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를 터는 저녁
- 이윤학(1965~ )
구장네 아줌마 둘이서 머리끄덩이를 잡고
들깨를 턴 포장에서 뒹굴었다
서로의 어깨를 잡고 흐느껴 울었다
누레진 들깨 토매를 털었듯이
서로의 어깨를 두드렸다
뒷산의 멧비둘기가 시원하게 속을 긁었다
벌써부터 구장의 프라이드 베타가
산모롱이에 정차해 있었다
아줌마 둘이서 바람을 등지고
들깨를 까부르는 소리 키로 쏟아졌다
티끌 하나 없이 흡혈하는 하늘
들깨를 턴 냄새가 스며들었다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던 아줌마들이 “서로의 어깨를 잡고 흐느껴” 우는 풍경은 우리에게 바흐친 스타일의 ‘민중적 웃음’을 유발시킨다. 싸움의 귀결을 잘 알고 있는 “구장”은 그것을 벌써부터 보고도 부러 개입하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싸움→울음→노동의 사이클에 익숙하다. 짧은 시간에 함께 싸우고, 울고, 다시 협업을 하는 공동체는 이제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 되었다. 서로를 바닥까지 알지 않고는 불가능한 모습 아닌가. ‘들깨를 터는 저녁’은 그리하여 궁핍하지만 아늑하고도 그리운 서사(敍事)를 떠올리게 한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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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
/ 송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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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우선 식탁을 짜고
둥글고 하얀 접시를 짜고
멀리서 떠도는 너희 아버지의
모자와 모자 위의 구름을 짜고
그리고 아버지의 닳고 닳은 구두를 짜고
아가야, 네게는 무엇을 짜줄까
그래, 네가 갖고 싶은 것
그 무언가를 담을 수 있도록
커다랗게 너의 몸을 짜주마
시집 《붉은 눈, 동백》(문학과지성사) 中
마음이 가난한 겨울에 가장 따듯한 목소리는 어머니의 목소리 같아요. 시인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빌려 우리에게 사랑의 세계를 들려주는 것 같네요. 식탁과 접시, 아버지의 모자와 구름, 닳고 닳은 구두를 짜고, 아가 너에게는 커다란 몸을 짜주겠다고 하면서 차가운 이 겨울의 아침에 온기와 품을 나누어 주는 것 같네요. 아주 먼 옛날 우린 모두 아가였을 텐데, 시간이 오늘 이토록 커다란 몸을 짜놓았으니 신비한 우주군요. 어른이 된 우린 갖고 싶은 어떤 좋은 것을 커다란 몸에 담고 살고 싶었을까요.
김민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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