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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에서 끝줄을 쓰고 붓을 놓을 때...
2016년 05월 24일 22시 16분  조회:4463  추천:0  작성자: 죽림
[14강] 시의 마무리(2)



박두진 시인은 시의 마무리에 대하여
1)미리 시의 마무리를 생각하고 쓰는 일이 없다.
시를 쓰면 의례 마무리가 있게 마련이고, 그것은
하나의 필연적인 귀결이 될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2)시의 마무리를 시의 끝마무리의 수사적인 뜻으로
좁혀서 생각하지 않는 이상 그 시의 시작과 전개
와의 상관 관계를 생각함에 있어 단순한 수사보다
더 근본적이고 포괄적이며 그 중심적인 외적 통일
성이나 일관성을 그 시 전체의 됨됨이에서 재량하
게 될 것이다. 나의 경우 늘 그 마무리는 시의
근본 주제의 관련 아래서 되도록 자연스럽게 필연
적인 귀결이 되어지기를 기원하면서 쓰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3)그러므로 시의 끝마무리는 오히려 시작이며, 동
시의 전개이며 동 시의 귀결과 핵심과 같은 그런
비중을 두게 된다.

4)다시 말하면 단순한 기교로서 보다는 그 시 자체
(전체)의 의도나 성격에 대한 나 자신의 대응자세,
그 가장 정신적인 창조의 태세에서 볼 때, 그 자연
적이고 필연적인 시이고자 하는 관용성과, 조심성,
겸허와 양보를 전제로 해서 일하고 있다. 잔재주나
섣부른 운치, 여운 따위의 의식적인 기교보다는 더
초월적이 못되는 경우에는 차라리 진지한 시적 자
세, 시에 순응하는 담담한 자세로 임하고자 하고
있다.

5)결국 시의 끝마무리를 소급해 올라갈 때, 그 성
공의 여부는 곧 그 시 전체의 성과를 좌우하게 되고
또 그렇게 측정할 수 있는 하나의 바로메타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원칙이나 이론으로 마무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
라 마무리의 중요성과 시인의 시에 임하는 자세를
오히려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전체적으로 끝마무리는 어떻게 하는가?
이는 건축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무리 건축을
잘 하였다고 하여도 끝마무리 공사가 미진하면
건축물의 기능, 특히 미적 아름다움은 상실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에서도 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총체적으로
주제는? 제목은? 연과 행의 구분은? 시어의 선택
은? 배열상의 문제는? 등등을 우리가 시를 쓸 때
마다 심혈을 기울이는 중요한 명제들입니다.

시의 마무리 또한 이들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작업
이며, 어떻게 보면 마무리가 잘 못되어 노력하여
써 놓은 시가 좋지 않은 시가 되는 등의 실패가
올 수 있으므로 시의 마무리 작업이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또한 한 편의 시가 일단 마무리되어 발표된다
하여도 언제나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에 불과하
며 이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가 항상 긴장과 흥
분을 동반하기 때문에 또 다른 시를 쓸 수가 있다
고 합니다.

잠시 쉬는 의미에서 최근에 발표된 시를 한 편
올릴 터이니, 첫 행은 어떻게 시작하며 이어지
는 행과 연의 관계, 마무리까지의 연관 등을
나름대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박영근 님의 <길>입니다.

장지문 앞 댓돌 위에서 먹고무신 한 컬레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동지도 지났는데 시커먼 그을음뿐
흙부뚜막엔 불 땐 흔적 한 점 업소,
이제 가마솥에서는 물이 끓지 않는다

뒷산을 지키던 누렁개도 나뭇짐을 타고 피어나던 나
팔꽃도 없다

산그림자는 자꾸만 내려와 어두운 곳으로 잔설을
치우고
나는 그 장지문 열기가 두렵다

거기 먼저 와
나를 보고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저 눈벌판도 덮지 못한
내가 끌고 온 길들

남진우님의 해설을 첨부합니다.

"80년대 노동시가 한창 맹위를 떨칠 때 대할 수 있
었던 이 시인의 몇몇 시가 떠오른다. 노동 현장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시대 현실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 것을 비교적 생경하지 않은 수사와 장면 제시를
통해 한 편의 시로 형상화하는 능력....... 오랜
세월이 흘러서 다시 만나게 된 그의 시편은 보다
침잠된 어조로 삶의 고단함과 정처 없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만큼 정치사회적 현실이 바뀐 탓일까

아니면 시인의 연륜 탓일까. 고향 집으로 여겨지는
집으로 돌아온 화자의 적막한 심사를 노래한다.
< 길>에서 도 짙게 묻어나는 것은 삶에 대한 처연
한 응시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는 선뜻 장지문을
열지 못하고 자신이 <끌고 온 길>과 맞닥뜨리고
있다. 화자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숨죽인 울음이
읽는 사람에게도 전염을 일으킨다.

아주 잘 썼지요? 두 번, 세 번 읽으며, 눈을 감고
이미지를 떠올려 보세요. 이런 시를 많이 읽어보는
것이 여러분의 시를 쓰는 솜씨에 많은 도움이 되리
라 믿습니다.

이어서 우리 선배 시인들은 시의 마무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어려운 이론이 아니므로
좀 길더라도 다 인용할 터이니 읽고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황금찬 시인의 마무리에 대한 변을 들어볼까요?

"시작과 끝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시작과 끝이
같아야 한다는 말이다. 시작이 힘 들듯이 끝도
힘 들게 끝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시작에 있어 가장 힘에 부치는 것이 끝 줄
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시의 끝 줄을 쓰고 붓을
놓기가 그리도 힘이 든다. 시의 끝 줄을 쓰고
붓을 놓을 때, 그 때의 기쁨은 실로 하늘 같은 것
이다.

써놓고 보면 하나도 끝 줄로써 안정된 것이 없다.
그럴 때 오는 불안은 실로 크고 고되다.
초고에서 다음으로, 그리고 다시 다음으로 옮겨
쓰고 그렇게 하기를 몇번이고 반복한다.
그러는 동안 항상 끝 줄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끝 줄이 제자리에 놓이게 되면 나의 시
는 그것으로 마무리가 되는 것이다.

가령
산중에서 군주가 되라. 아!종이 호랑이여


이 것은 [心想]의 끝줄이다.

그 빈 잔 속에 담기는
나비 한마리

[아침커피]의 끝 줄이다. 이것들이 모두 마음에
흡족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결같이 망서리게
하던 마지만 끝줄임에는 틀림이 없다.

천마가 끄는 마차에
앉아 있다.

[웨버의 주제와 변주곡]의 끝줄이다.

세상은 파문
파문 속에서 산다.

[파문]의 끝줄이다.비교적 안도의 자세를 보이고
있는 끝줄이라고 혼자 생각해 본다. 어떤 경우
에는 끝줄이 미리 생각나는 경우가 있다.
그럴때 한편의 시는 쉽게 이룩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있어서 시의 마무리는 끝 줄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제대로 정착되면 붓을
놓아도 된다.

오늘은 예문으로 든 시가 너무 작아 여기 좋은시
최근작 한 편을 더 올려드리겠습니다.

박정대님의 <4월의 밤 이야기>입니다.

나는 [목련통신]을 만들며
4월을 다 보냈네. 그리운 꽃잎들은
창문 밖까지 왔다 간 한 척의 낮달
두 폭의 바람과 함게 멀어져 갔네

4월에는 이야기가 있었네
그러나 가슴 아픈 이야기는 말하지 않으려네
4월에도 나뭇잎과 나뭇잎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있음을
알았네. 그
틈서리에 깃들어 사는 새들의 어둠

그러나 새들도 어둠 속
침묵의 주인은 아니라네
어둠만이 어둠을 알아보는
어둠만이 간절히 별빛을 꿈꾸는
누군가 자신의 상처를
기타처럼 연주하던
어둠 속 침묵의 노래.
오래된 4월의 밤 이야기

이어서 이승훈님의 해설입니다.

"4월에도 밤이 있는가? 3월밤은 춥고 4월 밤은 애매
하고 5월 밤은 따뜻하다. 물론 4월 밤은 피를 흘리
는 경우도 있다. 박정대는 4월 밤에 [목련통신]을
만든다. 그러나 꽃잎들은 멀어져 가고, 나뭇잎과
나뭇잎 사이에 간격이 생긴다. 4월에 그가 보는
것은 간격, 틈, 사이이고, 이 사이가 4월을 만들고
새들을 만든다. 그러나 새들도 주인은 아니다. 왜
냐하면 새들도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
가 4월 밤에 읽는 것은 사이이고 이 사이에 오랜
이야기가 있다. 이 사이는 오랜 흔적이고 역사이고
어둠이고, 이 어둠이 어둠을 알아본다. 지사와
본사 사이에 박정대가 있다. 그는 특파원이다.


요즘하는 강의는 책을
읽는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접하셔도 될 것입니다.

============================================
 
362. 눈 위에 눈이 내리고 / 이태수
 
 

 
         
 
 
 
 

 
 
 
 
눈 위에 눈이 내리고
 
                              이 태 수
 
눈 위에 눈이 내린다.
이제 아무도 아파하지 않는다.
물에 물을 붓듯이 상처에
상처가 깊어진다.
누가 아프다, 아프다고 소리 지른다.
하지만
그는 어디가 아픈지는 알지 못한다.
숨을 잠시 멈췄다 깊숙이 빨아들인다.
눈 위에 눈이 내리고
병든 시대에 병든 세월이
자꾸만 드러눕는다.
 
 
이태수 시집 <물 속의 푸른 방> 중에서
 
 
 
 
 
이태수 연보
 
1947년 경북 의성 출생.
       영남대학교 철학과 및 대구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73~2007년 대구매일신문 문화부장, 편집부국장, 논설위원, 논설주간 역임.
 
1974년 <현대문학>에 시 <물소리> 외 5편 추천 등단.
 
1979년 제1시집 <그림자의 그늘> 발간.
 
1982년 제2시집 <우울한 비상의 꿈> 발간.
 
1986년 제3시집 <물 속의 푸른 방> 발간. 대구시문화상(문학부문) 수상.
 
1990년 제4시집 <안 보이는 너의 손바닥 위에> 발간.
 
1993년 제5시집 <꿈속의 사닥다리> 발간.
 
1995년 제6시집 <그의 집은 둥글다> 발간.
 
1996년 동서문학상 수상.
 
1997년 제7시집 <안동 시편> 발간.
 
1999년 제8시집 <내 마음의 풍란> 발간.
 
2000년 한국가톨릭문학상 수상.
 
2001~2007년 대구한의대 국문과 겸임교수.
 
2004년 제9시집 <이슬방울 또는 얼음꽃> 발간. 대통령 표창.
       미술 산문집 <분지의 아틀리에> 발간.
 
2005년 천상병시문학상 수상.
 
2008년 제10시집 <회화나무 그늘> 발간. 대구예술대상 수상.
 
2011년 단행본 <천주교대구대교구 100년 가톨릭문화예술> 발간.
 
 

2012년 육필시선집 <유등 연지>. 제11시집 <침묵의 푸른 이랑> 발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대구시인협회 회장, 대구시공직자윤리위원장 역임.
 
현재 금복문화재단 이사, 대구도시공자 이사, 육사시문학상 운영위원, 상화문학제 위원장.
<자유시>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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