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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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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은 약초 캐는 감약초군이다...
2016년 10월 01일 18시 27분  조회:4259  추천:0  작성자: 죽림

[ 2016년 08월 31일 09시 05분 ]

 

 

호남(湖南)성 평강(平江)현 석우재(石牛寨)의 유리 잔도(棧道) 로천식당.



꽃과 섬과 별을 쏟아내는 물감상자
-강우식의 시세계


박남희



1.에로스와 섹슈얼리티 사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학작품의 가장 공통적인 주제는 사랑이다. 사랑은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이나 식물에도 존재하는 것이지만, 인간의 사랑은 그 어떤 존재의 사랑보다도 육체적이면서 정신적이고 그 사이의 진폭 또한 가장 크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문학작품에 존재하는 사랑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만나서 이루어내는 총화로서의 사랑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육체보다 정신이 고귀한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육체가 없이 정신이 있을 수 없으며, 정신이 없는 육체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가 고도로 물질문명화 되면서 인간의 육체도 물질화 되고 감각화 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정신 우위의 편향된 가치관도 차츰 육체적인 쪽으로 기울게 되어 전통적으로 억압, 은폐되어 있던 성이 자유롭게 표면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 문학에서 ‘몸의 시학’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여성주의 문학에서의 섹슈얼리티는 차츰 남성적 권위와 억압에서 해방되어 독자성을 획득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흐름은 비단 여성주의문학에서 뿐 아니라 남성문학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내가 강우식 시인의 시를 이야기하기에 앞서서 현대문학의 에로스와 섹슈얼리티를 이야기한 것은 강우식 문학의 본질이 ‘사랑’이라는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섹슈얼리티가 인간의 육체성을 강조한 것이고 에로스가 상대적으로 인간의 정신적인 면을 강조한 것이라면, 강우식의 문학은 초기에는 섹슈얼리티에, 후기에는 에로스에 기울어져 있다고 생각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강우식의 시는 그의 다섯 번째 시집인 『雪戀集』(1988)을 기점으로 보다 에로스적 성격이 강화되면서 초기 시의 강렬한 섹슈얼리티가 차츰 추억과 그리움으로 내면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의 시집을 차례대로 검토해보면 첫 번째, 두 번째 시집인 『四行詩抄』(1974)와 『高麗의 눈보라』(1977)는 강우식 시인의 초기 시에 나타나 있는 섹슈얼리티를 전통적 시형과 민중적 정서를 바탕으로 고전주의적 절제와 균형 속에서 풀어내던 시기에 씌어진 것들이고, 세 번째, 네 번째 시집인 『꽃을 꺾기 시작하면서』(1979)와 『물의 혼』(1986)은 강우식 시인이 그의 시에 섹슈얼리티를 노골화해 보여주던 시기에 씌어진 것들이다. 강우식 시인을 한 때나마 ‘우리나라 섹스 시의 선구자’로 불리게 한 것도 이들 두 시집의 공과가 크다. 하지만 강우식 시인의 시는 포르노를 지향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의 시가 섹스 자체에 목적으로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시는 특유의 섹슈얼리티를 통해서 전통적 권위의식 속에 숨어있는 인간의 허위의식을 능청스럽게 에둘러서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런 양상은 특히 그의 여섯 번째 시집인 『어머니의 물감상자』(1995)의 제 3부, 불교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씌어진 <佛詩雜辯>의 시들에서 보다 풍자적으로 드러나 있다.

동성연애하여도
에이즈에 절대 걸리지 않을 것 같은
아주 깨끗한 동자승밖에
아른대는 게 없는

아마 수삼년 전 명보극장에서 본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오늘은 자다가 한밤중에 깨이어
‘달마의 목자가 왕방울인 까닭’에
사념의 줄을 끊지 못하고 있다.

달마는 등을 돌리고 앉아서
불두덩에 굼실대는 이를 잡는
살생을 몰래 저지르고 있었다 한다.

아니다. 요즈음 말로 하자면
미국으로 진출하는 파리크라상 제과점의
빵들을 아래 중들 몰래
먹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것도 아니다. 벽은 70밀리
초대형 TV 브라운관이어서
화면 속 스트립쇼를 즐겨 감상하시느라
동공 확대증에 걸린 것이다.

-「면벽」전문

달마의 면벽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이 시는, 많은 사람의 추앙을 받고 있는 달마선사의 눈매가 왕방울처럼 큰 것은 참다운 면벽은 하지 않고, 벽이 스트립쇼를 보여주는 TV 브라운관인양 벽을 보며 야한 잡생각만 했기 때문이라는 풍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달마의 눈이 큰 것은 그가 졸음을 견디다 못해서 그의 눈꺼풀을 아예 잘라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이 시의 진술은 허구적 상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이러한 시인의 관점은 시니컬한 어법의 이면에 시적 진실을 숨기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처럼 우리의 고정관념 속에 자리하고 있는 기존의 허위적 가치관에 대한 시인의 비판의식은 좀 더 본질적으로 캐들어가다 보면 그의 섹슈얼리티와 만나게 된다. 다시 말하면 강우식 시인의 섹슈얼리티는 본질적으로 대 사회적 허위의식의 폭로와 맞물려있다. 그런 점에서 위선이라는 사회적 관습을 넘어서기 위한, 섹슈얼리티를 통한 정직성 추구는 오히려 그의 시의 중요한 미덕으로 보인다. 
이 시기의 시에 시인의 비판의식이 많이 보이는 것은 그동안 강우식 시인의 ‘섹스 시’의 비판에 대한 안티테제적인 성격도 없지 않지만, 그의 ‘섹스 시’ 자체가 그 이면에 현대 사회가 숨기고 있는 허위성에 대한 비판의식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의 초기 시가 주로 섹슈얼리티를 바탕으로 한 비판의식의 산물이었다면, <佛詩雜辯>의 시들은 단지 그 소재를 불교적인 것으로 바꾸었을 뿐이다. 

태양에 그을린 살갗이 하루나 이틀쯤 쓰려오는
팔월이면

별이 박히듯 떠오르는 여자들이 있어
아파라.

살뭉치로 와서 살뭉치로 와서
타는 사랑은
물집마다 올리브 향유나 바르며 온 밤을 뒤척이게 하고

아내 몰래
그 옛날 여자들의 이름을
죄처럼 쓰고, 때로는
그리움으로 아픔으로 지우나니

팔월이면 어이하여
살이든지, 마음이든지 이리 불타고
살아있다는 것이

가만히 가만히 그 이름 새겨보듯
행복하기만 하랴

-「타는 사랑」전문

강우식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바보산수』(1999)에 실려 있는 이 시는, 그의 초기시의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변모되어 나타나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물론 이 시기의 시들에도 종종 육체적 사랑 이야기도 등장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사랑은 시간적으로는 과거의 사랑이고 이미 그리움이나 아픔으로 내면화되고 정서화된 사랑이다. 시인은 8월의 바닷가에서 태양에 그을린 살갗의 쓰라림을 경험하면서, 젊은 시절의 뜨겁던 사랑을 떠올리고 있다. 어느덧 인생의 황혼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도 그의 마음은 여전히 8월의 태양처럼 뜨겁지만, 젊은 시절 자신의 추억 속에 새겨져 있는 이름들을 떠올리는 것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시인은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며 “아내 몰래/ 그 옛날 여자들의 이름을/ 죄처럼 쓰고, 때로는/ 그리움으로 아픔으로 지우”고 있는 것이다. 이 시를 언뜻 보면 시인이 자신의 여성편력을 죄의식과 연결시키고 있는 듯하지만, 1998년 여름 ‘바다와 섬’을 주제로 한 제주학술회의에서 그가 이 시를 논하는 자리에서 이러한 경험을 ‘아름다운 일’이라고 진술했던 것을 반추해 보면 시인의 여성편력이 결코 ‘죄의식’의 차원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시인에게 있어서 그 때의 일들은 ‘아름다운 일’이며 그립고 때로는 가슴이 아려오는 추억인 것이다. 그의 일곱 번째 시집의 후편으로 읽혀지는 여덟 번째 시집『바보 산수 가을 봄』(2004) 소재의 시에서 “마흔의 이 봄날에도/나는 어쩐 일인지/ 사춘기 때 그 홍역 못 넘겨서는/ 가슴에, 가슴에는/ 그리움 같은 것들이/ 무시로 꼭 떠오르고//그것들을/ 너무나도 못 잊어하다 보면/끝내는/지금도 가물가물거리는구나.”(「아지랑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강우식 시인은 후기 시에 오면, 섹스를 육체적 욕망을 발산하기 위한 행위라기보다는 오히려 일종의 ‘놀이’로 이해하고 있다. 예를 들면 『바보 산수』소재의 시 「인도 소나기」에서 시인은 “도마뱀이 벽을 기어 다니는 방에서 그나마 불을 끄니 검은 피부의 인도 계집은 그대로 어둠이 되어 녹아 버리고 목소리만 살아서 지그지그 퍽퍽, 지그지그 퍽퍽, 무슨 소린지 모르지만 나도 따라 지그지그 퍽퍽 하며 놀았다”고 사뭇 능청스럽게 말하고 있다. 시인의 이러한 능청스러움은 그의 연륜과 무관하지 않지만, 이는 그가 어느덧 섹스를 객관적으로 관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 대지와 꽃의 상상력-『四行詩抄』,『꽃을 꺾기 시작하면서』

강우식 시인의 시들이 성(性)이라는 소재를 즐겨 다루고 있으면서도 쉽게 비속함에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그의 시를 관통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주제가 단지 직설적 진술에 머물러있지 않고 구체적인 사물을 통하여 이미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바다와 대지(산)와 하늘이 삼각형을 이루면서 각각 섬과 꽃과 별을 거느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그의 초기 시는 주로 대지와 꽃의 이미지가 중심이 되어 있다. 우선 그의 첫 시집인 『四行詩抄』의 연작시들을 살펴보자.

밤마다 배꼽 위에 쑥 한점 떼어 놓고
오뉴월 땡볕 같은 젊음을 뜸 들였거늘
꽃 피는 것 다 큰물 맞듯이 겪고나면
넋이야 괴로울 거 하나 없는 黃土되겠네 
-「여섯」

미친년들의 엉덩짝만큼이나 흔들리는
꽃나무 가지마다 바람이 불어오면은
열댓살씩되는 처녀애들
속가랑이 벌리듯 꽃이 피네
-「열둘」

느릅나무 향나무 이깔나무들
계집같이 안 잊히는 때는 어느 때인가.
백일홍 복숭아 꽃숭어리들
가슴결에 피어나는 때는 어느 때인가
-「스물 아홉」

우선 첫 번째 인용 시를 보면 시인은 1~2행에서 젊은 시절의 사랑을 쑥뜸 뜨는 일에 비유하다가, 3~4행에 오면 사랑을 대지위에 꽃이 피는 일로 비유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꽃피는 일은 ‘黃土’에게는 “괴로울 것 하나 없는”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 번째 시 역시 꽃나무 가지에서 꽃이 피는 행위를 “열댓살씩되는 처녀애들/ 속가랑이 벌리듯”꽃이 핀다고 하여 꽃피는 행위를 인간의 성과 연관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이 쉽게 통속에 떨어지지 않는 것은 본질적으로 시인이 인간과 자연을 하나로 보는 유기론적 우주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 시에서 느릅나무나 향나무나 이깔나무를 ‘계집’과 연관시키고 있는 것이나, 사랑을 백일홍이나 봉숭아 꽃숭어리들로 표현하고 있는 것도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이처럼 강우식 시인의 초기 시는 흙과 나무를 중심으로 한 대지적 생명력이 사랑의 표상인 ‘꽃’과 어우러져 표출해내는 시인의 뜨거운 육성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들려준다. 
『四行詩抄』에 이어 대지와 꽃의 이미지가 집중적으로 나타나 있는 시집은 세 번째 시집인『꽃을 꺾기 시작하면서』이다. 본격적인 섹스시집으로 알려져 있는 이 시집의 4행시의 형태를 띠고 있는 95편의 연작시들에서 인간의 性은 주로 식물이미지인 꽃과 연관되어 나타난다. 

내 아내 열 일곱으로 부끄러워하며
다른 사내에게 젖꼭지를 빨리고 있다.
어디선가 두 년놈의 일처럼 부흥, 부우흐흥.
봄날이면 괴로와 괴로와.
-「앵두」 

바지 주머니 뚫어진 속 깊이 손을 넣어
그 여자 몰래 내 물건을 잡았소.
그리고 그 여자가 쥔 한 묶음의 찔레꽃에
찔리고 싶다고 생각했소.
-「찔레꽃」

빨치산에 겁탈당한 열아홉 내 누이다.
알몸되어 소름돋친 살갗을 떨다
모래벌에 혀를 박은 내 누이다
원통하게 핏빛으로 까헤쳐진 밑구멍이다.
-「해당화」

위의 인용 시들은 공통적으로 인간의 성을 꽃나무와 연관시키고 있으면서도 그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우선「앵두」는 자신의 아내가 아직 자신에게 시집오기 전인 열일곱 살 때에 연애하며 다른 남자에게 젖꼭지를 빨리고 있는 것을 상상하면서 괴로워하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고, 「찔레꽃」에는 시적 화자가 사모하는 여자를 훔쳐보면서 여자 몰래 자신의 물건을 잡고 여자와 육체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젊은 시절의 욕망이 드러나 있으며, 「해당화」에는 빨치산에게 겁탈당한 누이의 원통한 모습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이처럼 『꽃을 꺾기 시작하면서』에 들어있는 시들은 단순히 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고, 성이라는 소재가 여러 가지 꽃 이미지와 겹쳐지면서 ‘괴로움’, ‘원통함’같은 시인의 내적 정서와 만나게 된다는 점에서 여타의 포르노 시와 구별된다. 

3.물과 눈의 상상력- 『고려의 눈보라』,『물의 혼』,『설연집』

강우식 시인의 시에서 ‘물’이미지는 가장 핵심적인 이미지에 속한다. 그의 시에서 물은 ‘바다’, ‘강’ ‘비’, ‘눈물’, ‘피’, ‘눈’등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물의 이미지는 그의 모든 시집에 골고루 나타나있지만 특히 『고려의 눈보라』,『물의 혼』,『설연집』등에 많이 등장한다. 먼저 두 번째 시집인 『고려의 눈보라』에는 ‘바다’나 ‘강’의 이미지도 등장하지만, 이 시집의 후반부에 실려 있는「고려의 눈보라」연작시에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눈’의 이미지의 비중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늘에서 땅까지 
막막한 공간을 덮으며
눈이 내린다.

잴 수 없는 거리의 폭이
이 나라의
역사를 보는 듯하다.

흙을 일구며 城을 쌓으며
살다간 수천억의
영혼들…….

그들의 일생이
한점 눈송이로 응결되어
점점 이어진다.

얼었던 마음도
눈물로 풀릴 줄 밖에 모르던
이웃들의

분노도 절규도 없는
이 조용한
下降.

지금 천지는
그저 오랜 잠.

역사도
잠 속에 빠져든 듯한
슬픔이
하늘에서 땅까지 내리는
눈발이 되어
내 가슴을 적신다.

-「降雪」

「고려의 눈보라」연작시에 등장하는 ‘눈’은 우리 민족의 질곡과 억압의 역사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시인은 눈을 통해 “잴 수 없는 거리와 폭”을 지닌 종잡을 수 없는 이 땅의 역사를 보기도 하고, 힘겨운 역사의 질곡 속에서 “흙을 일구며 성을 쌓으며/ 살다 간 수천억의/ 영혼들”의 분노도 절규도 잊은, ‘오랜 잠’으로의 역사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런가하면「바람」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그 다음 시에서 ‘눈’은 흰옷 입은 조상들의 매서운 채찍이 되어 ‘죽은 자의 영혼’을 깨우기도 한다. 이렇듯 「고려의 눈보라」의 ‘눈’은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시인의 역사의식과 민중의식의 일단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雪戀集』역시 ‘눈’을 소재로 사랑이라는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는 시집이다. “사랑하는 사람아, 눈이 풋풋한 해질녘이면/마른 솔가지 한 단쯤 져다 놓고/ 그대 방 아궁이에 지피고 싶었다/ 저 소리없는 눈발들이 그칠 때까지...”(「세수」)라든가, “너에게로 갈 때 나는 그저 하이얗다/ 눈이라는 이름도 붙이고 싶지 않다/ 굳이 말하자면 내 심장에서만 새어나오는 입김/ 사랑은 상처이어도 끝내는 하얗게 아물어야만 한다”(「아흔네 수」)라는 구절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시집은 눈을 소재로 그냥 사랑얘기를 하고 있는 시집이다. 따라서 이 시집에는 개인적 감정이나 단편적인 사유만 내포되어 있을 뿐 역사의식이나 민중의식과 같은 집단의식은 드러나 있지 않다. 
『물의 혼』역시 앞에서 살펴본 『꽃을 꺾기 시작하면서』와 쌍을 이루고 있는 소위 ‘섹스시집’이다. 다만 이 시집은 ‘꽃’ 대신 ‘물’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이 시집 또한 『꽃을 꺾기 시작하면서』와 마찬가지로 4행 연작시 형태를 띠고 있는 159편의 시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시는 남녀 간의 사랑을 ‘파도’의 얽힘이나 물이 요동치는 행위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시집도 『雪戀集』과 마찬가지로 주로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주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주제의 진폭이 그리 넓지 않은 시집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넓게 보면 인간의 사랑행위를 자연의 움직임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시인의 범 자연적 인간관이 감지된다.

4.물과 대지의 외로운 합일- 섬 혹은 山水의 세계

강우식 시인의 시들은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물’과 ‘대지’의 이미지가 길항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이 두 가지가 합일을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를 일별해서 살펴보면 강우식의 시는『사행시초』(대지)-『고려의 눈보라』(대지/물)-『꽃을 꺾기 시작하면서』(대지)-『물의 혼』(물)-『설연집』(물)-『어머니의 물감상자』(대지)-『바보 산수』(대지/물)-『바보산수 가을 봄』(대지/물)의 흐름 위에 놓여있다. 특히 ‘山水’라는 이름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마지막 두 시집은 ‘대지’와 ‘물’의 이미지가 하나로 합일되어 ‘山水’ 즉 ‘자연’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즉 이 시기에 오면 ‘물’은 객체로서의 ‘물’이 아니라 인간화된 물로 변형되거나, 우주적 상상력 속에서 커다란 우주로 확대된 인간의 모습 속의 물이고, ‘지구’나 ‘섬’ ‘산’등으로 나타나 있는 ‘대지’이미지 역시 인간화되거나 우주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종전의 시들과 구별된다. 시인의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본질적으로 시인이 세상을 관조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꽃들에게 강원도 감자알만큼씩한 불알 두 쪽을 흔들어 주며 십년 세월을 바람으로 살았다. 파도를 일으키기 위하여 좆물을 채우거나 빼듯이 했다. 溺死하지 못한 빈 술병 하나로 바다에 내던져져 흐르며 춤추던 춤, 텅빈 가슴으로 바람소리나 흉내내다 이 몸 물 되지 못하면 어차피 부서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몸 깨뜨릴 바위는
無量壽殿 바다의 어디에 있는가.

-「자화상」전문

‘자화상’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인은 이 시를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관조적으로 반추해 보고 있다. 시인은 자신의 인생이 ‘꽃’들에게 불알 두 쪽 흔들어 주며 바람으로 산 세월이었으며, 파도를 일으키기 위해 좆물을 채우거나 빼던, 익사하지 못한 빈 술병으로 산 세월이었음을 고백한다. 시인은 자신이 ‘물’이 되지 못하면 언젠가는 ‘바위’에 부서질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여기서의 바다에 내던져진 빈 술병은 그의 다른 시에서 ‘섬’으로 변주된다. 시인은 자신이 苦海에 떠다니는 외로운 섬임을 인식하고 ‘물’ 즉 ‘자연’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새로운 인식에 이르는 것이다. 

섬인데도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산 첩첩
구름 위에 산은 서 있고
파도처럼 기절하며
비가 내린다.

나는 한달에 세 번 해를 봤다.
어느새 구두 밑창이 되어버린
얼굴.

습기처럼
습기찬 팬티를 말리기에 바쁜
섬.

어떤 밤에는
여자보다 차라리 정이 그리워서
전기장판을 깐다.

전류는 해류처럼 출렁이고
나는 등이 따뜻해오는
섬이 된다.

-「冬安居詩篇-(1)섬」전문

시적 화자는 동안거를 위해 산속에 있다. 구름이 산봉우리를 감싸고 있어서 봉우리가 마치 섬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섬인데도 바다는 보이지 않는”것이다. 시적 화자는 첩첩 산중에서 한 달에 겨우 세 번 해를 보는, 습기에 둘러싸인 축축한 섬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있다. 이제 섬은 바다에도 있고 산에도 있다. 문득 돌이켜 보면 인간 자신이 섬이다. 하지만 “인간은 어리석게도/ 섬이면서/ 섬을 그리워하며 산다.”(「섬 또는 그리움」) 시인 역시 섬이 되어 이와 같은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 시인에게 있어서 그리움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순환적 시간의 흐름으로도 어쩔 수 없는 근원적인 그리움이다. 강우식의 두 권의 시집 『바보 산수』와 『바보 산수 가을 봄』이 각각 여름과 겨울, 가을과 봄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이들 두 시집의 계절이 한 쌍으로 연결되어 순환적 시간을 이루고 있는데, 이 두 시집의 도처에 특정 계절과는 상관없이 ‘그리움’의 정서가 골고루 나타나 있다는 점만 보아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그것은 시인이 결국 “내 그대 그리움 속으로 기어들어가면/ 내 그리움 어느덧 잠자고/ 또 누가 있어 날 떠올리며/ 그리웁다 잠 못 이루리”(「윤회」)라고 하여 그리움을 윤회적 순환구조로 이해하고 있는 데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강우식 시인의 후기 시에서, 끝없는 그리움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을 ‘섬’으로 형상화 하고 있는데, 사실 ‘섬’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시에서 ‘바다’는 인생의 바다 즉 苦海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이 시기에 오면 바다는 시인의 의식 속에 내면화된 바다로 나타나게 된다. 시인이 시 속에서 ‘섬’을 외로운 섬으로 그리고 있는 것도 그의 ‘바다’가 심리적으로 내면화된 바다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제 외로운 자신의 존재성을 확인한 섬에게 있어서 더 이상 자연인 ‘꽃’은 여자에 귀결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초기 시에서는 대부분 ‘여자’를 ‘꽃’으로 인식했던 것이 이 시기에 오면 오히려 여자가 ‘꽃’, 즉 ‘자연’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저만치/ 얼굴 붉히고 선 여자도/ 더 꽃다히 타며 흔들리는/ 자연.-「五月微吟」) 다시 말하면 시인은 종전까지의 인간중심의 세계관을 버리고 차츰 탈속을 위한 친자연적 세계관에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바보산수>라는 시집 제목만 보더라도, 시인이 인간을 ‘어리석은 자연’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강우식 시인의 후기 시에 유독이 ‘하늘’이나 ‘별’과 같은 천상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시인의 최근 시들이 한층 강화된 정신지향의 토대위에 놓여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인간의 몸을 정신과 육체로 나눈다면, 초기시의 ‘바다’와 ‘섬’, ‘대지’와 ‘꽃’이 육체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데 비해, 후기 시의 ‘하늘’과 ‘별’은 상대적으로 정신지향성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시인은 『바보 산수 가을 봄』소재의 첫 번째 시 「가을환상」에서 “내가 아는 어느 예술가의/ 생애보다 더욱 빛나는 이마를 가진/ 별을 나는 처음 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시인은 이 시기에 비로소 새롭게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천상과 지상을 하나로 잇는 자연의 오묘한 진리를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강우식 시인의 시를 지탱해온 힘은 사랑이다. 그런데 나는 시인의 이러한 사랑이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생래적이고 근원적인 뿌리에 닿아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의 이러한 생각을 구체화시켜준 시는「어머니의 물감상자」이다. 먼저 시를 읽어보자.

어머니는 시장에서 물감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물감장사를 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온갖 색깔이 다 모여 있는 물감상자를 앞에 놓고 진달래꽃빛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진달래꽃물을, 연초록 잎새들처럼 가슴에 싱그러운 그리움을 담고 싶은 이들에게는 초록꽃물을, 시집갈 나이의 처녀들에게는 족두리모양의 노란 국화꽃물을 꿈을 꾸듯 나눠주듯이 물감봉지에 싸서 주었습니다. 눈빛처럼 흰 맑고 고운 마음씨도 곁들여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해종일 물감장사를 하다보면 콧물마저도 무지개빛이 되는 많은 날들을 세상에서 제일 예쁜 색동저고리 입히는 마음으로 나를 키우기 위해 물감장사를 하셨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이 지상에 아니 계십니다. 물감상자 속의 물감들이 놓아주는 가장 아름다운 꽃길을 따라 저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나에게는 물감상자 하나만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운 색깔들만 가슴에 물들이라고 물감상자 하나만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어머니의 물감상자」전문

인용 시 「어머니의 물감상자」는 강우식 시인의 사랑의 뿌리가 단지 그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어머니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시에서 어머니는 시장에서 물감장사를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물감을 파는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에게 필요한 꽃물을 나누어주는 행위로 확대되어 나타난다. 이는 흡사 신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나누어주는 행위에 비견되는데, 이 시의 어머니는 단순히 강우식 시인의 어머니를 넘어서서 일종의 대모신으로 인식된다. 이는 어머니가 사람들에게 꽃물을 “꿈을 꾸듯”나누어 주는 행위나, 어머니가 저 세상으로 “물감상자 속의 물감들이 놓아주는 가장 아름다운 꽃길”을 따라 가셨다는 말 등에서도 감지된다. 
그런데 이 시의 어머니가 남겨놓고 가신 ‘물감상자’는 돌이켜보면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신이 세상에 선물로 내려 보낸 ‘판도라상자’에 비견된다. 그리스신화에서 판도라는 제우스신의 명을 어기고 보물상자를 자신이 열게 되는데, 그 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판도라 상자에서 나온 좋은 것들은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 질병이나 재앙, 슬픔, 괴로움, 미움 같이 나쁜 것들이 세상에 퍼지게 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린 빈 상자 속에도 마지막까지 ‘희망’만은 남아있게 된다.
물론 이야기의 줄거리만 보면 강우식 시인의 ‘물감상자’와 ‘판도라상자’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강우식 시인의 어머니를 제우스신이나 대모신의 위치에 올려놓고 보면, 어머니가 저 세상으로 가시면서 남겨두신 ‘물감상자’는 시인에게는 또 다른 의미의 ‘판도라 상자’인 것이다. ‘판도라 상자’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것이 ‘희망’이었다면, 어머니의 ‘물감상자’속에 남아있는 것은 ‘사랑’이다. 그런데 이 시를 자세히 살펴보면 사랑은 ‘꽃물’로 형상화되어 있다. ‘꽃물’은 수많은 色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섹슈얼리티와 에로스, 아가페 등 다양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사랑’의 색깔에 비견된다. 시인이 그리움이나 사랑을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순환적인 것으로 인식 하고 있는 것도, 이 시에 나타나 있는 사랑의 근원적 속성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강우식 시인의 가슴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사랑’이나 ‘그리움’의 감정은 그의 어머니가 물려주고 가신 ‘물감상자’ 속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우식 시인의 전기 시에서 사랑의 표상으로 나타난바 있는 ‘꽃’이나, 후기 시에서 외로운 실존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는 섬, 그리고 이상적 실존의 상징인 ‘별’등도 근원적으로 어머니의 ‘물감상자’가 쏟아낸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물감상자’가 시인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진 것이라면 우리는 그의 ‘섹스 시’는 저급한 것이고, 그의 후기 시는 보다 차원 높은 것이라고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모든 시들은 모두 어머니의 물감상자 속에서 ‘꽃물(사랑)’이라는 하나의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단지 죄가 있다면 그것은 물감상자를 시인에게 물려주신 어머니에게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우리네의 어머니가 우리에게 물려주신 ‘물감상자’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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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초 캐는 사람 
―이동훈(1970∼ )

언젠가 일 없는 봄이 오면
약초 캐는 산사람을 따라가려 해.
짐승이 다니는 길로만 가는 그를
안간힘으로 따라붙으면
물가 너럭바위 어디쯤 쉬어가겠지.
버섯이나 풀뿌리 얼마큼을 섞어
근기 있는 라면으로 배를 불리면
마른 노래 한 소절이라도 읊게 될 것만 같아.
볕에 그을린 몸이 단단해지고
비탈을 평지처럼 걷게 되면
약초 이름도 더러 외게 되겠지.
외운 만큼 곁을 주는 건
산 아래와 다르지 않을 거고.
장마 지는 날엔
화전민 움막에 나란히 앉아
그리운 것들을 빗물로 내려 보내고
산안개 따라 도리바리 울음이라도 들릴라치면
경건한 묵상에 빠지기도 하겠지.
이따금 장터에 내려서서
도매로 물건을 넘길 때
축농증 앓는 둘째를 위해
효험 있다는 약초를 따로 챙길 것이고
어디론가 송금이 끝난 그도
술 한 잔 받아줄 것이기에
한나절, 구름처럼 둥둥 떠 있게 될 거야.
언젠가 일 놓는 봄이 오면
그 누군가를 위해
약초 캐는 사람이고 싶어.


이 시가 실린 이동훈 시집 ‘엉덩이에 대한 명상’의 시편에서는 여린 마음과 정 깊고 선한 기운이 담뿍 배어난다. 문학평론가 이성혁은 해설을 ‘어떤 시는 시를 쓴 사람의 인간됨을 느끼게 해준다’라고 시작한다. ‘이 시인이 참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일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는 것이다. 사람의 느낌이라는 게 참 비슷하구나! 

아직 일할 나이로 직장인인 화자가 봄날에 펼쳐보는 낭만적인 꿈이다. 일장춘몽이 아니라 건강하고 싱그러운 장래의 꿈. ‘언젠가 일 없는 봄이 오면’ ‘언젠가 일 놓는 봄이 오면’, 즉 은퇴한 뒤에는 이렇게 살아보리라. ‘장마 지는 날엔/화전민 움막에 나란히 앉아/그리운 것들을 빗물로 내려 보내고/산안개 따라 도리바리 울음이라도 들릴라치면/경건한 묵상에 빠지기도 하겠지.’ 도리바리는 호랑이를 이르는 심마니(산삼 캐는 사람) 은어라고 한다. 호랑이만 울까, 고라니도 울고 산새도 울고 뱀도 울겠지. 

약초 캐는 산사람의 건강하고 떳떳하고 단순한 삶이 그 험함과 고됨과 외로움까지 살갑게,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독자도 한번쯤 따라다니고 싶다. 노년을 ‘그 누군가를 위해 약초 캐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니, 화자의 각박하지 않은 현재 삶이 짐작된다. 약초 캐는 산사람을 따라다닐 근력을 착실히 키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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