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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공부는 꽃나무에 물을 주는 격...
2016년 05월 21일 22시 54분  조회:4350  추천:0  작성자: 죽림
12.이미지의 큰 단락으로 연 만들기(2) 
 
[12강] 이미지의 큰 단락으로 연 만들기(2)


3. 이미지의 큰 단락으로 연 만들기

이미지의 큰 단락이 하나의 연을 이루는 경우입니다. 강
의에 들어가기 전에 유근조 시인의 행과 연에 관한 견해를 우
선 들어보기로 하십시다.

"시 한편의 구조는 이미지 리듬 논리성 또는 어조등의 요소들
로 이뤄지고 또 이같은 요소들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 자체의 유기적 통일체로서 전체 구조속에서 비로소 그 기
능이 발휘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같은 요소들의 이상적
배합이 겉으로 드러난 모습의 한가지가 연이라고 할 수 있다면
연은 단순한 행의 집열 이상의 것이라야 옳을 것같다.

거대한 바다가 지구의 중력에 의하여 또는 달의 인력에 의하여 뒤척일
때 겉으로 출렁이는 파도의 주름살에나 비유 할 수 있을까. 말
하자면 시인의 어쩔 수 없는 내적 생명의 호흡이 생의 고뇌가
결과적으로 연의 생성을 초래한다는.....

그러나 연이 단순한 파도의 주름살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
은 시인이 작품속에 담고자 하는 의미내용을 좌우할 수 있다
는 데 있다.

이 말은 연은 시의 의미내용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가시적
현현물이 아니어서는 안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필자의 경우 시으 행이나 연구분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니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게 아니고 시적 충동
이 강하고 쓰고자 하는 내용이 절실하여 그 첫행이 정해지면
연의 문제는 써가면서 저절로 해결이 된다고 하고 싶다.

보통 현대 자유시의 경우엔 시 한편이 한 연으로 이뤄진 경우
와 두 연이사으로 이뤄진 경우를 예상할 수 있고 그런 경우
는 드물지만 한연이 한 행으로 이뤄진 경우도 생각할 수 있는
데 정형시의 해체와 보편적 리듬의 극복이 시도된 이래 연 구
분 역시 조금은 자유스럽거나 무시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허지만 어떠한 경우라도 연구분은 시 구조를 판가름하는 가장
경제적인 행의 집열이 돼야함은 물론 시 생명을 관장하는 섭
생의 논리를 갖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현대시가 아무리 의식의 소산물로서 불연속적 이질적
체험을 담는 경우가 있다해도 시의 행이나 연은 반드시 그 시
의 전달성을 위하여 이바지하는 각별한 배려의 결과적 소산물
이어야함은 물론이다. 무릇 잘된 시작품들이 다 여기에 속한다
봐야겠지만 편의상 예시를 하나 든다면 목월의 [청노루]와 같
은 작품은 행 구분이나 연 구분에 있어서 특별히 세심한 주의
를 경주한 대표적 작품이라 해도 좋을 듯 하다."

잘 들으셨지요? 그 동안 몇 분의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만 이
말들을 다만 참고만 하시면 되겠습니다.
이어서 강의를 계속하겠습니다.

이미지에 대해선 우리가 많은 공부를 하였습니다. 이미지는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기에 이미지의 단락에 의해 형성된 연
은 당연히 감각적인 특성과 모양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끌게
될 것입니다.

장만영님의 <달. 포도. 잎사귀>를 읽어보겠습니다.

순이 벌레 우는 고풍한 뜰에
달빛이 밀물처럼 밀려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아 있다.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

동해바다 물처럼
푸른
가을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고웁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순이 포도넝쿨 밑에 어린 잎새들이
달빛에 젖어 호젓하구나.

각각의 연들이 아주 좋은 이미지의 덩어리입니다. 아마 교과
서에 나왔던 시가 아닌가 합니다만 여러분들이 이제 이미지를
배우고 나서 읽어 본 감흥이 다를 것입니다.
어떻게 그 시절에 이렇게 멋진 이미지들을 끄집어 냈을까요.
현대 시인들이 따라가기 힘든 멋진 이미지들입니다.

제1연은 달빛이 배어 있는 뜰의 정경을, 제2연에서는 달의
시각적 이미지와 후각적 이미지를, 제3연에서는 "동해바다
물처럼/푸른" 가을 밤의 시각적 이미지를, 제4연에서는 포도
와 달빛이 혼연일체가 되고 있는 정경을, 제5연에서는 달빛
에 젖은 포도 넝쿨의 어린 이파리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각 연들이 회화적인 시각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
는 참 아름다운 시입니다.

박용래님의 <자화상.2>를 읽어보겠습니다.

한오라기 지풀일레

아이들이 놀다 간
모래城(성)
무덤을
쓰을고 쓰는
江둑의 버들꽃
버들꽃 사이
누비는
햇제비
입에 문
한오라기 지풀일레

새알,
흙으로
빚은 경단에
묻은 지풀일레

窓(창)을 내린
下行列車(하행열차)
곳간에 실린

한 마리 눈(雪)속 羊(양)일레.

이 시에서는 하나의 행마다 이미지의 단락에 의해서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을 먼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조태일님은 이
시를 마치 숱한 이미지들을 전시하거나 진열해놓은 이미지
전시회 같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그런 행들이 모인 연은 당연히 이미지의 덩어리가 모
인 이미지의 큰 단락이겠지요.
특히 첫 연과 끝 연을 보면 하나의 이미지가 한 행이면서 동
시에 한 연이 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첫연과 끝연은 이미
지 강조에 의해서 만들어진 연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시의 맨 처음과 맨 끝에 한 행짜리 연을 둠으로서 시각
적이미지의 효과도 충분히 노리고 있습니다.

4)마지막으로 강조의 큰 단락으로 연만들기를
공부하겠습니다.
이 경우는 각 연들이 서로 긴장한 상태로 배치
되는데, 이 긴장감 때문에 강조의 효과가 생겨
나고 시적 탄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시를 예로 들어가면서 알아보는 것이 이해
하시기 쉬울 것입니다.

김형수님의 <남한강 기행>을 읽어보겠습니다.

내 육신에서 솟아나온
땀방울처럼
마른 갈대들이 서걱이는 땅거죽에서

물방울은 돋아 흐른다
어디로 가는가
아무런 약속도 없이 그저 흐르는가

숱한 중생이 나고 죽고 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 사라지곤 하면서
역사를 이루고 흐르는 것처럼

물은 그렇게 흐른다
이끼 낀 바위틈과 금이 섞인 모래 위를
낮게 나직이 지형을 바꾸면서

제1연과 제2연을 보게 되면, 제1연의 끝행과
제2연의 첫행은 의미의 흐름상 하나의 문장
입니다. 즉 "마른 갈대들이 서걱이는 땅거죽에서
물방울이 돋아 흐른다" 이렇게 될 것입니다. 따
라서 의미의 단락으로 묶게 되면 하나의 연으로
놓이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겠지요. 그러나
일부러 떼어 놓음으로써 두 연은 자석처럼 서로
붙으려는 긴장감을 자아내겠지요. 바로 이럴 때
강조의 효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역시 같은 경우가 3연의 마지막 행과 4연의 첫행
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연스러움에서 벗
어남으로써 오히려 시 안에서는 탄력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것을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의 형태로 다시 조합
한다면, 이 시는 시적 탄력감이나 긴장감들이
사라져버리고 아주 느슨해지고 풀어져 버린
설명적 시들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제 완연한 봄입니다만, 좋은 시 읽기의 일환으로
소개해드리는 시로 마지막 겨울의 풍경을 노래한
시 한 편을 올리겠습니다.
김석규님의 <잔설을 바라보며>입니다.

아직 떠나지 않은 겨울이 소매 끝에 시리다
가뜩이나 움추리는 목덜미를 꺾어 누르고
한 군데도 가릴 곳 없는 맨살을 저며 엔다.
그러나 어디엔가 매화는 피고 있으리라.
어녹는 땅 푸르게 번지는 대숲 그늘 아래서
해거름녘 산봉우리의 잔설을 바라보며
또 그 너머 어김없이 물들어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암연히 수수로운 마음 정처없어라.
가다가 날 저물어 길마저 끊어져버리면
가시덤불 밑에 파릇이 돋아 있는 풀잎을 만날까.
멀리서 개짖는 소리로 따뜻한 불빛
사람 사는 외딴집이라도 나오면
구들목 펄펄 끓는 방이 있는지
하룻밤 자고 갈 것을 청해 볼까.
아무리 둘러 봐야 뒤숭숭한 세상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며 깊은 잠에 곯아떨어질까.
머흔 구름 걸려 있는 산봉우리의 잔설을 바라보며
밤낮없이 눈이 내리는 나라의 하얀 산과 들
이 밤에도 남은 겨울의 저 끝까지 달려간다


시 한 편을 더 올리지요.
나태주님의 <귀소(歸巢)>입니다.

누구나 오래
안 잊히는 것 있다

낮은 처마 밑
떠나지 못하고 서성대던
생솔가지 태운 냉갈내며
밥 자치는 냄새

누구나 한 번쯤
울고 싶은 때 있다

먹물 와락
엎지른 창문에
켜지던 등불
두런대던 말소리


마음 먼저
멀리 떠나보내고
몸만 눕힌 곳이 끝내
집이 되곤 하였다.

이승훈님의 해설을 덧붙입니다.

"귀소(歸巢)는 짐승들, 특히 새가 둥지를 찾아가는
것, 그러므로 나태주는 새이고 오늘 그의 둥지를
찾아간다. 그의 둥지에는 기억과 눈물이 있지만
이 둥지에는 과일이 있고, 둥지가 과일이고, 물론
둥지는 새집이고 큰 피리고 채소이다. 그가 꿈
꾸는 <밥 자치는 냄새>와 <창문에 켜지던 등불>과
<두런대던 말소리>, 이런 기억. 왈칵 쏟아지는
눈물이 그의 둥지이고 그의 과일이고 그의 피리
이고 그으 채소이다. 싱싱한 채소. 마음 먼저 가면
된다. 마음이 나이므로!"

해설이 시보다 더 어려워 보이네요.
이승훈님은 시도 참 어렵더라구요.


날마다 꾸준히 공부하는 것은 꽃나무에 물을 주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물을 주었다 안 주었다 하면 꽃나무는 일찍 시들고
말겠지요. 여러분도 꾸준히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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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 별다방 / 오탁번
 

 
 
 
 
                
 
 
 
      
 
 
별다방
 
                        오 탁 번
 
시골 장터 골목이나
역전 거리에 있는
간판도 다 떨어진
호젓한 별다방을 보면
그냥 쑥 들어가고 싶다
대덕산 임야도 보여주며
한 오천평쯤
희떱게 뚝 떼어주면
낙낙한 마담은
자늑자늑 내 품에 안겨올까
살별처럼 흘러간
옛사랑 다시 만난 듯
'그냥 커피' 홀짝 마시면서
눈흘레나 하고 싶다
 
 
오탁번 시집 <우리 동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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