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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시모음
2015년 07월 26일 22시 47분  조회:4660  추천:0  작성자: 죽림

[ 2015년 07월 27일 08시 54분 ]

 

 

타이위안(太原) 무용단의 대형 무용극 "천수관음(千手觀音)"
달력 관한 시 모음

+ 달력 

헌 년 
떼어내고 

새 년 
걸어 둔다 

미안함도 
죄책감도 없이 

습관적으로.
(이문조·시인)


+ 달력 

달력 속에는 
숫자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요. 

하루하루 지나 한 달이 되어 
한 장을 넘기다 보면 
계절에 맞춰 
예쁜 그림도 바뀌지요. 

새 달력이 나오면 
먼저 기념일에다 
동그라미를 넣고 
공휴일도 세어요. 

해마다 
반복되는 
숫자들의 배열 
우리네 인생이에요.
(이제민·시인, 충북 보은 출생)


+ 달력을 다시 걸며 

임오년을 떼어내고 계미년을 건다 
과거를 떼어내고 미래를 단다 

후회를 거두어내고 소망을 건다 
이별을 버리고 만남을 기대한다 
올해도 달려갈 
내 삶의 정거장에 동그라미를 친다 

늘 같은 곳을 맴돌고 살면서도 
늘 같지 않은 시간을 밀고 가는 수레바퀴 
빈 공간마다 금빛 희망을 건다 
(목필균·시인)


+ 새해 달력을 받고 

한 장 한 장 넘겨보니 
숫자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살아온 날들은 빈 껍질처럼 
희로애락만 남겨놓고 
저만치 흘러갔다 
선물 받은 축복의 시간들 
기쁘고 신나고 즐거워야 하는데 
막상 계란 열두 판을 받고보니 
흐뭇함보다는 
겨울이라 그런지 마음이 시리다 
욕심이 늘어서인지 
계란 열두 판의 숫자가 자꾸 적어 보인다
(한상숙·시인)


+ 요리사의 달력 

달력에는 갖가지 
삶의 요리가 있지 
요리사의 손맛 닿으면 
어느 날은 짜거웁고 
어느 날은 싱거웁고 
어느 날은 달콤해서 
버릴 수 없는 유산으로 남는다 

그러다 어느 날은 
지독히 매워 눈물샘이 
고장난 듯 
주룩주룩 눈물이 난다 

우리는 누구나 
주어지는 날에 나름대로 
맛 나는 요리를 먹으려고 
한 세상을 엮어간다
(남시호·시인, 경북 안동 출생)


+ 달력 
  
끊을 수 없는 시간을 
토막내어 염장해 놓고 
긴 것 
짧은 것을 꺼내 먹는다. 

산들바람의 
색깔과 모양을 보았는가. 

보이지 않는 것을 만지기 위해 
촉수를 더듬으며 
찢어진 장수를 셀 뿐이다.
(小石 정재영·시인)


+ 달력 

미묘한 기억들을 지우고 싶다 
말없이 지나치는 시간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모두가 그 나름대로의 책임이 있기에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자꾸 멀어져 가는 날들이 
어느덧 뒷전으로 물러나더니 
어저께 시작한 것 같은 일이 벌써 종점에 다다르니 

또 한 장의 수만큼 
그렇게 사각지대를 벗어나야 하는 오늘 
거둔 만큼만 가지고 
문을 닫는다 

365일의 사연들이 숨죽이고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다. 
(전병철·교사 시인, 1958-)


+ 달력
  
방에 걸려 있는
크로키 누드화 달력

오뉴월분 그림은
거꾸로 누운 여자

'여자도 흥분하면 발기한다'는
「바탕골」박의순 여사의 작품

"떼어버릴 수 없느냐"는 아내와
"예술이야!"로 맞서는 남편

외설과 예술의 차이는?
상스러움과 아름다움?

까만 선과 까만 점 몇 개
그 당당함으로

외설은 시간을 흘리고
예술은 세월을 잡는가.
(홍해리·시인, 1942-)


+ 달력의 선택 

모든 아름다움 찾아 헤매다 
너를 택한 것은 
거짓 없는 내일을 보이기 위해 
너는 옷을 벗었기 때문이다 

모든 아름다움 찾아 헤매다 
너를 택한 것은 
돌아온 길 되돌아 갈 수 없는 
너만의 진리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아름다움 찾아 헤매다 
너를 택한 것은 
계절 따라가며 
미리 능선 위에 꽃피우는 
너만의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아름다움 찾아 헤매다 
너를 택한 것은 
기다림의 설렘 속에 
내일의 약속으로 
잊어버린 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아름다움 찾아 헤매다 
너를 택한 것은 
우리 곁을 비켜간 거리에서 
힘겨운 사람 위해 
자선의 달을 기록해 두었기 때문이다.
(노태웅·시인)


+ 그녀의 달력 
     
내 작은 방안의 달력은 
그녀의 하얀 스커트 같아요 
달력은 찢길 때마다 
한 달치의 비명을 지르곤 하지요 
스커트가 찢겨진 여자애처럼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요 
그렇지만 그 소리가 얼마나 기분 좋은지 
또 묘한지는 저도 알고 
사실 그녀도 잘 알고 있죠 
매달 말일이면 누구에게 뺏길세라 
내가 먼저 달력을 벗겨 놓지요 
그리고 새 달력에서 일요일과 연휴를 확인하고 
그녀와 만날 날을 미리 짜 보기도 하고, 
또 어쩌다 먼저 다음 달을 들춰 볼 때면 
치마 속을 훔쳐보는 것처럼 
호기심으로 가슴이 마구 뛰기도 하고요, 
늘어난 빨간 날을 헤며 
그녀 몰래 즐거운 공상에 빠지기도 하지요. 
청소를 하느라 창을 열어 두면 
바람에 맞춰 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는 아무도 모를 거예요 
그래서인지 그녀는 스키장이나 사냥터에서도 
해변에서처럼 언제나 시원한 비키니죠 
다른 여자들에게 미안할 만큼 늘씬한 글래머죠 
난 그런 그녀의 달력을 달마다 찢어요 
하지만 단 한번 비명을 지를 뿐, 
- 저를 그렇게 갖고 싶었나요?, 하며 
아무 일 없는 듯 더 예쁜 옷을 입고 
뒷장에 웃으며 앉아 있을 뿐이지 
그녀처럼 울지는 않아요 
나의 달력도 그녀처럼 매달 달갈이를 하지요 
그때마다 잊혀질 듯한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요 
난 또, 묘한 사랑에 빠지고요. 
(김창진·시인, 1967-)


+ 해묵은 달력 

지난 여름방학 때 나는 
강원도 산골 할머니한테 다녀왔지요. 
부채가 들었을 테니 찾아보라는 말씀에 
할머니 쓰시는 장롱 속 뒤적이다가 
오래 전 내가 보내 드린 
묵은 달력을 보았지요. 
"할머니, 이건 이제 못쓰는 거잖아요?" 
"그냥 두어라." 
"무엇에 쓰시려구요?" 
"몰라도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속에서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지요. 
"못 쓰는 달력 아끼며 사시는 
할머니 마음 너는 알 수 없겠지. 
너는 달력에서 그 날 그 날 
날짜만 보고 말지만 
할머니께서는 다르시단다. 
해묵은 달력 꺼내 보시면서 
그것을 챙겨 보내 준 
너의 이쁜 마음과 정성을 
읽으시는 거란다." 

(아, 그러셨구나. 그래서 그렇게 
이제는 소용없는 묵은 달력을 
어여쁜 비단 끈으로 곱게곱게 묶어서 
장롱 속 소중하게 넣어 두셨구나!) 

벽에 한 번 
걸려 보지도 못한 
장롱 속 할머니 묵은 달력.
(김구연·아동문학가, 서울 출생)


+ 달력 

열두 장의 선물을 다 썼다. 
무한의 자리를 무엇으로 채웠을까 
주님 앞에 고개 숙여도 
아무 할 말이 없다. 
그의 가슴에 못이 박혀도 
아픔은 늘 내 몫이 아닌 것 같이 부인하며 
내 눈에 기쁨을 위해 꺾은 
한 가지의 꽃도 
행복은 다 내 몫인 줄 알았던 일들 

죄 없는 사람이 있을까 
무심코 걸어온 이 길이 
무척이나 죄스럽다. 
부스러기로 날리던 가로수 낙엽 
흔적마저 어디론가 다 가버리고 
알몸으로 서 있는 나목들 
이 겨울을 견뎌 봄을 맞으리라. 
나는 또 기도를 한다. 
내 앞에 작은 일에도 감사하자 
어제처럼 다짐을 한다. 
열두 장의 선물을 안아 본다. 
(박상희·시인, 1952-)


+ 마지막 달력 

섣달 달력 한 장이 
벽에 붙어 떨고 있다.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다. 

달력이 한 장씩 떨어지면서 
아이들은 자라고 
철이 바뀌고 
추억과 상처가 낙엽처럼 쌓인다. 

마지막 달력이 떨어지면 
나무는 나이테를 만들지만 
인간의 이마엔 주름이 늘고 
인간은 한해를 역사 속에 꽁꽁 묶어놓는다. 

새 달력이 붙고 
성장과 쇠퇴가 계속되고 
그리하여 역사는 엮어진다. 
크리스마스, 송년모임, 신년회 
모임에 쫓겨 술에 취하다 보면 
후회할 시간도 없이 훌쩍 세월은 넘어간다. 

마지막 달력이 남으면 
아이들은 들뜨고 
어른들은 한숨짓는다. 
그러면서 또 한해가 역사 속으로 떨어져 나간다. 
(녹암 진장춘·시인)


+ 달력을 걷는다          

달력을 걷는다
해마다
단조로움의 죄로 물든 달력을
벽에서 쓸쓸히 내리었듯이

이 해를 다 채우려면
아직
두어 달은 더 기다려야 
벽에서 내릴
무위(無爲)의 죄로 물든 달력을

다시 나는
너에게
무얼 줄 수 있을까
주지 못한
야윈 손이 서럽게 부끄러운
단풍 짙게 물든
시월의 달력
한 장

걷으며
꿈을 꾼다
다시 나는 너에게
무얼 줄 수 있을까
지난 주일(主日)
거저 얻은 
단감밖에 
없는 내 손은

이 밤,
성자(聖者)의 비인 손을
다시 읽어야겠네
(홍수희·시인)


+ 달력의 마지막 장을 버리기 전에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는 지금은 하얀 눈을 내려주시는 하나님께 눈 같은 마음으로 더 깊이 경배드릴 때입니다. 

  바쁜 가운데 한 해 동안 잊었던 사람들의 싸락눈 은혜도 다 생각해내어 엽서만한 감사라도 보낼 때입니다. 

  오래 전 바자회에 2000원 짜리 오버코트를 내놓아 해마다 내 겨울을 따뜻하게 해준 분에게도 그 코트처럼 따뜻한 마음을 다시 보내드립니다.  

  아내와 내게 머플러며 맛있는 떡을 자주 선물하는 이 집사님 내외에게도 특별히 검정콩 한 말로 감사를 보냈답니다. 

  우리 동네 집배원이 누군지 모르지만 남달리 많은 내 우편물을 나르느라 한 해 동안 수고한 그 발걸음에 양말 한 켤레의 따뜻함이라도 드리고, 

  날마다 아파트 계단을 쓸고 닦는 청소부 아주머니의 수고에 장갑 한 켤레만한 고마운 마음이라도 드리도록 아내에게 일렀습니다.  

  이사를 자주 다녀서 우리 집 주소를 몰라 연락이 끊어진 어려운 형제들에게 사랑 한 상자라도 보내야겠습니다. 

  들판에 떨어진 이삭 같은 푼돈을 모아 보내는 우리 집 전통의 유니세프 저금통에는 밀가루포대가 두어 리어카쯤 들어있는지 꺼내봐야겠습니다.  

  될 수만 있다면 모두가 산타가 되어 사랑하는 우리의 손녀손자들에게도 크리스마스 선물로 기쁨 한 자루씩 메고 찾아가야 할 때입니다. 

  달력의 마지막 장을 버리기 전에 지금은 모두들 마지막 생애를 보내듯이 찾아볼 곳들을 서둘러 찾아봐야 할 때입니다.
(최진연·시인, 경북 예천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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