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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 만만세 4
2016년 02월 06일 23시 47분  조회:4699  추천:0  작성자: 죽림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 가택연금 상태에서 외출하려고 하다가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가로막자 이렇게 말했다.

“이기(이것이) 무신 법이야. 나를 간금(감금)할 수는 있어, 힘으로. 그러나 민주주의 길을 뺏지는 못해.”

1993년 2월 14대 대통령 취임식에서는 “이 자리에 참석하신 내애(내외) 귀빈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대한(위대한) 국민의 승리입니다. 국민에 이한(의한), 국민의 정부를 이 땅에 세웠습니다”고 연설했다.

그런가 하면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상도동계 최측근인 최형우 민자당 사무총장 아들의 대입 부정 사건이 터지자 “우째 이런 일이”라고 탄식했다. 이후 이 말은 5천만 한국인이 황망한 사건을 대할 때 읊조리는 말이 되었다. ‘우째’는 경상도 사투리였으나 황망함을 표현하는 데는 다른 지역의 어떤 감탄사보다 적절했던 것이다.

◇통역이 못 알아듣고 쩔쩔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보비서관과 정무비서관을 지냈던 박진 전 새누리당 의원은 대통령의 정상회담 통역을 담당했다. 1993년 7월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두 정상은 녹지원에서 새벽 조깅을 했다. 그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매일 새벽 5시에 조깅을 해 조깅에는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이 젊고 키도 커서 잘 달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김영삼 대통령은 조깅 수행을 하며 통역하던 박진 전 의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클린턴 대통령이 빨리 뛸 낀데, 나도 안 질 끼다.”

1993년 4월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해 회담을 나눌 때, 닉슨 전 대통령이 중국과 소련이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며 한국의 변화를 주문했다고 한다. 이에 김영삼 대통령은 “우리도 배나와 개핵(변화와 개혁)을 위해 열심히 가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서울 토박이인 박진 의원은 ‘배나’가 무슨 말인지 몰라 여러 번 물었다. 김 대통령은 힘주어 ‘배나!’ ‘배나와 개핵!’이라고 강조했다.

닉슨 전 대통령을 배웅한 뒤에 김 전 대통령은 박진 전 의원에게 “박 교수, 영어는 잘하는데, 경상도 말 좀 배아라”라고 말했다.

◇사투리로 국민을 즐겁게

김영삼 대통령의 고향은 경상남도 거제다. ‘학실히’(확실히), ‘씰데(쓸데)없는 소리’, ‘이대한’(위대한) 등 진한 사투리 덕분에 무겁고 진지한 존재로만 각인되어온 우리나라 대통령의 이미지가 친근함으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 또 김 전 대통령의 사투리를 주제로 우스개가 유행하기도 했다.

“각하, 경상도에서 ‘갑자기’를 무엇이라고 합니까?”

비서관이 그렇게 묻자

“글쎄?”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김 전 대통령은 “ ‘각중에’(갑자기) 물으면 우짜노”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고향인 거제도의 가라산을 관통하는 도로가 개통되자 김 전 대통령은 준공식에 참석해 이렇게 연설했다는 유머도 있다.

“이대한 거제도민 여러분 오늘 가라산을 간통(관통)하는 도로가 완공되어 이제 거제도를 국제적인 간강도시(관광도시)로 만들겠십미다. 여러분.”

그러자 옆에 있던 외무부장관이 말했다.

“각하! 간통이 아니라 관통이고 간강도시가 아니고 관광도시입니다.”

살짝 기분이 상한 김영삼 대통령은 이렇게 쏘아붙였다.

“애무부(외무부) 장간이나 잘 하시오.”

실제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관광도시를 흔히 ‘간강도시’라고 표현해 국민들 사이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사투리 많이 쓰는 대통령 다시 나올까

김영삼 대통령처럼 사투리를 오롯이 쓰는 대통령이 다시 나올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의 서울 집중 현상이 강화되면서 지방 출신들도 서울에서 생활하는 동안 서울 말씨로 바뀌고 만다. 단순히 말씨만 서울 말씨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인식도 다분히 서울 중심으로 바뀌게 된다.

사회학 이론에 ‘준거집단’(reference group)이라는 용어가 있다. 개인이 자신의 신념`태도`가치나 행동 방향을 결정하는 데 기준으로 삼고, 스스로를 동일화하는 집단을 말한다. ‘무늬만 TK’라는 말은 서울 말씨를 쓰는 대구경북 출신 정치인들이 자신의 ‘준거집단’을 대구와 경북이 아니라 서울에 두고 있음을 꼬집는 말이다.

김영삼 대통령처럼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대통령이 다시 나올까 의문이 드는 것은 그가 쓰는 ‘사투리’ 속에 그의 정체성이 녹아 있는 동시에 한국 사회가 위치한 좌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고의 통일을 위해 언어 통일을 시도한 예가 머지않은 과거에 있었다.

일제는 1936년부터 한글로 발행되던 신문을 무기한 정간시켰고, 1941년 ‘초등학교 규정’을 공포해 조선어 과목을 완전히 폐지했다. 또 1941년에는 ‘문장’ ‘인문평론’ 등 조선어로 발행되던 각종 잡지도 폐간함으로써 조선어로 된 신문이나 잡지는 모두 사라졌다. 또 ‘조선어학회’를 탄압, 해체한 데 이어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 기관지였던 ‘한글’도 폐간시켰다. 언어를 말살함으로써 한민족 정신을 말살하고, 일본 천황 중심으로 모든 것을 통합해, 일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였다.

 

◆사투리 스토리 엮인∼ 구불구불 골목…표준말 지역색 제로∼ 일직선 큰 도로

전통적으로 한국의 골목은 건물과 건물을 이어주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여기저기 집들이 등장하고, 그 사이를 사람들이 오고 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길이 형성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이동하는 동안 장애물이 앞을 막거나 위험한 지형을 만나면 피해 갔다. 그래서 골목은 대체로 구불구불하고, 그 구불구불함은 곧 그 지역의 지형적 특색을 반영하는 것이다.

현대의 도로는 대체로 일직선이다. 근대화 이후 생겨난 도시는 대부분 도로를 비롯한 인프라를 먼저 건설한 다음, 도로를 따라 건축물을 짓기 때문이다. 이때 도로는 지형적 특색이 반영되지 않는다.

사투리는 전통적인 골목과 비슷하다. 구불구불하고, 그 지방의 특성에 따라 제각각 독특한 단어와 억양을 지닌다. 지역인의 삶과 문화예술이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 어느 대도시를 가더라도 큰 도로는 엇비슷하다.

큰 도로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표준말을 쓰는 집단은 인식도 엇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텔레비전, 라디오 등에서 쏟아내는 표준말이 험준한 산과 깊은 강을 거침없이 넘나들면서 말과 문화, 인식이 큰 쪽으로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는 형국인 것이다.

유행하는 말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실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을 비춰준다. 그런 점에서 21세기 한국인들이 거리낌 없이 쓰는 언어는 한국인의 의식 세계와 현재적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방 출신의 정치인들이 서울 말씨를 쓰며, ‘준거집단’을 서울로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국민들도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영어를 우리말보다 더 편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19세기 개항 이후 서구 주도의 문명 발달에 속수무책으로 끌려오다시피 하느라 우리 속에 우리도 모르게 서구 지향적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다음과 같은 말을 영어 대신 우리말로 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리플(reply) ▷무빙워크(moving walk) ▷네티즌(netizen) ▷포스트잇(Post-it) ▷스크린도어(screen door) ▷파이팅(fighting) ▷내비게이션(navigation) ▷올인(all-in) ▷투잡(two job).

우리가 일상에서 별 부담 없이 쓰는 이 말들을 우리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댓글 ▷자동길 ▷누리꾼 ▷붙임쪽지 ▷안전문 ▷아자아자 ▷길안내 도우미 ▷다걸기 ▷겹벌이

흔히 사투리는 ‘촌스럽다’거나 ‘우스개’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사투리야말로 다양성을 보여주는 지표일 수 있다.

 

조두진 기자

///////////////////////

흔히 서울 사람들이 쓰는 말을 전부 표준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서울말도 엄연한 사투리입니다.
다만 분단 이후 수도가 서울로 정해지고,
새로운 정책적으로 '표준어'를 지정, 공포해야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굳이 서울말이 지정된 것뿐이지요.
그렇지만 서울말이라고 해서 모두 표준어는 아니구요.
표준어 사정 총칙의 제 1항에 의하면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
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1. 교양 있는 사람들
2. 두루 쓰는
3. 현대
4. 서울말
그야말로 애매한 기준입니다.
'현대'라는 말의 개념만으로도 충분히 논란 거리죠. 그런데다... 교양이 있는 기준은 어떤 것이고, 두루 쓰는 것은 몇 퍼센트이고, 서울말이라면 서울 지역에서 쓰이는 말이란 뜻인지 아니면 서울 사람이 -다른 지역에 있더라도- 쓰는 말이란 뜻인지... 따지면 끝도 없습니다.
아무튼, 서울말이 전부 '표준어'는 아니다...라는 걸 우선 알아 주셨으면 좋겠구요.
그리고 '도시마다 사투리가 있는 이유'라고 표현하셨는데
'지역마다 사투리가 있는 이유'라고 표현하셔야 맞습니다.
도시가 만들어진 건, 사투리가 있고 나서도 한참 후의 이야기니까요.
사투리는 각 지역에서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되는 방식으로 형성되어온 '자연 발생적' 언어입니다. 즉, 각 지역의 기후나 식생, 관습, 기질, 삶의 방식 등에 따라 만들어졌죠. 표준어와 다른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즉, 표준어는 나라가 효율적으로 국정과 민생을 통제하고 관리하도록 할 목적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언어'인 반면
사투리는 언어의 발생과 동시에, 각 지역에서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자연적으로 형성된 언어'입니다.
따라서 표준어(이 때 '서울말'이라고 표현한다면 잘못된 것이겠죠)와 사투리를 비교해 사투리를 더 열등하다고 생각한다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태도...
더 나아가 잠정적으로 '사투리를 없애자'라고 주장하는 태도는 (썩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마치 숲을 베어버리고 아파트를 건설하자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것이죠.
사투리와 우리말 형성의 기원에 대한 견해는 보통
'한 계통의 언어에서 사투리가 분화 되었다'는 주장과
'각 지역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활발한 교류를 통해 한 계통의 공통성을 갖게 되었다'는 주장이 서로 엇갈리는 상황입니다만, 정론은 확실치 않습니다.
만일 이것을 넘어서는 추측을 하려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는 수 밖에 없습니다.
언어는 문자보다 훨씬 이전에 형성된 것이니만큼, 기록을 찾기란 '완전히' 무리니까요.
이야기를 이것저것 좀 많이 해버렸는데...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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