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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는 신비한 혼혈아이다...
2016년 10월 01일 17시 54분  조회:3802  추천:0  작성자: 죽림

박노해, <시다의 꿈>/최지연      

 

 


 

함께하는 일터의 노래 

긴 공장의 밤 
시린 어깨 위로 
피로가 한파처럼 몰려온다 
  
드르륵 득득 
미싱을 타고, 꿈결 같은 미싱을 타고 
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 
시다의 언손으로 
장미빛 꿈을 잘라 
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을 싹뚝 잘라 
피흘리는 가죽본을 미싱대에 올린다 
끝도 없이 올린다 

아직은 시다 
미싱대에 오르고 싶다 
미싱을 타고 
장군처럼 당당한 얼굴로 미싱을 타고 
언 몸뚱아리 감싸줄 
따스한 옷을 만들고 싶다 
찢겨진 살림을 깁고 싶다 
떨려오는 온몸을 소름치며 
가위질 망치질로 다짐질하는 
아직은 시다, 
미싱을 타고 미싱을 타고 
갈라진 세상 모오든 것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싶은 
시다의 꿈으로 
찬바람 치는 공단거리를 
허청이며 내달리는 
왜소한 시다의 몸짓 
파리한 이마 위으로 
새벽별 빛나다 


박노해 `노동의 새벽'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1970년 11월13일 낮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의 절규는 노동자계급 최초의 자기선언이었다. 박정희 군사독재가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수출 드라이브의 뒷전에서 나사못보다 못한 대우에 시달리던 한 노동자의 분노는 스물셋 젊은 몸뚱어리를 장작 삼아 불타올랐다. 그것은 노동해방이라는 미륵세상을 갈구하는 지성의 소신공양이었다. 


그로부터 14년 뒤인 1984년 가을, 노동자계급은 또 한 사람 그들의 대변자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제 몸을 불사르는 방식은 아니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새벽 쓰린 가슴 위로/차거운 소주를 붓는다/아/이러다간 오래 못가지/이러다간 끝내 못가지”(박노해 `노동의 새벽' 첫 연). 


전태일의 분신과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의 출간은 그 형태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내용에서는 동일한 것이라 할 만하다.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고발, 계급해방에의 간절한 열망, 동료 노동자들을 향한 각성과 단결에의 외침이 그 두개의 형식 안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다. 그렇다는 것은 14년이라는 시간의 진행이 남한 노동자계급의 일과 삶에는 아무런 질적인 차이도 가져오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박노해(본명 박기평·39)씨가 공식 문단에 얼굴을 내민 것은 83년 황지우·김정환씨 등의 시동인 `시와 경제' 제2집 <일하는 사람들의 미래>에 `시다의 꿈' `하늘' `얼마짜리지' 등을 발표하면서부터다. 


“긴 공장의 밤/시린 어깨 위로/피로가 한파처럼 몰려온다//드르륵 득득/미싱을 타고, 꿈결 같은 미싱을 타고/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시다의 언 손으로/장미빛 꿈을 잘라/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을 싹뚝 잘라/피 흐르는 가죽본을 미싱대에 올린다/끝도 없이 올린다”(`시다의 꿈'1·2연). 


노동해방을 가리키는 필명을 앞세운 박노해의 등장은 남한 노동자 계급의 자기표현이 문학적 성숙을 이루었음을 뜻했다. 그의 시들은 송효순 유동우 석정남 등의 노동수기류를 계승하면서 발전적으로 넘어섰다. 수기와 생활글이라는 직접적이고 무기교적인 형식이 좀더 세련된 장르인 시로 넘어갔다는 점에 박노해 등장의 의미가 있다. 노동자의 삶을 다룬 시가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박노해의 노동시편들은 바로 노동자 자신에 의한 시쓰기라는 점에서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그는 일제시대의 뜨내기 노동자 출신 작가 최서해에 비견되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비슷한 무렵에 등단한 농촌 교사 시인 김용택과 함께 논의됐다. 


박노해의 노동시들은 특히 민중문학 진영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의 시를 접한 많은 지식인 문인들은 어쩔 수 없는 위축감을 맛보았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체험의 직접성이 가져온 충격이자 위축이었다. 채광석을 중심으로 한 일단의 민중주의자들은 자신의 출신성분을 저주하면서 노동자 계급에의 복무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반드시 그들과 같은 견해를 지니지 않은 이들일지라도 지식인 문학의 한계와 위선에 대한 반성은 시대의 유행과도 같았다. 박노해의 등장이 촉발한 문학창작의 주체 논쟁은 87년 김명인씨의 `지식인문학의 위기와 민중문학의 구상'이라는 논문을 거치면서 민족·민중문학의 급격한 이념 분화로 이어진다. 


박노해의 시집을 지금 읽어보면 당시 던진 충격은 많이 완화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박노해씨의 뒤를 잇는 여러 노동자 시인들의 시에 우리가 익숙해진 데다, 창작 주체에 관한 강박에서 벗어나 박노해 시의 성취와 한계를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일 것이다. 


< 노동의 새벽>의 시들은 예외없이 노동자의 일과 삶을 노래한다. 거기 그려진 노동자들은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때로는 밤을 꼬박 새우면서 힘겨운 작업에 시달리며, 그 과정에서 프레스에 손목이 잘리거나 심지어는 목숨을 잃을 위험에까지 노출돼 있다. 신혼의 노동자 부부는 작업시간의 차이로 인해 얼굴을 마주보기조차 쉽지 않으며, 모처럼 “찾아먹는” 휴일에도 별다른 오락과 취미생활을 즐길 경제적 여유가 없다. 거의 유일하게 허용되는 소일거리란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꼼장어에 막걸리 몇 잔 걸치며 냉정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과 분노를 영영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기어코 깨뜨려 솟구칠/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우리들의 사랑/우리들의 분노/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새벽 쓰린 가슴 위로/차거운 소줏잔을/돌리며 돌리며 붓는다/노동자의 햇새벽이/솟아오를 때까지”(`노동의 새벽' 마지막 연). 


< 노동의 새벽> 출간 이후 박노해는 흔히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렸다. `56년 전남 출생, 15살에 상경하여 현재 기능공'이라는, 시집 갈피의 간략한 소개말고는 그에 관해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상상력이 풍부한 이들은 `박노해'라는 이름이 노동시를 쓰는 창작집단이 편의상 내세운 공통의 필명일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세상의 호기심과 상상에는 아랑곳없이 박노해는 새로 창간된 격월간 <노동해방문학>에 시와 산문의 경계를 허문 형태파괴적인 `시사시(時事詩)'들을 선보이는가 하면, 남북노동자회담 제안, 현대자동차 파업 격려, 문익환 목사 방북 환영 등의 시평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이제 노동자 시인에서 노동운동가이자 혁명가로 변신하는 듯했으며, 그의 행보에 대한 관심과 열광은 `박노해 현상'이라는 조어를 낳는다. 


무릇 모든 절정은 파국과 추락을 예비하고 있음인가. 그는 91년 봄 사노맹의 `수괴'로서 구속돼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그해 <한겨레신문> 송년호에 실린 시 `그해 겨울나무'에서 그가 “그해 겨울,/나의 패배는 참된 시작이었다”고 갈파하거나, 옥중시집 <참된 시작>에 덧붙인 산문에서“참된 시는 날카로운 외침이 아니라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둥근 소리'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는 데에서 이 혁명가 시인의 강파른 세계관이 변모를 겪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구로공단과 가리봉 일대에는 구둣발에 밟히는 낙엽과도 같은 쓸쓸함이 흘러다닌다. 시속에의 적응이 잰 눈에는 10여년 전과의 차이가 분명히 보인다. 치떨리는 분노와 강고한 희망이 공존했던 노동자들의 얼굴에서는 적당한 체념과 그만큼의 안락이 잡히는 것 같다. 진한 살색의 외국인노동자들 모습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 것 역시두드러진 변화다. 가리봉역의 영어 안내방송은 그 한 부수효과일 것이다. 노동자들의 숫자가 줄어든 만큼 시장과 가리봉 오거리의 상점들 또한 흥청거리던 활기가 한결 덜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파업과 시위와 플래카드를 보기 어렵게 됐다. 박노해는 글렀던가? 적어도 그의 초발심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등단작 가운데 하나인 `시다의 꿈'을 읽어 보자. 


“아직은 시다,/미싱을 타고 미싱을 타고/갈라진 세상 모오든 것들을/하나로 연결하고 싶은/시다의 꿈으로/찬 바람 치는 공단거리를/허청이며 내달리는/왜소한 시다의 몸짓/파리한 이마 위로/새벽별 빛나다”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하고 싶은 `시다'(재단사 보조)의 꿈, 그 꿈이 우리를 살아 있게 한다. 전태일의 26주기를 맞아 여의도광장을 가득 메운 노동자들의 함성과 열기는 노동자 시인의 초발심이 역사의 한 큰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노해 시집을 중심으로 

어릴 적 길옆에 노랗게 익은 탱자를 따려고 하다가 가시에 찔려 피가 나오는 것도 그저 탱자를 따는 재미에 아픈 줄 몰랐었던 기억과, 가지고 놀다가 나중에 먹어본 기억이 있는데 지금도 탱자를 먹는 상상만 하여도 입안에 침이 가득 생성되고 얼굴엔 반사적으로 신맛을 표현해 내곤 한다. 갑자기 탱자먹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박노해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노동자의 아픔과 전태일의 분신자살 사건 등 1980년대의 우울한 추억이 취류탄의 매운맛과 버무려져서 떠오르기 때문이다. 박노해 시인은 195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출생하여 고흥, 벌교에서 자랐으며. 그곳에서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섬유,금속, 운수 분야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1983년 '시와 경제' 제2집에 '시다의 꿈' 외 6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84년 시집 '노동의 새벽' (풀빛. 1997년 해냄 재출간)을 간행한 후 '참된 시작'(창작과 비평사,1993년), '겨울 꽃핀다'(해냄,1999)시선집 머리띠를 묶으며(미래사,1991년), 산문집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노동문학사,1989년) '사람만이 희망이다'(해냄,1997년),'오늘은 다르게'(해냄,1999년) 등을 간행하였고 1991년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98년 8 .15 특별 사면으로 석방되었다. 그리고 제1회 노동문학상(1988년)을 수상하였다. 박노해는 1980년대 산업분야 노동시의 기수이다. 박노해의 시는 '우리'와 함께 한 것이기에 특히 주목된다. 그의 '노동의 새벽'에 실린 총 42편의 작품 중에서 '우리'라는 주체적 대명사가 나오지 않는 작품은 '한강', '그리움', '바겐세일', '시다의 꿈', '봄', '떠다니냐' 등 6편이다. 이 작품들이 초기의 것이라는 사실을 감한 한다면 박노해의 시세계는 단적으로 '우리'의 삶을, 즉 노동자의 삶을 추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신경림, 김지하 등의 앞 시대 민중시에도 '우리'라는 주체는 많이 나타나지만 지식인 시인들의 동정심이 내포된 것과 박노해의 주체적인 '우리'와는 차별되는 것이다. 박노해의 시세계는 첫시집 '노동의 새벽' 단계와 1988년 '노동해방문학' 단계, 그리고 사노맹 사건 이후의 단계 등으로 구분된다. 그에 의해 지식인 위주의 민중시가 노동자가 창작 주체가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아무나 시인이 될 수 없는 우리의 문단 풍토를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바꾸었고, 좋은 시의 기준으로 여겨오던 비유, 상징, 운율 등의 형식적인 면분만 아니라 내용도 중요함을 인식시켰다. 또 시가 텍스트의 대상을 넘어 사회변혁을 위한 실천운동의 매개체로까지 유용함을 갖게 하였다. 박노해의 시는 구체적인 노동 현장성을 확보한 데다가 시대의 문제로 집중 시켰기 때문에 시대인들로부터 공감대를 샀다. '포장마차, 손무덤, 신혼일기, 지문을 부른다' 등의 작품이 그 예이다. 

모래에 싹이 텃나 / 사장님이 애를 뱄나 / 이 좋은 토요일 잔업이 없단다 


이태리타올로 기름낀 손을 닦고서 / 작업복 갈아입고 담배 한 대 붙여 물면 
두둥실 풍선처럼 마음이 들떠 / 누구라 할 것 없이 한잔 꺽자며 
공장 뒷담 포장마차 커튼을 연다 / 쇠주파 막걸리파 편을 가르다 
다수결 두꺼비로 통일을 보고 / 첫딸 본 김형 추켜 곰장어 굽고 
새신랑 정형 얼러대어 / 정력에 좋다고 해삼 한 접시 
자격증 시험 붙어 호봉 올라간 / 문형이 기분 조오타고 족발 두 개 사고 
걸게 놓인 안주발에 절로 술이 익는다. 

새벽에 안서는 놈은 빚도 주지 말랬는데 
잔업에 곯다 보니 요게 새벽까지 기척도 안해 
일주일째 아내 고것 곰팡이 슬겠다고 /킬킬거리고, 이제 신혼 한달째인 
정형 새신부 토실한 히프 모양이 첫아들 날 상이라며 
좌우삼삼 일심구천 김형 5단계 노하우 전수에 
헤 벌리는 놈, 심각한 놈, 키득대는 놈, 
한 잔 두 잔 술잔이 돌아올 때마다 /우리는 녹아들어 하나가 되어 
송형은 문형에게 감정풀이 화해주를 청하고 
서씨는 전기과 박형과 찜짐했던 오해를 털어놓고 
노씨는 왕년에 광빨나던 시절 타령이 시작되고 
장단 맞추는 김형, 만주에서 개장수하며 독립운동하던 
뻥까는 야화가 기세를 올리면 부산 자갈치 공형, 
야야 치라 치라 벌써 백번째다 마 / 내 한 곡 뽑제, 니 박수 안치나 
두만강을 노저어 오륙도 돌아 / 개나리처녀 미워미워 
울고 넘는 박달재로 발길을 돌려 / 젓가락 두들기며 주전자뚜껑 드럼에도 
어깨 우쭐, 방뎅이 들썩, / 쿵따라 닥닥 조코 좆커 
영자야 안주 한 사라 더 주라잉 / 2차 가자 집에 가자 고고장 가자는 걸 
알들꾼 신씨가 눌러앉히고 한 병 두 병 더할수록 
거나하게 취기가 올라 / 좆같은 노무과장, 상무새끼, 쪽발이 사장놈, 
노사협의회 놈들 때려엎자고 / 꼭 닫아둔 울화통들이 터져나온다 
문형은 간신자식들 먼저 깨야 한다며 / 벌겋게 달아오르고 
정형은 단계적으로 구내식당부터 / 시정하자고 나직이 속삭인다 
상고 나와 기름쟁이 된 회계담당 김형은 
외상장부 넘겨 가며 / 계산을 한다 
냉수 한 사발 돌려 마시고 / 자욱한 연기 속 포장마차 나서면 
어깨를 끼고 비틀비틀 / 일렬횡대로 서 담벽에 오줌 까기고 
씨팔, 내일도 휴일특근 나온다며 / 리어카장수 떨이쳐 딸기 천원어치씩 
옆주머니에 꿰차고 / 작별의 손 흔들며 잔업 없는 오늘만은 
두둥실 토요일 밤을 흥얼거리며 / 아내가 기다리는 집을 향한다 
공장 가까이에 위치한 포장마차에서 잔업이 없다는 행복에 취해 오순도순 모여앉아 소주한잔 마시며 노동자의 아픔을 토로하던 기억처럼 박노해 시인의 시를 읽으면 내용속에 저절로 노동자의 피곤한 하루가 쉽게 와 닿는다. 어느 곳에서나 갈등은 있게 마련이지만 모든 갈등의 원인은 대화의 시간이 없는데서 나오는 사소한 불신의 벽에 원인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포장마차는 갈등과 오해를 푸는 만남의 장소인 것이다. 

올 어린이날만은 / 안사람과 아들놈 손목잡고 
어린이 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 
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 / 손목이 날아갔다 


작업복을 입었다고 / 사장님 그라나다 승용차도 
공장장님 로얄살롱도 / 부장님 스텔라도 태워 주지 않아 
한참 피를 흘린후에 / 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을 갔다 


기계 사이에 끼어 아직 팔딱거리는 손을 
기름먹은 장갑 속에서 꺼내어 
36년 한많은 노동자의 손을 보며 말을 잊는다 
비닐봉지에 싼 손을 품에 넣고 
봉천동 산동네 정형 집을 찾아 
사글한 눈매의 그의 아내와 초롱한 아들놈을 보며 
차마 손만은 꺼내 주질 못하였다 
훤한 대낮에 산동네 구멍가게 주저않아 쇠주병을 비우고 
정형이 부탁한 산재관계 책을 찾아 
종로의 크다는 책방을 둘러봐도 
엠병할, 산데미 같은 책들 중에 
노동자가 읽은 책은 두 눈 까뒤집어도 없고 


화창한 봄날 오후의 종로 거리엔 
세련된 남녀들이 화사한 봄빛으로 흘러가고 
영화에서 본 미국상가처럼 / 외국상표 찍힌 왼갖 좋은 것들이 휘황하여 
작업화를 신은 내가 /마치 탈출한 죄수처럼 쫄드만 


고층 사우나빌딩 앞엔 자가용이 즐비하고 
고급 요정 살롱 앞에도 승용차가 가득하고 
거대한 백화점이 넘쳐흐르고 / 프로야구장엔 함성이 일고 
노동자들이 칼처럼 곤두세워 좆빠져라 일할 시간에 
느긋하게 즐기는 년놈들이 왜 이리 많은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수 있는- 
선진 조국의 종로거리를 / 나는 ET가 되어 / 얼나간 미친 놈처럼 헤메이다 
일당 4,800원짜리 노동자로 돌아와 / 연장노동 도장을 찍는다 


내 품속의 정형 손은 / 싸늘히 식어 푸르뎅뎅하고 
우리는 손을 소주에 씻어 들고 / 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는다 
노동자의 피땀 위에서 / 번영의 조국을 향락하는 누런 착취의 손들을 
묻는다 / 프레스로 싹둑싹둑 짓짤라 / 원한의 눈물로 묻는다 
일하는 손들이 / 기쁨의 손짓으로 살아날 때까지 / 묻고 또 묻는다 


한 순간의 찰나에 손목이 날카로운 기계에 잘려도 고함한번 지르지 못하고 신음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묘사한 손무덤을 읽다보면 문득 진열장에 늘어선 많은 차가운 손을 보는 것처럼 가슴이 아파온다. 아마 진열되어 있는 저 숫자만큼 담벼락에 눈물로 뭍혀있을 노동자의 따듯한 손을 대하는 때문이다. 박노해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힘들고 어렵던 시절에 노동자의 안전을 무시하고 생산에만 매달려온 노동의 현장에서 공장 모퉁이 작은 공간에서도 끈질긴 생명을 유지하며 새싹을 틔우는 민들레처럼 아직도 백열등 아래에서 야간작업에 피곤한 몸으로 졸린 듯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새벽을 기다리는 노동자들을 만날 것만 같다.   

Ⅰ. 
1980년대 초반은 보통 시의 시대라고 한다. 그리고 중후반은 노동 문학으로 대표되는 민중 문학의 도도한 흐름이 있었던 시기이다. 이런 지난 시대에 대한 평가의 한 가운데 놓인 시집이 있다. 그 시집이 지금 내가 읽어가고 있는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이다. 

지금부터 10여년 전 그 시집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무엇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 아울러 그 동안 잊고 살았던 여러 기억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예를 들면 구로 공단 옆 뚝방의 벌집에서 한 착한 노동자인 삼촌, 재수생이었던 동생과 같이 했던 자취 시절. 그리고 이런 우리의 서울 생활을 보고 가슴아파하시다가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기억 등이다.

또 학교를 졸업하고 산업체 특별 학급의 담임으로 부임한 신출내기 중학교 선생님이 겪은 기억도 되살아났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오후 다섯 시까지 일을 하다가, 여섯 시까지 학교에 왔던(결석일수보다 등교일수가 조금 많았던) 얼굴에 핏기조차 없는 학생들의 얼굴. 풋내기 총각 선생님과 연애하자고 할 나이의 '말만한 처녀'인 중학생 옥자, 정희 ...... 

제도 교육의 틀 속에서 잘 길러진 시골뜨기였던 나는 서울에 와서 많은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런 삶을 살기보다는 이런 서울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사람이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나마 이런 체험들은 내게 이 시집을 읽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많은 기억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이런 생각들을 다시 떠올리면서 나는 이 시집을 읽고 있다. 그러면서 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 어떤 목표를 세우고, 이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 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 우리 자신들이 맡은 일에 대해 애정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우리들의 일이 행복한 일이라고 스스로가 자위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박노해 시인의 삶은, 세속적인 의미의 행복과는 거리가 있지만 역시 행복한 사람 중의 하나다. 1956년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으며, 상업학교를 졸업하고도 산업전사의 길을 택했던 시인이자 전위 노동 운동가. 또 혁명적인 사상을 소유했다는 이유 때문에 영어(囹圄)의 몸이 된 사상가. 박노해는 이처럼 평범하지 않은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군사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1983년 <시와 경제> 2집에 '시다의 꿈' 외 6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1970년대 전태일과 같은 전위 노동자가 있었고, 유동우의 <어느 돌맹이의 외침>도 있었다. 그러나 민중의 요구는 여전히 묵살되는 상황이었으며, 노동 현장의 외침은 불온한 것으로까지 치부되던 때이다. 

더구나 반민중적이고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잡은 당시의 신군부는 철저하게 이런 노동자와 민중의 요구를 탄압하고 있었다. 이런 1980년대 초반에 박노해는 이 사회의 공인(公人)이 되었다. 이 후 <노동의 새벽>(풀빛, 1984), <머리띠를 묶으며>(미래사, 1989), <참된 시작>(창작과 비평사, 1991) 등의 시집과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노동문학사, 1989)와 같은 산문집을 간행했으며, 1991년 "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구속되어 복역하였다. 

Ⅱ. 
특히 <노동의 새벽>은 얼굴 없는 시인이었던 그를 일약 1980년대 대표적인 시인의 한 사람으로 올려놓았다. 특히 광주민중항쟁 이후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민중 세력의 성장과 그 외침을 이 시집은 전달하고 있다. 억눌려 살기만 했던 민중들의 삶의 모습과 그들의 요구가 적극적인 문학적 형상으로 표출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이 시집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비인간적인 조건에 묶여 있는 노동자들의 고뇌와 꿈을 노동자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함으로써 우리 시의 새로운 가능성"(최원식, '노동자와 농민')을 보여주었으며, 운동의 구체성을 확보하지 못했던 이전 시기에 비하여 "노동자로서의 자기 인식, 현실 인식, 상호 인식을 온전히 달성"(신승엽, '노동문학의 현단계')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평가가 지금도 유효한지는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1980년대 중후반에 활발히 창작된 노동 문학이 민족 문학 속에서 정당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 1980년대 후반 우리 비평사를 뜨겁게 달구었던 민족 문학 주체논쟁을 촉발하는 계기도 제공하였다. 

여기서는 이런 그의 시 세계를 <노동의 새벽>이라는 시집을 중심으로 살피기로 한다.  우선 그의 시 세계는 1980년대라는 특수한 현실 속에 처한 노동 현장에 대한 충실한 보고서의 성격을 띄고 있다. 열악한 자본과 빈약한 천연 자원 위에서 경제 발전을 이룩하려 했던 우리의 현실은, 노동자의 땀과 피를 요구했다. 그리고 그 대가를 지불하고서야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우리 사회의 희생양 중의 하나였던 노동자. 이 노동자로 대표되는 민중들의 삶의 모습이 시집에는 집약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이 보고서의 진솔함이 모든 독자들(노동자, 농민, 소시민, 학생)에게 진한 감동으로 와 닿았다. 이를 통해 산업화의 양지 반대쪽에 있는 그늘에서 자라고 있는 잡초 같은 삶의 모습에 우리의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시집의 표제시이기도 '노동의 새벽'은 이런 노동자의 삶을 특히 잘 나타내고 있다. 세 그릇의 짠밤으로 진이 빠진 노동자들은 야간 작업을 하고 나와서 새벽 공복(空腹)에 소주를 마실 수밖에 없는 인생이다. 야간 작업, 철야 특근, 휴일 특근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현실. 그리고 이렇게 일해도 그들은 여전히 밑바닥 인생길을 걷고 있는 "돌이"와 "공순이"를 면할 수는 없었다.   

또 주민등록을 갱신하려고 동회에 갔다가 닳아 없어진 지문을 부르고 있는 '지문을 부른다'나 한 여성 노동자가 남성들에게 짓밟힌 삶의 역경을 극복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여성상을 그린 '남성 편력기', 가난한 노동자 가족의 사랑을 노래한 '이불을 꼬매면서', 전자 회사에 다니면서도 어린 동생의 영어 공부를 위해 카세트 하나 사주지 못하는 여성 노동자를 삶인 '영어회화' 등에도 우리의 노동 현실의 어두운 면이 사실적으로 나타나 있다. 

프레스에 잘린 동료 노동자의 손을 묻고 있는 '손무덤'을 보자. 

올 어린이날만은 
안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 
어린이 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 
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 
손목이 날아갔다 

작업복을 입었다고 
사장님 그라나다 승용차도 
공장장님 로얄살롱도 
부장님 스텔라도 태워 주지 않아 
한참 피를 흘린 후에 
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을 갔다 
                              -- '손무덤'의 부분 

36살 가장의 소박한 꿈과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산재의 희생양이 된 우리의 노동 현실이 자본가나 있는 자와의 대비를 통하여 잘 나타나고 있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접을 바라는 노동자의 요구는 무참히 짓밟히고 있었다. 그리고 눈매가 서글한 아내와 초롱한 아들을 둔 노동자와 그들의 피의 대가로 얻어진 고급 승용차가 이런 현실을 잘 보여 준다. 

그러나 이 시의 시적 화자는 산재 관계 책을 구하려 종로의 큰 서점을 들렸지만 구할 수 없는 현실에 봉착한다. 오히려 자신들과는 다른 번화한 봄날의 종로 거리에서 자신들의 비참함만을 확인한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제국주의와 프로 야구로 대표되는 독재 정권의 우민화(愚民化) 정책의 실상을 목격하게 된다. 

이런 노동자의 현실 인식은 박노해의 시에 절실하게 형상화된다. 그러나 이제 노동자는 이렇게 불합리한 현실을 알아차리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는 이 현실 인식을 통하여 새로운 각성(覺醒)에 이르고 있다. 자신들이 소외되고 불평등한 대접을 받고 있음을 인식하고, 자신들의 삶에 대한 사랑과 적대 세력에 대한 분노를 노래한다. 바로 이 점이 이전의 노동 문학과 크게 구별되는 점이기도 하다. 

선진조국의 종로거리를 
나는 ET가 되어 
얼나간 미친 놈처럼 헤매이다 
일당 4,800원짜리 노동자로 돌아와 
연장노동 도장을 찍는다 

내 품속의 정형 손은 
싸늘히 식어 푸르뎅뎅하고 
우리는 손을 소주에 씻어 들고 
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는다 
노동자의 피땀 위에서 
번영의 조국을 향락하는 누런 착취의 손들을 
일 안하고 놀고먹는 하얀 손들을 
묻는다 
프레스로 싹둑싹둑 짓짤라 
원한의 눈물로 묻는다 
일하는 손들이 
기쁨의 손짓으로 살아날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 '손무덤'의 부분 

이처럼 노동 현장의 보고서는 이제 새롭게 깨어나는 노동자의 정신과 외침을 노래하기에 이른다. 일하는 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형상화되고 있기도 하다. 개인적인 차원의 희망이나 한풀이가 아니라, 진정한 노동자의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집단의 의지가 표현되고 있다. 노동자들이 '기쁨의 손짓'을 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한 간절한 바램. 이것이 박노해의 시가 꿈꾸었던 세상이다. 

Ⅲ. 
이제 이런 박노해 시가 가지고 있는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를 형상화의 방법 측면에서 살피기로 하자. 그의 시 대부분은 서정 단시와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쉽게 읽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노동의 새벽>에 실린 시들은 긴 사설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 형식의 전통을 많은 부분에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형식상의 특징은 동일한 시구나 비슷한 구조를 지닌 시행을 반복하거나 대구(對句)로 표현하고 있다. 즉 반복이나 대구를 통해 나름의 시적 운율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비교적 긴 내용을 전달하면서도 빠른 호흡을 지닐 수 있었다. 이를 위해 그의 시는 짧은 시행을 반복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이런 형식적 모색은 '노동의 새벽'에서 보이는 방식으로, 이미 신동엽, 김지하와 같은 선배 시인들의 시 전통에 맥이 닿아 있다.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나 "오래 목사도 / 끝내 못가도", "우리들의 사랑 / 우리들의 분노"(윤여탁, '노동 그리고 참된 시작')와 같은 예에서 이런 형식 실험을 찾을 수 있다. 

또 그의 시에는 긴 사설을 주워섬기는 판소리 사설과 같은 가락과 표현을 계승하고 있다. 마치 판소리를 부르는 광대가 내용 전달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비슷한 표현(formula)을 끊임없이 동원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형식 역시 운율 의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남도적(南道的) 판소리의 가락에 얹혀져서 이야기가 전달된다.(특히 풍자시로 실험되고 있는 후기의 '시사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리고 자본가나 있는 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내용으로 하는 시들에서 이런 방식은 널리 쓰인다. 그의 많은 시들이 현실에 대한 비판과 폭로를 통해 우리의 노동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기서는 풍자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다음 시를 보자.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 이뻐서가 아니다 
젖은 손이 애처로와서가 아니다 
이쁜 걸로야 TV 탈랜트 따를 수 없고 
세련미로야 종로거리 여자를 견줄 수 없고 
고상하고 귀티나는 지성미로야 여대생년들 쳐다볼 수도 없겠지 
잠자리에서 끝내주는 것은 588 여성동지 발뒤꿈치도 안차고 
써비스로야 식모보단 못하지 
음식솜씨 꽃꽂이야 학원강사 따르것나 
그래도 나는 당신이 오지게 좋다 
살아 볼수록 이 세상에서 당신이 최고이고 
겁나게 겁나게 좋드라 
                                    -- '천생연분'의 부분 

시인은 아내이자 동지에게 보내는 이런 연애 편지를 자주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는 "항상 새순처럼 웃는 당신"만 있으면 "째지게 좋소"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끼리 만나서 살고 있는 삶과 그런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그들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순수 서정시'의 고상하고 조탁(彫琢)된 언어와는 거리가 있는 표현이다. 

이런 형식적 장치가 가지는 장점 외에도 그의 시가 가지고 있는 결점도 만만치 않다. 그의 시가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는 긴 사설에 의존하고 있으면서, 시인에 의해 이야기가 의해 서술되고 있다는 점이 우선 지적될 수 있다. 시인의 사상이나 감정이 직접 서술되거나 설명되는 시 형식은 우리의 민중시 일부가 보이는 결점이기도 하다. 

즉 박노해의 시도 역시 서정시의 넓은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면, 나름의 형상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노동자의 현실, 그리고 각성하는 노동자의 의식이 다른 대상을 통해 형상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시인은 이런 비유나 상징적 형상에 의존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사랑과 분노를 털어버리듯이 뱉어내고 있다. 

이 나름대로 장점이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만큼 절실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서정시는 행사시와는 달리 순간의 공감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영원히 우리의 마음 속에 남아 있어야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절실하게 다가와야 한다. 이것이 문학적 표현이나 형상이 가지는 감동의 본질이기도 하다.(그렇다고 해서 박노해의 시가 감동적이지 못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사실도 여기서 다시 밝혀 둔다.) 

이 점에서 그의 시는 거리가 멀다. 비교적 서정시의 본령과 가까운 시 예를 들면, '한강', '봄', '석양', '사랑'이나 '어머니' 등에서도 이런 현상은 마찬가지다. 그의 시에는 전투에 임하는 전사(戰士)의 결의만이 나타나 있다. 감상적인 속성을 지닌 서정에 안주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현실이고, 이를 극복하는 과제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일까? 

이 세상에 태어나 단 한 사람 
어머니의 가슴에 못을 박습니다 
어머님의 간절한 소망을 위하여 
이 땅의 모든 어머니의 비원을 위하여 
짓눌리고 빼앗긴 행복을 되찾기 위해 
오늘 우리는 불효자가 되어 
저 참혹한 싸움터로 울며울며 
당신 곁을 떠나갑니다 
                        -- '어머니'의 부분 

우선 어머니는 자식이 싸움터에 나가는 전사가 되기보다는 행복을 찾는 여행자가 되기를 바란다. 현학적인 신화 비평의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어머니는 다정다감하고, 우리가 몸과 마음을 쉬면서 안주할 수 있는 고향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박노해의 시에 나타난 어머니는 시인과 같이 한(恨)을 간직하고 있는 민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필자도 1980년대가 노동자가 아니 민중들이 행복하게 살기 어려웠던 시대라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좀더 따뜻한 사랑과 아름다운 사랑을 찾을 수는 없었을까?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나 악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나 착한 사람이 많지 않은가? 때로는 세상의 밝은 면을 찾아 읽을 수 있는 여유는 없었을까? 이것이 노동자의 아니 민중의 서정이라면 더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Ⅳ. 
지금까지 필자는 <노동의 새벽>을 새롭게 읽으면서, 그 장점과 단점을 살펴보았다. 이 글을 맺으면서 역사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점을 상기하고자 한다. 1990년대를 반이나 지낸 지금의 현실은 지난 10여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어져 있다. 그의 최근 시집 <참된 시작>에서 혁명적인 사상가였던 시인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는 엄연히 사실로 존재한다. 부정한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시대의 사회적 현실에 대해 온몸으로 부딪쳤던 박노해 시의 성과는 부정될 수는 없다. 다만 아쉬움이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서는 새롭게 논의될 수 있으리라. 1980년대라는 격동의 시대에 대한 충실한 보고서로서의 역할, 그리고 그런 현실에 대한 각성을 보였던 노동자 외침으로의 역할을 그의 시집 <노동의 새벽>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채광석은 일찍이 이 시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해설을 한 적이 있다. 이런 평가는 세월이 흐르고 사회 현실이나 국제 정세마저도 많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유효하다. 그리고 필자가 많은 지면을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이보다 더 요약적으로 이 시집을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 실린 그의 시들은 노동현실의 구체적 체험에 깊이 뿌리박고 그 현실을 살아가는 근로자들의 절망과 슬픔, 원한과 분노의 정서를 놀랍도록 생생하게 담아낼 뿐만 아니라, 이것들이 인간다운 삶을 향한 주체적 일어섬 속으로 녹아 들어가 일궈 내는 민중해방의 정서를 탁월하게 보여주고 있다.('노동현장의 눈동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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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메이비」

 


 

<천막교실, 가마니 위에 비는 내리고.> 


우리는 고무신으로 찝차를 
만들었다. 미군 찝차가
달려왔다. 네가 
내리고.



미군들이 쑤왈거리다가 메이비,
하고 떠나고. 그리하여 너는
메이비가 되었다.
미제 껌을 씹는 메이비. 종아리맞는
메이비.
흑판에 밀감을 냅다 던지는
메이비. 으깨진 조각을 줏으려고
아이들은 밀려닥치고
그 뒤에, 허리에 손을 얹고 섰는
미군같은 메이비.



남자보다 뚝심 센 여자애보다
뚝심 센 메이비. 여자애를 발길로 
걷어차는 메이비.



지금은, 비가 내리고, 
어느 틈엔지 미군들을 따라 
떠나버린 메이비.



바다 건너가 소식도 모를,
제 이름도 모르던 메이비. 어차피
어른이 되어서는 모두가 고아였다.
메이비. 다시는 너를 
메이비라고 부르지 않을 메이비.


       장영수 (1947 - )「메이비」전문



   이 시는 전쟁 혼혈아 친구에 대한 기억들을 사실적으로 기술한다. 짧은 에피소드들이 연결된 한편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그 친구는 미군들이 쑤왈거리다가 메이비 하고 떠나는 바람에 메이비라는 이름으로 불려진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 얻게된 메이비라는 이름처럼 툭 던져진 자신의 앞날이 결코 평탄치 않으리라는 불안감을 갖기에는 메이비도 화자도 너무 어린 나이였다. 


   하지만 성인이 된 화자는 모두가 고아였다는 인식 속에서, 고단한 인생을 살아내고 있을 메이비에 대해 동질감과 연민을 갖게 된다. 화자는 메이비를 더 이상 메이비라고 부르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다른 이름을 알지 못해 결국 메이비라고 그를 지칭하며 끝을 맺는다. 우리들의 인생이 곧잘 그렇듯, 슬픈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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