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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의 시인 - 김관식
2016년 01월 05일 05시 34분  조회:4500  추천:0  작성자: 죽림

비움의 시인 김관식

 

이재훈
(시인, 현대시 부주간)

 

 


시인 김관식(金冠植, 1934~1970)은 충남 논산 출신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시인 김관식하면 그의 독특한 인생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는 심한 주벽과 기행으로 많은 일화와 화제를 낳았다. 1960년 ‘대한민국 김관식’이라는 명함 하나로 국회의원에 출마해 당시 거물 정치인이었던 장면(張勉)과 겨루었던 사건은 대표적인 일화 중의 하나다. 그 이후로 김관식의 별호는 ‘대한민국 김관식’이 되었다. 고은 시인은 김관식을 가리켜 ‘단군 이래의 한국 기인’이라 칭하기도 했다. 김관식의 부친 김낙희씨는 한약방을 운영했다. 1952년 강경상고를 졸업한 뒤 충남대학교에 입학했다가 고려대학교로 편입, 1953년 다시 동국대학교 농과대학으로 옮겼으나 중퇴했다.
김관식과 미당 서정주와의 인연 또한 화제였다. 당시 전주로 피난 가 있던 서정주를 직접 찾아가 인사드리고 문학에 순교하겠다고 열정을 불태웠다. 이러한 서정주와의 인연으로 1954년 서정주의 처제인 방옥례(方玉禮)와 혼인했다. 데뷔는 1955년 <연(蓮)>, <계곡에서>, <자하문 근처> 등의 작품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여주농고, 서울공고, 서울상고 등의 교사를 지냈으며 1958년 <세계일보> 논설위원을 지내다 결국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직했다. 이 무렵부터 결핵과 위장병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기나긴 투병 생활에 접어들게 된다. 그는 투병 중에도 한문 실력을 발휘하여 <서경>을 번역하여 간행하였으며, 작품 활동도 쉬지 않았다. 김관식의 시비는 대전 보문산 공원, 강경상고 교정, 논산공설운동장 등 세 곳에 세워져 있다. 대표작으로 <연>, <귀양 가는 길>, <동양의 산맥>, <다시 광야에> 등이 있다. 시집으로는 <김관식시선>(자유세계사, 1956), <낙화집>(창조사, 1952), <다시 광야에>(창작과비평사, 1976), 역서로 <서경(書經)> 등이 있다. 
김관식은 어려서부터 한학과 서예를 익히고 성리학과 동양학을 배웠다. 때문에 당시 한국 사회에서 실력있는 한학자였다. <김관식시선>의 서문 ‘동양인 선언’ 등의 글을 통해 그의 문학적 지향점이 어떤 지점에 있는지를 확연하게 표출한다. 김관식은 전국의 유명한 한학자들을 찾아 나서며 한학을 익혔다. 공주의 권중하(權重夏), 전주의 성리학 대가 최병심(崔秉心), 서예가 오세창(吳世昌), 육당 최남선과 위당 정인보 등을 찾아 사사했다. 당시 육당 최남선이 김관식을 수제자로 받아들이면서 김관식은 한학자로서의 천재성을 인정받는다.

귀를 씻고 세상 일 듣지 말꺼나
피에 젖은 아우성
고달픈 삶에, 가쁜 호흡을 지키기 위해
사나이는 모름지기 곡괭일 들고
여자여. 너는……

세리(稅吏)도 배고파 오지 않는 곳.
낫거미 집을 짓는 바람벽에는
썩은 새끼에 시래기 두어 타래……

가난 가난 가난 아니면
고생 고생 고생이렸다.
(시름없이 튕겨 보는 가야금 줄에 청승맞게 울면서 흐느끼는 가락은)

단정학(丹頂鶴)은 야위어 천년을 산다.
성인(聖人)에의 지름길은 과욕의 길.
밭고랑에서 제 땀방울을 거둬들이는
부지런한 지나(支那)의 꾸리[苦力]와 같이
기나긴 세월을 두루미 목에 감고 견디어 보자.

가만히 내 화상(畵像)을 들여다본 즉
이렇게, 언구렁창에 내던져 괜찮은 건가.
<눈으로 눈이 들어가니>
<눈물입니까.> <눈물입니까.>
요지경 같은 세상을 떠나

오늘도 나는, 누더기 한 벌에 바릿대 하나.
눈포래 윙윙 기승부리고
사람 자국이 놓인 일 없이
흰곰의 떼 아프게 소리쳐 우는, 저
천산(天山) 북로(北路)를 넘어가노나
- <가난 예찬(禮讚)> 전문

김관식은 가난과 10여 년 동안의 병마와 싸우다 간염으로 36세에 요절했다. 시인은 나라가 위급할 때 도와야 한다며 국회의원에 출마하지만 참패한다. 당시 1백표도 못 되는 득표를 얻고 남아 있던 재산인 과수원마저 처분한다. 그 후 자하문 밖 언덕의 홍은동 골짜기로 들어가 술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그의 선비정신은 고독하고 타협없는 삶을 지탱해 주는 가장 큰 무기였다.
김관식의 시가 동양의 정신을 노래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지만, 실상 시인의 삶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위의 시 <가난 예찬>도 마찬가지다. 가난을 예찬하기는 쉽지 않다. 가난과 고생의 삶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는 시인의 태도는 모든 것을 비우는 비움의 철학을 생각하게 한다. “귀를 씻고 세상 일 듣지 말”자는 얘기는 세상과 절연하자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시인과 한학자로서의 기품을 잃지 말자는 의미일 것이다. 시에서 ‘단정학’은 세간의 타협과 유혹에 굴하지 않는 꼿꼿한 선비의 정신을 생각하게 한다. 오로지 재화만이 능력이고 선(善)이라 추앙받는 현대문명사회에서 김관식의 가난 예찬은 기억할만한 깨우침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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