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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녀성 시인 - 크리스티나 로제티 동시모음
2016년 05월 25일 22시 58분  조회:3086  추천:0  작성자: 죽림
달님
크리스티나 로제티



달님, 고단하세요?
안개의 면사포로 싸감은
해쓱한 얼굴.
동에서 서로 하늘을 재며
삼백예순 날, 쉬시지 않네.
밤이 오기 전에는
종이처럼 희고.
밤이 밝기 전에
아주 꺼져 버리고.



대답 네 가지
크리스티나 로제티



무거운 것은
모래하고 슬픔.
짧은 것은
오늘과 내일.
이내 무너지는 것은
꽃과 젊음.
깊은 것은 그럼 뭐니?
바다하고 진리지.



더 아름답다
크리스티나 로제티



강 위로 달리는 보오트
바다 위로는 돛단배.
그러나 하늘에 달리는 구름
구름이 배보다 더 귀엽다.
강에는 다리가 걸렸지만
아무리 다리가 아름답지만,
하늘에 걸린 무지개다리
높은 나무보다 더 높게
하늘과 땅 사이 길을 놓은
무지개다리가 더 아름답다.



뛰어다니는 양
크리스티나 로제티



뛰어다니는 양
뛰어다니는 아기
노란 꽃 피는
목장에서 논다.
새파란 하늘
부드러운 공기
들에는 햇빛 빛나고,
들길에는 그늘 덮이고.



뭣이 뭣이 빨갛니?
크리스티나 로제티



뭣이 뭣이 빨갛니?
샘가의 장미꽃.
뭣이 뭣이 붉으냐?
밭가운데 양귀비.
뭣이 뭣이 파랗니?
구름 동동 저 하늘.
뭣이뭣이 하얗니?
햇볕에 헤엄치는 고니.
뭣이 뭣이 노랗니?
익은 배가 노랗지.
뭣이 뭣이 초록빛?
이름없는 꽃이 피는 풀잎새.
아아 뭣이 뭣이 보라빛?
여름 저녁 떠가는 구름이 보라빛.
뭣이 뭣이 귤빛이지.
그건 귤나무의 귤이 귤빛이지.





바람
크리스티나 로제티



누가 바람을 보았답니까?
너도 나도 못 본 걸.
웬걸, 나뭇잎을 흔들며
바람은 저기 지나가지 않니.
누가 바람을 보았답니까?
너도 나도 못 본 걸.
웬걸, 나무가 고개를 숙이고
바람은 저기 지나가지 않니.



어린 양
크리스티나 로제티



엄마가 없는 아기양이
혼자 외롭게 언덕 위에.
아무리 부들부들 떨고 있어도
아무도 다정하게 품어주지 않겠지.
정말 가엾은 저 어린 양을
언덕까지 달려가서 잡아와야지.
데려다가 따뜻하게 기뤄줘야지.
힘세고 씩씩하게 될 때까지.




엄마와 아기
크리스티나 로제티




엄마 없는 아기와
아기 없는 엄마를
한 집안에 모아서
정답게 살게 하자.




제비
크리스티나 로제티



날아가라, 날아가라.
바다를 넘어.
해님을 좋아하는 제비야,
이제 여름도 다 지났다.
돌아오라, 돌아오라.
날아서 오라.
여름을 데리고 돌아오라.
해님도 가지고 오너라.




……것
크리스티나 로제티



꿀벌이 하는 일은
꿀을 따오는 것.
아버지가 하시는 일은
돈을 벌어오시는 것.
엄마가 하시는 일은
한 푼 남기잖고 돈을 쓰시는 것.
아기가 하는 일은
한 방울 남기잖고 꿀을 먹는 것.




크리스티나 로제티



―꿈 속에서 나는 작은 부엉이와
파란 새를 잡았었지.
―그렇지만 이 세상에선 너는
도저히 그런 새를 못 잡는다.
―꿈 속에서 나는 해바라기를 심었지.
핏방울처럼 새빨간 꽃이 폈어.
―그렇지만 이 세상의 저 햇빛 아래서는
그런 해바라기꽃은 피지 않는다.


무엇이 무거운가요?

 

 

                                            크리스티나 로제티(영국)

 

 

 

무엇이 무거울까요? 바다, 모래 그리고 슬픔이랍니다.

무엇이 잠깐일까요? 오늘과 내일이랍니다.

무엇이 연약할까요? 봄꽃과 젊음이랍니다.

무엇이 깊을까요? 바다와 진리랍니다.

 

 

 

 

<잠언으로 읽는 해설>

                            - 송용구(시인. 고려대 연구교수)

 

 

“나”의 마음 속에 쌓여있는 “슬픔”이

바닷가의 “모래”더미처럼 “무거워”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슬픔”은 “잠깐” 불다가 사라지는 바람 같지요.

“오늘” 피었다가 “내일” 시드는 들풀 같기도 합니다.

아무리 “무거운” 슬픔이라도

“바다”처럼 깊은 “진리”의 물결 속에 잠재우세요.

“젊음”의 “봄꽃”은 눈깜짝 할 사이에 시들어버리지만

 

“진리”는 내 마음의 땅에 깊고 영원한 뿌리를 내리니까요.
 

Christina Georgina Rossetti(1830-1894)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아버지는 시인이었으며 오빠는 시인이자 화가였다.

 크리스티나는

아버지와 오빠의 예술가적 자질을 이어받았고 영국교회의 열렬한 신자였던 어머니에게서

종교적 영향을 받았으며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생활고와 질병의 고통 역시 그녀의 작가

생활에 영향을 주었다. 열살 때 부친이 병에 걸려 장기간 투병생활을 하다가 퇴직했으므로

어린 크리스티나는 생계를 위해 어머니와 함께 탁아소 일을 했고 14세부터 각종 질병

(후두염, 결핵, 신경통 등)으로 고통을 받았다. 크리스티나는 두 번 약혼을 했으나 결혼하지

못했다. 첫번째 약혼자인 화가 제임스 콜린슨은 가톨릭으로 개종을 했기 때문에 파혼했으며,

30세가 넘어서 사귄 두번째 약혼자 찰스 카레이는 진정한 기독교 신앙인이 아니라는 판단

으로 결국 결혼 전에 헤어졌다.

 

크리스티나는 일곱살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31세에 첫 시집 <악귀시장 외 (Goblin Market

and Other Poems)>를 출판했다. 장시 長詩 <악귀시장>의 경우 두 자매가 악귀들의 불운을

겪는 난해한 주제가 중층적 복합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를 종교적 시험과 구원의 은유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에로틱한 욕구와 사회모순을 폭로하는 것이라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크리스티나는 많은 신앙시와 동시를 지었으며 대부분 간결하고 운률에 철저하다. 그녀의 시

속에는 페미니즘 요소가 흐르고 있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그녀는 전쟁, 노예제도, 동물학대,

미성년매춘에 적극 반대했으며 친구서클에서 활동하는 한편 매음굴 자원봉사자로 일하기도

했다.

 

크리스티나는 모더니즘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하다가 1970년대 페미니즘 학자들에 의해

재평가되어 빅토리아 시대 최고의 여성시인으로 조명되었다. 용모는 아주 예쁜 편은

아니지만 충분히 매력적이었다고 하는데 그녀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애인은 어느 화가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확실한 증거는 없다. 약혼자 카레이와 헤어진 36세 이후

그녀는 이웃을 위해 대신 속죄하는 훌륭한 삶을 살았다.

 

점점 더 신경통이 심해져 고생했으며 40대 초에는 큰 의지가 되었던 오빠 단테가 쓰러져

10년간 누워 있다가 사망했다. 그 충격 때문인지 최후의 12년 간은 침묵의 삶을 살다가

1894년 12월, 만 64세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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