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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충북 충주 출생 2005년 <마징가 계보학> 창비 현재 한양여대 문창과 교수 <문예중앙> 편집 동인
그해 여름 정말 돼지가 우물에 빠졌다 멱을 따기 위해 우리에서 끌어낸 중돈이었다 어설프게 쳐낸 목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돼지는 우아하게 몸을 날렸다 자진하는 슬픔을 아는 돼지였다 사람들이 놀라서 칼을 든 채 달려들었으나 꼬리가 몸을 들어올릴 수는 없는 법이다 일렁이는 물살을 위로하고 돼지는 천천히 가라앉았다
가을이 되어도 우물 속에는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그리고 돼지가 있었다 사람들은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는 슬픈 얼굴로 혀를 찼다 틀렸어. 저 퉁퉁 불은 얼굴 좀 봐 겨울이 가기 전에 사람들은 결국 입구를 돌과 흙으로 덮었다 삼겹살처럼 눈이 내리고 쌓이고 다시 내리면서 우물 있던 자리는 창백한 낯빛을 띠어갔다
칼들은 녹이 슬었고 식욕은 사라졌다 사람들은 어디에 우물이 있었는지 기억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봄이 되자 작고 노란 꽃들이 꿀꿀거리며 지천으로 피어났다 초록의 상(床)위에서, 지전을 먹은 듯 꽃들이 웃었다 숨어있던 우물이 선지 같은 냇물을 흘려보내는, 정말 봄이었다
지문
네가 만질 때마다 내 몸에선 회오리바람이 인다 온몸의 돌기들이 초여름 도움닫기 하는 담쟁이처럼 일제히 네게로 건너뛴다 내 손등에 돋은 엽맥(葉脈)은 구석구석을 훑는 네 손의 기억, 혹은 구불구불 흘러간 네 손의 사본이다 이 모래땅을 달구는 대류의 행로를 기록하느라 저 담쟁이에게서도 잎이 돋고 그늘이 번지고 또 잎이 지곤 하는 것이다
마징가 계보학
1. 마징가 Z
새로 두 시에 산등성이를 건너온 비는
서울시 신림동 산77 성 김복례의 하루
1
부엌 지붕 새로 스며든 빗물이 판자를 휘어놓았다 식기들이 비스듬히 걸터앉아 아침햇살에 이 빠진 웃음을 웃는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식구를 계산하는 그릇들도 이 집 식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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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는 곳마다 고개턱이어서 길들도 한숨을 부려놓는 곳 그 길을 091021-2023527 김복례 할머니가 오른다 마을의 수도꼭지들이 할머니를 따라 쇳물을 쿨럭거린다 소리의 음계를 밟으며 할머니 길을 오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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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시멘트 숲이 얼기설기 솟았을 때 김복례 할머니가 왔다 고려 때도 고려장은 없었다는데 자식들은 끈 떨어진 구슬처럼 흩어졌다 아니 구슬이 끈을 놓아버린 것이다 저녁마다 할머니는 방바닥에 대고 걸레 잡은 손을 휘휘 젓는다 아무도 못 보게 손사래를 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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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는 지금 영구 임대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포크레인은 술 취한 애비를 닮았다 마구 가산을 부수어 놓는다 레미콘이 임신한 여인네처럼 뒤뚱거리며 뒤를 따라온다 흙발로 여기저기 쿵쾅거리며 뛰어 다니는 트럭들....시끄러운 이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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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만 따라오던 넌출 가로등 돌아가고 건너편 산등성이 불빛들도 까무룩 조는 초여름 저녁, 김복례 할머니 형광등 값을 아끼려 일찍 자리에 든다 벌써 눕느냐고 칭얼대며 은초롱꽃들이 등을 켜들고 슬레이트 처마 아래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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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나 생선차도 이곳엔 들르지 않는다 해서 이곳엔 기다림이 없다 그저 마른 방구들 풀썩이며 노는 먼지들뿐이다 그 위로 햇살이 부서진다 하늘에 제일 가까운 곳에 세워진 빛의 고딕 성당 서울시 신림동 산 77번지, 거기 김복례 할머니가 산다
애마부인 약사(略史)
고개를 좌우로 꼬며 말을 달리는 고난도 기술을 선보인 안소영(1982)에 관해선 이미 말한 바 있다 침대에 누운 그녀가 말 탄 꿈을 꾸는 것인지, 말을 모는 그녀가 침실 꿈을 꾸는 것인지를 중3이 다 말할 수야 없었지만, 동시상영관은 돌아온 외팔이와 안소영 때문에 후끈 달아올랐다
2대 오수비(1983)는 바다로 갔다 그녀는 젖은 몸으로, 몰려오는 파도를 다리 사이로 받으며, 파도보다 큰 소리를 지르곤 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청마(靑馬)의 시구를 그때 배웠다 고1때 일이다
3대 김부선이 말죽거리 떡볶이 집에서 권상우를 유혹할 때(2004) 나는 기절할 뻔했다 나도 권씨지만 그녀를 피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씨름선수 장승화의 들배지기에 자지러지는 그녀(1985)를 본 고3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그렇다
4대 이후의 애마부인(1990∼ )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나는 더 이상 연소자가 아니었으니까, 도처에서 여자들이 말 타고 출몰했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다만 김호진(1990)처럼 ROTC 애마보이가 되고 싶기는 했다 그 후로는 나도 애마도 주마간산이었다
9대 진주희(1993)의 운명처럼 말이다 아, 어찌하여 애마의 도(道)는 일본으로 흘러갔는가? 애견부인(1990)은 또 뭐란 말인가? 드라큘라 애마(1994), 애마와 백수건달(1995), 애마와 변강쇠(1995)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끝없는 연애담과 지리멸렬 속으로 빠져들었다
외전(外傳) 애마는 파리에도 가고(1988) 집시도 되었지만(1990) 정작 애마부인을 가르친 정인엽은 지금 삼겹살집 주인이다 애마 아래 남편, 애마 위에 애마보이, 그 위에 나…… 우리는 그렇게 불판 위에서, 납작하게, 지글거렸다 어마 뜨거라, 소리 지르며 한 시절을 지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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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의 역사
입술 3
지문 내가 모르는 일이 몇 가지 있으니 바위에 뱀 지나간 자리와 물 위에 배 지나간 자리와 하늘에 독수리가 지나간 자리 그리고 여자 위에 남자가 지나간 자리 내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도무지 모르지, 손가락마다 소용돌이를 감추어두고 사는 일 손잡을 때마다 타인의 격정에 휘말리는 일 내 삶의 알리바이가 여기에 없다고 생각할 때마다 개들은 짖고 먼지는 손에 묻고 버스는 떠나고 비행기는 하늘에 실금을 그으며 날아간다
나는 개를 먹고 개처럼 짖고 개털은 날리고 나를 따라 먼지는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다니고 내가 손을 흔들어도 버스는 떠나가고 비행기는 활주로에 길고 긴 타이어자국을 남긴다
누웠다 일어난 자리에 흩어진 머리카락, 여기에 내가 아니면 네가 누워 있었을 것이다
내게는 느티나무가 있다 느티, 하고 부르면 내 안에 그늘을 드리우는 게 있다 느릿느릿 얼룩이 진다 눈물을 훔치듯 가지는 지상을 슬슬 쓸어 담고 있다 이런 건 아니었다, 느티가 흔드는 건 가지일 뿐 제 둥치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느티는 넓은 잎과 주름 많은 껍질을 가졌다 초근목피(草根木皮)를 발음하면 내 안의 어린 것이 칭얼대며 걸어온다 바닥이 닿지 않는 쌀통이나 부엌 한쪽 벽에 쌓아둔 연탄처럼 느티의 안쪽은 어둡다 하지만 이런 것도 아니다, 느티는 밥을 먹지도 않고 온기를 쐬지도 않는다 할머니는 한 번도 동네 노인들과 어울리지 않으셨다 그저 현관 앞에 나와 담배를 태우며 하루종일 앉아 있을 뿐이었다 이런 얘기도 아니다, 느티는 정자나무지만 할머니처럼 집안에 들어와 있지는 않으며 우리 집 가계(家系)는 계통수보다 복잡하다 느티 잎들은 지금도 고개를 젓는다 바람 부는 대로, 좌우로, 들썩이며, 부정의 힘으로 나는 왔다 나는 아니다 나는 아니다 여기에 느티나무 잎 넓은 그늘이 그득하다 (문학사상 5월) 오래 전 사람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국수 넓은 마당 옆에 국수집이 있다고 내가 말했던가 우리 이모네 집이다 저녁이면 어머니는 나를 그리로 마실 보내곤 했다 우리는 국수보다 삼양라면이 좋았는데 이를테면 꼬불꼬불한 면발을 다 먹고 나서야 아버지는 상을 엎었던 것인데 국수 뽑는 기계는 쉴새없이 국수를 뽑았다 동어반복을 거기서 배웠다 목포는 항구고 흥남은 부두지만 국수는 국수다 국물을 우려내는 멸치처럼 나는 작았고 말랐고 부어 있었다 나는 저녁마다 국물 속을 헤엄쳐 다녔다 어느 날 아버지가 고춧가루를 뿌렸다 좋아요 형님, 다 신 안 와요 보증을 잘못 섰다고 한다 거길 떠난 후에 내가 먹은 국수는 어머니가 반죽해서 식칼로 썰어낸 손칼국수다 면발이 빼뚤빼뚤해서 이모네 국수처럼 가지런하지 않았다 내가 보증한다 그때 내가 좋아한 건 이틀에 한 번씩 오는 번데기 리어카와 솜틀집 문에 치여 죽은 병아리 그리고 전도관의 풍금소리, 결단코 국수는 아니었는데 그 후로도 눈이 내렸다 밀린 연탄재를 한 길에 내다버릴 수 있다고 어머니가 좋아하던 그 눈, 국수가 나올 때 그 위에 뿌리는 밀가루처럼 하얗고 퍽퍽한 그 눈, 우리는 면발처럼 줄줄이 넓은 마당에 나오곤 했던 것인데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진하게 우려낸 하늘은 무엇인가 번데기처럼 구수하고 병아리처럼 노랗고 풍금의 건반처럼 가지런한 이것은 무엇인가 (문예중앙 2003년 겨울호)
세상의 끝
만약 아신다면 당신은 저 오랜 독재자가 말년을 보낼 즈음에 삼선동과 동소문동 어디쯤에서 살았던 것이 틀림없군요 넓은 마당을 곧장 내려가면 삼선초등학교가 나오고 초등학교 앞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가면 경동고등학교가, 왼편으로 가면 한성여고가 나옵니다 삼거리는 어디나 연애담을 담고 있습니다 형들과 누나들이 거기서 만나 동도극장에 가곤 했답니다 학생주임이 몽둥이를 들고 그곳을 급습했지만, 아시다시피 필름은 하루에 다섯 번이나 돌아가고 극장 안은 아주 어둡습니다 내가 동도극장을 처음 본 건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두 번째 독재자의 취임기념우표를 사러 새벽길을 가는데, 머리가 떨어져나간 시체가 소복을 입은 채 으스스하게 서 있는 거였습니다 <목 없는 미녀>란 프로였죠 귀신은 우처국 앞까지 쫓아왔다가 날이 밝아서야 돌아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하죠 얼굴이 없었는데 미녀인 건 어떻게 알았으며 소복을 입었는데 몸매는 또 어떻게 보았을까요? 나중에야 그게 세상 끝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운명이란 걸 알았습니다 어슴프레 서 있긴 한데 도무지 얼굴은 보이지 않는 이들 말이죠 동도극장이 꼭 그랬습니다 내가 철이 들 무렵 동도극장은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내가 연소자 관람불가를 넘어설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 거지요 나는 지금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동도극장엔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세상의 끝까지 가보지 못했답니다
쑥대머리
제가 다니던 삼선교회엔 유난히 숙이 많았죠
은숙(恩淑)이, 애숙(愛淑)이, 양숙(良淑)이, 현숙(賢淑)이, 경숙(京淑)이, 남숙(南淑)이, 난숙(蘭淑)이, 미숙(美淑)이, 정숙(貞淑)이…… 그야말로 쑥밭이었죠제일 믿음이 좋았던 애는 은숙이, 애숙이는 잠시 나를 사랑했고 양숙이와 현숙이는 정말로 현모양처가 되었죠 경숙이는 지금도 서울에 살지만, 남숙이는 먼데로 이사 갔답니다 난숙이는 청초했고 미숙이는 예뻤는데 지금도 제일 기억나는 애는 정숙이에요 어렸을 때 귤껍질 넣은 주전자 물을 뒤집어 썼지만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던 아이 그러던 어느 성탄절에 성극을 하다가 두건과 함께 가발이 홀랑 벗겨진 울지도 않고 끝까지 마리아 역할을 하고는 그 길로 교회를 떠난 아이, 지금도 어디선가 단정한 자세로 앉아 거지꼴을 한 동박박사들을 기다리는 거나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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