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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자신의 의견에 말했다고 생각해 보자.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는 말에 대해 `그건 좀 달라`가 아니라 `그건 좀 틀려`라고 대응하는 상황은 사람마다 다양한 의견을 가질 수 있다는 가치를 약화시킨다. `다르다, 비슷하다, 같다`라는 다층적인 판단이 `맞다, 틀리다`라는 양분 속에서 단순화되고 있지는 않은가에 대한 경계다. 이런 불안 속에서 모든 문제에서 정답을 발견하려는 사람들의 허기를 본다. 사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언어학적으로는 경계해야 할 방식이다. 언어 외적 경향이 직접적으로 언어에 반영되는 일은 드물다. 사회는 언어에 간접적 영향을 줄 뿐이다. 예를 들어 우리말에 `된소리(ㄲ, ㄸ, ㅃ, ㅆ, ㅉ)`와 `거센소리(ㅋ, ㅌ, ㅍ, ㅊ)`가 많아진 원인을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시대적 각박함에 두는 해석은 언어학에서 금기다. 양란으로 삶이 각박해진 것이 언어에 직접적 영향을 끼쳐 이런 소리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는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사고는 가능하다. `다르다`와 `틀리다`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이와 관련된 다른 언어 관계에서도 나타난다면 앞서 보인 우리의 우려의 개연성이 더 확대될 수도 있다. 즉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다르다`를 `틀리다`로 잘못 쓰는 일이 많다면 이들의 반대말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앞서 보인 정답 찾기의 허기가 거기에도 반영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틀리다`의 반대말인 `맞다`에서 비슷한 경향이 발견하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 이 경우에는 `틀리다`라는 단어보다 `다르다`라는 단어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 ㉡ 단락에서는 강조점이 어디인지를 늘 생각하면서 접근하는 것이 좋은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거든. ㉢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위의 예문들은 면담 과정에서 학습자들이 `맞아요.`로 대답한 것들이다. 그 일부만을 보인 것으로 이런 방식으로 `맞다`가 등장하는 일은 비교적 흔한 일이다. 학생들이 위의 예문들에 `맞다`라고 답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 안에는 `다르다` 대신 `틀리다`를 사용하는 현황에서 발생하는 것과 유사한 불안이 존재한다. 그 불안은 학생들이 정답을 찾고 있음을 발견한 데서 온다. 친한 소설가 한 명이 강의 서두에 세상에 없는 세 가지를 언급한 적이 있다. 그 세 가지는 `공짜, 영원한 것, 정답`이었다. 나도 그 친구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세상 속의 문제들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일상에서 익히기를 바란다. 그래야 없는 정답을 찾아다니느라 더 절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맞다`를 `틀리다`를 `가능성의 백분율`로 전환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위의 교수의 말들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전제하고 그 중 하나를 제시한 것이다. 그 가능성을 `맞다, 틀리다`로 대응하는 학생들에게서 `정답`을 갈망하는 허기를 본다. `맞다`든 `틀리다`든 언어 사용 방식에 언뜻언뜻 보이는 학생들의 정답 찾기가 계속될수록 학생들의 허기는 더 깊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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