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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시와 김수영
2016년 01월 01일 20시 38분  조회:4300  추천:1  작성자: 죽림

진정한 난해시를 위하여
─ 김수영에 관한 몇가지 단상


진이정

 

1

노란 꽃을 주세요. 금이 간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하얘져가는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넓어져가는 소란을
─ <꽃잎(二)> 부분

 

김수영이 일찍이 간파했듯이, 시의 대중성 따위는 진정한 시인이 걱정할 바가 아닐지도 모른다. 진정한 시인이었던 그는, 어느새 자신도 주체 못할 대중성을 획득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비록 사후의 일이지만,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해마다 번창하고 있으며, 문학에 입문하는 청년들의 손에는 으례 그의 두툼한 전집이 들려 있기 일쑤이다.
나는 지금 김수영의 성공을 질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감격하고 때로는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어느새 김수영의 시는, 독자들에게 낯익은 그 무엇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정말 그렇다면, 이제 그의 시는 더 이상 난해하지 않단 말인가. 읽기에 편한가.
나는 오래된 그의 시집을 다시 펴본다. 금이 간 노란 꽃이 내 망막 위에 흩날린다. 어렵다. 난해하다. 그의 시를 정독할수록 내 마음의 한구석에선 시끌시끌한 혼돈이 기승을 부린다. 바로 넓어져가는 소란이다.

 

 

2

김수영은 아직도 소수의 정예화된 독자를 위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소수들 뒤에는 시인의 명성을 쫓는 꽤 많은 수의 부화뇌동 독자들이 포진하고 있기도 하다. 바로 그 부화뇌동 독자들의 수효가 김수영의 시를 예전보다 덜 난해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3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비뚤어지지 않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소음이 바로 들어오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다시 비뚤어지게
─ <꽃잎(二)> 부분

 

살아 있는 시인의 좋은 시는, 죽은 시인의 시조차 의미 있게 한다. 그것은 죽은 시인을 찾기 전의 일이기도 하다.

 

4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種苗商,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은 여자, 無識쟁이,
이 모든 無數한 反動이 좋다
─ <巨大한 뿌리> 부분

 

내가 발견한 김수영의 데페이즈망.
그가 말한 것처럼 ‘이 무수한 반동’은 아직도 안성 유기처럼 빛을 발하고 있다. 배열된 재료들의 성질과는 달리, 그 빛은 의외로 모던하고 난해하기조차 하다. 그의 당대에 신물나도록 볼 수 있었던 가짜 데페이즈망을, 그는 멋지게 뒤엎은 것이다.

 

5

나는 지금보다 시를 더 어렵게 쓰고 싶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다. 자꾸 눈치가 뵌다.
나의 시는 아직도 ‘문학 이전’에 있는 듯싶다.

 

6

시집이 너무 많이 팔려서 문제이다.
전문적인 시집조차도 재판 삼판 찍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 엘리어트의 우려를 빌리자면, 혹 우리 시인들이 독자들에게 진정으로 새로운 일을 하고 있기를 포기한 것은 아닌지, 이미 대중들에게 익숙한 것, 그들에게 낯익은 것을 포장만 새롭게 해서 공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라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생전의 김수영은, 자신의 시를 제대로 해독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고 개탄했다. 
지금 우리가 진정 걱정해야 할 것은, 창조적인 시를 제대로 간파할 능력이 있는
소수의 명민한 독자들이 존재하느냐, 바로 그 점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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