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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초현실주의 시인 - 루이 아라공
2017년 04월 18일 22시 37분  조회:5183  추천:0  작성자: 죽림
출생 1897. 10. 3, 프랑스 파리
사망 1982. 12. 24, 파리
국적 프랑스

요약 프랑스의 초현실주의를 주도한 시인·소설가·평론가.

 

공산주의를 대변한 정치행동가이기도 하다. 초현실주의 시인 앙드레 브르통의 소개로 다다이즘 운동에 합류한 아라공은 필리프 수포 등과 함께 초현실주의 평론지 〈리테라튀르 Littérature〉(1919)를 창간했다. 아라공은 〈환희의 불길 Feu de joie〉(1920)·〈영원한 운동 Mouvement perpétuel〉(1925) 등 초기에 시를 발표한 데 이어, 〈파리의 농부 Le Paysan de Paris〉(1926)라는 장편소설을 썼다.

이데올로기를 추구한 끝에 1927년 공산당에 입당했는데, 그후로 그는 공산당의 문학과 예술적 표현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와 공산당을 항상 연관시키게 되었다. 1928년에 그는 러시아 태생의 엘자 트리올레트(러시아 태생의 시인 마야코프스키의 처제)를 만나 결혼했고, 아내로부터 끊임없는 영감을 얻었다(엘자는 1970년에 죽었음). 1930년에 그는 소련을 방문했고, 1933년에는 그의 정치참여 때문에 초현실주의자들과 결별했다. 전4권으로 이루어진 연작 장편소설 〈현실세계 Le Monde réel〉(1933~44)에서는 사회혁명을 향해 나아가는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을 역사적 관점에서 묘사하고 있다. 전6권으로 이루어진 또다른 장편소설 〈공산주의자들 Les Communistes〉(1949~51)에서도 전통적인 사회적 사실주의를 계속 고수했는데, 이 소설은 1939~40년에 걸친 공산당의 황량한 연대기이다. 그후에 쓴 소설 〈성스러운 주일 La Semaine sainte〉(1958)·〈임종 La Mise à Mort〉(1965)·〈흰색 또는 망각 Blanche ou l'oubli〉(1967)은 공산당을 위한 변명들로 엮어진 자서전이 되었다. 이 소설들은 당시의 새로운 소설기법을 반영하고 있다. 〈단장(斷章) Le Crève-Coeur〉(1941)·〈프랑스의 기상나팔 Diane fran이미지aise〉(1945)에 실린 시들은 아라공의 열렬한 애국심을 표현하고 있으며, 〈엘자의 눈 Les Yeux d'Elsa〉(1942)·〈엘자만의 파리 Il n'est Paris que d'Elsa〉(1964)에 실린 시들은 아내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그는 아내의 얼굴에서 프랑스의 얼굴을 보았다. 1953~72년에 아라공은 공산당에서 매주 발간하는 예술·문학 잡지인 〈레트르 프랑세즈 Les Lettres Fran이미지aises〉를 편집했다. 71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전투적이었던 아라공은 1968년 파리 시내에서 벌어진 학생들의 거리시위에 동참했다. 그는 1981년에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Daum백과] 아라공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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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아라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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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아라공

루이 아라공(Louis Aragon, 1897-1982)은 프랑스의 시인·작가이다. 파리에서 태어났다. 제1차 세계 대전 후에는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운동을 하였고, 1930년에는 국제 혁명 작가 대회에 참석하였다가 초현실주의와 갈라졌다. 1934년 시집 <우랄 만세>와 연작 <현실세계>의 첫권을 냈고, 반파시즘 운동에 참가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 남프랑스의 레지스탕스 문화 운동을 지도하였다. 또 전국 지식인 동맹 서기장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평론집 <스탕달의 빛> <소비에트 문학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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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스부르 대학의 노래
- 루이 아라공
대낮 빛깔의 대성당
독일병들의 포로가 된
너는 지치지 않고 헤아리고 있구나
계절들 달들 순간들을
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이여

그들은 떠났다
배낭에 담은 것
네 장미창들과
알자스 위를 나르는 황새들의 추억을 데리고
이제 제법 시간이 흘렀다

가르침이란 희망을 말하는 것
연구란 충심을 말하는 것
그들은 역경 속에서
그들의 대학을 다시 열었다
프랑스의 한복판 클레르몽에서

오랜 드높은 지식의 주인
판관들의 눈 앞에 선 청년인
그대들은 피난처에서
스트라스부르가 제 식구들을 다시 만날
대홍수의 다음 날들을 준비한다

긴 인내인 앎
헌데 어찌 해 여기서 모든 게 입을 다물었나
나찌들이 들어와 살육을 한다
힘이 그들의 유일한 덕목이고
죽음이 그들의 유일한 앎이다

그들은 무쇠의 주먹으로
우리네 화로의 재마저도 날려 버린다
그들은 마구 총을 갈긴다 보라
의자 위에 널부러진 저 몸뚱이를
무얼 해야 하는가 친구들이여 무얼 해야 하는가

죄 없는 영아들의 학살
헤롯이 그런 명령을 내리는 것은
성모의 아기 하나가 두려웠기 때문 아닌가
그 아이는 그대들 가운데 태어나
아름다운 핏빛에 놀란다

쓰러진 스트라스부르의 아들들은
헛되이 사라진 게 아니다
조국의 길 위에
그들의 붉은 피가 다시 꽃을 피우고
거기 새로운 클레베르로 일어선다면

지금 이 시간 클레베르는
백 명도 있고 천 명도 있다
전사들 민간인들
우리네 산들과 우리네 도시들에 
의용병들과 빨치산들

스트라스부르에 우리 함께 가리라
스물 다섯 해 전과 마찬가지로
승리는 우리 진영에 있으니
그대들을 말하는가 스트라스부르에 그런데 언제죠
바라보라 떨고 있는 프러시아인들을

스트라스부르에 프라하에 오슬로에 있는
순교자의 세 대학이여
그들을 바라보라 그들이 총을 쏠 때에
그들이 물러날 것임을
패배가 그들의 몫임을 진작 알고서

그들을 바라보라 어떻게 그들의 힘이 빠지고
그들의 운명을 의식하는지
망나니들이 사형수들이 되었나니
올해 우리는 그들을 몰아내리라
그들의 전차와 그들의 음모를 뚫고

무기를 들어라 무장을 해제당했던 영웅들아
스트라스부르 프랑스 세계를 위해
저 깊은 목소리를 들어라
철십자의 암살자들이 죽어 나가게끔
으르렁대고 으르렁대고 으르렁대는

대낮 빛깔의 대성당
독일인들의 포로가 된
너는 지치지 않고 헤아리고 있구나
계절들 달들 순간들을
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이여

-----------------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 신영복 선생이 평소 강연이나 휘호에서 잘 인용하시던 구절입니다. 이것이 프랑스 시인 루이 아라공의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노래>의 일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대개 압니다. 그러나 그 시의 전문을 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일전에 프랑스문학을 전공한 한 친구가 고맙게도 이 시를 번역해준 적이 있습니다. 이 시의 전문을 보고서 그 맥락이 사뭇 예상하던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나치의 살륙전이 자행된 스트라스부르의 젊은이들을 향해 감연히 총을 들고 대항하라는 격문에 가까운 내용입니다. 물론 상당한 감동이 있습니다. 신 선생이 인용하시던 구절은 세번째 연에 나옵니다. 대학의 핵심이자 젊은이들의 행동의 토대를 설파하는 대목입니다. 신 선생을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그 시의 전문을 여기 내겁니다.(Changhee Kim)

 

 

엘사의 눈 / 루이 아라공 

 

 

너의 눈은 한없이 깊은 심연(深淵), 내가 마시려 몸을 굽

히면

이 세상 모든 태양들이 그 속에 와 비추고

모든 절망한 사람들이 죽기 위해 그 속에 몸을 던지는 것

을 나는 보았다

너의 눈은 한없이 깊어 나는 거기서 기억을 상실한다

 

네 눈은 새들 그림자에 거칠어진 대양(大洋)

짐짓 날씨가 개면 네 눈도 변한다

여름은 천사들의 앞치마를 잘라 구름을 만들고

밀밭 위에 보이는 하늘만큼 푸른 것은 또 없다

 

바람이 불어 창공 위의 슬픔들을 날려 버려도 소용 없어

눈물로 빛날 때 네 눈은 창공보다 더 맑아

비 내린 뒤의 하늘도 네 눈을 시새운다

깨진 유리의 틈살보다 더 푸른 빛은 없다

 

칠고(七苦)의 어머니, 아, 젖은 빛이여

일곱 개의 검(劍)이 오색의 프리즘을 꿰뚫었다.

눈물 속에 돋는 해는 더욱 감동적이며

검은 점이 박힌 홍채(紅彩)는 상복(喪服)을 입어 더욱 푸

르다

 

네 눈은 불행 속에 이중(二重)의 돌파구를 열고

이를 통하여 동방 박사의 기적이 또 다시 일어난다

세 박사가 모두 뛰는 가슴 누르고 말 구유에 걸린

성모 마리아의 망토를 보았을 때의 그 기적이

 

5월에 이 세상 모든 노래, 모든 탄식을 부르기 위한 말에

단 하나의 입이면 족하다

수백 만의 별을 담기엔 너무나 좁은 창공

성신(星辰)들에게는 너의 눈이 그리고 저들의 숨은 쌍동이

별이 필요했다

 

아름다운 그림에 도취한 어린애의 벌어진 눈도

너의 눈보다는 크지 못해

나는 네가 큰 눈을 뜰 때 혹시 거짓말을 하는가 싶어

차라리 소나기가 야생의 꽃을 벌린다 하리라

 

네 눈은 벌레들이 격렬한 사랑을 벌이는 이 라벤더 꽃

그 속엔 번갯불이 숨어 있는가

나는 많은 유성(流星)의 그물에 걸렸다.

8월의 한중턱 바다에서 죽는 한 수부(水夫)처럼

 

나는 우라늄 광석에서 이 라디움을 뽑아 냈다

나는 이 금단(禁斷)의 불에 손가락을 태웠다

아, 백 번도 넘게 찾았다 되잃은 낙원이여

네 눈은 나의 페루(Perou)나의 골콩드(Golconde) 나의

인도 제국(帝國)

 

어느 날 저녁 세계는 해적(海賊)들이 불태운

암초에 걸려 깨졌다.

그러나 나는 바다 위에 영롱하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

엘사의 눈 엘사의 눈 엘사의 눈

 

*아라공에 있어서 그의 부인이 된 '엘사 트리올레'와의 만남은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남과 같이 그의 생에 일대 전기(轉機)를 가져다주었다.

 엘라 트리올레는 러시아 여자로 소련의 시인 마야코프스키의 처제였으며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지성적인 여성이었다. 1928년 11월 4일 아라공은 이 여성을 몽파르나스의 기차 정거장 같이 넓은 카페 쿠폴에서 마야코프스키와 함께 처음 만났다. 그 다음 날 아라공은 같은 장소에서 엘사와 단 둘이서 만났으며 그 후 두 사람은 엘사가 1970년 죽기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이후 엘사는 아라공의 문학의 원천이었으며 그의 시의 존재 이유였으며 그의 정신적인 이상이었다.

 사실 엘사를 만나기 2 개월 전만 하더라도 아라공은 허무주의에 빠져 베니스에서 자살하려고 계획했었다.

 

나는 언제나 나의 고뇌의 교향악을 가지고 다녔다.

런던의 태양은 안개 속에 신음하고 있었다.

파리의 마로니에는 얼마 안 되어 누래졌다.

나는 베니스에서 죽고자 한다.

 

이 때 엘사가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녀의 도움으로 또한 그녀를 위하여 그는 다시 살고 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엘사에 대한 그의 사랑과 경애와 감격은 엘사가 죽은 뒤까지 계속되었다. 따라서 그의 시 가운데는 엘사에 주는 노래, 가요, 송가 등이 수없이 많은데 "엘사의 눈"(이는 그의 두번 째 시집의 이름이기도 하다)은 그 중의 하나로 아라공의 엘사에 대한 사랑과 경이(驚異)를 나타내는 대표적 작품이다.

 

 

(19)40년의 리처드 2세 / 루이 아라공

 

나의 조국은 사공들이

버리고 간 거룻배처럼 처량하며

나는 불행보다 더 불행해져

자기 슬픔의 왕으로 남아 있던

저 임금 같아

 

산다는 건 한낱 책략일 뿐

바람도 흐르는 눈물 말릴 줄 모르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미워해야 하며

이미 내게 없는 것도 그들에게 내주어라

나는 변치 않고 나의 슬픔의 왕

 

심장은 뛰지 않을지 모르며

핏줄에는 찬 피가 흐를지 모른다

도적들의 놀음놀이에서는

이미 2 더하기 2는 4가 아니다

나는 변치 않고 나의 슬픔의 왕

 

해가 죽으나 다시 사나

하늘은 그 빛을 잃었다

나의 젊은 시절의 다정한 파리여

케-오-플뢰르의 봄이여 안녕

나는 변치 않고 나의 슬픔의 왕

 

숲과 연못들을 멀리하라

조잘대는 새들이여 입을 다물라

너희들의 노래는 격리(隔離) 당했다

새잡이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나는 변치 않고 나의 슬픔의 왕

 

고난의 시대가 있는 법이니

이럴 때에 쟌느가 보쿨뢰르에 왔다

아 프랑스를 난도질하라

그 날도 이렇게 창백한 날이었다

나는 변치 않고 나의 슬픔의 왕

 

*"리처드 2세"는 아라공이 1940년 9월에 쓴 단시이다.

1940년 프랑스 군이 허망하게 패배하고 독일군이 파리 시를 점령한 지 불과 2 개월, 잇단 충격으로 비탄에 빠진 아라공은 프랑스와 파리를 잃은 절망감과 슬픔을 리처드 2세의 고통과 불행에 견주고 있다. 리처드 2세는 14세기 영국에 실제 있었던 비운의 왕이나 아라공은 세익스피어의 동명(同名) 비극에 나오는 주인공을 암시하고 있다. 특히 매 시절(詩節) 끝에 있는 후렴, "나는 변치 않고 나의 슬픔의 왕"은 직접 세익스피어 희곡 <리처드 2세> 제 4막 제 1장에서 옮긴 것이다. 이 장면에서 리처드 왕은 탄식한다. "그대는 나의 영광과 나라를 없앨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슬픔은 없앨 수 없다. 나는 변치 않고 나의 슬픔의 왕이로다" 또 독일군의 점령 아래 갇혀 살게 된 프랑스의 비참한 모습을 역시 국민과 신하들의 배신을 당하여 프린트 성 가운데 유폐된 리처드 2세의 신세에 비한 것이다.

 아라공은 평이하고 자연스러운 아이러니칼한 필치로 나치 지배하의 절망적인 생활 단면을 그리고 있다. 새잡이꾼의 통치와 도적들의 '놀이'가 판치는 세상에서는 자연도 피해야 하며 새도 침묵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아라공은 최후의 기적을 믿는다. 그는 마지막 시절(詩節)에서 한 줄기 희망을 건다. 프랑스를 구원한 오를레앙의처녀 쟌느 다르크가 보쿨뢰르에 나타났던 것도 프랑스가 가장 비참한 때가 아니었던가. 지금은 바로 그런 슬픈 때이다.

 

루이 아라공(1897~1982): 1897년에서부터 20세기 거의 전부를 살아오면서 60여 년의 작품 생활과 시-소설-에세이-예술 비펑-정치 논설 등 근 80권에 이르는 작품을 남긴 그의 일생은 학실히 현대의 위대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아라공이 그의 정수(精髓)를 보이고 후세에 그의 이름을 길이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시 특히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군에게 패배한 프랑스의 슬픔과 분노와 저항을 나타낸 시들과 또한 그의 아내이며 영원한 여성인 엘사(Elsa)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통하여 그의 프랑스에 대한 사랑과 자유와 희망을 노래한 10여 권의 시집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라공은 실은 의학도였으나 청년 시절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에 가담하여 핵심적 인물로 활약했고 이를 계기로 작가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 때에 쓴 시를 모든 시집으로 <기쁨의 물(1920)>과 <영원한 움직임(1925)>이 있다.

 그러나 일찍부터 현실적이며 전투적이었던 그는 환상적이며 현실과 동떨어진 초현실주의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고 차츰 이와 결별한다. 1017년 발발한 러시아의 10월 혁명의 여파는 유럽에도 강하게 몰아쳐 아라공은 1927년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했다. 그러나 이는 그의 고민의 돌파구에 지나지 않을 뿐 모든 것에 허무를 느끼고 생의 방향을 잃은 그는 한때 자살까지 기도하였다. 이 암담한 시기에 만난 것이 러시아 여인 엘사 트리올레였다.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결합되었는데 이후 엘사는 그의 생활과 작품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아라공이 시인으로서 특히 프랑스의 민중 시인으로서 그의 진면목을 나타낸 것은 1940년을 전기로 한 그의 상황시(狀況詩)와 사랑의 시에서였다. 1940년 5월 그의 조국 프랑스는 썩은 집같이 무너졌다. 이 허망과 절망 속에서 그는 패배하고 점령당하고 자유를 잃은 프랑스의 설움과 분노와 희망을 노래로 부른 것이다. 아라공은 이 전쟁과 전후를 통하여 문필로써 항독(抗獨) 운동을 전개하며 "단장(斷腸)의 아픔(1941)>, <엘사에게 주는 송가(頌歌)(1942)>, <엘사의 눈(1942)>, <프랑스의 기상 나팔(1946). 등을 연달아 발표하여 허무와 절망에 빠진 프랑스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고 위로하는 민족 시인이 되었다. 그것은 이 시들이 당시 프랑스 국민들이 느끼고 있던 슬픔-분노-사랑-희망의 감정을 그대로 대변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시인은 이러한 국민적 감정에 호소하기 위해 시의 주제나 형식을 프랑스의 옛 전통과 국민 감정을 담은 중세의 투훈시(鬪勳詩), 기사담(騎士談), 또는 샤를르도르레앙-도비네-비용 등의 옛 시에서 취했고, 그들의 리듬과 형식을 본떠 일반 대중들고 하여금 자연스럽게 함께 노래 부르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안이(安易)- 평속(平俗)이라는 평도 들었으나 프랑스 국민의, 대중의 시인이 되었다. 프랑스 국민은 그 속에서 상처입은 조국의 한탄의 목소리를 들었고 애인에 대한 사랑에서 조국애를 느꼈고 분노와 반항과 희망의 노래에서 위로를 받았던 것이다.

 그는 한편으로 정치 활동을 하면서 만년에도 계속 시-소설-비평-에세이 등을 써 왔고 1958년에 발표된 역사 소설 <성주일(聖週日)은 그의 소설 가운데 걸작으로 인정되고 있다, 또한 시집으로는 <미완(未完)의 소설(1956)>, <침실(1969)> 등이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의 문학적 자서전 <나는 글 쓰는 법이나 첫머리말을 배운 적이 없다(1969)>가 발표되었다.

 한편 그의 영원한 여성이던 아내 엘사는 1970년 그의 팔에 안겨 죽었으나 그의 엘사에 대한 사랑은 변치 않고 그의 작품 가운데 계속 살아 있다.

 그의 재능은 여러 방면에 뻗쳐 있고 그의 활동도 다양하였으나 그는 어디까지나 시인이며 깊은 뜻으로서의 민중 시인이다. 따라서 그의 많은 시가 애창되고 샹송으로 작곡되었으며 그의 탁월한 언어 구사와 시재(詩才)는 그를 헐뜯는 상징주의 순수시파나 모더니즘의 자유시파로부터도 찬사를 받고 있다. 말썽 많은 그의 정치 활동에 대하여서는 찬반이 구구하다.

 

 
 


             
 
인생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살 만한 가치가 있다


저 행복한 한때나 백열처럼 뜨거운 한낮이나
아마빛의 갈라진 틈이 있는 어둡고 끝이 없는 밤
이들 모든 것을 다 말하지 못하고 언젠가 이 세상에서
내가 없어진다는 것은 역시 불가사의한 일이다

확실히 이 세상을 믿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나와 똑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올 것이다
그들도 풀잎을 애무하고 그대를 사랑하며 속삭이고
석양의 어둠 속에서 소리을 죽이고 꿈을 꿀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여행을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문득 만난 아이들에게 미소를 짓고
그 이름이 불리면 뒤돌아볼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눈을 들고 구름을 볼 것이다

역시 기쁨에 떠는 연인들이 있고
두 사람의 첫 여명이 될 아침이 올 것이다
역시 물이 흐르고 바람이 불고 빛이 떠돌 것이다
지나가는 나그네 말고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비록 하늘이 순간적으로 아주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그것으로는 아직 뛰어남이 다한 것이 아닌 것처럼
사람들이 그 가슴에 품고 있는 저 죽음에 대한 공포는
진실로 나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다 그것은 거의 짧은 순간에 보일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생명은 술잔에서 넘치는 술처럼
넘쳐 흘러간다 기쁨과 고통이 되어
바다도 우리들의 갈증을 다 풀어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또 비록 가혹한 시대가 온다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척추가 있는 무거운 푸대로 태어나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또 입언저리를 비트는 깊은 고뇌가 있다 할지라도

나도 또한 평생 도둑의 지식처럼
저 가슴을 에이는 고뇌를 안고 왔다 할지라도
그 고뇌하는 여우에게 심장을 물어뜯겨
잠 못 이루는 밤, 전쟁, 불의와 부정이 있다 할지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주의나 자기가 믿고 있는 종교로
다른 사람들을 가둬넣고 억지로 끌어들이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저 무서운 권모술수나
다른 사람들의 실패를 비웃는다거나 
중상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밑빠진 우물과도 흡사한 저주받은 날들이 있다 할지라도
증오를 응시하고 있는 저 끊없는 밤이 있다 할지라도
자기가 무엇을 저지르고 있는지조차 모르며
쇠고랑을 휴대한 괴뢰와 적들이 있다 할지라도

수상쩍은 도당을 만든 놈들이 던지는
저 얼토당토않는 잔인함과 
너절한 짓거리가 있다 할지라도
우스꽝스런 사상을 지지하며 악담을 퍼뜨리고
여전히 뻔뻔스런 자들이 
어떤 혹독한 짓을 고안해낸다더라도

이 지옥의 모든 악몽과 상처와
생이별 사이별(死離別)과 모욕이 있다 할지라도
그리고 또 바보 같은 신앙을 하늘처럼 떠받들며
사람들이 여지껏 기도하고 희원했던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한 말하리라 이 인생은 훌륭했다고
나는 이 곳에서 말을 걸고 
나에게 귀를 기울여줄 사람에게는
입술에는 다만 감사하다는 이 한 마디를 떠올리면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처럼 이 인생은 아름다웠다고


- 루이 아라공 - 



앙드레 브르통, 루이 아라공과 함께 프랑스 초현실주의 문학 운동을 이끈 필립 수포는 동료 아라공을 평하면서 거장다운 비범함에서 그에 비견할 사람은 빅토르 위고밖에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3인 가운데 한 사람인 브르통은 아라공이 모든 형태의 문학적 새로움을 누구보다 능숙하게 탐지해냈다고 말했다. 

이런 찬사들이 아니더라도 루이 아라공이라는 이름이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성좌에서 가장 빛나는 별 가운데 하나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다. 초현실주의라는 것을 문학과 미술의 역사에서 지워버릴 수 없다면, 초현실주의의 절정을 알린 <파리의 촌뜨기>의 작가를, 그리고 파리의 기성 문단과 문학에 대한 이어령적 매도로 가득찬 <문체론>의 저자를 문학사가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라공이라는 이름을 ‘참을 수 없는 데카르트적 세계에 반역한’ 초현실주의라는 사조에 가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이름은 천의 얼굴을 지닌 이름이기도 하다. 

아라공이라는 이름에 마지막 거장이라는 헌사를 붙여주고 싶어하는 사람들 곁에는 그 이름에서 스탈린주의의 잔혹함을 냄새 맡으려는 사람들이 득실거린다. 어떤 이들은 그에게서 엘자 토리욜레의 헌신적 연인, 항독(抗獨) 레지스탕스 문학의 정점, 자유와 저항의 천사를 발견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그에게서 무책임한 선동가, 적색 황태자, ‘모스크바의 소리’ 방송의 아나운서를 발견한다. 아라공이라는 이름 안에는 이 모든 모순이 엉클어져 있다. 다다이스트로 출발한 이 초현실주의의 사도는 뒷날 고집 불통인 공산주의자가 되었지만, 죽을 때까지도 견결한 애국자로 남았다. 

그러나 이 모든 표피적 모순들을 일관하며 아라공의 삶과 문학을 심층에서 꿰어내는 원칙은 분명히 있었다. 그 원칙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참여와 행동을 통한 부르주아 사회 전복, 인간 해방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대의에 대한 문학의 적극적 복무 따위가 될 만하다.

올해는 루이 아라공이 태어난 지 백년이 되는 해다. 82년 성탄 전야에 파리에서 타계한 아라공이 일생 동안 거의 떠나본 적이 없는 그 도시에서 전직 파리 시 경찰국장의 사생아로 태어난 것은 1897년 10월이었다. 아라공 탄생 100돌을 맞아 프랑스 문화계는 그의 삶과 문학이 마땅히 요구할 만한 경의를 그 이름에 표하고 있다. 그의 백번째 생일인 오는 10월3일까지 파리와 지방에는 그의 문학과 삶을 주제로 한 토론전·전시회·연극 공연 따위가 빽빽이 예정되어 있다. 
24년부터 초현실주의 운동 주도

아라공에게 경의를 표하는 데 가장 분주한 곳은 당연히 문학·출판계다. 갈리마르 출판사는 아라공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소설 전집을 세권으로 편집해 플레이아드 총서에 넣기로 결정하고, 최근 제1권을 내놓았다. 1천4백 페이지에 달하는 첫 책에는 <아니세 또는 파노라마> <텔레마크의 모험> <방종> <무한의 옹호> <바젤의 종> 등 아라공의 전기(前期) 작품이 모였다. 갈리마르 출판사는 이와 함께 장 리스타가 편집한 <아라공 문학 앨범>도 출간했다.

아라공 전기인 <아라공 1897~1982>, 아라공과 엘자 토리욜레의 사랑을 기록한 <엘자­아라공, 모호한 커플>, 아라공의 데생과 흩어진 텍스트 들을 수습해 내놓은 <아라공, 반­초상> 같은 책들도 서점의 신간 코너를 메우고 있다.

아라공은 청년기에 이르도록 자기가 사생아라는 사실을 몰랐다. 어린 루이는 공식적으로 고아였다. 그는 어머니인 마르그리트를 누이로 알았고, 아버지인 루이 앙드리외를 삼촌으로 알았다. 의과 대학에 들어가서야 자기가 사생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아라공이 문학에 가족사의 상처를 얼마나 반영했는지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아무튼 그는 이내 의학 공부를 걷어치우고 문학에 전념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군복무를 마친 뒤 파리로 돌아와 브르통·수포와 함께 잡지 <문학>을 창간하면서 다다이스트로서 자신의 문학적 이력을 시작했다.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과 함께 초현실주의를 정초한 <꿈들의 물결>을 24년에 발표하며 문학 분야에서 초현실주의 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한 아라공은 27년 동료 문인 다수와 함께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했고, 32년 장시 <적색 전선> 발표와 관련해 기소된 때를 즈음해 초현실주의와 결별했다. 당시 재판에서 변호인측 증인으로 나선 브르통이 아라공의 의사와 달리 문학의 정치적 책임을 부인하고 공산당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죽을 때까지 소련 체제 옹호하기도

28년에 알게 되어 결혼한 엘자 토리욜레는 그의 일생의 반려자였다. 대표적 저항 시집에 붙은 <엘자 찬가> <엘자의 눈동자>라는 표제는 아내에 대한 사랑이 아라공의 정신 속에서는 진보에 대한 신념이나 애국심과 다른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또 엘자가 러시아의 혁명 시인 마야코프스키의 의매(義妹)라는 사실은 우연한 에피소드를 넘어 혁명 러시아와 아라공의 문학적 행로를 상징적으로 연결하는 운명적 끈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산주의자들이 진보와 인류 양심의 가장 미더운 담지자처럼 보이던 30년대 말~40년대 초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기다란 소설 <공산주의자들>에서 공산주의자로서 아라공의 자부심이 또렷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전후 소련의 강제 노동 수용소와 혹독한 독재 정치가 확인되고 많은 공산주의자들이 현실 사회주의에 실망해 전향했을 때조차, 아라공은 소련 체제를 비록 공개적으로 옹호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침묵을 통해 그 체제를 용인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과 자본주의·사회주의 사이의 체제 경쟁이 최고조에 이르던 1962년, 프랑스에서 일반 독자에게 두 체제를 비교하도록 하자는 의도로 출판된 <미국과 소련의 대비 역사>의 소련사측 필자가 아라공이었다는 사실은, 소련 체제에 대한 그의 신념이 일관되어 있었음을 증명한다(당시 미국사 부분의 필자는 앙드레 모루아였다).

그러나 청년기 이래 그의 문학의 한 중요한 근거를 이루던 자아 탐색이 참여에 대한 그의 열정과 일정한 긴장 관계에 있었던 것은 그의 여러 작품들에서 감지된다. 그 긴장은 특히 68년 바르샤바 조약군의 체코 침공 이후 때때로 그의 공적 행동 속에서도 파열을 일으켜, 아라공은 반공주의자 밀란 쿤데라의 작품에 서문을 쓰기도 하고, 솔제니친의 작품을 프랑스에서 출간하도록 산파 구실을 하는 등 ‘정통’ 공산주의자들의 눈 밖에 날 행동을 하기도 했다.

아라공의 문학과 삶이 작은 것들에 대한 사랑으로 포화된 이 세기 말의 독자들을 열광시키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 문학과 삶이 전쟁과 혁명으로 점철된 이 세기를 극도의 정직과 용기로 버텨낸 한 정신의 행로인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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