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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는 읽는 즐거움을...
2016년 02월 13일 02시 31분  조회:5136  추천:0  작성자: 죽림
시는 독자에게 읽는 즐거움을 주어야

사실 시라는 건 뭡니까? 예술 아닙니까? 말이라는 것을 소재로 한 것, 그림이라는 것이 색하고 선을 제재로 한다면 음악이라는 것이 음하고 리듬이라는 것을 율하고 격을 제재로 한다면, 문학이라는 건 말을 제재로 하고 있습니다. 예술이라는 것은 일단 첫 번째로 읽는 사람들한테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읽는 재미가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뜻을 담고 있어도 쓰레기통에 집어넣어도 괜찮다는 얘기지요. 다른 말로 하면 독자들한테 즐거움을 주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1920년대 말에서 30년대에 걸쳐 풍미한 프롤레타리아 시가 있지 않습니까. 프로문학파 시인들이 가졌던 생각은 참 훌륭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시인들처럼 민족 해방에 대해서 그렇게 치열하고 또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시인들 가운데서 많지 않습니다. 당시 일제 시대에 민족주의에 앞서서 독립을 쟁취하고 평등을 이룩할 수 있는 수단이 사회주의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제대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 프롤레타리아 시, 즉 카프 시들 가운데서 오늘날 우리가 읽을 만한 게 몇 편이나 됩니까. 실제로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아마 「현해탄」「3월이 온다」를 쓴 임화, 권환, 월북하여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작사한 이찬, 김상훈, 박세영 등 몇몇밖에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시는 말로 된 예술이라는 인식이 모자라지 않았던가 생각합니다. 시는 예술이니까 예술이 갖는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시를 읽는 즐거움이 있어야지, 그것이 없으면, 아무도 읽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냥 '내가 생각하는 옳은 것, 이것을 나만 열심히 하면 훌륭한 시가 되고, 누군가 언젠가는 다 읽어줄 것이다.' 따위의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말에 대한 인식이 좀 모자랐다는 거지요.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사람에 대한 시가 기억되지 않는 대신, 오늘날까지 그 행적을 두고 말이 많은 서정주의 시는 여러분들이 좋아하지 않습니까.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서정주의 「문둥이」 전문

이 시는 오늘날에도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이 시를 읽으면 뭔가 와 닿는 것이 있고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개그맨이 떠들어서 주는 즐거움하고 예술로서의 시가 주는 즐거움하고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런 즐거움이 있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탓으로 카프 시 가운데 오늘날 지금 문학사에 남은 시가 많지 않다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이 되어야 합니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7, 80년대에는 적지 않았습니다. 7, 80년대 민중시 중에는 좋은 시가 많았지만 개중에는 예술 인식, 말에 대한 인식이 모자랐기 때문에 결코 좋은 시로 남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고 싶은 말을 시로써 잘하는 사람이 좋은 시인이라고 했던 워즈워드의 말처럼, 말을 잘하는가 못하는가가 시를 판가름한다고 봅니다. 한마디로 시를 잘 쓰는 사람은 말을 잘 다루는 사람입니다. 렝보, 말라르메와 함께 20세기 초에 프랑스 상징주의를 주도한 바 있는 드가의 에피소드를 빌리죠. "내 머리 속에는 시가 가득한데 왜 시가 안 써지는지 모르겠어?" 하고 드가가 묻자, 말라르메가 말하기를 "시는 언어를 가지고 쓰는 것이기 때문이지"라고 했다고 합니다. 시는 성적순이 아니며, 말을 잘 다루는 사람이 잘 쓰는 것이라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말에 대한 인식이 모자라서, 이삼십년대 프로문학이 우리 문학사에서 보잘것없는 대접을 받게 되었고, 7, 80년대의 민중시에도 일부 그런 경향이 없지 않다고 봅니다.
저도 민중시 계열 시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만,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좋은 내용의 시를 썼다 하더라도 그것이 언어로써 좋은 시가 되지 않으면 좋은 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시를 쓰는 이상 힘있고 좋은 살아 있는 말을 쓰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죽 시를 써왔습니다. 제가 시를 쓰는 신조 중의 으뜸은 '말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 한 마디 말이 바로 시의 생명력이 되는 것이므로, 생명력 있는 말 하나하나를 끄집어내어 쓰는 것이죠. 아무리 좋은 생활 체험도 말에 의해서 다시 체험될 때에만 좋은 시가 될 수 있다는 원칙하에서 시를 써왔다고 생각합니다.

시는 사유가 아니라 직관에서 쓴다고 합니다. 체 게바라 전기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칸트의 얘기를 빌어 '개념은 없는 직관은 맹목이다'라고 되어 있더군요. 이것은 칸트가 예술 이야기를 하면서 한 얘기죠. 예술이라는 것은 사유나 합리적인 사고보다는 직관에 의해서 더 많이 좌우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개념 즉, 이데올로기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지요. 이 말처럼 시에서는 직관이 아주 중요하지만, 직관의 배경에는 어떤 이데올로기가 있어야 된다는 얘기와 다름 아닙니다. 이데올로기는 다른 말로 옮기면 '시적 지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가, 어느 길이 옳은 길인가 생각하는 태도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적 지향이 없을 때에는 좋은 시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 중에 유치환의 「낮달」이 있습니다. 유치환은 여느 시인들과는 달리 위선이 없는 연애시를 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늘에 숨어 있는 낮달을 애인과 헤어진 뒤에 가슴 속에 남은 상처에 견주어 쓴 시입니다.

'쉬 잊으리라 그러나 잊히지 않으리라
가다 오다 돌아보는 어깨 너머로
그날 밤 보다 남은 연민의 조각
지워도 지지 않는 마음의 여로'

아주 짧지만 감동적인 연애시입니다. 여기에 무슨 이데올기는 없습니다. 이런 시도 좋지만, 이데올로기가 있는 시가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시란 메타포 즉 은유(隱喩)입니다. 좋은 시라는 건 결국 비유를 잘한 시입니다. 네루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일 포스티노」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젊은 우체부가 찾아와 '시란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네루다는 '시란 메타포다.'라고 대답하지요. 두 사람이 바닷가를 걷는데, 파도가 밀려오는 걸 보고 젊은 우체부가 '파도가 걸어옵니다'하고 말하자, 네루다는 '이 순간부터 너는 시인이다. 바로 비유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시인이다'라고 말하지요. 한 가지 사물을 다른 사물을 들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시인이라는 거죠. 제 생각으로도 우리나라에서 좋은 시인은 비유를 잘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비유를 썩 잘 할수록 좋은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병철의 시에 이런 게 있습니다. '은하 푸른 물에 머리 좀 감아 빗고/ 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 목숨 수(壽)자 박힌 정한그릇으로 체할라 버들잎 띄워 물 좀 먹고/ 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 삽살개 앞세운 정 좀 쓸쓸하다만/ 고운 밤에 딸그락 딸그락 나는 가련다'

무슨 뜻인지 처음에는 잘 다가오지 않을 겁니다. 「나막신」이라는 제목의 짧은 시이지만 사람살이가 은유로 잘 배어 있습니다. 이 시에는 오늘날에도 우리가 깊이 새겨들어야 할 은유가 있다고 느꼈고, 아직도 독자들에게 읽히는 까닭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결국 메타포가 있기 때문에 읽히는 겁니다. 시는 교훈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존재하기 때문에 읽히는 겁니다. 그 '존재'를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깨닫는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시의 존재가 우리로 하여금 뭔가를 깨닫게 해주는 메타포를 가졌을 때, 뛰어난 시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이병철의 시는 우리 문학사에서 기억되지 않으면 안될 훌륭한 시인 것입니다.


잠수함 속의 토끼처럼 먼저 외쳐야

또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25시」를 쓴 게오르규가 한국을 찾았을 때의 일입니다. 그가 우리나라를 방문한 1975년도에는 김지하 시인이 사형 언도를 받고 투옥되어 있을 때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지하는 꼭 죽인다고 여러 사람 앞에서 죽인다고 언명을 했다. 그러니 그 사람은 꼭 죽을 것이다.'라는 소문이 돌 때였습니다. 그럴 때 게오르규가 정부 초청으로 한국에 왔습니다. 세계적인 명작을 쓴 작가가, 그런 상황 속에서 정부 초청으로 우리나라에 온 걸 보고 뜻있는 이들은 크게 분개했습니다. 그가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인 시공관에서 '시인의 사명'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잠수함이 바다 밑으로 들어갈 때는 토기를 가지고 들어간다. 왜냐하면 토끼가 수압에 가장 민감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못 견딜 수압이 되면 토끼가 먼저 소리를 지릅니다.' 즉 게오르규는 정치적으로 억압 상황,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 등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었을 때, 못 살겠다고 가장 먼저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곧 시인이라고 은연중에 말했습니다. 한국이라는 상황은 얘기하지 않고 말한 겁니다. 비록 정부의 초청으로 왔지만 마음먹고 한 마디 하는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어느 일본 시인은 '시에는 본질적으로 절규성'이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정치적으로 못 살게 되었을 때, 환경이 나빠졌을 때, 도덕적 타락 현상이 만연되었을 때 못살겠다고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이 시인이라는 건데, 그때 저는 크게 공감했습니다. 절규성이 있음으로 해서 그 시는 역동성을 띠고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한가지 도덕성의 경우에는 곧이곧대로 오늘의 잣대만을 들이대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스웨덴 같은 데서는 호적제도가 크게 바뀌어 아이들의 반수 이상이 어머니의 성을 따른다고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가 누군지 분명치 않기 때문입니다. 전세계적으로 가족제도가 바뀌어 가는 추세 속에서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해야지, 틀에 박힌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됩니다.
결국 시라는 것은 남에게 하는 대화이되, 그것이 명확하고 힘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역시 언어라는 것은 남하고 함께 사는 데서 생긴 만큼, 시는 남과 더불어 사는 정서를 담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중요시되지 않으면 시는 난쟁이처럼 작아진다. 세 번째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소재로 하는 만큼 말이 주는 즐거움을 소홀히 해서는 좋은 시를 낳을 수 없다. 그러나 시는 본질적으로 절규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등을 재삼 강조하고 싶습니다. 또한 도덕적인 면을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그 시는 생명력을 갖기 어렸습니다. 이런 것들이 시를 쓰는 저의 몇 가지 중요한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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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낙화 / 이형기













낙화

이 형 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 시집 <적막강산> 중에서




이형기 연보

1933년 1월 6일 경남 사천군 곤양면 서정리, 이경성과 김순금의 2남2녀 중 장남으로 출생.

1939년 요시노 소학교 입학.

1945년 진주농림학교 입학.

1946년 부친이 폐병으로 사망.

1949년 제1회 진주 개천예술제 시부 장원, 웅변부 3등 당선.

1950년 진주 농림학교 재학(17세) 중에 <문예>지에 시 추천 완료.

1951년 동국대 불교학과 입학. 9월 최계략과 동인지 <二人> 발간.

1953년 연합신문사 입사(국회 출입기자).

1955년 김관식, 이중노와 3인합동시집 <해 넘어 가기전의 기도> 간행.

1956년 동국대 불교학과 졸업.

1957년 제2회 한국문인협회상 수상.

1959년 서울신문사 입사.

1961년 대한일보사 입사(정치부 차장).

1962년 조은숙과 결혼.

1963년 첫 시집 <적막강산> 간행. 비평활동 시작.

1965년 국제신문사 입사(논설위원).

1966년 문교부 문예상 수상.

1971년 시집 <돌베개의 시> 간행.

1974년 <월간문학> 주간.

1975년 시집 <꿈꾸는 한발(旱魃)> 간행.

1976년 평론집 <감성의 논리> 간행.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79년 수상집 <서시 흐르는 강물> 간행.

1980년 평론집 <한국문학의 반성> 간행.
국제신문이 1980년 언론통폐합에 따라 폐간되자 언론사 기자생활을 청산.

1981년 시집 <풍선심장> 간행. 부산산업대학 교수로 부임.

1982년 한국문학 작가상 수상.

1983년 부산시 문화상 수상.

1985년 시집 <보물섬의 지도> 및 시선집 <그해 겨울의 눈> 간행. 윤동주 문학상 수상.

1986년 시선집 <오늘의 내 몫은 우수(憂愁) 한 짐>, 수필집 <바람으로 만든 조약돌>,
박목월 평전 <자하산 청노루> 간행.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부임.

1987년 평론집 <시와 언어> 간행.

1990년 시집 <심야의 일기예보>, <북한의 문학(공저)> 간행.

1991년 <현대시창작교실>, 시선집 <별이 물되어 흐르고> 간행.

1993년 시론집 <시란 무엇인가> 간행.

1994년 시집 <죽지 않는 도시> 간행. 대한민국 문학상, 대산문학상 수상.
1994~1995년 한국시인협회장.

1998년 시집 <절벽> 간행.

2000년 수상집 <존재하지 않는 나무> 간행.

2001년 만해문학상 수상

2002년 은관문화훈장 수상. 동국대학교 정년 퇴임.

2005년 2월 2일 숙환으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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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 미행 / 이형기












미행

이 형 기

문득 뒤돌아보면
놈이 또 거기 있다
정체불명의 검은 복면자

때로는 모른체 시침을 떼고
내 바로 앞에 놈이 간다
절대로 뒤돌아보는 법 없이

그러나 속지 말라
놈은 내 행선지를 미리 알고 있다
별수 없이 놈을 뒤따라 가는
무거운 발걸음

아무리 용케 따돌려도 놈은
이윽고 또 나타난다
밤중에 어두운 골목길로 도망치면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를
이튿날 틀림없이 일깨워 주는 ―

아 정말 지겨운 미행자
놈이 어느날
가까이 다가와 귀에 대고 속삭였다
뭘 그래

날더러 자네를 미행하라 했었지
그때 자네가 말한 대로
나는 자네 분신
은밀한 한통속끼리 뭘 그래 자꾸만


이형기 시집 <심야의 일기예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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