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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좋아보이는것뿐, 나쁘게 보이는것뿐...
2015년 09월 06일 21시 09분  조회:3892  추천:1  작성자: 죽림

<시작노트>

시인이란 이름으로

 

                                          심정자 시인

 

   詩를 쓴다는 것은 내게 더없는 행복이다. 혹여 왜 행복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말할 것이다. 생각을 문장으로 드러낼 수 있는 시인이란 이름에는 흙냄새와 들꽃 냄새가 나기 때문이라고. 시는 닫힌 마음을 열고 멀어졌던 것들 불러들여 가슴으로 품을 힘이 생기게 한다. 시는 마술처럼 황홀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에게 시란 지지리 가난해서 애처로운 애인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들꽃에서 이는 작은 바람 한 점에서도 사랑을 노래하며 자연의 평화를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들꽃의 향기로 글을 쓰고 한 점 바람에 사랑과 평화를 띄우는 것이 시인이다.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서도 보석 같은 희망을 건져내는 것이 시인이다. 마음의 때를 씻어 내리는 언어의 발걸음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냄새가 나는 시가 좋다. 나는 내 자신에게 ‘백치 아다다’ 임을 고백한다.

 

  새벽 산책하는 수봉산공원에는 기막히게 예쁜 정신이상인 여자 거지가 살고 있다.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 어김없이 이불 보따리를 옆구리에 낀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녀는 자주 만나는 얼굴에 대고 한마디 한다. “언니 나 김치 부침 좀 해줘! 먹고 싶어 죽겠다.” 어느 해는 “언니 나 감자 좀 쪄다 줘!” 한다. 사람 좋은 이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쟤 또 임신했나 보다” 하면서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면서 해마다 임신하는 그녀를 위해 다음 날 음식을 해다가 먹이는 모습을 여러 해 보았다.

  나 역시 잉태하고 있는 詩語들, 달이 차도 나오지 않고 일년 삼백육십오일 품고 있는 것들만 있다. 마음이 급해질 때면 울컥울컥 곧 쏟아 낼 듯 하다가 죽고 마는 것들, 그러나 또 품을 수 있는 가슴이 있으니 행복하다. 깊숙이 들어와 자리 잡고 있는 이러저러한 종자들은 나를 늘 메슥거리게 한다. 건강한 놈으로 빨리 낳기를 바라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 늘 멀미를 지병으로 달고 산다. 그래도 행복하다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백치 아다다”임이 확인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시집 <그리움의 무늬>에 실은 시 한편을 본다.

 

밤과 낮이 없다

아무데서나 부스럭거린다

허름한 담 모퉁이 으슥한 골목

아무 데서나 긁적인다

정적이든 동적이든

놓치지 않으려 받아 적는다

간첩으로 신고 당할지도 모른다

좋다

다 좋다 간첩이란 누명 써도

좋다

누명처럼

남기고

 

-「누명을 써도」전문

 

속이 메슥거리면 어떻고 늘 멀미를 하면 어떤가. 품고만 있어도 행복한 것을, 더구나 겨울을 건너 봄의 들녘에 닿아 시어를 잉태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회춘으로 수태할 수 있음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이 감사한 마음은 늘 다홍치마에 노랑 저고리를 입고 있다. 찰랑찰랑한 다홍치마 길이만큼 긴 새하얀 앞치마를 지어 입을 것이다. 바쁜 살림살이에 밥을 짓듯이 시어를 짓기 위한 앞치마, 햇살 좋은 날에는 앞치마에 풀을 먹여 다듬이질하련다. 하얗게 빛을 낸 앞치마를 내 생애가 다하는 날까지 입을 것이다. 하늘에서 우리 인간에게 내려준 정을, 그 정이란 것을 실어 나르고 싶다.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이 세상은 그렇게 좋은 일도 그렇게 궂은일도 없다. 다만, 좋아 보이는 것뿐이고 나쁘게 보이는 것뿐이다. 얼마나 여유로운 세상의 이치인가.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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