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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감상] - 자유
2016년 12월 05일 22시 15분  조회:3059  추천:0  작성자: 죽림

        자유

 

               - 폴 엘뤼아르

 

 

나의 학습 노트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가 읽은 모든 책장 위에

모든 백지 위에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황금빛 조상위에

병사들의 총칼 위에

제왕들의 왕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밀림과 사막 위에

새둥우리 위에 금작화 나무 위에

내 어린 시절 메아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밤의 경이 위에

일상의 흰 빵 위에

약혼시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나의 하늘빛 옷자락 위에

태양이 녹슨 연못 위에

달빛이 싱싱한 호수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들판 위에 지평선 위에

새들의 날개 위에

그리고 그늘진 풍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새벽의 입김 위에

바다 위에 배 위에

미친 듯한 산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구름의 거품 위에

폭풍의 땀방울 위에

굵고 멋없는 빗방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반짝이는 모든 것 위에

여러 빛깔의 종들 위에

구체적인 진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살포시 깨어난 오솔길 위에

곧게 뻗어나간 큰 길 위에

넘치는 광장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불켜진 램프 위에

불꺼진 램프 위에

모여 앉은 나의 가족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둘로 쪼갠 과일 위에

거울과 나의 바위에

빈 조개껍질 내 침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게걸스럽고 귀여운 나의 강아지 위에

그의 곤두선 양쪽 귀 위에

그의 뒤뚱거리는 발걸음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 문의 발판 위에

낯익은 물건 위에

축복된 불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균형 잡힌 모든 육체 위에

내 친구들의 이마 위에

건네는 모든 손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놀라운 소식이 담긴 창가에

긴장된 입술 위에

침묵을 초월한 곳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파괴된 내 안식처 위에

무너진 내 등대 불 위에

내 권태의 벽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욕망 없는 부재 위에

벌거벗은 고독 위에

죽음의 계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회복된 건강 위에

사라진 위험 위에

회상 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일생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자유여.

 

-------------------

* 시인은 2차대전 당시 독일에 저항했던 프랑스의 대표적인 시인.

 

*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은 이 시를 표절한 시임.

 

* 현 시국에 분노하며... 나는 이 시를 올린다.

   이 시국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능함과 무력감에...... 

   나 자신에게 또한 분노하며 이 시를 올린다. --- 임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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