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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名詩 공화국
박목월 청노루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 나는 열 두 구비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청록집](1946)
이 시는 이상향에 가고 싶어 하는 청노루의 소망을 담은 시이다. 또는 봄날에 이상향에 대한 상상의 한 장면이다.
화자는 이상향을 그린 한 폭의 동양화를 보고 있는 듯하다. 그림의 시간적 배경은 ‘봄눈’ 놓는 봄이다. 공간적 배경은 ‘자하산’이다. 화자는 멀리서 ‘자하산’을 보고 있다. ‘머언 산 청운사’의 ‘머언’이 이를 알려준다. ‘청운사’는 오래된 절이다. 그러므로 ‘낡은 기와집’이라 말하고 있다.
‘산은 자하산/ 봄눈 녹으면,’에서 ‘자하산’이 공간적 배경임을 알 수 있고 ‘봄눈’에서 시간적 배경을 알 수 있다. ‘산은’의 ‘은’은 ‘자하산’이 실제의 산이 아니라 화자의 상상 속의 산임을 암시한다. ‘은’의 용법에는 ‘상상’의 의미가 담겨 있지 않지만 누군가에게 자기의 상상의 세계를 알려줄 때 ‘--은 --라 하고 하자’를 줄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하산’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 산이고 ‘자하’는 ‘전설에서, 신선이 사는 곳에 서리는 노을이라는 뜻으로, 신선이 사는 궁전을 이르는 말’이므로 ‘자하산’은 세외도원 내지는 신선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하산’에 봄이 오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 나’ ‘열 두 구비’가 모두 푸르러 진다. 이 때 이곳에 있는 ‘청노루/ 맑은 눈’을 보면 ‘도는/ 구름’이 비춘다. ‘청노루’ 또한 세상에는 없는 짐승이다. 이를 볼 때 ‘자하산’은 세외 도원, 이상향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화자는 한 폭의 동양화를 큰 틀에서 세심한 곳까지 보는 것 같다. 큰 산에서 사슴의 눈동자에 비치는 구름까지. 그런데 이렇게 해석하면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의 의미가 불확실해진다. 왜 세외 도원에 있는 ‘청노루’가 ‘도는/ 구름’을 보는 것인가? 세외 도원에 있다면 바랄 것이 없는 이상향인데 ‘구름’을 보는 것인가? 이러한 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약간 관점을 바꾸어 시를 보도록 하겠다. 물론 전개될 시해석은 필자의 상상에 의하여 왜곡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시를 하나의 이야기로 보는 필자의 관점에서는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을 묵인하고 갈 수가 없다. 읽으시는 분들은 이렇게 보니 재미 있다 정도로 읽어주시기 바란다.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을 바라보는 인물은 화자가 아니라 ‘청노루’이다. 화자는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을 바라보는 ‘청노루’를 관찰하고 있다. ‘청운사/ 낡은 기와집’이 있는 ‘산은 자하산’이다. 신선들이 사는 곳으로 ‘청노루’는 과거에 이곳에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머언’ 곳에 있다. ‘청노루’는 회상한다.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 나는’ ‘자하산’의 ‘열 두 구비를’ 마음껏 뛰놀았다. 그러나 지금은 선계에서 나와 멀리서 ‘자하산’ ‘청운사’를 바라보고 있다.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은 ‘청노루’가 ‘청운사’를 바라보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청운’은 ‘푸른 구름’이다. 그러므로 ‘구름’은 ‘청운사’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무슨 이유인지 낙원에서 나와 낙원을 그리워 하는 내용을 담은 시라고 할 수 있다. ‘청노루’는 화자가 객관화된 사물이라 할 수 있고 ‘자하산’의 ‘청운사’는 화자가 꿈꾸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20060929금후0621
참고
<청노루> 자작시 해설
이 작품을 쓸 무렵에 내가 희구한 것은 '핏발 한 가락 서리지 않은 맑은 눈'이었다. 나이 50이 가까운 지금에는 나의 안정(眼睛)에도 안개가 서리고, 흐릿한 핏발이 물들어 있지만 젊을 때는 그래도 '핏발 한 가락 서리지 않은 눈으로 님을 그리워하고 자연을 사모했던 것이다.
또한 그런 심정으로 젊음을 깨끗이 불사른 것인지 모르겠다. 어떻든 그 심정이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을 그리게 하였다. 이 작품이 발표되자 '청노루'가 과연 존재하느냐 하는 의문을 가지는 분이 있었다. 물론 푸른빛 노루는 없다. 노루라면 누르스름하고 꺼뭇한 털빛을 가진 동물이지만, 나는 그 누르스름하고 꺼뭇한, 다시 말하자면 동물적인 빛깔에 푸른빛을 주어서 정신화된 노루를 상상했던 것이다. 참으로 오리목 속잎이 피는 계절이 되면 노루도 '서정적인 동물'이 될 것만 같았다.
또 청운사나 자하산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어느 해설서에 '경주 지방에 있는 산 이름'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한 것을 보았지만 이것은 해설자가 어림잡아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기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내가 창작한 산명이다. 나는 그 무렵에 나대로의 지도를 가졌다. 그 어둡고 불안한 일제 말기에 나는 푸근히 은신할 수 있는 어수룩한 천지가 그리웠다. 그러나 당시의 한국은 어디나 일본 치하의 불안하고 바라진 땅뿐이었다. 강원도를 혹은 태백산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어느 곳에도 내가 은신할 수 있는 한 치의 땅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 혼자의 깊숙한 산과 냇물과 호수와 봉우리와 절이 있는 마음의 자연 지도를 그려보게 되었다. 마음의 지도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 태모산(胎母山), 태웅산(太熊山), 그 줄기를 받아 구강산(九江山), 자하산(紫霞山)이 있고, 자하산 골짜기를 흘러 잔잔한 호수를 이룬 것이 낙산호(洛山湖), 영랑호(永郞湖), 영랑호 맑은 물에 그림자를 잠근 봉우리가 방초봉(芳草峰), 그 곳에서 아득히 바라보이는 자하산의 보랏빛 아지랑이 속에 아른거리는 낡은 기와집이 청운사(靑雲寺)이다.
- 박목월, 『보랏빛 소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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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제 : 봄의 정취. 아름다운 이상향의 봄 정경
(2) 박목월(1916-1978) 본명 박영종(朴泳鍾). 경북경주 출생.‘청록파’ 한국적인 자연과 전통 정서/민요조 율격이 주를 이루며/향토성 짙은 시/가족적 유대/로 체온을 나누는 시를 썼다. 만년에는 신앙심 깊은 시. 시집 <산도화>, <난(蘭), 기타> 등
(3) 정중동(靜中動): 정적 (청운사, 기와집, 산) <--> 동적(녹는 봄눈, 피어나는 속잎, 내려오는 청노루, 흐르는 구름) (4) 색채 이미지(푸른색, 보라색, 초록색, 하얀색)- 한 편의 담채화같은(5) 'ㄴ'음(비음)을 반복 사용함으로써 아늑하고 은은한 분위기를 돋움. (6) 시상 전개 : 원경 ---> 근경 (7) 표현 : 묘사적 심상, 율격의 변조(2·3조의 변조와 4음보) (8) 화자의 목소리 : 절제된 목소리 (9) ㉠청노루 - 중심소재, 깨끗한 이미지. 푸른빛 (10) 청초한 푸른빛을 주로 구사한 이유는 ? 암담한 상황을 벗어난 이상적 생명의 고향을 노래하기 위해
(11)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자연이라기보다는 시인의 내면 속에서 이상화된 자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12) 박목월의 해설 : 그 어둡고 불안한 일제 말기에 나는 푸근히 은신할 수 있는 어수룩한 천지가 그리웠다. 그러나 당시의 한국은 어디나 일본 치하의 불안하고 바라진 땅뿐이었다. 그래서 나 혼자의 깊숙한 산과 냇물과 호수와 봉우리와 절이 있는 마음의 자연 지도를 그려보게 되었다. 마음의 지도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 태모산(胎母山), 웅산(太熊山), 그 줄기를 받아 구강산(九江山), 자하산(紫霞山)이 있고, 자하산 골짜기를 흘러 잔잔한 호수를 이룬 것이 낙산호(洛山湖), 영랑호(永郞湖), 영랑호 맑은 물에 그림자를 잠근 봉우리가 방초봉(芳草峰), 그 곳에서 아득히 바라보이는 자하산의 보랏빛 아지랑이 속에 아른거리는 낡은 기와집이 청운사(靑雲寺)이다.
(1) 주제 : 죽은 아우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
(2) 평범하고 쉬운 일상적 시어 속에 중의적 표현 (3) 하강(下降)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시어들 ① ~내렸다 ② ~내리듯 ③ ~하직했다 ④ ~눈과 비가 오는 ⑤ ~떨어지면 (4) ㉠ 좌르르 - 의성어가 주는 효과 : 무너져 내리는 슬픔을 간접적으로 제시, 감정의 절제 ③ 하직(下直)했다 - 중의적표현, 흙을 떨어뜨리다/작별하다 ④⑤ - 이승 ㉡ 열매 - 익으면, 떨어지는 현세의 삶의 질서, 보편적인 인간의 죽음 삶과 죽음에 대한 화자의 달관의 태도가 집약된 시어
(1) 주제 : 체념과 달관의 경지 (2) 표현상 특색과 효과 ㉠간결한 형식미-감정의 절제와 압축된 시어 ㉡짙은 향토적 색채-'강나루', '밀밭', '술 익는 마을' -향토성. ㉢민요조의 율조-3·4·5조 율조의 3음보격 ㉣시각적 이미지 효과-'구름에 달 가듯이', '타는 저녁 놀' ㉤색채의 대비적 표현-'강', '밀밭', '하늘'은 푸른 색, '구름'은 흰 색,'저녁 놀'은 붉은 색 ㉥후각적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의 조화(4연) - 술 익는 → 저녁 놀 ㉦주제연의 반복-구성의 안정감, 주제의 강조 효과
(3)‘구름에 달 가듯이'의 의미와 통하는 한자 성어 - 행운유수(行雲流水), 유유자적(悠悠自適) (4) '나그네'의 성격 - 속세를 벗어나 유유자적하고자 하는 마음의 상징으로 현실에 대한 체념적 자세이자 생에 대한 달관의 경지로 이해할 수 있다. 억압에 대항하는 저항적 의지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5) '길은 외줄기' - 홀로 걸어가는 나그네의 고독감을 표현 (6)'남도 삼백 리'의 거리가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 보자. - 시인의 서러운 정서를 담은 시어로 정감의 추상적 거리 (7) 각 연의 끝맺음을 대체로 명사 - 정서와 의미의 응축, 간결미와 함축미의 강조, 여백과 여운의 효과 (8) 그림에 비유할 때, 연상되는 그림 - 청(靑), 백(白), 홍(紅)의 색채감을 통해 볼 때, 담채화(淡彩畵)가 연상 (9) 조지훈이 박목월에게 보낸 시 ‘완화삼’에 대한 화답 시이다.
(1) 주제 : 삶과 죽음을 초월한 인연과 그리움. (2) 박목월(1916∼1978) 본명은 영종. 경북 월성군 출생. 1939년 <문장>에 추천되어 등단.1946<청록집> (3) 성격 : 인간적, 전통적/ 어조 : 소박하고 친근한 어조 (4) 표현 : ①방언-소박한 정감 ②반복과 점층-그리움과 안타까움 심화 ③되풀이되는 질문('뭐락카노') 속에 이별의 정한을 드러냄. (5) ㉠ 강 - 이별의 공간, 삶과 죽음의 간격 ㉡ 밧줄 - 결합, 인연/ 삭아 내림 - 이별, 시간과 인연의 소멸 ㉢ 나도 곧 따라갈 터이니 이별인사를 하지 말자. ㉣ 재회의 약속 (6) 제2연의‘목소리’는 운명적 상황의 비극적 인식에서 오는 '물음' ‘뭐락카노.뭐락카노.뭐락카노...’ 제9연의‘목소리’는 운명적 순응에서 오는 초극의 '대답' ‘오냐,오냐,오냐....’ 이라는 의미상의 차이가 있다. (7) 이별에 대한 화자의 자세는? 순응, 초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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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하철 1호선 부전역 2번 출구 앞 박목월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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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문학관
원래 명칭은 ‘동서문학관’이었다. 2000년 7월 1일 서울시 중구 장충동 파라다이스 빌딩 별관으로 옮기면서 ‘한국 현대 문학관’으로 개칭됐다. 구하기 힘든 주요 문학작품의 초판본 2000여 권, 육필원고 1000여 점, 사진자료 1500여 점, 영상자료 4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청준, 박경리, 전숙희, 피천득, 김남조 선생 등
박종화, 이태준, 유진오, 이효석, 김동인, 심훈 선생 등 최정희, 한무숙, 손소희, 하근찬, 이청준, 박경리, 황순원, 김동리 선생 등
이상의 『애야(哀夜)』
김소월의 『기분전환』 김억의 『님의 마음』
서정주, 박재삼, 피천득, 허영자 선생 등
한용운, 박목월, 윤동주, 조지훈, 김광림, 신석정 선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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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노래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그것은 연륜이다
어릴적 하찮은 사랑이나
가슴에 백여서 자랐다.
질 곱은 나무에는 자주 빛 연륜이 몇 차례나 몇 차례나 감기었다. 새벽 꿈이나 달 그림자처럼 젊음과 보람이 멀리 간 뒤 ...... 나는 자라서 늙었다. 마치 세월도 사랑도 그것은 애달픈 연륜이다.
길처럼
머언 산 구비구비 돌아갔기로
나그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나무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 늙은 나
무를 만났다. 수도승일까, 묵중하게 서 있었다.
다음날 조치원에서 공주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어구에 그들은 떼를 져 몰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은 어설픈 과객일까. 몹시 추워 보였다. 공주에서 온양으로 우회하는 뒷길 어느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늘 문을 지키는 파수병일까. 외로와 보였다. 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묵중한 그들의, 침울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 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난
이쯤에서 그만 하직하고 싶다.
좀 여유가 있는 지금, 양손을 들고 나머지 허락받은 것을 돌려보냈으면 여유 있는 하직은 얼마나 아름다우랴. 한 포기 난을 기르듯 애석하게 버린 것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가지를 뻗고, 그리고 섭섭한 뜻이 스스로 꽃망울을 이루어 아아 먼 곳에서 그윽히 향기를 머금고 싶다.
윤사월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대고 엿듣고 있다.
청노루
머언 산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나는 열두 구비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산이 날 에워싸고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고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고 살아라 한다.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구름처럼 살아라 한다. 바람처럼 살아라 한다.
하관(下棺)
관(棺)을 내렸다.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 내리듯 주여 용납하옵소서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주고 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 좌르르 하직했다. 그 후로 그를 꿈에서 만났다. 턱이 긴 얼굴이 나를 알아보고 형(兄)님! 불렀다. 오오냐 나는 전신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는 못 들었으리라 이제 네 음성을 나만 듣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 너는 어디로 갔느냐 그 어질고 안쓰럽고 다정한 눈짓을 하고 형님!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 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하고 소리가 들리는 세상.
가정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 구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 삼(六文三)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 구문 반(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의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 구문 반(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산도화 1 산은 구강산(九江山) 보랏빛 석산(石山). 산도화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사는것이 온통 어려움 인데 세상에 괴로움이 좀 많으랴 사는 것이 온통 괴로움인데 그럴수록 아침마다 눈을 뜨면 착한 일을 해야지 마음속으로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서로 서로가 돕고 산다면 보살피고 위로하고 의지하고 산다면 오늘 하루가 왜 괴로우랴 웃는 얼굴이 웃는 얼굴과 정다운 눈이 정다운 눈과 건너보고 마주보고 바로보고 산다면 아침마다 동트는 새벽은 또 얼마나 아름다우랴 아침마다 눈을 뜨면 환한 얼굴로 어려운 일 돕고 살자 마음으로 다짐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적막(寂寞)한 식욕(食慾)
모밀묵이 먹고 싶다.
그 싱겁고 구수하고 못나고도 소박(素朴)하게 점잖은 촌 잔칫날 팔모상(床)에 올라 새 사돈을 대접하는 것 그것은 저문 봄날 해질 무렵에 허전한 마음이 마음을 달래는 쓸쓸한 식욕이 꿈꾸는 음식 또한 인생의 참뜻을 짐작한 자(者)의 너그럽고 넉넉한 눈물이 갈구(渴求)하는 쓸쓸한 식성(食性)
달
桃花 가지
반쯤 가리고
달이 가네
경주군 내동면(慶州郡 內東面)
혹은 외동면(外東面)
불국사(佛國寺) 터를 잡은
그 언저리로
挑花 가지
반쯤 가리고
달이 가네.
이 후끈한 세상에
참으로 남을 돕는 일이
저를 위하는
그 너르고도 후끈한
'우리'들의 생활 속에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인간'이 빚어지고
남과 더불어 짜는
그 오묘한 생활의
그물코에
오늘의 보람찬 삶
세상에는
완전타인이란 있을 수 없다.
눈에 보이는,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든든한 밧줄로 서로 맺어져
우리는 서로 돕게 된다.
다만 에고의 색맹자만이
나와 남사이에 얽혀진
그 든든하고 따뜻하고
신비스러운 밧줄을
깨닫지 못한다.
참으로 남을 돕는 일이
저를 위하는
이 후끈한 세상에
오늘의 찬란한 아침이 열린다.
뷸국사
흰 달빛 자하문
달 안개 물 소리
대웅전 큰 보살
바람 소리 솔 소리
범영루 뜬 그림자
흐는히 젖는데
흰 달빛 자하문
바람 소리 물 소리
우회로
병원으로 가는 긴 우회로
달빛이 깔렸다.
밤은 에테르로 풀리고
확대되어 가는 아내의 눈에
달빛이 깔린 긴 우회로
그 속을 내가 걷는다.
흔들리는 남편의 모습.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메스를 가아제로 닦고
응결(凝結)하는 피.
병원으로 가는 긴 우회로
달빛 속을 내가 걷는다.
흔들리는 남편의 모습.
혼수(昏睡) 속에서 피어 올리는
아내의 미소.(밤은 에테르로 풀리고)
긴 우회로를
흔들리는 아내의 모습
하얀 나선 통로(螺旋通路)를
내가 내려간다.
이별가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밧줄은 삭아 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오냐. 오냐. 오냐.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어머니의 언더라인
유품으로는
그것 뿐이다.
붉은 언더라인이 그어진
우리 어머니의 성경책.
가난과 인내와 기도로 일생을 보내신 어머니는 파주의 잔디를 덮고 잠드셨다. 오늘은 가배절 흐르는 달빛에 산천이 젖었는데. 이 세상에 남기신 어머님의 유품은 그것 뿐이다. 가죽으로 장정된 모서리가 헐어 버린 말씀의 책 어머니가 그으신 붉은 언더라인은 당신의 신앙을 위한 것이지만 오늘은 이순의 아들을 깨우치고 당신을 통하여 지고 하신 분을 뵙게 한다. 동양의 깊은 달밤에 더듬거리며 읽는 어머니의 붉은 언더라인 당신의 신앙이 지팡이가 되어 더듬거리며 따라가는 길에 내 안에 울리는 어머니의 기도소리
빈 컵
빈 것은
빈 것으로 정결한 컵.
세계는 고드름 막대기로
꽂혀 있는 겨울 아침에
세계를 마른 가지로
타오르는 겨울 아침에.
하지만 세상에서
빈 것이 있을 수 없다.
당신이
서늘한 체념으로
채우지 않으면
신앙의 샘물로 채운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나의 창조의 손이
장미를 꽂는다.
로오즈 리스트에서
가장 매혹적인 죠세피느 불르느스를.
투명한 유리컵의
중심에.
심야의 커피
1
이슥토록
글을 썼다 새벽 세 時 시장기가 든다 연필을 깎아 낸 마른 향나무 고독한 향기, 불을 끄니 아아 높이 靑과일 같은 달. 2 겨우 끝맺음. 넘버를 매긴다. 마흔 다섯 장의 散文(흩날리는 글발) 이천 원에 이백원이 부족한 초췌한 나의 분신들. 아내는 앓고…… 지쳐 쓰러진 萬年筆의 너무나 엄숙한 臥身. 3. 사륵사륵 설탕이 녹는다. 그 정결한 投身 그 고독한 溶解 아아 深夜의 커피 暗褐色 深淵을 혼자 마신다.
이런 詩
슬며시 다가와서
나의 어깨를 툭치며
아는 체 하는
그런 詩,
대수롭지 않게 스쳐가는 듯한 말씨로써 가슴을 쩡 울리게 하는 그런 詩, 읽고 나면 아, 그런가부다 하고 지내쳤다가 어느 순간에 번개처럼 번쩍 떠오르는 그런 詩, 투박하고 어수룩하고 은근하면서 슬기로운 그런 詩 슬며시 하늘 한자락이 바다에 적셔지 듯한, 푸나무와 푸나무 사이의 싱그러운 그것 같은
그런 詩,
밤 늦게 돌아오는 길에 문득 쳐다보는, 갈라진 구름 틈서리로 밤하늘의 눈동자 같은 그런 詩.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카드에 눈이 왔다. 유리창을 동그랗게 문질러 놓고 오누이가
기다린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유리창을 동그랗게 문질러 놓고 오누이가
기다린다, 누굴 기다릴까. 외딴집 굴뚝에는 감실감실 금빛 연기,
감실감실 보랏빛 연기,
박목월 朴木月 (1916. 1. 6 ∼ 1978. 3.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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