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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공장돌리기>>식 그림, 그 가치를 묻다...
2016년 05월 18일 07시 28분  조회:2769  추천:0  작성자: 죽림

| 앤디 워홀은 조수가 제작했다 밝혀
평론가 “조씨, 관례상 허용범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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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조영남씨가 17일 서울 후암동 U.H.M 갤러리에서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수를 시켜 대신 그린 그림을 자기 이름으로 팔아 왔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수 겸 방송인 조영남(71)씨의 이른바 ‘대작(代作) 사건’(중앙일보 5월 17일자 10면)이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조씨의 주문으로 지난 8년 동안 ‘화투 그림’ 등 300여 점을 그려줬다는 화가 A씨의 제보로 현대미술의 제작 공정에까지 불똥이 튀었다.

한국 미술계에 그간 위작이나 표절 시비는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그린 작품에 대한 논란은 처음이다. 업계에서 ‘공장 돌린다’는 은어로 통하는 작가와 조수 간의 협업 작업이 대중 앞에 실체를 드러냈다.

미술계에서는 우선 ‘대작’이란 단어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대작이란 미술계에 없는 용어”라고 설명했다. 정씨는 “현대미술 사조인 미니멀리즘이나 팝아트에서 작가의 콘셉트대로 조수가 제작하는 게 관행이라지만 조영남의 그림이 그에 속하느냐 안 속하느냐를 우선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원격으로 그림이 오갔다는 점이라고 정씨는 지적했다. 보통 조력자를 두면 한 공간에 있으면서 즉각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경우는 조수가 아예 원작자의 통제 또는 감독 없이 그림을 그렸기에 후에 마무리 손질을 하고 사인을 했다고 해도 도가 지나쳤다는 분석이다. "관례라 하더라도 허용 범주를 넘었다”고 강조했다.

| 진중권 “콘셉트 제공했다면 괜찮아
작품 하나에 공임 10만원 너무 짜”


미학자인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트위터에 “작품의 콘셉트를 제공한 사람이 조영남이라면 별문제 없는 것이고, 그 콘셉트마저 다른 이가 제공한 것이라면 대작”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것은…작품 하나에 공임이 10만원, 너무 짜다”고 썼다.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갑질’과 ‘열정 페이’에 딱 들어맞는 경우라고 꼬집은 것이다.

예술을 너무 우습게 아는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김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장은 “평생 굶고 살아도 자기 작품에 목숨을 거는 다른 예술가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분개했다. 본인이 기존 미술판을 비판하는 글을 썼으면서도, 자기 손으로 사인을 하면 상품이 된다는 논리를 펴면서 그걸 판화에 비유하며 여러 사람이 볼 수 있게 나눈다는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건 억지라는 얘기다.

서구 미술계에서는 미술시장에서 제왕 노릇을 한 앤디 워홀이나 제프 쿤스 같은 대가들이 자신의 작업실을 ‘팩토리(공장)’라 칭한 경우가 있다. 그들은 자신은 콘셉트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조수가 제작한다고 당당히 말했다.

조씨의 경우는 그걸 밝히지 않고 ‘유명 연예인이 그린 그림’이라는 프리미엄을 얹어 상업행위를 했다는 점이 비판 대상이 된다. 본업은 아니지만 화가로서도 자기가 100%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한 것처럼 속인 것이다. 한 미술 애호가는 "지금껏 100% 조씨의 그림으로 믿어왔는데 배신감이 크다. 대작임을 밝히지 않은 것은 문제다”라고 말했다.

| 조씨 “최근 바빠 조수가 거의 다 해
작품 산 사람들 불쾌하다면 환불”


가수와 방송인으로서 조씨의 활동 영역을 감안하면 그의 그림 생산량은 물리적으로 절대 불가했다. 본인도 이 점은 인정했다. 조씨는 17일 “스케줄이 빠듯해서 최근 작품은 거의 A가 다 했다. 무리한 진행이었다. 내 욕심이 빚은 일이다”고 시인했다. 그러면서 “검찰 수사 의뢰가 오면 응하겠다. 내 작품을 산 구매자들에게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 불쾌하다면 환불해주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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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 연작 등이 대작 의혹에 휘말린 조영남씨. 2011년 자신의 화실에서 작업중인 조씨.


미술품 ‘대작(代作)’ 의혹에 휘말린 가수 겸 화가 조영남씨는 17일 대작이 아니라 자신의 창작품이라고 반박했다. A씨(60)를 조수로 고용해 일부 작품을 그리게 한 것은 맞지만, 자신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창작품이라는 주장이다. 또 ‘대작 논란’과 상관없이 계속 작품 활동을 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언론 인터뷰서 대작 논란 반박
"조수가 한 작품에 90% 그렸지만
내가 그리기 어려운 것 숙제 내준 것"
대작 의혹 제기한 A씨 지인들
“그는 백남준과 일했던 뛰어난 작가
조씨 언행에 모멸감 느꼈을 것”


그는 이날 YTN과 인터뷰에서 “내가 부탁해서 좀 그려달라 한 것도 맞고 한 작품에 90%를 그렸다는 것도 맞는 얘기”라면서도 “내가 그리기 어려운 것을 숙제 내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A씨도 인정했지만, (대작 부분은) 전혀 창의력과 관련 없고 100% 내 작품이고, 내 새끼고 내가 창작한 것이다. 조수 개념으로 쓴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대작 논란으로 인한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내 그림 산 분 중 불쾌하다면 응분의 반대급부로 처리해드릴 용의가 있다”며 “내가 잘못한 것은 책임지고, 그게 법적으로 사기라 인정되면 그걸 인정하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조수나 아르바이트생을 쓰지 않고 작품 활동을 계속 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그는 “이걸 계기로 좋은 그림이 나올 거고 내 생각에는 굉장히 도움될 것 같다”며 “이렇게 유명해졌는데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작 의혹이 폭로된 뒤 조씨는 언론에 얼굴을 내밀고 적극 발언을 한 반면 A씨는 잠적해 대조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본지 취재 결과 강원도 속초에서 작업을 해온 A씨는 현재 전남 해남 쪽에서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렇다면 왜 조씨와 A씨는 대작 시비에 휘말렸을까. 두 사람이 금전적 갈등을 빚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지만 또 다른 주장이 제기됐다.

본지 취재 과정에서 대작 의혹을 제기한 A씨가 조씨의 언행 때문에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끼고 괴로워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A씨와 함께 강원도 양양군에서 2012년 1년가량 함께 생활한 오모(61)씨는 17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씨가 자신의 지인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A씨를 소개할 때 ‘조수가 아닌 3류 화백’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이야기를 A씨로부터 들었다”며 “조씨가 A씨에게 인간적인 모멸감을 준 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A씨의 지인들은 그가 뉴욕에서 백남준(비디오 아티스트) 선생과 함께 일을 했을 정도로 능력이 뛰어난 작가였다고 평가했다. 한 지인(45)은 “A씨는 백남준 선생과 마지막까지 함께한 아티스트다. 그런 그가 조씨의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현재 검찰은 조씨에게 사기 혐의 적용 가능성을 따져보고 있다. 춘천지검 속초지청 관계자는 “실제 그림을 그린 작가에게 저작권이 있다고 본다면 다른 사람이 그린 작품을 자신의 것처럼 판매했을 경우는 사기죄가 성립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본지 취재 결과 검찰은 사기 혐의 적용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해 해외의 구체적 판례까지 검토를 마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아메리칸 고딕’이라는 중세시대 인물화 작품을 놓고 1992년 미국에서 저작권 문제를 다룬 재판을 검토했다고 한다. 이 판례 속의 작품 의뢰인은 “얼굴을 해골로 그리고 해적선을 그리라”고 작가에게 아이디어를 줬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실제 그림을 그린 작가에게 저작권이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는 “개성과 실력에 따라 그림이 바뀌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제공했더라도 저작권이 아이디어 제공자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같은 이유로 사기죄 적용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지만 무엇보다 우선 문제의 그림이 어느 정도 팔렸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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