자를 받아들면 거기서 나던 땀내음 같은 것 그게 생의 냄새였을까
나는 농토가 없다 고작 생각을 내다 팔거나 소작의 품을 팔고 돌아오는 저녁으로 아파트 계단을 오르며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는 우리 식구뿐만 아니라 저 들과 들의 바람까지 걱정하며 살았는데 나는 밤나무 한 그루 없이 이렇게 살아도 되는건지
그런 날은 아버지가 보고 싶다 이 상국(1946 - ) 강원도 양양
아버지가 걸으시는 길은 임길택
빗물에 파인 자국 따라 까만 물 흐르는 길을 하느님도 걸어오실가요
골목길 돌고 돌아 산과 맞닿는 곳 앉은뱅이 두 칸 방 우리 집까지 하느님도 걸어 오실까요
한밤중, 라면 두개 싸들고 막장까지 가야 하는 아버지 길에 하느님은 정말로 함께 하실가요
아버지의 그늘 신경림 툭하면 아버지는 오밤중에 취해서 널브러진 색시를 업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술국을 끓이고 할머니는 집안이 망했다고 종주먹질을 해댔지만 며칠이고 집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값싼 향수내가 나는 싫었다 아버지는 종종 장바닥에서 품삯을 못 받은 광부들한테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그들과 어울려 핫바지춤을 추기도 했다 빚 받으러 와 사랑방에 죽치고 앉아 내게 술과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화약장수도 있었다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 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나는 빚을 질 일을 하지 않았다 취한 색시를 업고 다니지 않았고 노름으로 밤을 지새지 안았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이 오히려 장하다 했고 나는 기고만장했다 그리고 이제 나도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나이를 넘었지만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를 가엾다고 생각한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고 떳떳했는데 문득 거울을 쳐다보다가 놀란다 나는 간 곳이 ㅇ벗고 나약하고 소심해진 아버지만이 있어서 취한 색시를 안고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호기있게 광산에서 돈을 뿌리던 아버지 대신 그 거울 속에는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 제대로 기 한 번 못 펴고 큰 소리 한 번 못 치는 늙고 초라한 아버지만이 있다
아버지의 등 정철훈
만취한 아버지가 자정 너머 휘적휘적 들어서던 소리 마루바닥에 쿵, 하고 고목 쓰러지는 소리
숨을 죽이다 한참만에 나가보았다 거기 세상을 등지듯 모로 눕힌 아버지의 검은 등짝 아버지는 왜 모든 꿈을 꺼버렸을까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검은 등짝은 말이 없고 삼십 년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처럼 휘적휘적 귀가한 나 또한 다 큰 자식들에게 내 서러운 등짝을 들키고 말았다
슬며시 홑청이불을 덮어주고 가는 딸년 땜에 일부러 코를 고는데 바로 그 손길로 내가 아버지를 묻고 나 또한 그렇게 묻힐 것이니
아버지가 내게 물려준 서러운 등짝 사람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검은 등짝은 말이 없다
아버지의 마음 김현승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아버지의 씨뿌리기 강경호
저녁 무렵 팔순의 아버지가 고실고실 잘 마른 늙은 할멈과 아들과 며느리, 손주놈들 고쟁이를 빨랫줄에서 걷어 느릿하게 옥상 계단을 내려온다 까칠까칠하고 둔탁한 손으로 아이들 종이 딱지 접는 마음으로 정성껏 접는다 한때 잡초를 뽑던 손으로 씨를 뿌리던 농부의 손으로 당신 속곳은 할멈 속곳 위로 아들 속곳은 며느리 속곳 위로 큰 손주 작은 손주 막내 손주 순으로 끼리끼리 옷을 개어 차곡차곡 서랍에 쌓는다
<함부로 성호를 긋다> 시작시인선
아버지의 안경 정희성(1945 - )
돌아가신 아버님이 꿈에 나타나서 눈이 침침해 세상일이 안 보인다고 내 안경 어디 있냐고 하신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나는 설합에 넣어둔 안경을 찾아 아버님 무덤 앞에 갖다놓고 그 옆에 조간신문도 한 장 놓아 드리고 아버님, 잘 보이십니까 아버님, 세상 일이 뭐 좀 보이는게 있습니까 머리 조아려 울고 있었다
아버지의 창 앞에서 김상훈(1919 -6.25당시 월북) 거창
등짐지기 삼십리길 기어 넘어 가쁜 숨결로 두드린 아버지의 창 앞에 무서운 글자 있어 '공산주의자는 들지 말라' 아아 천날을 두고 불러왔거니 떨리는 손 문고리 잡은 채 물끄러미 내 또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고
태어날 적부터 도적의 영토에서 독스런 우로에 자라 가난해두 조선이 남긴 살림, 하구 싶든 사랑을 먹으면 화를 입는 저주받은 과실인듯이 진흙 불길한 땅에 울며 파묻어 버리고 내 옹졸하고 마음 약한 식민지의 아들 천근 무거운 압력에 죽음이 부러우며 살아왔거니 이제 새로운 하늘 아래 일어서고파 용솟음치는 마음 무슨 야속한 손이 불길에 다시금 물을 붓는가
징용살이 봇짐에 울며 늘어지든 어머니 형무소 창구멍에서 억지로 웃어보이던 아버지 머리 쓰다듬어 착한 사람 되라고 옛굴에 일월같이 뚜렷한 성현의 무리 되라고 삼신판에 물 떠놓고 빌고, 말 배울 적부터 정진법을 조술하드니 이젠 가야할 길 미더운 깃발 아래 발을 맞추려거니 어이 역사가 역류하고 모든 습속이 부패하는 지점에서 지주의 맏아들로 죄스럽게 늙어야 옳다 하시는고 아아 해방된 다음날 사람마다 잊은 것을 찾아 가슴에 품거니 무엇이 가로막어 내겐 나라를 찾든 날 어버이를 잃게 하느냐
형틀과 종문서 지니고, 양반을 팔아 송아지를 사든 버릇 소작료 다툼에 마음마다 곡성이 늘어가던 낡고 불순한 생홀 헌신짝처럼 벗어버리고 저기 붉은 기폭 나부끼는 곳, 아들 아버지 손길 맞잡고 이 아침에 새로야 더나지는 못하려는가 ... 아아 빛도 어둠이련듯 혼자 넘는 고개 스물일곱 해 자란 터에 내 눈물도 남기지 않으리 벗아! 물끓듯 이는 민중의 함성을 전하라 내 잠깐 악몽을 물리치고 한걸음에 달려가마
아버지 지게 위에 핀 꽃 유순예
산이 걸어오는 듯 나뭇짐을 진 지게가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는디 '아 글씨 꽃이 피고 있더랑께' 나뭇짐 속에서 아버지 허기진 목소리가 들렸는디 지게 위에는 진달래꽃이 망울망울 피어오르고 있었는디 저물던 해가 그 꽃잎을 가슴츠레 내려보다 갔는디 '그새 봄이 왔능가벼, 야들아 아부지 무겁겄다' 동생에게 젖을 물리던 엄마 목소리가 들렸는디 쪼르르 달려나가 지게 위에 꺾어오신 진달래꽃다발을 마루에 받아놓고 일곱 남매가 빙 둘러앉아 꽃잎을 따먹었는디 파르스름해진 입술들을 서로 손가락질하며 깔깔댔는디 아따 참말로, 마루 밑 새끼들을 품고 있던 누렁이 젖꼭지도 동생에게 물려준 엄마 젖꼭지도 진달래 꽃망울처럼 발갛게 부풀어올랐당께요 유 순예(1965 - ) 전북 진안
어버이 김소월
잘 살며 못 살며 할일이 아니라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있나니 바이 죽지 못할 것도 아니지만은 금년에 열네 살, 아들 딸이 있어서 순복에 아버님은 못하노란다
오늘, 그 푸른 말똥이 그립다 서정춘
나는 아버지가 이끄는 말구루마 앞자리에 쭈굴쳐 타고 앉아 아버지만큼 젊은 조랑말이 말꼬리를 쳐들고 내놓은 푸른 말똥에서 확 풍겨오는 볏집 삭은 냄새가 좀 좋았다고 말똥이 춥고 배고픈 나에게는 따뜻한 풀빵 같았다고 1951년 하필이면 어린 나의 생일날 일기장에 침 발린 연필 글씨로 씌어 있었다
오늘, 그 푸른 말똥이 그립다 서정춘(1941 - ) 전남 순천
<집보는 아기> 노래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할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댁에 고추 먹고 맴맴 담배(달래) 먹고 맴맴
할머니가 돌떡 받아 머리에 이고 꼬불꼬불 산골길오 오실 때까지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
아버지가 옷감 떠서 나귀에 싣고 딸랑딸랑 고개 넘어 오실 때까지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 윤 석중(1911-2003) 1928년 12월 <어린이>에서 아아...그래서 이때 호랑이가 나타나서 하는 말- 할멈, 떡하나 주면 안잡아먹지...였던가
터미널 이홍섭
젊은 아버지는 어린 자식을 버스 앞에 세워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강원도 하고도 벽지로 가는 버스는 하루 한 번뿐인데 아버지는 늘 버스가 시동을 걸 때쯤 나타나시곤 했다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대 병원으로 검진 받으러 가는 길 버스 앞에 아버지를 세워놓고는 어디 가시지 말라고, 꼭 이 자리에 서 계시라고 당부한다 커피 한 잔 마시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벌써 버스에 오르셨겠지 하고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그 자리에 꼭 서 계신다 어느새 이 짐승 같은 터미널에서 아버지가 가장 어리셨다
풀뽑기 문인수
아버지 따라가 묵정밭을 맨 적 있습니다 쇠비름풀 여뀌 발랭이 서껀 이런 저런 잡초들 수없이 뽑아 던졌습니다 검붉은 맨살의 흙이 드러 나면서 밭뙈기 한 두락이 새로 나는 것 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일평생 마침내 논 서른 마지기 이루고, 그러나 송충이같은 자식들, 그 푸르게 일렁이던 논들 다 갉아먹어 버리고 빈 들 노을 아래 서 있던... 아버지, 일흔 중반 넘어서면서 망녕드셨습니다 처음에는 세상사 관심거리가 하나 둘 줄어들더니 마을이나 집안 대소사는 물론 식솔들의 잦은 불상사에 대해서도 영 남의 일이 되어 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당신의 자식들, 심지어는 늘 곁에서 수발드는 어머니 보고도 당신 누구요 우리집 사람 못봤소,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다음 아버지, 이미 다 닳아 치우고 없는 농토, 그 논에 물꼬 보러 간다며 나섰습니다 없는 소, 없는 일꾼들을 부렸습니다 품 안의 새끼들을 어르고 입안의 혀같은 당신의 아내와 자주 두런거렸습니다 그러기를 십여년, 어느날 아버지 검불같이 남아있던 당신의 육신까지도 뽑아 던졌습니다 그렇게 돌아가신 ....아버지 비로소 아버지의 풀뽑기가 마저 끝났습니다 번듯하게 눕는 아버지의 땅 그곳으로 드는 아버지, 아버지, 보였습니다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