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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初心 - 한편의 시를 탈고하기 위하여...
2016년 03월 01일 02시 14분  조회:5037  추천:0  작성자: 죽림
상상의 재미가 있는 시






문학은 언어로 표현된 허구의 예술입니다. 시도 그 속의 작은 갈래이므로 허구의 예술인 것이지요. 그 허구를 위하여 특히 오늘의 현대시는 조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위하여 참신한 비유를 통한 ‘낯설게 하기’ 수법을 사용합니다. ‘낯설게 하기’란 친숙하거나 인습화된 사물이나 관념을 특수화하고 낯설게 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느낌을 갖도록 표현하는 방법. 러시아 형식주의의 문학적 수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예로, 지하철과 관련된 시를 찾아보니 “나는 보았다/ 밥벌레들이 순대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을”이라고 쓴 최영미의 「지하철에서 1」도 있고 에즈라 파운드의 유명한 「지하철 정거장에서」도 있습니다. “군중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얼굴들/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 흔한 풍경이건만 얼마나 산뜻한 감각의 이미지들인지 모릅니다.
2012년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당선된 시 한 편을 더 살펴보기로 합니다.






뾰족한 악몽을 밀어내고
담장에 오르는 새벽





나는 내가 비좁다





창을 열면
내 안으로 눈이 내리고





붉은 새가 걷는다 붉은 새가





떼로 날아오르면
검게 찢어지는 하늘이





칼들이 쏟아져내리고
아버지가 보인다





취한 손으로 가족들 발톱을
뽑아내는





모두가 찌르고 모두가 찔리고
모두가 떠나지 않고 이곳에 서 있다





내 안으로만 쌓이는 눈
창이 열리면





나는 나를 뚫는다
새가 새를 뚫는다
—남지은,「넝쿨장미」전문






이 작품에 대한 비평적 해설은 당선작을 뽑은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인 평론가 신형철의 글(《문학동네》신인상 시 부문 심사평)로 편의상 대신하겠습니다.




“뾰족한 악몽을 밀어내고/ 담장에 오르는 새벽” 「넝쿨장미」의 도입부다.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제 몸 안에서 밖으로 가시(“뾰족한 악몽”)를 “밀어내고” 담장을 타고 오르는 넝쿨장미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겠지만, 어느 날 새벽에 악몽에서 깨어난 화자가 그 악몽의 잔영과 힘겹게 싸우는 모습 또한 떠올리게 한다. 다시 잠이 들면 악몽이 이어질 것 같은데, 이대로 눈뜬 채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너무 외로운 일이다. 그렇게 그의 안에는 너무 많은 악몽이 있기 때문에 그는 “나는 내가 너무 비좁다”라고 느낀다. 비좁기 때문에, 그 너무 많은 악몽들은 가시가 되어 밖으로 돋아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좁다는 느낌이 그를 답답하게 만들고, 그 답답함이, 자다 깬 새벽에 창문을 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창을 열면/ 내 안으로 눈이 내리고// 붉은 새가 걷는다 붉은 새가// 떼로 날아오르면/ 검게 찢어지는 하늘이” 창을 열면 무엇이 보이는가. 다시 말해, ‘창 안의 나’와 ‘창밖의 세상’ 중에서 어느 쪽의 힘이 더 강한가. 전자의 힘이 강하면 창을 열어도 결국 ‘나 자신’이 보일 것이다. 표현 욕구가 재현 욕구를 이겼다는 뜻이다. 그의 불우한 내면이 세상을 다 빨아들인다. 그러니 눈은 “내 안으로” 내릴 수밖에 없다. 역시나 내면의 대체물일 “붉은 새”는 불길하게도 날지 못하고 걷는다. 행여 떼로 날아오르면 하늘이 검게 찢어진다. 이 ‘붉음’과 ‘검음’은 이 시의 소재가 되고 있는 장미의 ‘검붉음’을 나눠 반영하면서 후반부의 분위기를 이끈다. 이어 이 시는 그의 악몽이 가족의 현재와 관련이 있음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칼들이 쏟아져내리고/ 아버지가 보인다// 취한 손으로 가족들 발톱을/ 뽑아내는// 모두가 찌르고 모두가 찔리고/ 모두가 떠나지 않고 이곳에 서 있다” 가족이라는 숨은 상처가 화자의 내면을 점령하는 순간, ‘내리는 눈’도 ‘쏟아져내리는 칼’로 전환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 가족의 문제는 ‘취한 아버지’와 관련돼 있는 것 같다. 그 아버지는 가족들을 고통스럽고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가족들의 발톱을 뽑는 모습이 그렇게 읽게 한다. 가시들이 서로 뒤엉켜 있는 넝쿨장미는, 이렇게, 서로 찌르거나 찔리면서도 서로를 떠날 수 없는 가족의 모습으로 유려하게 전환된다. 그리고 이시의 마지막은 이렇다.
“내 안으로만 쌓이는 눈/ 창이 열리면// 나는 나를 뚫는다/ 새가 새를 뚫는다” 마지막 두 줄은 ‘나’의 가시가 ‘나’를 찌르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데, 여기에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절대로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예감하는 자의 체념적 절망감을 읽어내야 할지, 아니면 고통스럽고 무기력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가족의 구성원이기도 한 ‘나’ 자신의 자기 극복이 필요하다는 결단의 몸짓을 읽어내야 할지 쉽게 선택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읽건 이 결말이 만들어내는 매력적인 모호함의 공간은 여전히 넓다.





‘상상의 재미가 있는 시’는 오늘의 현대시 중 가장 많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몇 편의 좋은 예를 더 들어보면 함기석의 「뽈랑공원」, 윤성택의 「후회의 방식」, 조인호의 「철가면」등을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후회의 방식」은 시간의 흐름을 역전시킨 독특한 시상의 전개가 아주 재미있습니다. 앞서 나온 ‘매력적인 모호함’이라는 것. 이 모호성(ambiguity)이라는 시의 속성을 잘못 이해한 젊은 시인들이 곧잘 빠지는 함정에 특별히 유념해야 합니다. 젊은 시인들이 좋아하는 소위 전위적인 시, 아방가르드의 유령에 홀려서는 안 됩니다. 미의식을 포함하지 않은 모호성, 비논리 자체만을 즐기는 어불성설, 중언부언, 요령부득의 모호성 등은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합니다.






혈관을 찾던 약한 팔뚝 빛 딸기를 고른다
색연필을 핥고 나서부터 무심(無心)이 도졌던 중학(中學)의 미술은
오직 기쁘게 얼굴들을 흠집 냈다. 무도병(舞蹈病)이 되어
한 겹씩 얇게 소동들은 떠오를 것이다
나를 낳고 싫증이 났던 엄마의 무렵, 날짜변경선을 지나며
싸고 있는 애벌레를 상대했다, 조용히 들여다본 엄마의 까만 것을
—「가내 판정」부분, 《현대시학》2012년 8월호









날개 안쪽, 퍼덕이던 뼈를 만져본다
허공의 통증이다.





창밖, 꽃들의 방위가 쓸쓸해 길은 길로 걸어와 침묵한다. 안다는 것
과 알고 있다는 주저가 어느 순간 난간이 되고 위악적인 꽃말들이 난
간을 걷는다. 꽃을 물어 나르는 새들의 위장을 탐했던 바람, 귀먹은 바
람을 불러들여 헛구역질을 연습하면 풀냄새가 입안 가득 돌고 손이 검
은 얼룩에 기척이라는 장기가 생긴다.
—「통증의 연대기」부분, 《현대시》2012년 2월호






우선 「가내 판정」은 제목부터 알 수 없는 묘한 말입니다. 잘 참고 읽어봐도 이게 무슨 말인가, 알아내기 어렵습니다. “무심(無心)이 도졌던 중학(中學)의 미술”은 얼굴들에 흠집을 내고…. "엄마의 무렵, 조용히 들여다본 엄마의 까만 것" -아마 시인 자신도 이런 구절들을 분명하게 독자들에게 이해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모르고 나도 모를 소리라고나 할까, 이런 것을 시라고 내밀기엔 낯가죽이 한참 두꺼워야 할 것입니다. 이건 어렵게 쓴 시나 잘못 쓴 시도 아니고 아예 시가 아닙니다. 말하자면 ‘가짜 시’입니다. 「통증의 연대기」도 역시 독자를 현혹시키려는 말장난으로 된 시입니다. 무언가 의미 있는 게 있을 것 같은 착각만 유발할 뿐 알맹이가 하나도 없는 시입니다. 이러한 시들에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시인 혼자 중얼거리는 ‘자폐시’ 혹은 ‘가짜 시’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시 쓰기를 40년 50 년씩 해 온 중견 이상의 시인들이 아무리 읽어도 알 수 없는 시가 있을까요? 그런 건 사기입니다. ‘난해시’란 나같이 시력(詩歷)이 많은 시인들, 혹은 소수의 시인들이라도 꼼꼼히 읽어서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넝쿨장미」같은 시를 이릅니다. 저것들은 눈속임의 ‘가짜 시’, 잘 해야 ‘자폐시’일 뿐입니다.






아름다움이 있는 시






누가 뭐래도 문학은 예술입니다. 예술을 말할 때 가장 먼저 꼽는 게 문학입니다. 문학에서도 맨 앞에 내세우는 것은 시입니다. 그러므로 시가 예술임은 누구나 아는 상식입니다. 예술이 추구하는 게 무엇입니까? 바로 아름다움이지요. 미(美)를 추구하는 까닭에 시가 지니는 미 역시 숭고미, 우아미, 비장미, 골계미를 떠나서 말하기 어렵겠습니다.
고기잡이를 직업으로서가 아니라 한가로운 풍류로 즐김을 노래한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에는 우아미(優雅美)가 있고, 죽은 누이를 그리며 슬픔을 참고 내세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월명사의 「제망매가」에서 드러나는 것은 숭고미(崇高美)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모가지를 드리우고 조용히 피를 흘리겠노라고 말하는 윤동주의 시 「십자가」에 깃든 비장미(悲壯美), “얼굴을 선캡과 마스크로 무장한 채/ 구십 도 각도로 팔을 뻗으며 다가오는 아낙들을 보”는 것부터 시작하여 풍자, 해학으로 독자를 즐겁게 하는 권혁웅의 시 「도봉근린공원」은 골계미(滑稽美)를 띠고 있습니다.
검고 푸른 달밤, 관능적인 여인의 춤이 그치고 그녀가 헤롯왕에게서 상으로 받기를 바란 그것을 쟁반에 담아 가지고 나옵니다. 푸른 달빛 아래 빛나는 은쟁반, 그 위에 검붉은 피를 흘리는 사람의 머리. 영국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이 소름끼치도록 무섭고 아름다운, 바로 이 장면을 위해서 희곡 「살로메」를 썼다고 합니다. 그건 유미주의 혹은 탐미주의 내지는 예술지상주의라고도 부르는 문예사조입니다. 미적 가치를 가장 높은 가치로 보고 모든 것을 미적 견지에서 평가하는 태도나 세계관 곧 예술을 위한 예술, 더 나아가 악마주의로까지 길을 열어나가는 것 자체가 순수예술의 존재 그 자체일는지도 모릅니다.





다리를 벌리고 앉은 의자 아래
졸고 있는 죽은 고양이 옆에
남자의 펄럭이는 신문 속에
펼쳐진 해변 위에
파란 태양 너머
일요일의 장례식에
진혼곡을 부르는 수녀의 구두 사이로
달려가는 쥐를 탄
우울한 구름의 손목에서 흐르는
핏방울이 떨어져 내린
시인의 안경이 바라보는
불타오르는 문장들이 잠든
한 줌 재가 뿌려진
창밖의 검은 밤 속
—강성은, 「아름다운 계단」부분









너를 껴안고 잠든 밤이 있었지, 창밖에는 밤새도록 눈이 내려
그 하얀 돛배를 타고 밤의 아주 먼 곳으로 나아가면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에 닿곤 했지, 산뚱반도가 보이는 그곳에서 너와 나는
한 잎의 불멸, 두 잎의 불면, 세 잎의 사랑과 네 잎의 입맞춤으로
살았지, 사랑을 잃어버린 자들의 스산한 벌판에선 밤새 겨울밤이
말달리는 소리, 위구르, 위구르 들려오는데 아무도 침범하지 못한
내 작은 나라의 봉창을 열면 그때까지도 처마 끝 고드름에 매달
려 있는 몇 방울의 음악들, 아직 아침은 멀고 대낮과 저녁은 더욱
더 먼데 누군가 파뿌리 같은 눈발을 사락사락 썰며 조용히 쌀을
씻어 안치는 새벽,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
이 내리지
—박정대, 「음악들」전문











연쇄법을 구사한 시「아름다운 계단」에서는 기괴한 가운데 느껴지는 미의식이 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나 에드거 앨런 포에게서 풍기는 약간 그로테스크한 미의식입니다. 그리고「음악들」에서는 부드럽고 달콤한 말맛의 음악성을 곁들여 판타지 같은 이미지의 연속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지요. 이와 같은 시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모호한 말도 아닌 혼잣말의 안개 속에 종적을 감추는 비열한 시들보다 차라리 열 배 백 배 낫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좋은 시의 갈래를 감동이 있는 시, 상상의 재미가 있는 시, 아름다움이 있는 시로 나누어 보았는데 이는 내가 혼자 생각해 본 분류에 지나지 않습니다. 유명한 학자들의 빛나는 이론에 도움 받은 바도 없이 지금까지 50년 가까이 딴에는 열심히 시를 써오며 내 몸으로 터득한 어설픈 시론에 불과합니다. 한 편의 시가 저런 요소들을 두루 섞어서 나타날 수도 있겠고, 전혀 다른 모습의 시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 한 편을 탈고하고 나서 이 세 가지 기준에 맞춰 자기 스스로 점검해 보는 것도 그다지 무익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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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 이상국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이 상 국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 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눈물자국을 안 보이려고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찍 돌아가자
골목길 감나무에게 수고한다고 아는 체를 하고
언제나 바쁜 슈퍼집 아저씨에게도
이사 온 사람처럼 인사를 하자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불을 있는 대로 켜놓고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자


이상국 시집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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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어둠과 놀다 / 이상국








어둠과 놀다

이 상 국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골목길에서 누가 덥석 손목을 잡아끈다
새로 온 저녁이었다
자기네 집에서 쉬었다 가라는 거였다
집에서 아내가 아이들이 기다린다고 했지만
이런 날이 날마다 있는 건 아니라며
한사코 잡아끌었다
나는 새우깡 한봉지와
소주를 받아가지고
학교마당 나무 아래 저녁의 집에서
한 시간이나 놀았다
그리고 그가 데리고 가라는
새로 온 어둠의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돌아왔다


이상국 시집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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