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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동북조선인민보와 연변일보
2016년 11월 11일 21시 54분  조회:3919  추천:0  작성자: 죽림
2008년 08월 09일 작성자: 오태호

《연변일보》와의 즐거운 추억


오태호 연변일보사 전임 총편집



세월이 류수같아 《연변일보》가 창간된지도 어언 60돐이 되였다. 사람을 놓고 말하면 회갑년이 된 셈이다. 그동안 《연변일보》는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파란만장의 려정을 걸어왔다. 그중에서도 창간초기의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나는 창간초기나 다름없는 1950년 10월에 입사했는데 올해까지 꼭 58년이 된다. 내가 입사한 초기에는 《연변일보》라 하지 않고 《동북조선인민보》라 하고 2절지 4면을 냈다. 그러다가 1953년 1월 1일부터 《연변일보》라고 고쳤다. 사지(社址)는 지금의 사지 그대로이지만 19층 신사옥이 아니라 위만주국 동만척식회사 2층짜리 보잘것없는 낡은 건물이였다. 사장은 중공연변지위선전부 부장 최채동지가 겸하고 부사장 리욱성동지가 일상사무를 주관했다. 총편집은 백남표동지가 맡고 그 밑에 편집위원으로 리도영, 김철해, 김덕천 세사람이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항미원조가 시작된 시기였다. 시국은 여간 어수선하지 않았다. 한편에서는 미국비행기가 화룡현(후에 시로 되였음) 고성리까지 침입하여 기총소사로 소를 죽게 하고 한편으로는 “항미원조 보가위국”의 구호아래 수많은 열혈청년들이 참군참전하여 조선전선으로 나갔다.  이 마당에 신문사라고 안 일할수가 없었다. 당시 말로는 미제국주의 비행기가 이미 두만강연안을 공습하기 시작했는데 가장 중요한 보도기관인 신문사를 가만놓아둘수 없다. 그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신문출간을 보장하여 시국정세를 인민들에게 알려야 한다는것이였다. 

중공연변지위에서는 신문사를 연길시교외의 민주촌 상발원(祥发源)으로 소산하기로 결정지었다. 상발원은 원래 지주의 큰집울안이였다. 정면의 큰채와 동서 량켠 두채는 사무실로 사용하였는데 사무실 절반은 한족식온돌을 놓고 직원들이 잘수 있도록 꾸미고 사랑채격으로 대문 옆에 있는 집은 인쇄공장이 들어가도록 수리하였다. 이밖에 둥근 뒤주가 몇개 있었는데 사진을 씻어내는 암실로 사용하였다. 이 지주집은 산밑에 있었는데 그 뒤산에는 지하갱도를 파고 전기가설까지 다해놓았다. 일단 유사시에는 지하갱도에서 신문제작이 가능하도록 되여있었다.

사무실동쪽채안에는 몇년 묵은 먼지와 말똥이 가득 차있었다. 신문사에서는 매일과 같이 인원을 동원하여 상발원집을 수리하고 청소하였다. 신문사에 방금 입사한 나는 편집할줄도 모르고 취재할줄도 모르는 처지라 일하러 나오라면 그것은 내몫인줄 알고 먼저 손을 들고 나가는수밖에 없었다. 

일은 조금 고달팠다. 주로 말똥을 쳐내고 신문지로 벽을 도배하는 일이였는데 일을 다하고나면 먼지투성이였다. 한달 남짓한 고생끝에 마침내 신문사 전체 직원이 상발원으로 소산하게 되였다. 그때는 방금 공급제(간부의 생필품 일체를 국가에서 공급하는 제도)로부터 부수제로 넘어오는 시기였다. 부수제란 그 간부의 봉급과 같은것이였다. 나는 85부를 받았는데 그때 식당의 밥값이 25부였다고 기억한다. 나머지 60부는 가정생활에 보탤수 있었다. 

이 부수제는 현찰이 아니라 신문사에서 주는 종이딱지였다. 이것을 가지고 신문사에서 경영하는 공급판매합작사에 가 물건을 살수 있었다. 상발원에서의 생활은 락천적이였다. 하루종일 신문제작에 바삐 돌다가 저녁식사후에는 산책을 하기도 하고 온돌에 드러누워 고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고담이라는것이 대부분 육담이여서 집안에서는 무시로 웃음보를 터뜨렸다. 그때 식사는 집체식당에서 했는데 한달 식대를 내기만 하면 먹으나 안 먹으나 돌려주는 법이 없고 식사도 큰가마밥을 먹었다. 이밥에 소고기탕을 자주 먹었는데 식성이 좋고 체면이 없는 사람은 몸깨나 내였다. 대야에 담은 밥을 마음대로 먹었을뿐만아니라 물통에 받아온 소고기탕도 먼저 손을 쓴 사람이 건더기만 골라 뜨는바람에 체면을 차리는 사람은 때때로 국물만 먹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때 가장 인상 깊은것은 인쇄공들의 기개와 열정이였다. 아직 모든것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판에 정전사고가 자주 생겼다. 그러면 인쇄공들은 낡은 륜전기에 바줄을 매고 당기여 기계를 돌렸다. 그들의 이마와 잔등에서는 구슬땀이 흘러내렸다. 그래도 누구 하나 불평불만이 없이 이튿날도 작업을 계속했다.

내가 조금 섭섭하게 생각하는것은 1951년 봄의 일이다. 그해 봄가물이 대단히 심했다. 그러다가 하루는 단비가 흠뻑 내렸다. 이번 비로 왕가물이 해제되였다. 나는 조장의 지시에 따라 민주촌에 나가서 "비온 뒤의 민주촌"이란 통신기사를 써냈다. 내용은 딴것이 아니고 오래동안 가물에 목말라오던 농민들이 비가 온 뒤에는 너도나도 소겨리를 메워가지고 봄파종을 신나게 하는 광경을 보도하였다. 그런데 이 작은 통신보도는 게시판을 통해 사람들의 집중공격대상이 되였다. 공격의 초점은 "사람은 하늘과 싸워 이길수 있는데 이 통신에서는 그런 내용을 조금도 볼수 없고 다만 자연에 얽매여 하늘이 비를 내려주어야만 농사를 짓는 그런 농민, 말하자면 농민을 자연의 노예로 묘사했다"는것이다. 나는 좀 억울했다. "사람이 하늘과 싸워 이길수 있다"는 론리는 사람이 자연과의 투쟁에서 그만큼 신심과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것이지 실제적으로 자연과의 투쟁에서 한계성이 없는것은 아니다. 황차 나는 신문사에 입사한지 불과 반년도 되나마나한 풋내기기자인데 이런 점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고 무차별 폭격만 들이대니 나는 그때 신문사 사람들이 야속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지난날에 있었던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반세기도 남아 지난 지금은 섭섭할것도 야속할것도 없다. 오히려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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