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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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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시모음
2015년 07월 18일 20시 31분  조회:4264  추천:0  작성자: 죽림

 

<자본주의 시 모음> 정세훈의 '자본주의' 외 

+ 자본주의

그래
돈 내면 되잖냐.

침 뱉고 싶을 때
침 뱉고,

오줌 깔기고 싶을 때
오줌 깔기고서.
(정세훈·시인, 1955-)


+ 자본주의의 사연 

성동구 금호 4가 282번지
네 가구가 사는 우편함

서울특별시의료보험조합
한국전기통신공사전화국장
신세계통신판매프라자장우빌딩
비씨카드주식회사
전화요금납부통지서
자동차세영수증
통합공과금
대한보증보험주식회사
중계유선방송공청료
호텔소피텔엠베서더
통합공과금독촉장
대우전자할부납입통지서
94토지등급정기조정결과통지서

이 시대에는 왜 사연은 없고
납부통지서만 날아오는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절실한 사연 아닌가
(함민복·시인, 1962-)


+ 자본주의·1 
  
돈은 아름답다 
진리와 도덕보다 부드럽다 

그러나 눈과 귀도 없는 그것이 
인간의 심장을 파먹고 
뼈까지 발라먹는 세상이여 

등이 굽은 자도 
배불뚝이도 잡아먹고 
인간은 온데 간데 없고 

종말이 올 때까지 
돈은 아름답다.
(전홍준·시인, 1954-) 


+ 자본주의의 밤 
    
이 밤 속에 
그는 굴복한다 
그는 굴종한다 
그는 굴러간다 
이 밤은 좋은 밤 
이 밤 속에 
그를 옮기며 
그를 표현하며 
그를 기록하며 
이 밤이 마치 
애인이라도 된다는 듯이 
그는 몰두한다 
그는 몰입한다 
그는 몰락한다 
오 빌어먹을 
이 밤 속에 
그가 배우는 건 
허리를 졸라매는 법 
요염한 웃음으로 덮인 
이 밤 속에 
가슴 타는 습기로 덮인 
이 밤 속에 
그는 먹는다 
그는 폭음한다 
그는 포식한다 
이 밤은 좋은 밤 
이 밤은 
그를 포위하고 
그를 포섭하고 
그를 포옹하는 
이 밤은 
포악한 밤 
폭력의 밤 
폭로의 밤 
폭언의 밤 
그는 폭행 당한다 
그는 포복한다 
그는 포병인지 모른다 
(이승훈·시인, 1942-)


+ 부르도자 부르조아  
                                                       
반이 깎여 나간 산의 반쪽엔
키 작은 나무들만 남아 있었다.

부르도자가 남은 산의 반쪽을 뭉개려고
무쇠 턱을 들고 다가가고
돌과 흙더미를 옮기는 인부들도 보였다.

그때 푸른 잔디 아름다운 숲 속에선
평화롭게 골프 치는 사람들
그들은 골프공을 움직이는 힘으로도
거뜬하게 산을 옮기고
해안선을 움직여 지도를 바꿔 놓는다.
산골짜기 마을을 한꺼번에 인공 호수로 덮어 버리는

그들을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누군가의 작은 실수로
엄청난 초능력을 얻게 된 그들을.
(최승호·시인, 1954-)


+ 바보 詩人 

제 살 베어 
제 뼈 깎아 
詩를 쓰고 
제 돈으로 책을 찍어 

친절하게도 
우표까지 붙여 
보내주는 바보 
경제라고는 모르는 바보 

물질 만능 
자본주의 시대에 
경제원리도 모르는 바보 
그 바보가 
바로 詩人이라네. 
(이문조·시인)


+ 아름다운 편견

나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자동차를 모는 사람보다 더 크다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자신의 노동력으로
지구와 함께 깨끗이 자전하며
자본주의를 넘어선 주인이고

자동차를 모는 사람은
석유를 동력원으로
지구를 착취하고 더럽히는
자본주의에 엎드린 노예라는
나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네 발 남의 힘으로 가는 사람
두 발 자기 힘으로 가는 사람
어느 누가 더 진화하고 위대한가?

이 위인은 안다
자전거가 넘어질 때 넘어지는 방향으로
운전대를 꺾어야 바로 선다는 것을
넘어지는 반대쪽으로 운전대를 꺾으면
금방 넘어진다는 것을

작고 느린 길로 핸들을 돌려야
크고 빠른 도로에 패인 상처를 아물게 하고
건강하게 굴러가는 삶이라는

자전거를 타는 농부가
자동차를 모는 회장보다 더 크다는
나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때론 편견도 아름답다
(김정원·교사 시인, 1962-)


+ 밥과 자본주의 - 새 시대 주기도문 

권력의 꼭대기에 앉아 계신 우리 자본님 
가진 자의 힘을 악랄하게 하옵시매 
지상에서 자본이 힘있는 것같이 
개인의 삶에서도 막강해지이다 
나날에 필요한 먹이사슬을 주옵시매 
나보다 힘없는 자가 내 먹이사슬이 되고 
내가 나보다 힘있는 자의 먹이사슬이 된 것같이 
보다 강한 나라의 축재를 북돋으사 
다만 정의나 평화에서 멀어지게 하소서 
지배와 권력과 행복의 근본이 영원히 자본의 식민통치에 있사옵니다 (상향∼) 
(고정희·시인, 1948-1991)


+ 밥과 자본주의 - 가진 자의 일곱 가지 복

그때에 예수께서 자본시장을 들러보시고 
부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셨다 

자본을 독점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부자들의 저승에 있게 될 것이다 

땅을 독점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땅 없는 하늘나라에 들지 않을 것이다 

권력을 독차지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권력 없는 극락에 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 배불리 먹고 마시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고픈 식탁에서 멀리 있을 것이다 

철없이 웃고 즐기고 떠드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저 세상에서 받을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아첨꾼 때문에 명예를 얻고 칭찬받은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그들의 선조들도 매국노를 그렇게 대하였다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는 행복하다 
너 - 희 - 는 불 - 행 - 하 - 다 
(고정희·시인, 1948-1991)


+ 자본주의

혈압이 뚝 떨어졌소 
즉시 나는 병동 중병실로 옮겨졌소 
고혈압에는 약이 있지만 저혈압에는 약도 없다고 하는 
간병의 말에 나는 덜컥 겁이 나는 것이었소 
제기랄 까딱하다가는 옥사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오 

내가 죽으면 여보(엄살이 아니오) 
내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전해 주오 
자본주의를 저주하다 남주는 죽었다고 
그놈과 싸우다 져서 당신 남편은 최후를 마쳤다고 
여보 자본주의는 자유의 집단수용소라오 
모든 것이 허용되지만 자본가들에게는 
인간을 상품처럼 매매할 수 있는 자유 
인간을 가축처럼 기계처럼 부려먹을 수 있는 자유 
수지타산이 안 맞으면 모가지를 삐틀어 그 인간을 
공장 밖으로 추위와 굶주림 속으로 내몰 수 있는 자유까지 허용되지만 
노동자에게는 굴욕의 세계를 짊어지고 굶어 죽을 자유 밖에 없다오 
시장에서 매매되는 말하는 가축이기를 거부하고 
기계처럼 혹사당하는 노예이기를 거부하고 노동자들이 
한 사람의 인간성으로 일어서기라도 할라치면 
자본가들은 그들이 길러 놓은 경찰견을 풀어 노동자를 물어뜯게 하고 
상비군을 무장시켜 노동자들을 대량 학살케 한다오 
여보 자본주의 그것은 인간성의 공동묘지 
역사가 뛰어넘어야 할 지옥이라오 아비규환이라오 
노동자를 깔아뭉개고 마천루(魔天樓)로 솟아올라 
천만근 만만근 무게로 찍어누르는 마(魔)의 산(山)이라오 
무너져야 할 한시 바삐 무너뜨려야 할.
(김남주·시인, 1946-1994)


+ 삶이 힘겨운 당신을 위한 기도 

다이어트를 위해 한 끼의 식사를 
애써 참아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끼의 식사를 위해 
종일 폐휴지를 줍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늘 아래 
같은 땅을 밟고 살면서도 
이불 대신 바람을 덮고 
내일을 걱정하는 불면의 밤이 있습니다 

가난이라는 삶의 한계 앞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힘겨운 삶이 있다면 
차라리 눈을 감고, 사람이여! 
나는 눈물의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밥상에도 
자본주의는 이익을 배당하지 않았고 
오늘 저녁 잠자리에도 
민주주의는 평온의 휴식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법과 도덕은 무엇이며 종교는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자유의 신은 말이 없고 
평등의 신은 눈을 감은 지 오래라면 
사랑의 진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며 
희망의 나무는 어느 땅에 심어야 합니까 

어차피 끝을 알 수 없어도 
사유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삶 
내게 과분한 물질이 있다면, 사랑이여! 
지친 자에게 한 줌의 햇살이 되게 하시고 
목마른 자에게 한 모금의 샘물이 되게 하소서
(이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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