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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 대표적 영국 시인 - T.S.엘리엇
2016년 10월 16일 17시 23분  조회:6646  추천:0  작성자: 죽림
현대시를 이끈 시대의 대변인

T. S. 엘리엇

Thomas Stearns Eliot
 
출생일 1888년 09월 26일
사망일 1965년 01월 04일
대표작 〈황무지〉, 〈사중주〉, 〈칵테일 파티〉 등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하였다. 20세기 모더니즘을 이끈 대표적인 시인으로 염세적인 정서와 새로운 방식의 시적 기교로 독창적인 시 세계를 펼쳐 나갔다. 194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T. S. 엘리엇
T. S. 엘리엇

T. S. 엘리엇은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로, 20세기 시와 비평 분야에 혁명을 일으킨 인물이다. 1922년 그의 시 〈황무지〉가 출판되었을 때, 이 작품은 '새로운 시'의 동의어로 여겨졌고, 그 '새로운 시'의 의미가 '모더니즘'을 지칭하게 되었을 때는 모더니즘 시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현대시를 지배했다.

토마스 스턴스 엘리엇은 1888년 9월 26일 미국 미주리 주의 세인트 루이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헨리 웨어 엘리엇은 사업가였으며, 어머니 샬럿 챔프 스턴스는 시인이었다. 엘리엇이 태어났을 때 부부는 40대였고, 엘리엇 위로 4명의 누나가 있었다. 시인이었던 어머니가 아이들 양육보다 문학이나 자선 활동과 같은 사회 활동에 열정적이었던 탓에 늦둥이였던 토마스는 유모의 손에서 자랐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 토마스가 자라면서 조숙하고 남다른 지적 능력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어린 아들에게 역사와 문학, 철학 등의 책을 읽히고 시를 쓰도록 독려했다. 모자는 문학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여 있었고, 토마스는 평생 어머니와 편지를 나누고, 어머니에게 시를 바치는 등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 또한 시인으로서 명성을 얻은 후에는 인정받지 못한 시인이었던 어머니의 시극 《사보나롤라》에 서문을 붙여 출간해 주기도 했다.

유년 시절에는 세인트 루이스의 스미스 아카데미와 뉴잉글랜드의 밀턴 아카데미에서 공부했으며, 1906년 하버드 대학에 입학해 철학과 불문학을 전공했다. 4년의 학부 과정을 3년에 마쳤으며, 이때 프랑스 상징주의, 특히 라포르그1) 에 심취했다. 졸업 후 1년 만에 하버드 대학원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이후에는 프랑스의 소르본 대학, 독일의 마르부르크필리프스 대학을 거쳐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수학했다. 프랑스어, 독일어, 산스크리트어, 인도 철학, 독일 철학, 그리스 철학 등을 공부했으며, 아르튀르 랭보 등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15년, 시인이자 비평가인 에즈라 파운드의 추천으로 〈포이트리〉 지에 〈앨프리드 프루프록의 연가〉(이후 〈프루프록의 연가〉)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프루프록의 연가〉는 노년의 화자 프루프록의 내적 독백을 통해 현대 문명의 잔인성과 메마른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자아의 상실과 회복을 위한 자아 성찰을 그린 작품이다. 엘리엇은 비평가로서 '객관적 상관물'의 개념을 공식화시켰는데, 객관적 상관물이란 '어떤 특정한 정서를 나타낼 때 공식이 되는 일련의 사물, 정황, 사건'으로, 정서를 표현하는 수단을 의미한다. 이런 시적 방법론과 시인으로서의 주요 관심사와 정서는 초기 시인 〈프루프록의 연가〉에서부터 이후의 시들에 일관적으로 드러난다.

엘리엇은 1915년 비비언 헤이우드와 결혼했으며, 런던에서 교직 생활을 하면서 서평을 잠시 쓰다가 이듬해 로이드 은행에 입사했다. 그는 약 9년간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시를 쓰고, 〈에고이스트〉 지의 부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프루프록의 연가〉를 보고 '최초의 현대적 작품'이라고 일컬었던 에즈라 파운드는 엘리엇이 시에만 몰두하기를 바랐고, 그를 후원하는 인물들을 모아 생활을 후원하려고 했다. 그러나 엘리엇은 은행 일과 시작(詩作)을 병행하는 생활에 나름대로 만족해했다. 내성적이고 까다로운 성격에 신경쇠약 증상까지 있던 엘리엇에게 이 두 생활을 양립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현실 생활과 문학 생활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기도 했던 것이다.

1922년 10월 엘리엇은 계간지 〈크라이테리언〉을 창간하고 편집을 담당했으며, 이 잡지에 〈황무지〉를 발표했다. 433행의 이 장시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정신적으로 황폐화된 유럽을 황무지로 상징화한 것으로, 라틴어, 희랍어, 산스크리트어 등 6개 언어를 사용하고, 셰익스피어, 단테, 보들레르 등 고전 시구에 대한 암시와 인용을 비롯해 J. S.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와 J. L. 웨스턴의 《제의에서 로망스까지》 등에서 나타나는 제의, 성배 전설 및 신화와 종교적 관점, 성경 등을 토대로 한 수많은 상징으로 뒤덮여 있다. 역사와 문명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미지화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로 재편성하는 엘리엇의 작품 세계가 확립된 작품이다. 또한 엘리엇은 낭만성을 제거하고 철저하게, 병적일 만큼의 정확성과 논리성, 지적인 태도를 지니고 언어와 다양한 자료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시를 썼는데, 이는 그의 비평론적 태도이기도 하며, 이후의 소설, 희곡, 예술 비평의 주요 방식이 된다.

〈황무지〉가 발표되었을 당시 평론가들은 시의 난해함과 새로움에 당혹해 마지않았으나, 젊은이들은 오히려 엘리엇의 시에 담긴 염세적인 정서와 새로운 시적 기교에 열광했으며, 현대의 정신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엘리엇을 '시대의 대변인'으로 추앙했다.

1925년에 엘리엇은 로이드 은행을 그만두고, 파버 앤드 파버 출판사의 이사로 일했다. 1927년에는 영국 국교회로 개종하고 영국으로 귀화했다. 그리고 영국 국교도로서의 종교적 시각을 투영한 작품들을 쓰기 시작했다. 〈재의 수요일〉(1930), 〈사중주〉(1943) 등이 그것이다.

또한 엘리엇은 이 시기부터 무대 상연을 고려한 시극2) 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시들은 시극으로 불리는 새로운 장르가 된다. 〈바위〉(1934), 〈대성당의 살인〉(1935), 〈칵테일 파티〉(1950) 등이 대표적이며, 이 작품들은 연극으로도 공연되었다.

비평 분야에서도 엘리엇은 완전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당대의 문학적 취향을 재규정했다. 예술에 있어 낭만성을 배제하고 고도의 지적 사유를 좇으며, 존 던과 같은 형이상학파 시인들을 칭송한 그의 비평론은 빅토리아 시대 낭만주의 문학의 모호성과 도덕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현대 고전주의의 비평 체계를 수립했다. 비평집으로는 《단테론》(1929), 《시의 효용과 비평의 효용》(1933), 《고금 평론집》(1936) 등이 대표적이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엘리엇은 우울증에 시달렸고, 계속 글을 쓸 수 있을지를 걱정했다. 당시 그는 시극에 힘을 쏟고 있었는데, 전쟁이 발발하면서 시극 〈가족의 재회〉가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되었고, 전쟁 때문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회의감에 빠져 있었다. 전후의 혼란스런 상황, 정신질환 성향이 있던 아내와 불화 끝에 결별을 한 것도 원인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한 것은 30년 전부터 지녀온 유럽 문명에 대한 회의, 미래에 대한 염세적인 관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계속 시를 써 나갔고, 말년의 걸작 〈사중주〉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전쟁 후 그는 엄청난 명성을 누리며 행복한 말년을 보내게 된다.

1950년 영국에서 발행된 〈칵테일 파티〉 초판 표지
1950년 영국에서 발행된 〈칵테일 파티〉 초판 표지

194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그해 영국의 문화훈장인 메리트 훈장을 받으면서 시인으로서의 명성은 절정에 달했다. 그의 시극들은 계속 무대에 올려졌고, 특히 말년의 대표작 〈칵테일 파티〉가 브로드웨이에서 200회 이상 공연 기록을 세우는 등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1947년 아내 비비언이 세상을 떠난 뒤, 1957년에는 8년간 비서로 일하던 29세의 발레리 플레처와 재혼했다.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 Nobel Prize.png
Thomas Stearns Eliot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1923년)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1923년)
TS Eliot Signature.svg

1965년 1월 4일, 영국 런던의 자택에서 사망했으며, 유해는 고향 이스트 코커의 성 마이클 교회에 안장되었다. 2년 후 영국 정부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시인의 구역에 엘리엇의 기념석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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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오늘 태어난 미국 출신의 영국 시인 T. S. 엘리엇은 이와 관련한 명언 하나를 남겼습니다.
‘If you are not in over your head, how do you know how tall you are?’라는 말입니다.
“네가 네 머리 위에 있지 않다면 네가 얼마나 큰지 어떻게 알 수 있나”로 직역되는데, “
네가 네 능력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네 능력이 얼마 만큼인지 어떻게 알 수가 있나”라는 뜻입니다. 의역 역시 어렵죠?
    
엘리엇 역시 보통 사람처럼 자신의 틀 안에서 살 뻔 했습니다.
그는 16세에 하버드대에 입학해서 3년 만에 졸업했고
프랑스의 소르본대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문학을 전공한 천재였습니다.
그러나 생계를 위해서 런던의 은행에 취업해서 금융업에 종사합니다.
    
이때 그동안 여러 문학가를 발굴하고 후원해온, ‘시인의 시인’ 에즈라 파운드가 나섭니다.
파운드는 엘리엇이 돈 걱정 없이 시작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후원자들을 모읍니다. '
엘리엇이 문학 계간지를 발행하도록 재력가를 소개해주기도 하는데,
엘리엇은 이 잡지에 유명한 ‘황무지’를 발표합니다.
    
엘리엇은 수많은 시와 함께 극본도 발표했으며, 1948년 노벨 문학상을 받지요.
어린이를 위해 지은 우화시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는
나중에 뮤지컬 《캣츠》로 재탄생해서 세계를 들썩거리게 했고요.
    
문학계에서는 파운드가 없었다면 엘리엇이나 제임스 조이스도 없었을 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파운드는 행복하지만은 않은 삶을 삽니다.
파운드는 자본주의에 반대하고, 반유대주의에 공감합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의 방송에 나가서 친 파시즘, 반유대주의 발언을 했고
이 때문에 종전 후 미국에 의해 ‘반역죄’로 체포됩니다.
그는 사형은 면했지만 정신이상 범죄라고 선고받고 워싱턴의 정신병원에 갇힙니다.
미국과 유럽의 시인들이 석방운동 덕분에 10년 뒤 정신병원에서 나와서
이탈리아에서 살다가 눈을 감습니다.
    
파운드는 역작 《캔토스》를 남겼지만,
그가 후원한 문인들의 작품 역시 그의 시 못지않은 인류의 유산일 겁니다.
그렇다면 반미, 반자본주의를 펼치며 파시즘을 옹호한 과오는 어디까지 용서해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틀의 사고(Frame Thought)’로 보면 용서할 수가 없겠지만,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사람은 능력 밖으로 나가야 자신의 그릇을 볼 수 있지만,
너무 나가면 안 되는 건가요?
인류 역사에서 천재에 대한 후원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했지만…. 


 

T.S. 엘리엇의 명언 10개

 

○멀리 갈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사람만이 사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네가 네 능력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네 능력이 얼마 만큼인지 어떻게 알 수가 있나?
○유머는 심각한 이야기를 말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탐구의 종착점은 우리가 출발한 곳에 도착하는 것이고 첫 장소를 알게 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입는 피해의 절반은 자신이 중시되길 원하는 사람들 때문에 생긴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려고 의도하지는 않지만 누군가의 피해에 관심이 없다.
○규칙을 지키는 법을 알기 전에 규칙을 어기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사랑은 침묵이다. 사랑은 말하려는 욕구와 싸우는 것이다.
○걱정은 창조의 하녀다.
○우리는 아는 것이 너무 많지만, 확신하는 것은 너무 적다.
○인류는 지나치게 사실에 가까운 것을 감내할 수가 없다. 


 

 엘리엇의 궁핍을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있다. 
한번은 러셀이 탄약 제조회사의 채권을 소유하게 되었는데 그 때 그는 평화주의자였다. 
그는 액면가 3000파운드 짜리 그 채권을 엘리엇에게 주었는데 
거기에서 나오는 이자 수입이 많지는 않은 액수였지만 계속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엘리엇에게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그는 그 채권을 수년간 지니고 있다가 나중에 러셀에게 되돌려 주었다. 
엘리엇의 은행에서의 봉급은 연봉 500파운드 정도로 증가하였고 그에 따라 일도 증가하였다. 
그는 과중한 업무로 인한 피로와 질병 때문에 1921년 말에 3개월간의 휴가를 얻어 스위스의 로잔으로 요양을 떠나기까지 하였다. 
이 요양 중에 『황무지』의 원고가 완성된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는 1925년 11월에 로이드 은행의 식민지 및 외환 관리국을 떠나 훼이버 앤드 가어어 사의 편집자가 되었다. 
이로써 그는 연봉 600파운드 이상의 봉급을 받게 되었다.

                                  ===========

[출처] T. S. 엘리엇 과 파운드|작성자 코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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