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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는 무지개의 빛갈과 같다... 아니 같다...
2016년 10월 09일 23시 01분  조회:3297  추천:0  작성자: 죽림


3. 「전화이야기」의 수용 양상
(1) ‘전화’ 담화를 통한 수용

김수영이 남긴 170여 편의 시 중 ‘전화’라는 의사 소통 매체를 통한 담화 양상을 보여준 시는 「전화이야기」 단 한 편뿐이다. 그러나 김수영 이후의 많은 시인들이 「전화이야기」에서 김수영이 보여준 기법을 자신들의 시에 수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단순히 ‘전화’라는 소통 매체의 도입에 그치지 않는다. 

여보세요 雨期야요 전화할 수
없었어요 어제도 없었어요 그저께도
없었어요 심연이야오 망설임이야요
가방을 들고 제3한강교를 기어갔어요
여보세요 내 말 들려요? 雨期야요 내 원고는
온통 가짜야요 내가 잘 알아요 흐느낌이 없어요
피를 흘리지 않아요 웃으면서 썼어요
발로 썼어요 개발 소발 웃음을 참으면서
지겹게 썼어요 찢어 버렸어요 내가 쓴 논문도 가짜야요
여보세요 거울이 웃어요 거울이
나를 보고 있을 때 비로소 산이
보여요 어제부터야요 산으로 올라가는
개미가 절망이 탄식이 욕설이 어제부터야요
부쓰의 아이러니야요 부쓰 부스 그래요 장화? 케네쓰
버크 놀이의 절망 모티프의 절망 구토 탐닉
거지같은 시야요 여보세요 그래서 기뻐요
전화할 수 없었어요 고마와요 오 윌리 닐리
여보세요 끊지 말아요 끊지....
-이승훈, 「전화」, 「당신의 방」, 문학과지성사, 1986, p. 91. 

이 시는 김수영이 「전화이야기」에서 보여준 기법을 상당부분 이어받고 있다. 제목부터가 「전화」로 되어 있는 이 시는 의도적으로 김수영의 「전화이야기」를 차용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준다. 「전화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던 ‘절망’이 이 시 속에서도 중요한 시어로 자리하고 있다는 점, 「전화이야기」가 앨비의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번역 원고에 대해 송화자가 이야기하는데, 「전화」에서도 자신이 쓴 ‘원고’, ‘논문’에 대해 송화자와 얘기하고 있다는 점 등이 그런 느낌을 갖게 한다. 또 이승훈의 「전화」에서 ‘부쓰’와 ‘케네스 버크’라는 외국 문인의 이름이 거론되는 점도 「전화이야기」에서 ‘앨비’를 거론한 것과 비슷한다. 
이승훈이 이 시에서 보여준 독창적인 면이라면 ‘부쓰’를 ‘장화’에 연결시키는 펀(pun)의 기법이 사용되었다는 것, 또 “거울이 웃어요 거울이/ 나를 보고 있을 때 비로소 산이/ 보여요”에서 초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시가 강력한 선배 시인 김수영이 성공적으로 마련한 기법을 능가하는 시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시는 ‘내 원고’ ‘내가 쓴 논문’에 대한 회의를 통해 자의식을 탐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김수영의 시와는 변별된다. 이승훈의 「전화」에서 수화자와 발신자의 교호 작용이 「전화이야기」에서만큼 중요하지 않고 화자의 발화 자체가 더 중요해 보이는 것은 이러한 자의식 탐구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여보세요 내 말 들려요”와 “여보세요 끊지 말아요 끊지……”는 수화자와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는 상황을 효과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승훈 시의 이러한 특성은 1975년 6월에 쓴 시 「겨울 저녁」에서도 이미 드러났던 것이다. 그러나 「겨울 저녁」 역시 「전화」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므로 여기서는 자세히 분석하지 않는다. 

어이 이봐 이거 공중전환데, 이리루 잠깐 얼굴 내밀 시간 없어? ∨ 어디냐구? 강서구청 뒤야. 땅에 포원이 진 서울 사람들이야 믿기 힘들겠지만 여긴 시골 학교 운동장 같은 빈터가 있어.∨ 아냐, 그런 이야기가 아니구, ∨ 요즘 내가 신경이 좀 이상하다구? 이런! 아니 글쎄(이건 유행가 제목이군) 그 이야기가 아니구 잡풀 그래 잡초 말이야. 여긴 그게 많단 말이야. 

이런 빌어먹을. 여긴 내가 매일 좀 앉았다가 가는 장소거든. 답답해 미치겠어. 잡풀에게도 이름이 있을 게 아냐? 아니 이것 봐, 이름을 알아야 불어내어 말이라도 좀 해 볼 것 아냐? ∨ 뭐라구? 지랄한다구! 그래 지랄이야 하든 말든 좋아. 넌 농림학교 출신이지? ∨ 식물 도감이 틀려! 식물 도감이 엉터리라구. ∨ 뭐라구? 잡풀은 잡풀이라구? 이런 빌어먹을. 아니 이 세상에 이름이 없는 게 어디 있어! 글쎄, 나 원, 아니 그럼 대중도 사람 이름이냐? 군중도, 시민도, 행인도? 이거 나 참! 
- 오규원, 「공중전화」, 「이땅에 씌어지는 抒情詩」, 문학과 지성사, 1981, p. 66.(∨ 표시 인용자).

오규원은 ‘전화’라는 소통 매체를 그대로 활용하고 있지만 그 전화를 ‘공중전화’로 바꾸어 놓는다. ‘공중전화’는 ‘전화’보다 운동장 빈터에 자라고 있는 잡풀들의 이름이 궁금해진 화자의 급한 심정을 전달하기에 보다 효과적인 매체이다. 여기서도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은 화자의 목소리 외에 화자와 같은 시간상에서 교호 작용을 하고 있는 청자의 목소리를 느끼게 된다. 이 시의 독자는 이 두 사람만의 사적인 대화를 엿듣는 듯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 표시를 한 부분은 수화자가 무언가 발화를 했으리라고 추정되는 곳이다. 그리고 독자들은 이 부분을 통해 시의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수화자의 개성까지도 짐작하게 된다. 
오규원의 「공중전화」는 ‘전화’와는 다른 측면에서도 김수영의 영향을 느끼게 한다. 이름없는 잡풀을 ‘대중’, ‘군중’, ‘시민’ 등에 비유함으로써 김수영이 그의 시 「풀」을 통해 이룩한 것으로 여겨져온 민중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오규원의 「공중전화」에는 김수영의 「전화이야기」의 기법과 「풀」의 민중 이미지를 결합되어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위에서 인용한 이승훈, 오규원의 시가 김수영의 영향을 비교적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면, 다음에 인용할 시들에서는 김수영의 영향이 감추어져 있다. 

보러 가자. 정확한 시간은 물라. 내가 어떻게 지들이 언제 그러고 있는지 알겠어? 바다와 달, 지들끼리 알아서 할 문제야. 우린 그냥 지들이 그러는 동안에 갈라진 바다 사이로 하섬 가면 되는 거야. 생각해봐. 장화를 빌려 신고 갈라진 바닷속을 걷는 거야. 불도 없는 섬을 향해 달빛이 교교히 비치는 바다를 건너가는 거야. 그리고, 또 다음날 보름달이 바다를 다 마셔버리면 우리는 또 그 섬을 나오면 되는 거야. 원불교 섬인데 지금 아무도 없어. 갈래? 시인이 그런 데 안 가면 되니?
-김혜순,「부안군 변산면 마포리 하섬」 부분,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문학과 지성사, 1994. p. 32. 

「부안군 변산면 마포리 하섬」은 1, 2, 3, 4의 네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위에서 인용한 것은 1이다. ‘1’의 끝, “시인이 그런 데 안 가면 되니?”의 뒤에는 “이영자의 전화”라는 미주 표시가 붙어 있다. 그러니까 인용하지 않은 2, 3, 4는 화자의 발화이고 인용한 부분은 ‘이영자’의 발화를 화자가 재현한 것이다. 그러니까 화자의 친구 이영자가 ‘시인’인 화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하섬이라는 곳에 같이 가기를 권유한 것을 화자가 다시 옮겨 적은 것이 인용한 부분인 것이다. 
이 시가 ‘전화’라는 매체를 통한 담화임이 분명하고 송화자와 수화자가 분명히 제시되어 있지만, 여기서 수화자의 역할은 앞의 두 시에 비해 현격히 제한되어 있다. 이영자는 ‘시인’에게 전화를 걸어 하섬이란 곳에 같이 가기를 권유하고 있지만, 굳이 ‘시인’의 반응을 살피지는 않는 듯이 보인다. 그냥 하섬의 신비로움에 대해 청자에게 전달하는 것 자체로 만족하는 듯이 보이는 것이다. 김혜순의 이 시는 전화라는 소통 매체를 활용하고 있으면서도 시의 표면적 화자가 청자의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기법이라고 생각된다. 김승희는 김혜순과는 또다른 차원에서 ‘전화’를 새롭게 활용하고 있다. 

여보세요, 385의 2053입니다.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대단히 죄송합니다, 전화거신 분의 성함과 연락처를 말씀하시면 제가 곧 연락드리겠어요, 그럼 삐- 하는 소리가 난 후 말씀을 시작해 주세요…….
여보세요, 김 선생님, 저 문학사상 김명순인데요, <시녀> 후기 원고 어떻게 되셨나 해서요, 마감날이 사흘이나 지났는데……외출하셨나보군요, 빨리 연락주세요!……
―김승희, 「떠도는 환유2」 부분, ꡔ어떻게 밖으로 나갈까ꡕ, 세계사, 1991.

이 시는 송화자와 수화자가 뚜렷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발화가 모두 시의 표면에 등장한다. 그러나 그 발화는 동일시간대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시간을 달리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전화 중에서도 ‘자동응답기’라는 새로운 매체가 등장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진 새로운 시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시에는 “여보세요, 385의 2053입니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자동응답기에 녹음해놓은 목소리와 “여보세요, 김 선생님, 저 문학사상 김명순인데요”라고 하면서 이 목소리와 교호 작용을 하는 또다른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두 사람의 교호 작용은 동시간대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시간차를 두고 일어난다. 이 경우는 각각의 발화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은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기법은 ‘의미와 단절된 목소리의 유형들만이 떠도는 이 시대의 삶을 암시’ 한다. 
‘자동응답기’의 등장 이후에도 삐삐, 핸드폰 등이 등장해서 생활 양식의 변화는 물론, 시의 담화 형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 글의 목적이 ‘통신수단’의 발달 양상을 끝까지 추적하는데 있지 않으므로 삐삐나 핸드폰을 활용한 시들을 이 논문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여기까지의 설명만으로도 김수영의 영향을 얘기하기에는 충분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2) ‘전화’ 담화의 변용을 통한 수용

김수영은 시에 전화라는 소통 매체의 특징을 도입함으로써 시에 변화를 가져온다. 그 변화의 대표적인 것은 화자와 청자가 동일한 시간대에 발화하면서 서로의 발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 또 시의 독자는 화자와 청자의 사적인 대화를 엿듣는 듯한 상황에 놓인다는 점 등일 것이다. ‘전화’라는 매체를 통하지 않고도 이러한 특징을 그래도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낸 시인들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황지우이다. 

절망의 시한폭탄은 아니구요. 디 임파서블 드림예요. 가방이죠. 열어보라구요. 그러죠, 뭐. 사건은 없어요. 아 이게 뭐냐구요.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죠. 아편은 아니구요. 온건하지요. 다른 저의는 없어요. 필독서예요. 은유가 전혀 없구요. 알리바이에 대한 일종의 옹호에 불과해요. 아, 이건 또 뭐냐구요. 한국 경제의 전개 과정이죠. 이젠 굶는 사람은 없잖아요. 외채는 할 수 없어요. 1인당 70만 원이라메요. 몇 사람이라도 집중적으로 배부르게 해야죠. 그게 성장의 총량을 명시적으로 늘리는 방법이죠. ..... 이건 뭐냐구요. 어려워요. 오리지날이죠. ....
-황지우, 「아, 이게 뭐냐구요」, ꡔ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ꡕ, 개정판, 민음사, 1995, pp. 47-49.

이 시는 ‘<전화 이야기> 풍으로’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부제가 보여주는 것처럼 이 시는 김수영의 「전화이야기」의 영향을 상당히 짙게 보여주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예요’, “.............죠”라는 해요체의 종결어미이다. 그리고 주어를 생략한 짧은 문장들도 다분히 김수영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전화이야기」의 ‘아메리칸 드림’은 이 시에서 ‘디 임파서블 드림’으로 패러디된다. 무엇보다 이 시는 표면에 드러난 것은 화자의 일방적 독백이지만 이것이 시 속의 함축적 청자와의 교호작용에 의한 것으로 되어있다는 점에서 「전화이야기」의 방식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황지우는 자신의 시 속에 김수영 시의 제목을 직접 노출시키는가 하면, 김수영 시를 직접 패러디함으로써 해체적 독서의 다양성을 다소 감소시키고는 있다. 그러나 황지우는 여기에 새로운 시도를 추가한다. 김수영의 시가 보여준 ‘전화’를 통한 담화의 모습을 불심검문을 당하는 담화 상황으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이 시의 현실 참여적 공간을 열어 놓은 것이다. 지식인으로 추정되는 이 시의 화자는 불심검문을 당해 가방을 열어보이면서 검문하는 사람과 담화하고 있다. 검문하는 사람의 말은 시의 표면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화자의 말을 통해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다는 것이 이 시의 중요한 특징이다. 검문자는 화자를 향해 ‘이게 뭐냐’, ‘가방을 열어 보라’, ‘이 책은 뭐냐’는 등의 말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길에서 가방을 들고 지나가는 평범한 사람이 검문 당한다는 사실, 책을 모두 불온서적이냐 아니냐의 시선으로 재단하는 검문자의 태도 자체가 시대 고발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지만, 여기에 더불어 책의 내용에 대해 설명하는 화자의 담화는 저항시로서 기능하고 있다. “외채는 할 수 없어요. 1인당 70만 원이라메요. 몇 사람이라도 집중적으로 배부르게 해야죠”라는 풍자와 역설을 통해 빈익빈 부익부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는 김수영에 대한 해체적 독서를 통해 「전화이야기」의 기법을 차용하는 한편, 여기에 현실의 모순을 고발하는 내용을 추가하여 「전화이야기」와는 또다른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 속에 화자와 청자가 있고 두 사람이 교호 작용을 하고 있다고는 짐작되지만, 청자의 직접적 발화 내용은 들을 수 없는 형식의 시는 다른 시인들에게서도 발견된다. 


보 신 먹 니 배 력 족 ? 기 죠
탕 어 까 하 넘 은 올 힘 복 그
을 보 ? 는 치 실 림 들 날 래
셨 섹 이 는 로 픽 게 개 도 니
읍 스 비 세 곤 어 됐 패 요 다
가 대 상 란 쩌 어 듯 절 강 식
지 하 에 한 구 요 이 을 요 무
고 서 일 하 어 란 강 당 의 하
정 양 이 더 떻 속 요 하 식 고
기 아 니 든 담 당 는 이 치 면
부 닙 보 개 까 하 性 모 밀 어
니 신 들 지 는 영 두 한 떻 도
까 탕 은 있 개 화 강 조 게 토
도 살 는 들 관 요 직 해 룡 만
먹 판 이 은 의 하 에 야 탕 저
난 나 줄 포 는 서 하 도 는 읍
거 라 지 스 性 벗 죠 먹 억 니
에 않 터 이 어 ? 고 눌 다 석
서 을 가 거 나 뱀 있 려 이 진
겝 의 대 려 탕 지 있 구 데 서
- 이승하, 「밀러 씨와의 외출」, ꡔ우리들의 유토피아ꡕ, 나남, 1989, p. 32. 


왜 내 마음은 단칼에 잘라지지 않는 걸까요? 깨끗이라고 말하면서 깨끗이 헹구어낼 수 없는 걸까요? 1980년엔 결혼을 했어요. 불이 났어요. 늑막염에 또 걸렸어요. 그 다음해부터 라일락 꽃잎이 냄새가 안 나요. 종이꽃들이 폈다가 져요. 물 속에선 물꽃들이 폈다가 지고, 불 속에 선 불꽃들이 피었어요. 죽은 나무도 정원에 서 있어요. 죽은 지 7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서 있어요.
- 김혜순, 「너와 함께 쓴 시」 부분, ꡔ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문학과 지성사, p. 12.

위의 인용시는 모두 화자와 시의 표면에 나타나지 않은 숨은 청자와의 교호 작용에 의한 발화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시에서는 화자와 청자의 교호작용이 중요하다기보다 화자의 발화자체가 중요한 것이 된다. ①은 제목이 ‘밀러 씨와의 외출’인 것으로 보아 화자의 질문 ‘보신탕을 먹어보셨습니까?’, ‘--양기 부족은 실로 곤란한 일이 아닙니까?’, ‘--이 거대하고 치밀한 조직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하죠?’는 ‘밀러 씨’를 향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밀러 씨’의 발화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리고 화자의 말 또한 청자 밀러 씨와의 교호작용 속에서 발화된 것이라기보다, 넋두리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만큼 청자의 역할은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밀러 씨와의 외출」을 읽는 독자는 화자와 밀러 씨와의 사적인 대화를 엿듣는 것과 같은 위치에 처하게 되는데, ②의 경우 「너와 함께 쓴 시」에서도 독자는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시에서는 청자의 역할이 앞의 시에서보다도 더 제한되어 있다. 이 시의 제목이 「너와 함께 쓴 시」인 것으로 보아, 화자의 말을 들어주는 대상이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청자가 발화를 했는지, 또 했다면 어떤 발화를 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화자의 발화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화자는 청자에게 굳이 그런 역할을 부여하고 있지도 않다. 청자인 ‘너’는 화자의 말을 유발시키면서 그 말에 대한 반응을 보이는 존재라기보다 화자 옆에 있어주는 것으로 그 의의를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청자의 역할이 줄어들고 화자의 발화 내용조차 불분명해지는 것은 현대인의 개인과 개인간의 단절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4. 결론
김수영의 「전화이야기」는 ‘전화’ 통화하는 것을 재현해 놓음으로서 서정시의 영역을 새롭게 확장한 시라고 생각된다. 「전화이야기」가 ‘구술 언어’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전화’라는 의사 전달 매체를 시에 도입함으로써 화자와 청자의 역할에도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전화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송화자의 음성으로만 이루어져 있지만 시의 독자들은 수화자의 음성까지 짐작하며 읽게 된다. ‘전화’라는 매체는 송화자의 발화가 수화자에 의해 영향을 받고 수화자 역시 송화자의 발화에 영향을 받는다는 특징을 지니는데 「전화이야기」의 언술이 이러한 모습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때 시의 독자는 송화자와 수화자의 사적인 전화 통화를 엿듣고 있는 듯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 또한 이 시의 중요한 특징이다. 
170여편에 이르는 김수영의 시 중 ‘전화’를 활용한 시는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김수영 이후의 많은 시인들이 「전화이야기」에서 김수영이 보여준 기법을 자신들의 시 속에 수용하고 있다. 이승훈의 「전화」, 오규원의 「공중전화」, 김혜순의 「부안군 변산면 마포리 하섬」, 김승희의 「떠도는 환유 2」 등은 ‘전화’를 활용하여 화자의 발화 외에도 청자의 발화까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황지우의 「아, 이게 뭐냐구요?」, 이승하의 「밀러 씨와의 외출」, 김혜순의 「너와 함께 쓴 시」 등은 ‘전화’라는 매체를 통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시 속의 화자와 청자가 서로 교호(交互) 작용을 하고 있으며 시의 표면에는 화자의 발화만 드러난다는 점에서 김수영의 「전화이야기」를 수용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김수영 당시 걸고 받는 기능만을 했던 전화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지게 되었고 의사 전달 매체도 삐삐, 핸드폰, 인터넷 등으로 훨씬 더 다양해졌다. 이러한 매체들의 등장은 당연히 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그것까지를 모두 포함시키지는 않았다. 의사 전달 매체의 변화를 끝까지 추적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며, 또 김수영 시 「전화이야기」가 우리 시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를 밝히는 것은 이 글에서 다룬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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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를 사랑한 걸 ―허영자(1938∼)

무지개를 사랑한 걸
후회하지 말자

 



 

 

풀잎에 맺힌 이슬
땅바닥을 기는 개미
그런 미물을 사랑한 걸
결코 부끄러워하지 말자

 



그 덧없음
그 사소함
그 하잘 것 없음이
그때 사랑하던 때에
순금보다 값지고
영원보다 길었던 걸 새겨두자




눈멀었던 그 시간
이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기쁨이며 어여쁨이었던 걸
길이길이 마음에 새겨두자. 

 

 


고향에 간다. 이것은 가족 친지를 만난다는 것 외에 다른 의미가 있다. 고향에 가는 것은 일종의 ‘돌아감’이다. 그곳에는 지금의 자신과는 전혀 다른 나, 즉 과거의 내 모습이 여운처럼 남아 살고 있다. 그러니까 고향에 가는 일을 비유하자면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과 같다. 과거 어린이로서의 본인이 뛰어놀던 장소들을 보게 되면 그때의 장면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고, 그때의 어린 자신이 마음 안에서 살아나는 듯하다. 사람들은 이런 기억이나 현상을 ‘추억’이라고 부른다. 고향은 대개 어린 추억이 층층이 쌓인 곳이어서 우리로 하여금 과거로 돌아가는 깊은 경험을 하게 만든다.

허영자 시인의 작품은 고향에 가지 않아도 유년의 추억과 눈부심을 만나게 해준다. 게다가 이 시인의 작품은 과거의 어린 추억이 지닌 가치를 ‘무지개를 사랑한 일’이라고 표현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준다. 시인의 표현을 따라서 쪼그리고 앉아 풀잎에 맺힌 이슬을 한참 바라보는 아이, 개미를 신기하게 관찰하는 아이를 떠올려 보자. 어른의 눈에는 별 가치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미물들을 사랑했던 그 행동들은 참으로 순수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인은 바로 그 순수한 기쁨이야말로 너무나 소중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작은 것에도 눈을 반짝이던 그 시절은 이미 무지개처럼 사라졌다. 그렇지만 이 시를 보면서 순수한 어린 시절이 무지개처럼 아름다웠음을 오래 기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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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6 詩人은 존재하지 않는 詩의 마을의 촌장 2016-10-01 0 3565
1625 詩人은 오늘도 詩作을 위해 뻐꾹새처럼 울고지고... 2016-10-01 0 3745
1624 詩作에서 구어체 편지형식을 리용할수도 있다... 2016-10-01 0 3505
1623 詩人은 약초 캐는 감약초군이다... 2016-10-01 0 3724
1622 詩人는 언어란 감옥의 감옥장이다... 2016-10-01 0 3609
1621 詩人은 추상화와 결혼해야... 2016-10-01 0 3671
1620 詩란 섬과 섬을 잇어놓는 섶징검다리이다... 2016-10-01 0 3127
1619 詩란 돌과 물과 바람들의 침묵을 읽는것... 2016-10-01 0 3390
1618 詩란 사라진 시간을 찾아 떠나는 려행객이다... 2016-10-01 0 3689
1617 詩作란 황새의 외다리서기이다... 2016-10-01 0 4289
1616 詩란 한잔 2루피 찻집의 호롱불이다... 2016-10-01 0 3351
1615 詩란 사라진 길을 찾는 광란이다.... 2016-10-01 0 3783
1614 詩는 한해살이풀씨를 퍼뜨리듯 질퍽해야... 2016-10-01 0 3535
1613 나는 다른 시인이 될수 없다... 2016-10-01 0 4559
1612 詩는 국밥집 할매의 맛있는 롱담짓거리이다... 2016-10-01 0 3333
1611 詩란 심야를 지키는 민간인이다... 2016-10-01 0 3556
1610 詩는 한매의 아름다운 수묵화 2016-10-01 0 3821
1609 詩는 신비한 혼혈아이다... 2016-10-01 0 3802
1608 詩作에는 그 어떠한 격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2016-10-01 0 3391
1607 詩는 길위에서 길찾기... 2016-10-01 0 3616
1606 詩에는 정착역이란 없다... 2016-10-01 0 3401
1605 詩와 윤동주 <<서시>> 2016-10-01 0 3331
1604 詩는 리별의 노래 2016-10-01 0 3049
1603 詩人은 풀잎같은 존재이다... 2016-10-01 0 3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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