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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억원짜리 <<점>> 하나 그림
2016년 10월 21일 22시 33분  조회:4161  추천:0  작성자: 죽림
 

우리나라 작가 가운데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작가를 꼽자면, 뭐니 뭐니 해도 백남준입니다. 백남준의 영향으로 독일 뒤셀도르프는 미디어 아트의 중심지가 되었고, 미디어 아트는 어엿한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 다음을 꼽자면, 이우환 작가일 것입니다. 이우환 작가는 아마 생존하고 있는 한국 작가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일 것입니다. 일찍이 일본에서 먼저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는데요, 지난해에는 나오시마에 작가의 이름을 딴 ‘이우환 미술관’이 세워질 정도입니다. 지난 6월에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생존 작가가 구겐하임에서 회고전을 여는 일도 드물거니와, 우리나라 작가로서는 백남준에 이어 2번째여서 더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게다가 정말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전 세계인이 ‘이우환’ 하면 두 엄지손가락을 번쩍 들 정도이니까요.

 

그런 이우환 작가가 오랜만에 고국을 찾았습니다. 새로운 ‘대화(Dialogue)' 시리즈 10점을 선보였습니다.

 

 

 

 

                                     Dialogue, Oil and mineral pigment on canvas, 291×218cm, 2011

전시장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작품은 커다란 점 하나가 찍힌 하얀 캔버스입니다. ‘설마 저게 다는 아니겠지’ 하고 옆을 돌아다보면, 더 가관입니다.

 

 

 

                                   Dialogue, Oil and mineral pigment on canvas, 22×27.3cm, 2011

마치 ‘티끌’ 같은 점이 찍힌 하얀 캔버스가 떡하니 걸려 있습니다.

 

전시장을 다 둘러봐도 온통 점뿐입니다. 점이 찍힌 위치와 캔버스의 크기만 달랐지, 10점 모두 다 점입니다.

 

‘어라, 저게 뭐야.......’, ‘저런 건 나도 하겠다.’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은 이럴 것입니다. 점이 세계적인 작품이라는 것도 놀라운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작품의 가격입니다. 대부분이 억대를 호가하는 작품들입니다. 실제로 지난 10년 동안 국내 경매에서 낙찰된 이 작가 작품의 낙찰 누적가는 467여 억으로, 1위에 올라 있습니다.

 

도대체 저 점이 뭐기에, 전 세계인은 환호하는 것이며, 작품 가격은 왜 비싼걸까요.

 

이 작가는 스스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작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전시장에 들어서면 볼 것이 없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볼 게 없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이 작가는 전혀 섭섭해 하지 않습니다. ‘이게 뭘까’ 생각해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우환 작가. 사실 철학을 전공한 철학자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작가가 이 점을 하나 찍기 위해서는 무려 2달이라는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림을 그리기 전 캔버스를 앞에 놓고 마치 명상을 하는 것처럼 점을 찍을 위치를 정합니다. 위치가 정해지고 나면, 돌가루를 섞은 물감을 붓에 발라 붓질을 시작합니다. 붓질도 한 번에 끝나지 않습니다. 붓 자국이 살아나는 순간까지 또 말려야 합니다. 그 기간만도 열흘 정도가 걸립니다. 붓 끝에 모든 생각과 모든 기운을 모아서 캔버스 위에 점을 찍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기 전 작업실에 클래식 음반을 틀어놓는데, 즐겨 듣는 곡은 없습니다. 명반을 듣지도 않습니다. 음악이 너무 좋으면 그걸 듣느라 작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작가는 생각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 잡음을 막아주는 그런 음악을 선호합니다.

 

점을 그리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입니다. 호흡이 흐트러지면 점도 함께 일그러집니다. 따라서, 스스로를 가다듬을 수 있는 자세를 만드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 자체가 도를 닦는 과정인 것입니다.

 

 

                                     작품 크기를 쉽게 알기 위해 손 크기와 비교해 봤습니다


티끌처럼 보이는 작품도 무려 11번이나 실패를 한 뒤 나온 작품입니다. 서너 살 먹은 아이도 할 수 있을 법한 ‘터치’이지만,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캔버스 11장을 버렸습니다. 갖다 버린 재료값만 해도 2백만 원이 넘지만, 맘에 들지 않는 건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비싼 캔버스가 아까워서라도 꽉 채워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의문도 듭니다. 하지만, 이 작가에게는 ‘여백’-이 작가는 ‘여백 효과’라고 부릅니다-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 작가의 점은 모든 에너지가 모인 ‘극한’의 순간입니다. 그렇다고 이 점이 관객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점 밖에 있는 여백이 관객에게 말을 걸고 있습니다. 점은 단지, 이 여백에 울림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종을 치면, 그 울림이 ‘은파’처럼 퍼져 나가죠. 점도 여백으로, 또 캔버스 바깥으로, 전시회장으로 울림을 가져다주는 꼬투리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구겐하임 전시 때에도 맨 마지막 전시실은 하나의 방이었습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떡하니 걸린 그림은 또 점 하나가 찍힌 그림입니다. 관람객들은 그 방에 앉아서 그림을 보게 되는데요, 그 순간 그 울림을 느껴보라는 의도였습니다. 실제로 관람객들은 울림을 느꼈는지, 못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한 번 그 방에 들어가면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아서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한참동안을 서 있어야 했다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어린 아이도 그릴 법한 그림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데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40년 동안 오직 점만 생각하고 그려온 그의 철학을 그림 속에서 느끼면, 그 때는 그 점이 ‘걸작’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도저히 모르겠다 싶으면, 그 때는 그냥 보고 스치면 됩니다. 내 마음과 머리에서는 ‘아니’라고 하는데 자꾸 ‘맞다’고 강요하는 건 ‘폭력’이니까요.

 

누구나 한 번쯤 직접 작품을 보고 싶어 하는 워낙 유명한 작가의 전시이기 때문에 전시장에는 항상 사람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이 전시만큼은 이왕이면 아무도 없을 때 혼자서 그림을 감상하기를 추천합니다. 그림을 보다 보면, 어쩌면 산사에서 들을 수 있을 법한 조용한 종소리가 들릴지도 모릅니다.^^ 

* 이우환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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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

 

현대미술…단순함에서 빚어진 최고의 미학
한국 '미니멀리즘' 대가 이우환의 점, 선, 면 그리고 여백

 

 

 

 

이우환은 국제무대에서 동서미술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화가이자, 조각가이며 이론가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후반 일본에서 미술평론가로 등단, 당시의 모노하(物派) 태동을 주도하고 창작과 비평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그의 작품세계는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현대미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사상과 작업에 대한 해석과 검증은 작가 자신에 의해 그리고 그에게 관심을 표명하는 다른 작가들과 많은 비평가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데, 특히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업에 대해 끊임없이 검토하면서 사상적 의미를 부여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점 또는 선으로 이뤄진 그의 작품 속에서 미니멀한 간결함은 부여해 주지만 그러한 단순한 이미지들에게서 오히려 보는 이들로부터 복잡한 사고를 느끼게 해주는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선과 점들이 어찌 보면 통일성 있고 간결한 것 같지만 그러한 선과 점들이 현란하게 사방에 펼쳐져있어 더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것이 그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특징이다.

 

 

 

 

 

이우환은 1936년 경남 함안 에서 태어나 사실상 한국의 전통 교육을 받은 마지막 세대에 속한다. 어린 시절 그는 서당에서 소학을 공부하기도 했고, 문인으로 알려졌던 황동초로부터 유년기를 통해 시서화를 배웠다. 중, 고교 시절 이우환이 관심을 가진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마치 보이는 것처럼 음으로 짜 올리는’ 음악에 대한 관심이었으며, 끊임없는 독서 그리고 문학 창작이었다. 

1956년 서울대 미술대학에 입학하던 해 여름, 숙부 병문안 차 일본에 간 이우환은 1961년 니혼대학 철학과를 편입해 졸업했는데, 그가 철학을 선택한 이유는 미학이나 사회 사상사를 튼튼하게 알아 놓아야 나중에 무엇이든 제대로 할 수 있는 토대가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독자적인 사유체계와 비평방식은 재일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전환기 일본현대 미술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 고교 교과서에 그의 산문이 실릴 정도로 문학적 감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우환 - 조응  /  17억에 팔렸다고 해서 화제가 된 그림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

 


한국현대미술에 대한 지속적인 평가 작업에서 모노크롬 회화는 한국 현대미술의 독자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대상임이 인정되고 있다. 다시 말해 모노크롬 회화를 통해 비로소 우리 미술계가 서구 미술의 모방과 아류라는 비난을 극복하고 독자적인 미술활동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응

 

 

 

이우환은 1990년대부터 `조응’시리즈를 선보였다. 커다란 획이 즉각적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이 시리즈의 특성은 아주 적은 수의 획만을 가진 공간을 주제로 한다는 점이다. 그는`그린 것과 그리지 않은 것’의 상호작용을 강조하고 있는데, 시작과 끝이 분명한 가운데로 뻗은 이 선은 화면 전체에 긴장감과 동세를 부여한다.

 

 

 

 

이우환 '바람'

 

 

 

점에서, 선으로, 그리고, 바람에서, 조응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들이 또한 작가의 인생역정을 보는 것 같아 근원적인 우리네의 모습을 한번은 돌이켜 보게하고, 균형과 조화속에서 살고자하는 모습들이 평면적인 공간속에 잘 드러나고 있다. 작품을 볼때, 우리는 우선 기본적으로 작가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는가와 함께, 이 시대성을 잘 나타나고 있는가?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시대의 유산으로 남아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도 이우환 선생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좋은 작가인 것 같다.

 

 

 

 

 

 

 

바람과 함께 

 

 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바람과 함께’라는 주제로 작품을 제작했다.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존재를 형상화하면서 동시에 바람으로

대변되는 물질의 속성과 자연의 원리를 함께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우환 '조응' 

 

 

 

빈 공간, 허공에 선 하나를 긋듯이 점 하나를 찍는다. 단지 그럴 뿐이지만 어느 것은 예술이라 하고, 어느 것은 장난이라 한다. 그 차이는 무엇인가? 대가들의 무심한, 그러면서도 능숙한 한 행동의 결과가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되는데, 똑같은 행동을 초보자들이 했을 때, 왜 그것은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가지지 못하는가? 대가들의 이름값 때문인가?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다. 허공에 점 하나를 찍는 단순한 행위도 어떤 것은 예술이 되고, 어떤 것은 예술이 못되는 이유는 작품의 품격과 가치이다. 팽팽한 긴장과 균형이 있는 작품과 단순한 흉내만으로 그냥 베낀 작품과는 분명히 그 격이 다르다.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이 편하고 아름답다. 그렇듯이 점 하나 선 하나라도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하고, 그것이 빈 공간과 그런 주위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야 한다. 관계와 변화의 진리는 예술에서도 공유하는 기본적인 진리이다.

 

 

 

 

 

 

 

 

Relatum- a rest, 2005, stone, iron pole, photo Andre Morin

 

 

 

 

 

판화작품

 

 

 

 

 

 

 

 

 

 

水彩

 

 

 

 

 

 

 

이우환 '점으로부터' 

 

그런 면에서 한국적인 정감과 공간감각, 그리고, 정신성을 잘 드러내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중의 하나가 바로 이우환선생이다.

처음 이우환선생의 작품을 보았을 떄, 그저 선하나를 길게 늘여 놓은 것이 과연 무슨 예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가만히 바라다보면, 우리들의 의식처럼 명료함과 사그러짐이 같이함을 알게되고,

매일 매일 반복되는 우리네의 인생처럼 반복되는 의식속에서 흐트러짐없이 살려고자 하는 또렷한 정신성이 있음을 알게된다. 단순한 행위의 반복이 우리네의 삶이 되듯이 말이다.

그런면에서 어찌보면 가장 한국적인 질감과 느낌을 잘 구현했다고 볼 수가 있다.

 

 

 

 

 

 

 

 

 

 

 

 

 

 

 

 

 

 

 

 

 

 

 

 

 

 

 

 

동풍/1984년

 

 

 

 

 

점에서/1980년 点(점)에点(점)에서s80_24/1980/90.9x72.7/

oil on canvas 서s80_24/1980/90.9x72.7/oil on canvas

 

 

 

 

 

with winds/1987년

 

 

 

 

 

with winds/1987년

 

 

 

 

 

바람과함께/1991년

 

 

 

 

 

 

 

하나의 점으로부터..하나의 선으로 부터...

 

시각예술이 이제껏 봉사해온 인간중심의 재현이나 표상작용으로 부터 벗어나

최소한의 예술적개입으로 현실과 관념사이를 중재하면서

사물에 대한 미적관조와 여백의 세계를 보여주려한다...이우환

 

 

 

 

With winds, 1988, oil on canvas, 72.5×91㎝

 

 

 

 

 

 

 점으로부터, 1978, Pigment suspended in glue on canvas, 33.3×45㎝

 

 

 

 

 

선으로부터, 1978, oil on canvas, 100×80㎝

 

이우환선생의 '선으로부터'

 

`선으로부터’는 서구의 미니멀리즘을 동양적 사고와 감성에 근거하여 재해석한 작품이다.

밑칠을 하지 않은 커다란 캔버스 위에 청색의 선들을 반복적으로 그어 내리는 과정 속에서

작가의 존재는 무의미해지고 궁극적으로 완성된 작품은 탈아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1956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중퇴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1961년 일본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1967~91년에 한국·일본·유럽 등지에서 수십 차례의 개인전과 국제전에 참가했으며,

1968년 미술출판사 주최 평론 모집에서 〈사물에서 존재로〉가 당선되면서 평론작업도 병행했다.

그리고 1973~90년에 다마미술대학[多摩美術大學] 교수로 있었다.

 그의 작품제작과 이론 활동은 1970년을 전후하여 일본에서 형성된 모노파(派)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모노파의 성립에 실질적인 기여를 했다.

그의 미술론은 기본적으로 세계를 대상화하는 표상작용의 비판에서 시작한다.

그에게 예술작품은 '만든다'라는 창조개념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 '만남'을 가능하게 만듦으로써

세계와 일체감을 지각시켜주는 구조이다.

모노파 시기의 작품 〈관계항 關係項〉 연작은 이질적인 사물들의 위치를 변경하면서 결합하는 것으로

사물의 물질적 특성이나 존재감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외에 〈점에서〉·〈선에서〉 등의 평면작업과, 돌과 철판을 결합한 입체작업은

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전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주요저서로 〈만남을 구하여 出會ムお求めて〉(1971)·〈이우환 전판화(全版畵) 1970~1986〉(1986)가 있고,

화집으로 〈이우환〉(1986)·〈시간의 진동 時の震え〉(1988) 등이 있다.

 

 

 

 

 

 

이우환은 경상도 어느 산골 마을에서 4남매의 외아들로 태어나 전통적인 유교가문에서 성장하며, 고전과 문학에 뛰어난 어머니의 교육아래 5살 때부터 시서화를 배웠다. 그는 서울대 미대를 한 학기동안 다녔고, 1956년 일본 니혼 대학 문학학부에서 하이데거 니체, 현상학, 구조주의 등 다양한 현대철학을 두루 공부하였으며, 주로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여 왔다. 모노하를 바탕으로 한 이우환의 미학과 창작활동은 그 동안 한국과 일본 국내뿐만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대단히 주목을 받았고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한국과 일본 미술계뿐 아니라 서양의 미술계에도 많은 영향을 주는 대단한 화가이자 이론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우환은 문학으로부터 미술에 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고,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학도답게 ‘사물의 존재에로’라는 평론으로 일본 미술계에 등단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술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작업과 예술철학 그리고 미술비평을 함께 접목시켜 비평과 회화 조각을 지속적으로 발표하면서 그의 예술에 부합되는 치밀한 논리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을 국제적으로 전개시켜왔다. 그가 여느 작가들에 비해 더욱 돋보이는 것은 1970년 초부터 일본 안에서 전개되는 모노하에 이우환만의 예술철학으로 다른 작가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그는 한국인 작가라는, 당시 일본 내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력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론과 작업을 바탕으로 서양의 모더니즘의 경향을 탈피하고 동양적 요소들로서도 현대미술의 양식을 새롭게 전개 시킬 수 있다는 확신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우환의 예술세계와 예술론은 참신성과 논리적 예술성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동양적인 사유 형식과 예술방법이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철학이나 과학, 심리학 등 모든 대상에 대한 인식이나 사유가 인간중심이라는 점을 자각하게 되었는데, 이는 그의 예술 방향을 전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우환은 인간들의 사유가 중심이 된 창조보다는 자연의 질서 속에 존재하는 그 자체로 열린 세계로 다가갈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이러한 사유는 일본의 철학자 니시다기타로의 철학에 공감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한국적인 삶과 동양적인 인생관이 내재되어 있었기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이우환의 예술적 사유방법은 존재 그 자체를 절대적 진리로 인정하는 하이데거식의 사유방법과 유사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노장적 사유 방식과 선적인 사유에서도 중요한 영향을 받았다. 다시말해 그의 작품에는 무위속의 정중동(靜中動)과도 같은 최소한의 예술적 행위외에, 모든 것은 절제된 행위속의 간이(簡易)와 같은 상호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특징들이 있다.

 

그의 작품은 물 자체가 지니고 있는 각각의 대상을 새로운 공간과 형태 가운데서 그들의 존재를 절대적 진리에로 조응시켜 나간다. 이처럼 그의 작업의 주된 관심사는 새로운 시공 속에서 새롭게 대상화된 하나의 작품이 세계와의 만남을 통해 어떠한 생명력을 확보하느냐의 여부에 있다고 하겠다. 이렇게 태어난 생명력을 지닌 존재는 작가의 언어적 행위나 표현적 의미 가운데 존재하는 예술적 공간만이 아닌, 타자가 느끼고 공감하며 참여하여 이루어내는 열려진 세계를 의미하며, 작품과 타자와의 만남은 그의 예술에 내재된 본질적인 문제를 의미한다. 그의 작품이란 세계와의 만남을 이끄는 하나의 구조라고 보고, 자아와 사물이라는 양자가 서로 교차하며 만남이 실현 될 수 있는 장소가 미술영역이나 언어의 영역에서 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우환은 만남이 실현될 수 있는 장소는 곧 관계와 결합이 되는 바로 그곳으로서 구조와 불가분하게 연계되어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관계가 형성되고 내용이 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도록 객관화하는 방식의 일환으로 열린 의미의 글다듬기의 작업을 병행하였다.

 

이우환의 작업세계를 위한 재료들은 유리와 철판, 돌, 강철, 목재 등 다양하다. 그는 이러한 제재들이 갖는 서로 다른 특성들을 조화시켜 하나의 작품으로 혹은 한 공간 안에 전시한다. 조각난 유리판과 돌 혹은 이질감이 느껴지는 철판과 돌, 듬성듬성 연속적인 붓 자국으로 이루어지는 2차원적 평면의 캠버스등은 이우환의 창작세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가 이우환은 일본속의 한국인이자 이방인으로서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돌이나 깨어진 파편을 지닌 유리판, 철판들도 모두 서로 전혀 다른 속성을 지닌 물질들이다. 일단 이우환은 이들의 물질을 사용하여 새로운 속성을 지닌 물질로서 현장상황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이우환에게 있어 이들 물질들은 물질 원래의 상태를 재해석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의도하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에서 물질들도 아니다. 오히려 이우환이 전시장에서 관계항으로 제시한 이들 물질들은 그가 의도한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제시해주며, 또 우리는 그의 작품을 상이한 상황에서 각각 다르게 느끼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해란 생산적 노력이며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의 선입견은 의미에 맞게 수정될 수 있는 것이다. 개별성과 단독성을 지닌 그것들의 고유한 공간은 새로운 관계를 구축, 형성하며 우리의 고유한 영역인 이해를 입맛에 맞게 새롭게 자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이우환에게 있어서 공간이란 역동성을 담는 관계들의 교융이자 울림과 조율의 장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공간속에서의 교융과 울림은 예를 들자면 조그마한 붓 자국 하나하나에서부터 시작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만든 질서가 아닌, 인간도 하나의 점처럼 미약한 존재로 볼 수도 있는 그런 의미에서 공간에서 보여주는 서로 다른 붓 자국 하나하나가 갖는 위상은 마치 거대한 우주 공간 속에서의 하나의 작은 우주와도 같다. 사람은 우주속의 작고 미약한 점과도 같은 존재에 불과 하므로 우주자연은 인간의 위대한 모성(母性)과도 같은 것이다. 그 품으로 회귀한다고 볼때 한국인 인 그에게는 우주 자연의 원리에 인산을 접목시키고 교융 시키는 동양적 사고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작품세계는 철학적이고 이론적인 특성 때문에 잘못이해하거나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히코사카 나아요시는 이우환의 작업과 예술철학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비난하였고, 미국MIT대학 철학박사인 한국인 홍가이는 이우환의 작품세계에 대해 다른 해석을 하기도 하였다. 어떤이들은 그의 작품을 외적경향이나 화풍으로만 파악하여 서양의 모더니즘미술이나 한국의 미니멀아트 정도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이는 이우환의 예술철학과 작품에 내재된 의미와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하겠다.

 

이우환은 한국이나 일본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 이우환의 작품세계를 자로 잰듯하여 선적, 동양적, 허무주의적, 무학적, 사상가적 등 어는 한쪽으로 결론을 내리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듯하다. 그의 작품과 예술철학에는 이 모든 것들이 잠재적 또는 비 잠재적으로 담고 있고 상호보안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현대의 작가들 중에서 이우환처럼 체계성이나 논리성을 지니고 밀도 있는 작업을 하는 작가가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다는 점이다. 여느 작가들과는 달리 냉철한 이론적 접근을 꾀하며 풍부하게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는 그의 작업세계를 보면서, 국제적 흐름에 민감하게 눈치를 보거나 자신의 예술철학이 부재한 상태에서 단순히 감성적이거나 모방적인 작업을 하는 일부국내 작가들에게는 좋은 교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회화건, 설치 작품이건 이우환의 작품은 그 자체로 가장 아름답고 깊이 있는 철학이다.

그런데 그 고요한 느낌의 작품 속에는 수십 년간 고뇌한 작가의 치열함이 아우성친다.

국내에서 여는 6년 만의 개인전. 국제갤러리에서 만난 그는 사적으로나, 작품적으로나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모델처럼 포즈 취하길 극도로 싫어하는 거장은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하고 언론도 이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우환은 백남준과 ‘동급’으로 거론할 수 있는 유일한 작가다.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등 세계 4대 미술 시장에서 통하는 것도, 각각 비디오 아트와 ‘모노하もの派’의 창시자로 세계 미술사에 의미 있는 한 획을 그은 것도 그 둘이 유일하다. 작품가에서는 이우환이 오히려 앞선다. 노老 작가는 “옥션에서 돌려가며 내 작품을 사고파는 사람들을 혐오한다”고 말하지만 어쨌거나 이우환의 마스터 피스는 거의 매년 최고가를 갱신하며 약 20억 원까지 치솟았다. 그의 작품이 한국은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활발히 소비되는 이유는 그 누구도 함부로 공격할 수 없는 단단한 철학 덕분이다. 언뜻 그저 점 하나, 선 하나 그려놓은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미처 함께 그리지 못한 수많은 부재不在의 언어가 존재한다.

 

<여백의 예술>, <시간의 여울>, <멈춰 서서> 같은 저서를 읽으면 미처 화폭에 표현하지 않은 사상과 철학이 희미하게나마 보이는데(그의 글은 때로 암호 같아서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 언어는 한결같이 ‘여백의 미술’을 이야기하고 있다. 무려 40년 동안 이 한 가지 화두를 파헤치고 또 파헤치는 작업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지난 10월 9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선보인 돌과 철판을 주요 소재로 삼은 설치미술 역시 1960년도부터 천착해온 작업이다. 예술이란 결국 누가 더 단단하고 매혹적인 철학을 갖고 있느냐의 싸움인데 그 점에서 이우환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공력을 보유한 것이다. 더구나 그 철학은 아름답다. 일본에서 40년 넘게 살아서 그런지 일본 고유의 단시형短詩形 하이쿠의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작품 속에 내재한 철학을 작가에게 직접 설명 듣기란 쉽지 않다. 이우환의 말을 빌리자면 한국 기자들은 “작품이 얼마에 팔렸는지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미술가는 모델이 아닌데 이렇게 서봐라, 저기에 앉아봐라 주문이 많으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다가 도일해 대학을 나오고 활동도 하는 나를 한국은 도망자 취급하기” 때문이다. 세계적 작가는 <럭셔리>와의 사진 촬영에서도 “나는 포즈 잡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버럭’ 했다. 하지만 인터뷰에서는 많은 말을 토해냈다. 여자 친구 얘기가 나올 때는 아이 같은 미소도 스쳤다. ‘까칠한 예술가’란 세간의 평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우환의 작품은 그 자체로 한편의 미학적 철학이다. 설치 작업 역시 극도로 단순하고 함축적이어서 신비롭다. 그런데 심오한 철학을 모르고서는 작품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겁이 난다. 철학을 알아야 작품이 보일 것 같아 적잖이 부담되는 것이다.

  - 내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철학적 지식이 필요하다는 말은 말짱 거짓말이다. 길 가는 아낙네, 초등학생 어린이도 내 작품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지식인이나 미술 전문가는 이해 못할 수도 있다. 그전에는 내 작품을 이해했으나 직접 보면 헷갈릴 수도 있다. 나 자신조차 허우적거리기 일쑤인데 어떻게 모든 사람이 이해하겠나. 내 작품은 현장에 직접 와서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품이 놓인 공간 역시 작품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공간 속에서 무언가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주변 공기가 울리는 막연한 진동 같은 것이 느껴진다면 그걸로 된 거다. 주변 여백과 소통하는 것이 내가 천착하는 ‘여백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눈으로는 쉬우나 머리로는 어려운 작품이다. “돌 하나 철판 하나를 갖다 놓고 작품이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  돌과 철판을 이리저리 놓아보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한다. 작년에 뉴욕에서 전시회를 할 때는 컴퓨터를 통해 수차례 보고 이메일로 컨펌한 것을 현장에서 바꾸기도 했다. 막상 현장에 가보니 괜찮겠다 싶었던 돌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거다. 롱아일랜드 등지를 돌아다닌 끝에 다른 돌로 대체했다. 그럴 때는 애초에 진열한 돌에게 미안하다. 자기가 선택됐다고 생각하며 기분 좋게 앉아 있는데 방을 빼라고 하니 얼마나 언짢겠는가. 

돌 하나, 철판 하나만 있으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셈이니 누구라도 모작을 할 수 있겠다. 누군가 비슷한 작품을 만들면 어쩌나?

 -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참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이건 내 작품이 아닙니다”라고 할 수밖에. 


 

 

 

(왼쪽) Relatum - Dialogue, 2009
(오른쪽) Relatum - Triangle, 2009 


예술에서 승부는 누가 독특하고 강력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가에서 갈린다. 때문에 많은 작가가 자신만의 철학을 세우려고 노력하는데 작가에게 철학의 효용은 뭘까?

 - 작가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심오함이 없으면 오늘 이걸 하고 내일 저걸 하며 흔들린다. 반짝 하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철학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는데 아이디어는 철학과 동의어가 아니다. 근대화를 거치며 빨리빨리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나라 전체의 습관이 되었다. 여기에 휩쓸려서는 자신만의 철학을 갖추기 힘들다. 지난 수백 년간 축적하고 발전시킨 문화에서 나온 것이 철학이기 때문이다. 미술 하는 이에게 철학은 더욱 필요하다. 전쟁터에 나가 수천, 수만 명의 경쟁자와 싸우려면 개념이 확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귀신이 잡아가도 모른다.


서울대학 입학 당시에는 미술대학에 진학했다가 도쿄의 일본대학에 편입할 때는 문학부 철학과에 들어갔다.

전공을 철학으로 바꾼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 미학이나 사회 사상사를 튼튼하게 알아놓아야

나중에 무엇이든 제대로 할 수 있는 토대가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철학은 생각이나 몽상만으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탐닉했다는 표현을 쓸 만큼 책을 많이 읽은 것으로 아는데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었나? 더불어 꼭 읽을 만한 명작 몇 권을 추천해주면 좋겠다.

 - 고등학생 때, 친구와 도서반을 만들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세계문학전집, 세계 고전 등을 거의 다 읽었다. 일본에 가서는 일본어를 배운다고 그 책을 모두 다시 읽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못 읽은 책이 있다는 걸 견디지 못했다. 가장 권하는 책은 성경이다. 기독교가 내 종교는 아니지만 얻을 것이 많다. 너무 이데올로기적이고 정리가 잘된 신약보다는 신화적 측면이 강해 상상력을 동원해 읽을 수 있는 구약이 더 좋다. <노자>나 <장자>, <논어> 등도 읽어야 한다. 하이데거의 <예술 작품의 기원>, 플라톤의 <향연> 등은 여러 모로 도움이 되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멜빌의 <모비 딕> 등은 반드시 읽어야 할 최고 작품이다. 우리나라 작가로는 서정주가 단연 으뜸이다.

 

“왜 친일親日을 했습니까?”라는 언론의 질문에 “나는 천체의 운행을 따랐을 뿐이다”라는 재미있고도 희한한 답변을 한 그는 우리 시대 최고의 시인이었다.


작품 이야기를 해보자. 돌과 철판을 이용하는 작업이 40년째다. 제아무리 사랑하는 여자도 3년이면 싫증이 나는데 이 투박한 오브제가 뭐 그리 예뻐 헤어나지 못하는가?

 - 진리를 찾는 과정에는 뭔가 꼬투리가 보일락말락하는 시점이 반드시 있다. 그러면 또 그 옆을 파지 않을 수 없다. 미술계가 넓은 것 같으면서도 좁아 살아남기 위해서는 진지한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갈팡질팡해서는 안 된다. 어떤 작업을 하고 있다는 걸 지속적으로 보이고, 제시하다 보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존재성을 드러낼 수 있다.


왜 하필 돌이고 철판인가?

 - 돌과 철판을 통해 인간과 자연, 산업사회와 대화를 꾀하고자 함이다. 돌은 자연 그 자체다. 지구보다 오래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과 마주한다는 건 몇백, 몇천만 년 전의 우주적 파편과 만나는 일이다. 반면 철은 산업사회의 부산물이다. 인간이 만든 존재란 말이다. 전혀 성질이 다른 것 같지만 2개의 오브제는 사실 형제나 부자父子 같은 관계이기도 하다. 돌에서 철분을 추출해 만든 것이 철판이기 때문이다. 이제 작품을 다시 한번 봐라. 한 공간에서 돌과 철판이 서로 마주 보고(대결하고), 나란히 서고(화합하고), 어울리며(그의 작품 중엔 돌 위에 기다란 철판을 올린 것도 있다. 마치 돌 위에 노곤한 심신을 누이는 것처럼) 관계를 맺는데 침묵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반성하는 것 같기도 하며, 대화하는 것 같기도 하다. 돌과 철판 3개를 원 모양으로 하나씩 교차하며 놓은 작품이 있는데 이는 돌과 철판이 한데 모여 회의를 하는 것처럼 왠지 모를 팽팽함이 느껴진다. 돌과 철판의 침묵에 귀 기울여보면 오늘날 사회도 보이고, 자연으로 가는 길도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돌과 철판이 있다. 어떤 모양과 질감의 것이 좋은 돌이고 좋은 철판인가?

 - 굉장히 뉴트럴Neutral하고 모호한 것을 좋아한다. 너무 잘생기거나 개성이 강하면 공간 속에 어울리지 못한다. 그런데 좋은 돌과 철판 찾기가 어디 쉽나? 뉴욕 공사판, 토스카나, 알프스, 설악산, 일본의 수많은 산, 제철 공장 등 안 다녀본 곳이 없다. 1971년에는 파리에서 전시회를 하는데 일주일간 몇백 킬로미터를 달려 이곳저곳을 뒤져도 쓸 만한 돌을 찾지 못했다. 당장 내일이 전시 오픈인데 어떡하나, 허탈한 마음에 전시장 공원을 거닐고 있는데 눈앞에 꼭 내가 찾던 돌이 있는 것 아닌가?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돌을 옮겨다가 설치하고 다음 날 어슬렁어슬렁 전시회장에 갔는데 경찰이 찾아와 “저 돌을 당장 돌려놓지 않으면 교도소에 넣겠다”며 화를 냈다. 거의 울 지경이 되어 사정을 설명하고 파리에 나와 있던 한 일간지 특파원과 예술총감독이 “전시회가 끝나는 대로 꼭 갖다 놓겠다”고 겨우 설득한 끝에 간신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나중에 보니 돌이 있던 곳은 일본 정원이었다. 개 눈에는 개똥밖에 안 보인다고 자주 봐왔던 돌만 좋아 보였던 거다. 선입견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돌 같은 경우 전문 매매업자에게 부탁하는 경우도 많다. 그들이 좋은 돌을 잘 구해주던가?

 - 태반이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 형태도 없고 동그스름한 돌을 찾는다고 사진을 보여주며 말해도 자꾸 희한한 얼굴을 한 돌을 가져와 “참 잘생긴 놈”이라고 들이대는데 내 얼굴에는 죄다 괴물처럼만 보이더라. 제발 못생긴 돌 좀 구해달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한다. 

서양화가 윤석남 씨와 대담에서 작가의 작품에는 사회적 분위기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이번 전시 작품과 연결하면 어떤 분위기,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것인가?

 - 자기비판을 통해 사회에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예술가의 몫이라 생각한다. 대량생산과 소비는 현재 전 인류의 문제다. 중국 같은 나라는 한 해에 7~8%씩 성장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촉발된 환경오염이나 공해 같은 문제는 어찌할 것인가. 경제 전문가들이 들으면 욕지거리를 할 소리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성장률도 차라리 마이너스로 갔으면 한다. 그래야 영속 가능한 인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리처드 세라나 리처드 롱 역시 작품에 돌과 철판을 많이 사용한다.

그들의 작품과 이우환의 작품은 무엇이 다른가?

 - 둘의 작품은 어디에 오브제를 갖다 놔도 작품의 컨셉트가 보인다. 작품의 느낌이 장소에 따라 확 달라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내 작품은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느낌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공사판에 나뒹구는 돌, 철판과 여기 갤러리에 놓인 돌, 철판의 느낌은 전혀 다르지 않은가. 돌과 철판을 주요 소재로 쓰지만 공간 자체가 내겐 더 중요하다.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나 오브제가 주변 공간을 무대 삼아 울려 퍼지는 것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캔버스를 포함한 어떤 오브제도 컨셉트의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들 나름대로의 신체성身體性을 최대한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붓도, 물감도, 캔버스도 제각기 자기 모습이 있는데 이를 일방적으로 강제 동원해서는 안 된다. 물론 나 역시 오브제를 가져와 작품에 활용하지만 가능한 한 돌과 철판의 신체를 훼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회화나 조각 역시 뭔가를 창조하고 생산한다는 발상을 가능하면 덜 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이우환이 창시한 모노하의 핵심인가?

 - 그렇다. 1960년대 후반 히피 운동이 퍼지면서 미술도 기존의 틀을 깨자는 운동이 일었다. 석탄을 화랑 공간에 갖다 놓고 작품이라고 하는가 하면 갤러리에 말을 끌고 와 매놓기도 했다. 캔버스를 자기 영토라고 생각해 사상과 물감을 쏟아내는 것을 그만두고 캔버스가 뭔지, 붓이 뭔지 다시 생각하자, 캔버스와 붓의 역할을 일방적으로 규정하지 말고 그들과 대화를 하자는 움직임도 동시에 일었다. 이러한 흐름은 일본에까지 전해졌는데 나무, 돌, 철판, 종이 등의 소재에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직접 제시한 이 같은 사조를 통칭해 ‘모노하’라고 불렀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림도 못 그리면서 그냥 물건만 갖다 놓는 놈들’이란 비꼼과 무시, 멸시가 담겨 있었다. 모노하, 즉 물파物派(‘모노もの’란 일본어로 물체나 물건을 뜻한다)라는 이름도 그래서 생긴 것이다. 내가 모노하의 창시자라는 건 맞지 않다. 다만 역할을 했다면 미술의 순수성에 관한 글을 많이 썼을 뿐이다.


물건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이와 반대로 세상에는 오브제를 찢고, 자르고, 변형해 컨셉트를 표현하는 이도 많다. 데미언 허스트 같은 이는 아예 소나 상어의 피부를 절단, 내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작품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 현대미술은 ‘아름다움’이란 단어로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쇼킹한 볼거리 역시 시각예술의 하나로서 제 기능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같은 작업이 내 취향은 아니라는 거다. 무라카미 다카시, 요시토모 나라 같은 젊은 친구들과 40년 가까이 대학에서 어울렸기 때문에 그들의 작업 세계, 아이디어에도 관심이 많은데 컴퓨터 같은 하이테크놀로지를 많이 사용하는 요즘의 트렌드는 나와 맞지 않는다. 조작을 하더라도 내겐 오브제 자체의 신체성이 중요한 것이다. 최대한 날 것 자체에 가까운 오브제를 씀으로써 긴장감과 리얼리티가 생기는데 요즘의 작업물은 너무 개념적이거나 가볍다. 

어린 시절 서당에서 소학을 공부하며 ‘금강산도’로 유명한 한국화가 황견용에게 시, 서, 화를 배웠다. 그 솜씨를 한번쯤 현란한 붓 터치와 색채감으로 세상에 뽐내고 싶진 않았는가? 그러면 물건만 갖다 놓는 작가들이라고 폄하되지도 않았을 텐데….  - 단 한번도 뽐내고 싶다는 발상 자체를 한 적이 없다. 이는 사물도 죽이고 나도 죽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뽐을 내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하여 나는 ‘뻐기는’ 사람을 안 좋아한다. 특히 확고한 철학 없이 어설프게 작품으로 뻐기는 사람을 보면 비틀어서 박살을 내놓고 싶다. 

(위) From Point, 1978
 

 

 

 

 

방금 든 생각인데, 글로 박살을 내도 잘할 듯싶다. <멈춰 서서> 같은 에세이집은 전문 작가의 것이라고 해도 될 만큼 훌륭하다. 단편 ‘뱀’, ‘아크로폴리스와 돌멩이’ 같은 작품은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렸다.

 - 일본에 가지 않고 한국에 있었다면 문학가가 되었을 거다. 고등학교 때 <조선일보>에서 주최한 문학상에 동시가 가작으로 당선되었고 <동아일보>에서는 소설이 후보작으로 뽑히기도 했다. 비평가가 내 작품 세계를 인정 안 해주고 답답하니까 계속 글을 썼고 그 과정을 통해 글 실력이 조금씩 늘었다.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나 자서전을 보면 오랫동안 작가가 되어 그림을 그리는 일에 확신을 갖지 못했던 듯하다. 무슨 연유인가?

 - 경상남도 함안군 산골짜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할아버지는 유교적 봉건사회의 가장 마지막 세대를 사신 분으로 내게는 ‘꼭 멀리 가서 살아라, 넓은 세상을 봐라’ 라고 말씀하시면서도 본인은 평생을 농민으로 한곳에서 살았다. 집안 어른들은 (그림에 관심을 보이는 내게) ‘절대 그림은 그리지 말아라, 그림 그리기는 애와 여자나 하는 짓’이라고 얘기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지금도 내부에는 ‘내가 그림을 그려서는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있다.


“나는 평생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도망자라 했고, 일본에서는 침략자라 했다”고 습관처럼 말한다. 이만큼 큰 성공을 거둔 지금까지도 양국의 냉랭한 시선에는 변함이 없는가?

 - 그렇다.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일본은 밀어내는 것을 포기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 순수 민족에 관한 믿음이 강해 이방인에게는 “바깥 냄새가 난다”는 둥의 이유를 들어 밀어낸다. 웃기는 얘기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물품의 태반이 외국 교역을 통해 얻은 것 아니냐. 그건 수입품일 뿐이라고 말할지 모르나 이런 것이 다 은연중에 우리의 몸과 정신을 형성한다.


글도 잘 쓰고, 작품도 널리 인정받으니 여자 친구도 많겠다. 어떤 여성상을 좋아하는지?

 - 아내가 만날 놀리는 부분인데 주변에 여자 친구가 항상 있긴 했다. 지금도 많은 여자 친구가 있는데 모두와 잘 지낸다. 그런데 좋아하는 스타일을 말하기는 참 어렵다. 여자 친구마다 좋은 부분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나이 먹고 철없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조심스러운데 한번은 여성상 문제로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30여 년 전 한 좌담회에서 좋아하는 여성상을 말한 모양인데 그 자리에 있었던 편집자가 그 후 우연히 데이트를 하던 나를 보고는 ‘선생님이 일전에 말씀하신 여성상하고는 많이 다른데요’ 하는 것이 아닌가. 참, 뭐라고 대꾸를 하기가 어려웠다.


많은 여자들이 쇼핑에 열광한다. 쇼핑 좋아하는 여자는 왠지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 같은데….

 - 아니다. 나 역시 쇼핑도 잘하고 맛있는 것도 잘 먹는다. 특히 음식에는 욕심이 많은 편이라 해외에 가면 조엘 로부숑이나 알랭 뒤카스 같은 스타 셰프의 음식, 최고급 와인 등을 꼭 챙기려고 노력한다. 럭셔리하고 멋있는 삶을 살려면 습관적으로 ‘하이 퀄리티’를 추구해야 한다. 적게 소비하고 조금만 갖되 갖고 있는 것들은 최고로 좋은 것이어야 한다. 몇몇 여자들을 보면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 대로 쇼핑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던데 어쩌려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음식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지금 한국에서는 한식의 세계화 바람이 거세다. 소문난 미식가로서 한마디를 보탠다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가?

 -한식당이 안 되는 이유는 제대로 된 셰프가 없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한국에서 제일 잘한다는 식당을 찾아다닌 적이 있다. “당신의 레서피는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는데 단 한 명도 그 말을 이해해지 못했다. 요리법은 책에 있다는 둥, 엄마의 손맛을 내려 노력했다는 둥, 시골 밥상이라는 둥 엉뚱한 얘기만 하는 거다. 셰프의 독창성이 없는 음식은 음식이지 요리가 아니다. 한식이 세계적인 것이 되려면 무엇보다 셰프를 키워야 한다. 자기만의 육개장, 자기만의 김치를 만드는 요리사가 많아져야 한다.


이렇게 까다롭고 싫고 좋음이 확실한 이우환 작가가 추천하는 한국 작가는 누구일까?

 - 김수자 같은 작가는 세계 무대 어디다 내놓아도 통할 작가다. 이동엽과 정상화 작가도 훌륭한데 특히 정상화 작가는 내가 아는 제일 좋은 작가, 제일 훌륭한 작가다. 한국에는 좋은 작가가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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