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6월 2024 >>
      1
2345678
9101112131415
16171819202122
23242526272829
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시인 지구촌

"말똥가리" 스웨덴 시인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2016년 10월 20일 01시 01분  조회:4121  추천:0  작성자: 죽림
출생일 1931년 4월 15일
사망일 2015년 3월 26일
국적 스웨덴
대표작 기억이 나를 본다
수상 2011년 노벨문학상

50여 년에 걸친 시작 활동을 통해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그가 발표한 시의 총 편수는 200편이 채 안 된다. 평균 잡아 일 년에 네댓 편 정도의 시를 쓴 ‘과묵한’ 시인인 셈이다.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는 독일의 페트라르카 문학상, 보니어 시상(詩賞), 노이슈타트 국제 문학상 등 다수의 세계적인 문학상을 수상한 스웨덴 출신의 시인이다.

1931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스톡홀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방에서 심리상담사(psychologist)로 사회 활동을 펼치는 한편, 20대 초반에서부터 70대에 이른 현재까지 모두 11권의 시집을 펴냈다. 그의 시는 지금까지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렸다.

트란스트뢰메르의 시는 한마디로 ‘홀로 깊어 열리는 시’ 혹은 ‘심연으로 치솟기’의 시이다. 또는 ‘세상 뒤집어 보기’의 시이다. 그의 수많은 ‘눈들’이 이 세상, 아니 이 우주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그런 만큼 그의 시 한편 한편이 담고 있는 시적 공간은 무척이나 광대하고 무변하다.

잠과 깨어남, 꿈과 현실, 혹은 무의식과 의식 간의 경계지역 탐구가 트란스트뢰메르 시의 주요 영역이 되고 있지만, 처녀작에서는 잠 깨어남의 과정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이 전도되어 있다. 초기 시에서 깨어남의 과정이 상승의 이미지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강, 낙하의 이미지로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시의 지배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하강의 이미지 주변에는 또한 불의 이미지, 물의 이미지, 녹음(綠陰)의 이미지 등 수다한 군소 이미지들이 밀집되어 있다. 이 점만 보더라도 트란스트뢰메르는 이미지 구사의 귀재, 혹은 비유적 언어구사의 마술사임을 알 수 있다.

초기 작품에서 스웨덴 자연시의 전통을 보여주었던 그는 그 후 더 개인적이고 개방적이며 관대해졌다. 그리고 세상을 높은 곳에서 신비적 관점으로 바라보며, 자연 세계를 세밀하고 예리한 초점으로 묘사하는 그를 스웨덴에서는 '말똥가리 시인'이라고 부른다.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자연환경에 대한 깊은 성찰과 명상을 통해 삶의 본질을 통찰함으로써 서구 현대시의 새로운 길을 연 스웨덴의 국민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그는 정치적 다툼의 지역보다는 북극의 얼음이 해빙하는 곳, 또는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화해와 포용의 지역으로 독자들을 데리고 간다. 그리고 북구의 투명한 얼음과 끝없는 심연과 영원한 침묵 속에서 시인은 세상을 관조하며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보편적 우주를 창조해냈다.

2011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2011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50여 년에 걸친 시작 활동을 통해 그가 발표한 시의 총 편수는 200편이 채 안 된다. 평균 잡아 일 년에 네댓 편 정도의 시를 쓴 ‘과묵한’ 시인인 셈이다. 이러한 시작(詩作) 과정을 통하여 그가 보여준 일관된 모습은 차분하고 조용하게, 결코 서두름 없이, 또 시류에 흔들림 없이, 꾸준히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고요한 깊이의 시 혹은 ‘침묵과 심연의 시’를 생산하는 것이었다.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는 2015년 3월 26일, 8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90년대부터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다 끝내 2011년 수상의 영예를 안은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는 1996년 폴란드의 비수아바 심보르스카 이후 15년 만에 탄생한 시인 수상자였다.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는 시작 활동과 더불어 심리학자로서 약물 중독자들을 상대로 한 사회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트란스트뢰메르가 보는 이 세상은 ‘미완의 천국’이다. 낙원을 만드는 것은 결국 시인과 독자들, 자연과 문명, 그리고 모든 이분법적 대립구조들 사이의 화해와 조화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노벨상 수상후보이자 스웨덴을 대표하는 트란스트뢰메르 시집의 국내 출간은 경하할 만한 일이다. 이 세상의 끝, 등 푸른 물고기들이 뛰노는 베링 해협이 산출한 시를 통해 한국 독자들은 미지의 세계로 지적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시를 읽는 사람들은 모두 꿈꾸는 방랑자들이기에. - 김성곤(문학평론가/서울대 영문과 교수)

대표작

기억이 나를 본다
<기억이 나를 본다>

순간에 대한 강렬한 집중을 통하여 신비와 경이의 시적 공간을 구축하면서 우리들의 비루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그의 시는 말똥가리처럼 세상을 높은 지점에서 일종의 신비주의적 차원에서 바라보되, 지상의 자연세계의 자질구레한 세목들에 날카로운 초점을 맞춘다. 전통과 현대, 그리고 예술과 인생의 빛나는 종합을 성취하였으며 자연과 초월과 음악과 시를 사랑하는 시인의 작품을 통해 심연으로 치솟기, 혹은 홀로 깊어 열리는 시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작품에서 사용하는 은유는 다른 대상을 빌려서 표현하는 것이 아닌, 표현하려는 대상 자체를 언어적으로 변형한 것에 가깝다.

 

문학계의 초현실주의 작풍과 연결되어 있는 그의 시는 일견 이해할 것 같으면서 동시에 불가사의한 면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버지는 언론인이었고 어머니는 교사였으나 두 사람이 이혼하면서 어머니와 외가에서 살게 되었다. 청년 시절 당시 스웨덴의 병역의무에 따라 군대를 다녀왔다. 최초의 시 모음집 〈17편의 시 17 dikter〉(1954)는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절제된 언어와 놀라운 형상화를 보여주며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1956년 스톡홀름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후 심리학자이자 사회복지사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이어진 그의 시집들, 곧 〈여정의 비밀 Hemligheter påv이미지gen〉(1958), 〈미완의 천국 Den halvfärdiga himlen〉(1962), 〈반향과 흔적 Klanger och spår〉(1966)들은 화법이 좀 더 분명해지고 작가적 시각도 뚜렸해졌다. 이러한 시집들과 후기 저서들에서 나타나는 자연에 대한 시적 관찰은 극도의 간결함이라는 형식을 취하면서 의미적으로도 풍부함을 더했다.

한 비평가는 "트란스트뢰메르의 시들은 음향적으로 완벽한 실내악이다.

그 안에서 모든 모순된 떨림들을 긴장감 없이 들을 수 있다."고 적었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 신세대 시인들과 몇몇 비평가들은 그의 시에 정치적 메시지가 결여되어 있다며 그를 비난했다.

1960년대 그는 미국 시인 로버트 블라이와 서신을 교환하며 우정을 쌓았고, 이후 블라이는 트란스트뢰메르의 시들을 영어로 번역하는 데 앞장섰다. 블라이가 처음으로 전권을 번역한 시집 〈어둠 속에서 보기 Mörkerseende〉(1970, 영문판 제목은 Night Vision)는 , 트란스트뢰메르가 스웨덴의 시인으로서 어려운 시기를 보낼 당시에 쓰여진 시들이었다.

그가 1973년에 펴낸 〈작은 길 Stigar〉에는 블라이의 작품 몇 개가 스웨덴 어로 번역되어 함께 실렸다.

소년 시절 그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던 발트 해안은 〈발틱스 Östersjöar〉(1974)라는 시집의 배경이 되고 있다. 후기 작품으로 〈진실의 장벽 Sanningsbarriären〉(1978), 〈와일드 마켓플레이스 Det vilda torget〉(1983),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하여 För levande och döda〉(1989) 등이 있다.

1990년 트란스트뢰메르는 노이스타드 국제문학상을 수상했으나 같은 해 뇌졸중에 걸려서 말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이런 건강 상태에도 굴하지 않고 그는 회고록 〈기억이 나를 본다 Minnena ser mig〉(1993), 2권의 시집 〈슬픔의 곤돌라 Sorgegondolen〉(1996)와 〈거대한 수수께끼 Den stora gåtan〉(2004, 모음집)를 출판했다. 〈곤돌라의 슬픔〉은 프란츠 리스트의 〈슬픔의 곤돌라 La lugubre gondola〉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2011년에는 〈시와 산문 1954~2004 Dikter och prosa 1954~2004〉을 발간했다.

직접적인 언어와 강력한 이미지로 만들어진 그의 시작품은 그를 20세기 후반 영어권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번역되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시인으로 만들었다.

블라이가 번역하여 세상에 나온 트란스트뢰메르의 모음집들에는 〈친구여, 어둠을 마셨는가 : 3인의 스웨덴 시인들, 하리 마르틴손, 군나르 에켈뢰프,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Friends, You Drank Some Darkness: Three Swedish Poets, Harry Martinson, Gunnar Ekelöf, and Tomas Tranströmer〉(1975),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 1954~86년의 시선집 Tomas Tranströmer: Selected Poems 1954~86〉(1987, 다른 번역자들과 공동번역), 〈미완의 천국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의 명시 The Half-Finished Heaven: The Best Poems of Tomas Tranströmer〉(2001)가 포함되어 있다.

트란스트뢰메르의 시는 다른 많은 언어로 번역되였다.
=================================

후주곡(後奏曲)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움켜잡는 갈고리처럼 세상의 바닥을 질질 끌며 걷는다.
내게 필요 없는 모든 것들이 걸린다.
피로한 분개, 타오르는 체념.
사형집행관들이 돌을 준비하고, 신이 모래 속에 글을 쓴다.

조용한 방.
달빛 속에 가구들이 날아갈 듯 서 있다.
천천히 나 자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텅 빈 갑옷의 숲을 통하여.





기억이 나를 본다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유월의 어느 아침, 일어나기엔 너무 이르고 
다시 잠들기엔 너무 늦은 때. 

밖에 나가야겠다. 녹음이 
기억으로 무성하다, 눈 뜨고 나를 따라오는 기억. 

보이지 않고, 완전히 배경 속으로 
녹아드는, 완벽한 카멜레온. 

새 소리가 귀먹게 할 지경이지만, 
너무나 가까이 있는 기억의 숨소리가 들린다.





서곡(序曲)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깨어남은 꿈으로부터의 낙하산 강하.
숨막히는 소용돌이에서 자유를 얻은 여행자는
아침의 녹색 지도 쪽으로 하강한다.
사물이 확 불붙는다. 퍼덕이는 종달새의 시점에서
여행자는 나무들의 거대한 뿌리 체계를,
지하의 샹들리에 가지들을 본다.
그러나 땅 위엔 녹음,
열대성 홍수를 이룬 초목들이 팔을 치켜들고
보이지 않는 펌프의 박자에 귀 기울인다.
여행자는 여름 쪽으로 하강하고,
여름의 눈부신 분화구 속으로 낙하하고,
태양의 터빈 아래 떨고 있는
습기 찬 녹색 시대들의 수갱(竪坑) 속으로 낙하한다.
시간의 눈 깜빡임을 관통하는
수직 낙하 여행이 이제 멈추고,
날개가 펼쳐져
밀려드는 파도 위 물수리의 미끄러짐이 된다.
청동기시대 트럼펫의
무법의 선율이
바닥없는 심연 위에 부동(不動)으로 걸려 있다.
햇볕에 따뜻해진 돌을 손이 움켜잡듯,
하루의 처음 몇 시간 동안 의식은 세계를 움켜잡을 수 있다.
여행자가 나무 아래 서 있다.
죽음의 소용돌이를 통과하는 돌진 후,
빛의 거대한 낙하산이 여행자의 머리 위로 펼쳐질 것인가?





정오의 해빙/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아침 공기가 타오르는 우표를 붙인 자기 편지를 배달했다. 눈(雪)이 빛났고, 모든 집들이 가벼웠졌다.
일 킬로그램은 칠백그램 밖에 나가지 않았다.
태양이 빙판 위로 높이 솟아, 따뜻하면서도 추운 지점을 배회했다.
마치 유모차를 밀듯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나왔다.
가족들이 밖으로 나왔고, 수세기 만에 처음인 듯 탁 트인 하늘을 보았다.
우리는 마음을 아주 사로잡는 이야기의 첫 장에 자리하고 있었다.
꿀벌 위의 꽃가루처럼 모피모자마다 햇살이 달라붙었고, 햇살은 겨울이라는 이름에 달라붙어,
겨울이 떠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눈 위의 통나무 정물화가 나를 생각에 잠기게 했다. 나는 물었다.
'내 유년시절까지 따라올래?' 통나무들이 대답했다. '응'
잡목 덤불 속에는 새로운 언어로 중얼거리는 말들이 있었다.
모음은 푸른 하늘, 자음은 검은 잔가지들, 그리고 건네는 말들은 눈 위에 부드러웠다.
하지만 소음의 스커트 자락으로 예(禮)를 갖춰 인사하는 제트기가 땅 위의 정적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未完의 천국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절망이 제 가던 길을 멈춘다.
고통이 제 가던 길을 멈춘다.
독수리가 제 비행을 멈춘다.
열망의 빛이 흘러나오고,
유령들까지 한 잔 들이켠다.
빙하시대 스튜디오의 붉은 짐승들,
우리 그림들이 대낮의 빛을 바라본다.
만물이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우리는 수백씩 무리지어 햇빛 속으로 나간다.
우리들 각자는 만인을 위한 방으로 통하는
반쯤 열린 문.
발밑엔 무한의 벌판.
나무들 사이로 물이 번쩍인다.
호수는 땅 속으로 통하는 창(窓).
/ 이경수 번역 







에필로그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십이월. 스웨덴은 해변에 정박한
삭구(索具)를 뗀 배. 황혼의 하늘을 배경으로
돛대가 날카롭다. 황혼이 낮보다
오래 지속되고, 이곳의 길은 돌투성이.
정오가 지나야 빛이 도착하고,
겨울의 콜로세움이 비현실적인 구름의
빛을 받아 솟아오른다. 즉각
흰 연기가 마을에서 구불구불
치솟는다. 구름이 높고 또 높다.
바다는 다른 무엇에 귀 기울이는 듯 흐트러진 모습으로,
하늘나무의 뿌리에 코를 대고 킁킁거린다.
(영혼의 어두운 면 위로
새 한 마리 날아들어, 잠든 자들을
울음으로 깨운다. 굴절 만원경이
몸을 돌려, 다른 시간을 불러들인다.
때는 여름이다. 산들이 빛으로 부풀어
포효하고, 시냇물이 투명한 손으로
태양의 광휘를 들어올린다. 그리고 모든 것이 사라진다.
영사기의 필름이 다 돌아갔을 때처럼.)

저녁별이 구름 사이로 불탄다.
집들, 나무들, 울타리들이
어둠의 소리없는 눈사태 속에 확대된다.
별 아래 또 다른 숨겨진 풍경이
자꾸자꾸 모습을 드러낸다. 밤의 엑스선에 비친
등고선의 삶을 사는 비밀의 풍경들,
그림자 하나가 집들 사이로 썰매를 끈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다.
저녁 여섯시, 바람이
일단의 기병대처럼 어둠 속 마음의 길거리를 따라
천둥처럼 질주한다. 검은 소동이 어찌나
반향하고 메아리치는지! 집들이 꿈속의 소동처럼
부동(不動)의 춤을 추며 덫에 걸려 있다. 강풍 위에
강풍이 만(灣) 위를 비틀거리면서, 어둠 속에서
머리를 까딱거리는 난바다 쪽으로 빠져나간다.
우주공간에서 별들이 필사적인 신호를 보낸다.
별들은 영혼 속을 배회하는
과거의 구름들처럼, 자신이 빛을 가릴 때에만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곤두박이
구름들에 의해 명멸한다. 마구간 벽을
지나면서 나는 그 모든 소음 속에서
병든 말이 안에서 터벅터벅 걷는 소리를 듣는다.

이제 폭풍이 자리를 뜬다. 부서진 대문이
쾅쾅 소리를 내고, 램프가 손에서
대롱거리고, 산 위의 짐승이 겁에 질려
울부짖는다.폭풍이 퇴각하면서
외양간 지붕 위에 천둥이 구르고,
전화선들이 포효하고, 지붕 위의
타일들이 날카로운 휘파람을 불고,
나무들이 속절없이 머리를 까딱거린다.

백파이프 소리가 울려 퍼진다!
백파이프 소리가 길을 걷는다! 해방자들의
행렬! 숲의 행진!
활 같은 파도가 들끓고, 어둠이 꿈틀대고,
수륙(水陸)이 움직인다. 갑판 밑으로 사라져
죽은 자들, 그들이 우리와 자리를 함께 한다.
우리와 함께 길을 걷는다. 항해는, 야성의 돌진이 아니고
고요한 안전을 가져다주는 여행.

세계가 끊임없이 텐트를 새롭게
친다. 어느 여름날 바람이 상수리 나무 장비를
움켜잡고, 지구를 앞으로 민다.
백합이 연못의 포옹 속에서, 날아가는 연못의 포옹 속에서
감추어진 물갈퀴로 헤엄친다.
표석(漂石)이 우주의 홀에서 굴러내린다.

여름날 황혼에 섬들이 수평선 위로
솟아오른다. 옛 마을들이 길을 간다.
까치소리 내는 계절의 바퀴를 타고
숲 속 깊숙한 곳으로 퇴각한다.
한 해가 자기 부츠를 벗어던지고
태양이 높이 솟아오를 때, 나무들은 잎사귀로
피어나 바람을 받고 자유의 항해를 떠난다.
산 아래 솔숲 파도가 부서지지만,
여름의 깊고 따뜻한 큰 파도가 오고,
큰 파도가 천천히 나무 꼭대기들 사이를 흐르고, 일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가라앉는다.
남는 건 잎사귀 없는 해안뿐. 결국,
성령(聖靈)은 나일강 같은 것, 여러 시대의
텍스트들이 궁리한 리듬에 따라
넘치고 가라앉는다.

하지만 신(神)은 또한 불변의 존재이고,
따라서 이곳에선 좀처럼 관찰되지 않는다. 신은
옆구리로부터 행렬의 진로를 가로지른다.

기선(氣船)이 안개 속을 통과할 때
안개가 알아채지 못하듯. 정적.
등불의 희미한 깜빡거림이 그 신호.






답장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책상 맨 밑바닥 서랍에서 26년 전에 처음 도착한 편지를 만난다.
겁에 질린 편지, 편지는 두 번째 도착한 지금도 여전히 숨쉬고 있다.

집에 다섯 개의 창이 있다 창을 통하여 낮이 청명하고 고요하게 빛
난다. 다섯 번째 창은 검은 하늘, 천둥 그리고 구름을 마주하고 있다,
나는 다섯번 째 창에 선다. 편지.

때로는 화요일 수요일 사이에 심연이 열리기도 하지만, 26년은 한순
간에 지나갈 수도 있다.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더 미로 같은 것이어서,
만일 적절한 곳에서 벽에 바짝 붙어선다면 서두르는 발걸음 소리들을
들을 수 있고,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고, 저 반대편에서 자기 자신이 걸어
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편지에 답장을 보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래 전 일이었다. 헤
아릴 수 없는 바다의 문지방들이 이동을 계속했다. 팔월 젖은 풀 속의 두
꺼비처럼 심장이 순간순간 고동치기를 계속했다.

답장 보내지 않은 편지들이 나쁜 날씨를 약속하는 솜털 구름처럼 쌓여
간다. 편지들이 햇빛의 광택을 잃게 한다. 어느 날 답장을 보내리라.
어느 날 내가 죽어 마침내 집중할 수 있을 때 혹은 적어도 나 자신을 다
시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이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대도시의 125번
가에 갓 도착하여, 바람 속에 춤추는 쓰레기들의 거리를 내가 다시 걸
을 때, 가던 길을 벗어나 군중 속으로 사라지기를 사랑하는 나, 끝없는
텍스트 대중 속의 하나의 대문자 T.






사물의 맥락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저 잿빛 나무를 보라. 하늘이
나무의 섬유질 속을 달려 땅에 닿았다.
땅이 하늘을 배불리 마셨을 때, 남는 건
찌그러진 구름 한 장뿐. 도둑맞은 공간이
비틀려 주름잡히고, 꼬이고 엮어져
푸른 초목이 된다. 자유의 짧은 순간들이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
운명의 여신들을 뚫고 그 너머로 선회한다.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우리가 던진 돌들이 유리처럼 선명하게
세월 속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골짜기엔
순간의 혼란된 행위들이
나무 꼭대기에서 꼭대기로
날카롭게 소리치며 날아간다. 현재보다
희박한 대기 속에서 입을 다문 돌들이
산꼭대기에서 꼭대기로
제비처럽 미끄러져,
마침내 존재의 변경지대
머나먼 고원에 이른다. 그곳에서
우리의 모든 행위들이
유리처럼 선명하게 떨어진다.
바로 우리들 자신
내면의 바닥으로.





동요받은 명상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밤의 어둠 속, 아무것도 갈지 않으면서
폭풍이 풍차의 날개를 사납게 돌린다.
동일한 법칙에 따라 그대는 잠깨어 있다.
회색의 상어 배가 그대의 가냘픈 램프.

형체없는 기억들이 바다 바닥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낯선 조상으로 굳어진다.
해조가 들러붙어 그대의 노걸이는 녹색.
바다로 가는 자가 돌이 되어 돌아온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162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682 詩란 삶이 이승사자를 찾아가는 과정속의 울음이다... 2016-10-20 0 3443
1681 "말똥가리" 스웨덴 시인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2016-10-20 0 4121
1680 폴란드 녀류시인 - 비수아바 심보르스카 2016-10-20 0 4156
1679 고대 그리스 녀류시인 ㅡ 사포 2016-10-20 0 4187
1678 고대 그리스 맹인 음유시인 - 호메로스 2016-10-20 0 4796
1677 神들은 문학과 취미의 부문에 속하다... 2016-10-20 0 4281
1676 최초로 음악가가 "노벨문학상"을 걸머쥐다... 2016-10-19 0 4724
1675 <밥> 시모음 2016-10-19 0 3297
1674 詩를 쓸 때 꼭 지켜야 할것들아... 2016-10-19 0 3597
1673 詩란 백지위에서 나를 찾아가는 려행이다... 2016-10-18 0 3456
1672 락서도 문학적 가치를 획득할 때... 2016-10-17 0 4001
1671 詩란 낡아가는 돌문을 천만년 들부쉬는 작업이다... 2016-10-17 0 3713
1670 모든 문학예술은 련속성안에 있다... 2016-10-17 0 3655
1669 죽음은 려행이며 려행은 곧 죽음인것이다... 2016-10-17 0 3477
1668 시인으로서 살것인가 아니면 살인자로서 살것인가... 2016-10-16 0 4078
1667 한춘시인이여!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2016-10-16 0 3452
1666 마지막 단어라는것은 없다... 2016-10-16 0 3408
1665 무질서는 세계를 만들어낸다... 2016-10-16 0 3360
1664 동시 창작론 / 유경환 2016-10-16 0 3473
1663 동시 창작론 / 신현득 2016-10-16 0 3697
1662 미국 최후의 음유시인 - 월트 휘트먼 2016-10-16 0 5118
1661 모더니즘 대표적 영국 시인 - T.S.엘리엇 2016-10-16 0 6330
1660 詩란 언어비틀기가 오로지 아니다... 2016-10-16 0 4317
1659 詩는 태초부터 노래말, "활자감옥"속에 갇힌 문학 도망치기 2016-10-16 0 3274
1658 솔솔 동시향기 흩날리는 동시인 ㅡ 강려 2016-10-14 0 3018
1657 중국조선족 제2세대 대표적 시인 - 리상각 2016-10-14 0 3666
1656 詩에게 말을 걸어보다... 2016-10-14 0 3438
1655 음유시인 전통의 뛰여난 후계자 ㅡ 노벨문학상 주인 되다... 2016-10-14 0 4307
1654 詩란 막다른 골목에서의 정신과의 싸움이다... 2016-10-14 0 3187
1653 詩란 꽃씨앗을 도둑질하는것이다... 2016-10-14 0 3178
1652 난해한 말장난의 詩가 "최고의 현대시"인가?!... 2016-10-14 0 3201
1651 숟가락 시모음 2016-10-12 0 3545
1650 시인들이 이야기하는 詩모음 2016-10-12 0 3713
1649 명태 시모음 2016-10-12 0 5520
1648 어머니 시모음 2016-10-12 1 4775
1647 명태여, 이 시만 남았다... 2016-10-12 0 3715
1646 영남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은 많아도 詩를 쓰는 놈은 딱 하나 영남 뿐! 2016-10-12 0 3123
1645 중국 조선족 시단의 기화이석 - 한춘시론 2016-10-12 0 3087
1644 詩의 독해(讀解)는 천파장 만파장이다... 2016-10-12 0 3245
1643 아버지를 좀 안아 드려야 할것같은 가을이다... 2016-10-12 0 3149
‹처음  이전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