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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작가 - 게오르기우(규)와 산문시 "한국찬가"
2016년 12월 18일 16시 13분  조회:5127  추천:0  작성자: 죽림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기우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기우(루마니아어: Constantin Virgil Gheorghiu1916년 9월 15일 ~ 1992년 6월 22일)은 루마니아의 작가다.

루마니아 북동부 네암츠 주의 러즈보이에니(Războieni)에서 출생하여 부쿠레슈티 대학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배운 후, 루마니아 외무성 특파 문화 사절의 수행 등을 하는 한편, 창작에 주력하여 시집 〈눈 위의 낙서〉를 발표하여 루마니아 왕국상을 받았다. 1949년 전쟁 소설 〈25시〉를 발표하여(파리에서 간행)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 밖의 저서로 〈제2의 찬스〉등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로 망명하였으며, 1974년 우리나라를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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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한국 찬가


극동의 미지의 나라

나는 한국을 사랑하고 찬미한다.

그것은 나로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나는 나의 인생에 있어서 매우 늦게 한국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다.

나는 항상 모범적인 우등생이었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중학교인 군사중등학교에 다녔다.

 

학생들은 국왕의 제복을 입었으며 40명을 뽑는데 2천명의 지원자가 몰려을 정도로 경쟁이 심한 학교였다.

교수들도 가장 뛰어난 분들이었으나 8년 후 내가 중학을 졸업했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한국의 민중과 한국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

나는 다시 대학공부를 마쳤고 루마니아의 해외 주재 대사관의 문정관이되었다.

나는 외교관이었으나 여전히 한국이라고 부르는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극동아시아의 한쪽 구석에 하나의 반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내가 처음으로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은 I945년 여름,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이었다.

 

일본제국이 패망하고 5천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인이 독립을 선언하였을 때 붉은 군대는 나의 고향을 점거하였고 나는 포로의 몸이었다.

 

나에게는 한국에 대해서 무엇을 알 수 있는 책이나 도서관도 없었다.

나는 감옥에 있었던 것이다.

고립된 채로 나는 한국에 대해서 생각하였다.

 

산 채 매장된 민족들
  
어찌하여 나는 한국 민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던가?

그것은 학교 교과서에 그 이름과그 역사가 실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도에도 한국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의 반도였을 뿐이다.

한국인을 살아있는 민족의 리스트에서 지워버린 것이다.
 

1919년 3월 1일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한국인들은 봉기하여 독립을 선언하였다.

한국인들은 파리의 평화회의에도 참석하였고 한국인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들은 살과 뼈를 가진 민족으로 수천 년 동안 존재해 온 것이다.
 

월슨 대통령과 파리의 평화회의의 의원들은 한국인의 호소에 귀를 기울였으나 그 후 그들은 공식적으로 한국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였다.

 

그들은 침략자의 비위를 거슬리기를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지상에 살아있는 인간의 리스트에서 한국인의 이름을 삭제하였던 것이다.
 

내가 한국의 존재에 대해서 오랫동안 알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세계 어떤 나라의 교과서나 어떠한 역사 지리책도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일을 상기할 때 나는 분노와 반항과 노여움과 고통으로 이를 악물게 된다.

왜냐하면 인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잔학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산 채로 인간을 매장하는 일과 같은 것이다.

한민족 전체를 생매장하는 것이다. 수천 만의 인간을……. 


그것은 노예제도보다 더 나쁘다.

노예상인은 인간을 광장에 내놓고 무게를 달고 재고 해서 판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노예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민족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여기 하나의 예가 있다.

유럽의 내부에 세 개의 멋진 소수 민족이 있다.

그 하나하나가 고유한 언어와 조국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리튜아니아인, 에스토니아인, 그리고레트인들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이 세 나라는 유럽의 지도에서다 없어져버렸다.
 

발트의 세 나라는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이 세 나라는 소련에 병합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발트의 백성만이 산 채로 매장된 것은 아니다.

오늘날 똑 같은 비극 속에 사는 다른 민족들이 있다.

그것은 자유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소련을 자극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

그들은 소련과 협상을 하기를 원한다.

그들과 무역을 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살아있는 민족을 리스트에서 지워버려야 할 것이다.

그것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소련이다.

 

아시아의 귀고리

한국은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처림 중국과 일본 사이에 놓인 극동 아시아의 하나의 반도이다.

그러나 평면구형도(평면구형도)를 놓고 볼 때 그것은 반도가 아니다.

한국은 아시아 대륙의 귀고리다.
 

아시아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하여,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 자리에 한국이라는 귀고리를 달아 놓은 것이다.

 

한국은 보석처럼 정교하게 깎여지고 만들어지고 가꾸어진 것이다.

그 해안은 레이스로 되어 있다.

칠보로 되어 있다.

그것은 정말로 자수이다.

오직 보석만이 그러한 식으로 재단된다.
 

한국은 반도가 아니고 장식품이다.

하나의 보석, 하나의 귀고리이다.

레이스로 수놓은 천 8백 킬로미터의 해안에 3천 4백 개의 섬이 있다.

세공된 크고 작은 섬, 온갖 형태의 섬들이 해안을 장식하고 있다.
 

이 해안에서 등을 돌려 한국의 내부로 시선을 돌린다면 한국이 보석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 지리학자는 이 반도는 4분의 3이 산악지대라고 말할 것이다.

구름 위까지 뻗치는 산이 있고 거기에 다른 산들이 연결되어 있다.

토지의 기복을 제하면 그것은 해안과 마찬가지의 레이스이다.

산들은 구름에 걸린 레이스와도 같다.

레이스를 이루는 산꼭대기인지, 하늘과 구름인지 때로는 분간할 수가 없다.

아시아의 귀고리는 부조(부조)로 된 작품이다.

그 산은 칠보의 레이스이다.

 

지도상의 한국은 매우 작다.

모든 보석이 그런 것처럼 하나의 귀고리는 제 아무리 커도 역시 작은 것이다.
 

한국은 22만 평방킬로미터 라고 씌어 있다.

나에게 있어서 그 면적은 평방킬로로 잴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한국은 정확하게 나의 조국 루마니아와 같은 면적을 가지고 있다.

조국은 어머니이다.

어떤 것이 자기 어머니와 같은 크기를 가졌을 때 면적이라는 말은 의미를 잃는다.

그것이 설사 저속한 것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만일 사람들이 나에게 한국의 크기는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리라.

한국은 나의 어머니의 크기, 나의 조국의 크기이다 라고…….

 

 


비단옷을 만드는 종교

 

한국인은 이곳 지상에 어떻게 나타났는가?

어떻게 그들은 아시아 대륙의 귀고리를 자기의 조국으로 만들었는가?

사랑하는 자에게 인간은 수많은 종류의 질문을 하는 법이다.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 자신이 한국인을 여기 이 자리에 자리잡게 한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 날짜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것은 기원전 2333년 10월 3 일이다.
 

모든 나라, 모든 민족, 모든 예외적인 존재는 초현실적인 기원을 지니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아프로디테는 바다의 거품 속에서 태어났다.

 

하나님의 친구인 모세는 나일강의 푸른 물 위에 떠 있는 광주리 속에서 발견되었다.

로마제국은 암이리에 의해서 키워진 로뮤루스와 레뮤스란 쌍동이가 건설하였다.

 

한국은 한국을 창조하기 위해서 하늘에서 백두산 꼭대기로 내려온 단군이라는 신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한국은 또한 세계에서 그 문자의 공포일을 국경일로 삼는 유일한 나라이다.

한글날인 10월 9일은 공휴일이다. 마치 7월 14일이 프랑스의 국경일인 것처럼 ‥‥‥.  
 

단군은 한국인에게 꾸지뽕나무 재배와 직조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의류에 대한 기술은 매우 중요하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는 옷을 벗고 살다가 포도잎으로 옷을 대치하고자 한 일이 있다.

단군은 여자에게 비단옷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여자들은 쉽사리 그 일에 익숙해졌다.

한국의 비단은 선녀의 옷과도 같았다.

 

몽고의 유목민이 한국을 침략하였을 때 한국 여인이 다채로운 비단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은 한국을 무지개의 나라라고 불렀다.


단군은 민족의 왕이며 아버지이며 주인이다.

그가 한국 민족에게 내린 헌법은 한 마디로 요약된다.

그것은 홍익인간이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복을 주는 일이다.

 

그 이후 한국인은 다른 많은 종교를 받아들였지만 단군의 법은 변함 없이 5천여 년동안 계속 유지되고 있다.

 

왜냐하면 단군의 법은 어떠한 신앙과도 모순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모든 종교나 철학의 이상적인 형태로「최대한의 인간을 위한 최대한의 행복」

또는 모든 인류를 위한 행복과 평화이다.

 

 

 


 

우주를 향한 깃발

 

국기란 조국의 참된 현존이다.

 

내가 프랑스의 깃발에 인사할 때 내가 새로 얻은 조국인 프랑스는 나의 눈앞에 존재한다.

유엔이나 유네스코 등 모든 국제기구 건물에서는 많은 나라의 국기를 볼 수 있다.

 

수 많은 민족, 땅, 역사가 그 국기들에 나타나 있다.

국기는 각기 다르며 그 민족들도 너무나 다르다.

만국기를 보면서 나의 마음 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국기가 없는, 산 채로 매장된 국가에 대한 것이다.

 

다음에 소련에 지배되는 나라들이 떠오른다.

자유를 잃은 민족 - 불가리아.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 그 밖의 많은 다른 나라들.
 

국기는 지배자의 표지를 달고 있다.

낫과 망치, 소련의 문장, 가축이 그 소유자의 이름의 첫글자를 붉은 쇠로 몸에 낙인 찍듯 소련에 예속된 나라들은 모두 망치와 낫의 표지를 지니고 있다.

 

이 지상에 살아있는 나라의 국기 가운데 붉은색·노란색· 파란색으로 된 삼색의 루마니아 국기를 볼 수 있다.

지금 이 국기는 차드의 국기이다.

루마니아를 지배한 후 붉은 군대는 루마니아의 국기를 차드인에게 팔아버렸다.
 

이 중앙 아프리카의 흑인은 근래에 독립한 것이다.

그 민족은 국기가 없었다.

붉은 군대는 그 혹인들에게 우리의 국기를 판 것이다.

 

나는 요사이 매일 같이 뤼 드 벨르 페이유에 있는 파리의 차드 대사관 앞을 지나가며 나의 국기에 인사한다.

나는 나의 조국 루마니아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다. 나의 조국, 나의 어머니에게…….
 

한국의 국기는 유일한 것이다.

어느 나라의 국기와도 닮지 않았다.

거기에는 세계의 모든 철학의 요약 같은 것이 새겨져 있다.

태극기는 멋지다.

거기에는 하늘과 땅, 네 개의 방향, 낮과 밤과 사계절을 나타내는 선과 점이 있다.

그것은 우주를 나타낸다.

거기에는 남자와 여자, 선과 악, 불과 물이 있다.

 

우주의 대질서, 인간의 조건이나 살아있거나 죽어있는 모든 것의 운명이 선·점·원, 붉은색·흰색 그리고 파란색으로그려져 있다.
 

일본이 한국의 국기를 말살했을 때 한국인은 무궁화를 심었다.

무궁화보다 더 한국 민족을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없다.
 

한국 사람은 그것을 영원한 꽃이라고 부른다.

일본인이 그들에게 그들의 국기를 금지했을 때 수백 만의 한국인은 도처에 무궁화를 심었다.

그 꽃이 그들의 국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지배자는 감시하였다.

일본제국은 한국인에게 무궁화를 심는 일까지 금지하였다.

지배자의 군대는 한국 전 지역에서 무궁화를 뽑아버렸다.
  
무궁화는 정복자들에게는 위험하였다.

그래서 그것을 뿌리째 뽑아야만 했다.

금지된 것은 국기와 무궁화 뿐은 아니었다.

일본의 지배 하에서는 연도 역시 금지되었다.

 

한국에서 연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신년에 어린이들은 모두 그들의 소원을 하늘에 보내기 위해서 연을 올리고 연끼리 싸우게 한 것이다.

가장 강한 연이 적수의 연 끈을 끊고 싸움을 종결짓는다.

승리자의 연이 땅에 내려지면 수많은 군중들은 운동시합의 챔피언을 맞이하듯 박수갈채를 한다. 
하지만 일본의 지배자들은 연의 제조와 싸움도 금지케 하였다.
  
연을 가지고 놀 때 한국인은 의젓하였다.

그들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을 쳐다보는 자는 노예의 조건을 거부한다.

일본인은 포로가 된 자가 자유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 이다.

승자는 차라리 용감한 죄인이 되고,
 

1945년 이래 한국의 국기는 다시 하늘에 휘날리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상징인 무궁화는 도처에서 재배되었다.

그러나 한국인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945년 해방된 날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한국의 반은 폴란드,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쿠바, 앙고라처럼 소련의 고행의 공화국이 되었다.

한반도의 북쪽에는 한국의 국기는 휘날리지 않고 무궁화도 피지 않는다.

 

 

 


사랑과 자유를 위한 싸움

 

무엇보다도 나를 한국과 강하게 유대를 맺게 하는 것, 그리고 한국을 열렬하게 사랑하게 하는 것은 그 군대이다.

 

그것은 1944년 8월 23일 붉은 군대가 루마니아를 지배하여 나에게는 이미 조국의 군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때 이래 나의 어머니인 조국은 자유를 잃고 나의 민족은 노예상태에 빠졌다.

나의 나라의 군대는 패배하여 해산되어 버렸다.
 

똑 같은 일이 헝가리나 모든 동구라파의 나라에서 벌어졌다.

우리는 우리를 해방시킬 자국의 군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지금 나의 조국을 지배하는 붉은 군대와 싸우는 유일한 군대는 한국의 군대이다.

 

한국군은 나의 백성을 해방시켜주는 군대이기도 한 것이다.

길에서 지나가는 한국 군인을 만나면 나는 절을 한다.
 

한국군은 한국의 자유를 지키고 북반부를 해방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뿐이 아니고 세상의 모든 자유를 잃은 민족을 해방하기 위해 존재하는 상징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소련과 싸움으로써 한국관은 월남, 라오스, 앙고라의 해방을 위해서도 싸우는 셈이고 그 지배자에 의해 예속된 지상의 3분의 1 이상의 민족을 위하여싸우는 것이다.
 

시인으로서 나는 한국군을 찬양하는 데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는데 그것은 한국군의 장교가 계급장으로 어깨에 무궁화를 달고 있는 데 기인한다.

 

소령은 무궁화 하나, 중령은 둘, 대령은 셋‥‥

그래서 내가 한국군인에게 인사를 할 때 나는 그 무궁화에 인사하는 것이다.
 

하위의 장교들은 어깨에 꽃을 달지않는다.

그들은 잎을 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무궁화의 잎이다.

영원히 피는 꽃의 잎사귀들….

 

 

 


노년의 왕관

 

현대 사회에 있어서 한국은 많은 분야에서 모범이 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노인에 대한 공경이다.

현재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노인들은 버림을 받고 있다.

나에게는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변호사인 한 사람의 친구가 있다.

어느 날 그는 파리에 왔다.

그는 머리에 염색을 하고 있었다.
 

「자네 암탉처럼 머리를 염색했군. 웬일이야?」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나는 그의 염색한 머리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참다운 루마니아인이었다.

루마니아 사람은 머리를 염색하지 않는다.

그들은 노년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노년은 인생의 일부이다. 죽음이 그렇듯이‥‥‥.
「만일 내가 머리를 염색하지 않으면 나는 미국에서 직업을 유지할 수 없다네.」하고 나의 친구는 변명을 하였다.
 

나는 미국에 살지 않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지상의 모든 가난한 자들은 미국을 꿈꾼다.

그곳은 풍요의 나라이다.

이전에 나도 미국에 사는 그 친구를 부러워했다.

그는 백만장자의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를 가련하게 여긴다.

루마니아에는 노인이 없는 마을은 노인을 하나 사야 한다는 격언이 있다.

세계 어디에도 노인들이 한국처럼 존경받는 곳은 없다.

 

모든 문명화된 나라에서 노년은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인간은 늙는 것이 부끄럽다.

자동차 공장의 못쓰게 된 부속품처럼 사람들은 노년을 가려낸다.

한국은 이와는 반대이다.

한국에서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존경을 받는다.
 

나의 책의 한국어 번역을 한 여성은 대학의 교수이다.

아주 귀여운 부인이다. 
그녀는 다람쥐 같은 익숙한 손을 가지고 있다.

그녀를 볼 때 나는 제비를 연상한다.

나는 그녀 이름을 한국어로 발음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녀를 「제비」라고 부른다.

 

그런데 말을 할 적마다 그녀는 나를 노인처럼 대접한다.

그녀는 내가 마치 백 살쯤이나 된 것처럼 나를 자상하게 돌본다.

마침내 나는 좀 화가 났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부인, 왜 당신은 항상 나를 늙은이 취급을 합니까? 물론 나는 늙었소.

나도 그것을 잘 알고 있소.

하지만 당신의 남편보다 아주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요.

그에게 당신은 항상 그가 늙었다고 말하지는 않겠죠. 」
 「

내가 당신을 노인대접하는 것은 존경하는 뜻에서입니다, 신부님.」 하고 그녀는 대답하였다.
그녀는 얼굴이 붉어지고 매우 당황해 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나에게 한국에서 누군가를 노인처럼 대접하는 것은 그가 아름답고 현명하다고 칭찬하는 것보다 더 큰 존경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을 하였다.

나는 놀랐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동방의 기독교도들이 사제가 비록 나이가 어려도 카로이로스(Kaloyeros)」즉 「아름다운 노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상기하였다.

 

왜냐하면 노인은 현명한 자이고 그 예지는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다.

늙은이처럼 슬기롭게 사는 사제는 비록 나이가 스무살 정도라도 역시 아름다운 노인인 것이다.

노인의 슬기를 공경할 줄 아는것, 바로 이것이 다른 문명화된 나라가 한국에서 배울 점 이다.


내가 한국에 왔을 때 나의 도착을 알리는 신문들은 내 나이를 두 살이나 더 붙였다.

처음에 나는 항의하였다.

늙는 것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는 자기의 나이에, 태어나기 전에 살아온 아흡 달을 덧붙인다.

그 다음에 또 한살 더 붙여서 계산한다.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은 영광이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인간은 성숙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앙새의 사랑

 

지상의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한국인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행복을 갈망한다.

단군에 의하면 인간은 자기 자신의 행복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해 생을 영위하여야 한다.

나는 한국인에 있어서 행복이 무엇에 기반을 두고 있느냐에 대해 알려고 시도하였다.

그것은 배우기 쉬웠다.

행복의 표어는 병풍에 새겨져 있다.

벽에 붙인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모두가 이 행복의 말을 알고 있다.
 

나는 행복의 요소가 다섯 가지임을 배우고 있다.
장수, 부, 평화와 건강, 자식과 덕, 편안한 죽음.
 

두 번째 표어인 부는 장수 후의 부이며, 세째가 건강, 네째가 불행의 결여이고 다섯번째가 덕이다.

세 번째 리스트는 행복의 조건으로 장수·부·고귀함·평화·건강 그리고 다섯 번째가 풍요이다.

 

행복을 열거한 리스트 가운데서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사랑이라는 말이 없는 점이다.
서양에서는 사랑을 제일 첫머리에 놓는다. 그것은 개인의 행복의 요소 중 하나이다.

 

한국인은 결코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인가?

인류의 시초 이래 세상의 모든 시인들이 읊고 연극의 장면에서 음악으로 노래부른 사랑이 한국에는 없는 것일까?

나는 감히 갑작스럽게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남녀의 거동을 관찰하였다.

한국인은 세계의 모든 젊은 남녀와 똑 같은 사랑의 몸짓을 하였다.

 

한국인에 있어서는 서구의 나라 사람들보다 사랑이 좀 수줍고 내부에 간직되어 있었을 따름이다.

그것만이 유일한 차이였다.

세상 어디서나 사랑의 상징은 비둘기이다.

아주 사랑스러운 새이다.

그 새는 육신화된 애정을 나타낸다.
 

한국에서의 사랑의 상징은 오리이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모든 혼례의 방에는 병풍에 그려진 오리를 볼 수 있었다.

 

침대 옆 테이블, 사기나 도자기에도 나무로 된 오리가 있다.

집집의 어디에나 오리가 있다.

나는 박물관에서도 오리를 보았다.

그것은 언제나 사랑의 상징이었다.

 

한국의 건국 이래, 즉 기원전 2333년 10월 3일 이래 모든 화가들은 화폭에 오리를 그렸다.

한국의 시인들은 항상 오리를 노래하였다.

나는 사랑의 상징으로 이 새를 고른 것이 이상하여 오리의 모든 종류에 대해서 자료를 모아보았다
 

첫 번째로 내가 놀란 것은 우리 서양 사람들도 오리를 사랑의 상징으로 여긴 것을 알았을 때이다.

그것은 백조이다.

 

그런데 백조는 오리이다.

 

백조의 노래만큼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인은 백조가 오리의 종류에 든다고 해서 오리를 사랑의 상징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새들 가운데 오리만이 일부일처제이다.

그 말은 충실하다는 뜻이다.

사랑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충실성이다.
 

우리 기독교 신자도 역시 그것을 선언한다.

「죽을 때까지 충실하라. 그러면 왕관을 얻게 될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결혼을 통해 남자와 여자는 영원히 결합된다.

 

좋은 경우나 최악의 경우나 결혼이란 헤어질 수 없는 것이다.

실제 결혼에 있어 그것은 실천되지 않은 채 이론적으로만 가능하였다.

 

한국에 있어서 충실성이 없는 사랑이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너무나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시골의 여인들은 과부가 지나가는 것을 볼 때 그 여자가 아직도 살아있는 것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놀라는 것이다.

 

결혼의 결합은 그처럼 강하기 때문에 그의 동반자가 죽은 후에도 살아있을 때는 놀라는 것이다.

과부는 흔히 미망인이라고 불린다.

남편이 죽은 후에도 살아있는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놀란다.

 

 

 

 

 

 

 

한국에서 죽은 사람은 「도착한 사람」이 라 부르고 살아있는 사람은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한국적인 사랑은 또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이해관계를 초월한 것이다.

 

인간이 서로 사랑할 때 사로 기다리지 않는 법이다.

젊은 남자나 여자는 그 사랑의 대상이 그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건 적대시하건 무관심하건 언제나 사랑하는 법이다.


그것은 무조건의 사랑이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규칙을 벗어난다.

서양의 소설이 지니고 있는 자기 애인의 정복이나 자기 곁에 잡아두려는 줄거리는 한국의 여인들에게는 이상한 것이다.

 

그들은 사랑을 위하여 사랑한다.

그들은 소유의 갈망이나 파괴적인 질투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한 젊은 한국의 여인이 어느 날 우리집에 왔다.

나는 문을 열어주었 다.

그녀는 신발을 벗고 한국의 습관에 따라 신을 문 앞에 놓았다.

그녀는 파리에 들른 것이다. 그녀는 미국에서 오는 길이었다.

 

그녀는 의자 위에 앉았다. 그녀는 밤새도록 여행을 하였기 때문에 피곤했다.

그녀는 한국식으로 앉았다.

그녀는 의사의 치료를 받기 위해서 미국에 갔다오는 길이라고 말하였다.

그녀는 암에 걸려 있었다.

미국 학자들은 그녀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녀는 곧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녀는 젊고 아름다왔다.

그녀는 아직 인생의 반도 살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행복해 했다.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저는 모든 것을 다 정리했어요.

이제 저는 편안하게 죽을 수 있어요」
나는 그녀가 편안하게 죽기 위해서 무엇을 정리하였는지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오직 성인만이 행복하게 죽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저는 제 남편을 몹시 사랑했읍니다」하고 그녀는 말했다.

「전 그의 취미는 뭐든지 다 알고 있어요.

그의 버릇도 모두 알고 있죠, 그의 변덕까지도요.

저는 제가 죽는 날 저를 대신할 수 있는 한 처녀를 찾아냈어요.

 

저의 남편은 아무 것도 눈치를 못 채고 있지요.

제가 불치의 병에 걸려 있는 것을 알기가 무섭게 나는 그녀를 우리집으로 오도록 했어요.

그리고 그녀에게 나의 남편을 돌보아주는 일을 맹세케 하였죠.

제가 죽으면 제자리를 대신 맡아 달라고요.
 

저는 물건이 들어있는 모든 서랍을 그녀에게 보여 주었지요 그리고 저의 남편을 위해서 음식을 준비하는 법도 가르쳐 주었어요.

 

그리고 어린애를 돌보는 법도 가르쳐 주었어요.

그녀는 저를 대신해주기로 약속하였어요.

그러니 저의 아이들이나 남편이 제가 죽어도 슬퍼할 이유가 없지요.

내가 없는 것에 대해서요.

저는 마음 편하게 죽을 수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행복합니다‥‥‥.
 

나는 이처럼 가슴 아프게 하는 자기희생의 고백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없다.

사랑에 의한 자기희생, 완전한 희생.
 

나는 후에 이 여인이 한국에 있어서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한국 여인의 본성에 맞게 행동한 것이다.
 

그때 이래 나는 행복의 다섯 가지 요소 가운데 왜 사랑이라는 말을 찾아볼 수가 없는지를 알게 되었다. 한국에 있어서의 사랑이란 너무나 크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언급할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위대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사막을 꽃피게 하는 강

 

자유의 진영에 있는 한구그이 반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성장해온 나라 중 하나이다.

그것은 나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운다.

한국은 내가 좋아하는 나라이며 나는 한국이 산업국가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볼 적마다 행복을 느낀다.

 

기술면에 잇어서 미국 사람은 세계의 챔피언이다.

그들은 달나라에까지 갔다.

그들은 천체의 공간을 여행하고 있다.

미국의 문명은 세계의 경이이다. 예전에 세계에는 일곱 개의 경이가 있었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단 하나의 놀라움밖에 없다.

그것은 미국의 기술이다.

하눅ㄱ은 미국보다 많이 뒤떨어진 곳이 아니다.

일년도 채 되기 전 한국은 현대의 아주 전설과도 같은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한국인은 사막에다 인공의 세 개의 큰 강을 만들고 사막을 꽃피게 하는 일을 착수한 것이다.


그것은 달나라 여행이나 피라밋을 세우는 일 못지않은 큰 계획이다.

거기에는 국제적인 경쟁이 있었다.

모든 산업화된 나라는 이 경쟁에 한몫 기었다.

이 계획을 실천하는 데 있어 한국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한국인은 리비아의 벵가지의 남족 천 킬로미터나 되는 사막의 모래를 파는 일에 착수한 것이다.

한국인은 석유가 아니라 물을 끌어올리기 위한 작업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한국인은 타제르보에 거대한 호수를 만들기 위한 땅 가운데서 물이 솟도록 만들 것이다. 
그 호수는 천 킬로미터나 되는 인공적인 강을 적시게 될 저장소가 될 것이다.

  
강은 사막 가운데에서 지중해로 흐를 것이며, 그것이 사막의 모래를 비옥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수에즈 운하나 파나마 운하를 만들고 라인강을 론느강과 연결하는 등 수많은 공적을 이루어왓다.

그러나 사막 한가운데에 천 9백 킬로미터나 되는 인공적인 강을 만드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리비아의 사막에 이 인공적인 강을 만들기 위해서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일본, 독일, 영국의 학자와 기술자들은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가장 뛰어난 계획은 한국의 학자와 건설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인공적인 강은 현재 실제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한국인은 83개월 안에 끝마치기로 약속하였다.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천 2백만의 한국인이 이 인공의 강을 만들기 위해 일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업적에 대해서 어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은자의 왕국

 

지나간 5세기 동안은 한국인에 있어서 수난기였다.

1600년경 한국은 사방에서 너무나 심한 위협을 받았기 때문에 위축되어 살아왓다.

한국 민족은 세계에서 격리되었다.

한국인은 은자의 민족이 된 것이다.

그 동안은 그들에 있어서 침묵의 세기였다.

한국인들은 그 동안 과거에 그들이 이루어 놓은 놀랄 만한 업적이나 가치를 남기지 못하엿다.

 

구텐베르크보다 2백년 전에 한국 사람들은 인쇄술을 발명하였다.

목판 활자도 여전히 존재해 있었다.

한국인은 기술의 기적을 이루어온 것이다.

한국인은 그들의 발명을 이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양사람보다 먼저 군함을 만들었다.

 

그것은 거북선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철갑선을 사용하여 바다의 격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한국인은 측우기도 발명하였다.

그것은 지금 서울의 박물관에 있다.

그들이 세상을 은퇴할 때 그들은 모든 그런 것을 버린 것이다.

적은 바다의 모래나 둘의 풀처럼 많았다.

한국인은 거기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침묵과 고립의 세기는 고통스러웠으나 한편 한국인의 영혼을 단련한 것이다.

 

베들레헴에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날 무렵 두 종류의 초대자만이 존재하였다.

그것은 하늘에 있는 천사와 땅에있는 양치기이다.

이따금 사람들은 왜 그리스도가 양치기를 택하였는가 하고 자문한다.

양치기의 조합은 다른 조합보다 뚜어난 것일까?

양치기는 농민이나 직공 또는 의사보다 뛰어난 것일가? 천사 곁에서 동등하고 다른 인간들보다 뛰어나지 않은 인간을 초대하지 않는다.

 

양치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점은 바로 그들이 고독하게 살며 순수함 속에, 명상 속에 생활하는 데 있는 것이댜.

 

여러 세기 동안 한국 사람은 은자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참석한 양치기들처럼 세상에서 격리되어 살아왔다.

 

부처님은 한국인에게 그들이 세살과 격리되어 살아온 것이 그릇된 선택이 아님을 보여 준 것이다.

때은 어려운 시기였다.

한국 주의에는 위험이 가로놓여 있었다.

 

부처님이 그의 가장 라름다운 연설 가운데 말씀하시기를 위기에 있어서 자기 내부에서 피난처를 찾아야 하며 외부에서 피난처를 찾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에 있어서의 일상생활은 준엄하다.

한국말에는 쌀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기근의 달이 계속되는 봅의 기나긴 달이다.

쌀은 보자라고 저장은 바닥이 난 것이다.

 새로운 수확의 시기는 아직 멀다.

이 어려운 시절에 한국인은 음식을 고안해낸 것이다.

 

식물성의 요리. 모든 여인들 처녀들 어린이들은 지붕이 둥근 그들의 집에서 눈이 녹을 무렵에는 나온다. 그녀들은 마당, 들, 산의 기슭으로 식물이나 나무뿌리 등 많은 종류의 식물을 캐러 간다.

 

그러나 대진는 굶주린 자를 먹이기에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여인들은 바다로 물속에서 그들이 먹을 수 있는 바다식물이나 김을 따러 간다.

 

한국의 집에는 어디나 양식을 저장할 큰 항아리가 있다.

보릿고개란 헛된 말만은 아니다. 그것은 기근의 달이다.

한국의 민화(民畵)에도 보릿고개가 나타나 있다.

 

 

 

 

기근 때의 일이다.

한 어린이가 그이ㅡ 어머니가 굶어죽게 되는 것을 보다못해 애태운다.

그는 어머니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양식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울면서 강가로 간다.

그는 어머니에게 물고기를 잡아 갖다 주려고 한다.

그런데 강은 얼어 있다.

그는 얼음을 깨뜨릴 만한 힘이 없다.

그는 체운으로 얼음을 녹이기 위해서 얼음 위에 앉는다.

그는 울며 하루종일 앉아 있다.

마침내 얼음이 녹았다.

그는 물고기를 잡아와 그의 어머니를 구출한다.

 

한 한국의 자각가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멋진 책 속에서 「우리의 집은 자연의 폭력으로부터 보호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나의 가족은 이 피할 수 없는 빈곤에 대해서 걱정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나의 가족은 불교이 신비로운 교리와 공자의 이론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데 거기에는 참사람이란 거친 음식이나 소박한 옷, 검소한 집에 사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아름다움을 미묘하게 느낄 줄 모르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하고 잇다.

 

나의 가족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위인들은 죽을 정도로 굶주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양친은 이 모자람을 견디어내고 미적인 펴오하 이외의 모든 것, 만족을 경멸하는 것을 명예로 삼고 있는 것이다.

 

집안의 학자인 나의 아저씨는 머리털을 다듬는 일이나 옷이 더러운 것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그이 필체는 언제나 매우 까다롭다.

 

이러한 기근의 시기에 한국 사람들은 ?逾?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들은 시들은 구고하꽃을 결코 버리지 않는다.

그것으로 신년에 떡을 만드릭 위해서 종교적인 마음으로 그것을 간직해 둔다.

그들은 구고하, 무궁화도 부엌에서 식용으로 쓴다.

한국 민족은 언제나 대지와 인접해서 살아왔다.

자연과 우주와 함게 사라온 것이다.

 

우물을 파는 장소, 집을 짓는 장소, 양친의 무덤을 파는 장소는 해박하게 연구하여 선택한다.

그것은 에코로지에 대한 고도의 지식을 나타낸다.

 

사람들은 지세, 바람의 방향, 샘의 깊이, 토지의 성질을 고려한다.

토지·물·나무·꽃은 살아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특히 산은 하나의 영혼으로 간주되었다.

어느 날 나는 절에 간 적이 있다.

그 절은 산꼭대기에 있었다.

기릉ㄴ 아주 좋았다.

포장이 되어 있었다.

현대식 도로였다. 
그러나 길은 꾸불꾸불했다.

나를 따라오던 한국 부인은 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았다.

 

「미안합니다, 신부님, 우리는 이 산길을 덜 가파르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아주 뛰어난 기사가 있으니까요.

그들은 미국에서 공부를 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굴을 파지 않기 위해서 이 길을 만든 것입니다.

굴을 파면 산신령을 화나게 하고 방해하게 되니까요……」

 

한국의 기사는 미국 대학에서 공부를 마친 후에도 자동차의 소음이나 도로의 건설에 있어 산신령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마음먹는다.

  
한국인은 나무·꽃·식물·뿌리의 형제들이다.

한반도에는 4천 5백 종류 이상의 식물이 있다.

덴마크에는 천5백종, 영국에는 2천 종밖에 없다.

매년 4월 5일은 자연의 축제일인 식목일이다.

한국 사람은 누구나 나무를 심는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을 지배한 소련은 남쪽을 침범하였다.

침략자는 수없이 많았다.

탱크로 된 사단은 급류처럼 한국으로 몰려왔다.

그들은 도시와 마을을 불태웠다.

그들은 수확·숲·정원을 파괴하였다.

전쟁은 3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1953년 7월 27일 침략자가 물러갔을 때, 전 한국은 온갖 재로 덮여버렸다.

그것은 소렴의 초토작전이었다.

한국인은 그들의 도시와 집을 다시 세?m다.

그러나 그 전에는 그들은 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한국은 그그들이 형제인 나무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오늘날 한국은 다시금 나무로 덮여 잇다.

매우 오래된 숲을 볼 때 나 자신 놀라게 된다.

나는 그들에게 어떻게 그처럼 빨리 나무가 자랄 수 있도록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했다고 대답하였다.

미국식 방법이다.

 

자연상태에서는 30년에 걸려 크는 만큼을 5년 동안에 자라게 만든다.

그것은 과학적인 숲이다.

 

나는 이 과학적 숲이 미국인의 의해, 남미 브라직의 코피재배로 불모지가 된 아주 방대한 대지에 만들어진 것을 알고 있다.

전나무, 참나무, 너도밤나무는 3년 동안에 20년간 자란 만큼 커진다.

미국인의 과학적 업적에 대한 나의 열정은 다시금 넘치게 된다.

 

그러나 나의 친구인 브라질 사람들은 나를 실만케 하였다.

그들은 나에게 이 기적적인 숲에서는 새의 노래소리를 들을 수가 없디거 말하였다.

단 한 마리의 새도 여기에 보금자리를 만들고 살려하지 않는다.

새들은 고학적인 숲을 좋아하지 않느낟.

미국인에 의해서 브라질에 과학적으로 심어진 아름다운 숲은 유령이 깃든 집과도 같다.

 

학자들은 새들이 그 숲에 살기를 원치 안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현재 그들은 발생론적 변종에 의해 과학적인 숲을 좋아하는 새로운 종류의 새를 만들어내는 중이다.

나는 한국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그러나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

반도를 덮은 과학적인 숲은 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언제나 한국은 가을에 북쪽의 얼어붙은 땅을 버리고 남쪽 때평양이 섬으로 겨울을 지내러 가는 수많은 철새가 휴식하며 기력을 회복하는 장소이다.

 

현재 한구겡 머무는 새의 수는 증가하였다.

그들은 새로운 숲을 좋아한다.

한국 사람은 매혹되었다.

약 천만의 인구를 가진 대도시 서울에는 새가 오지 않는다.

새들은 서울에 머무르지 않는다.

 

하느르이 새들은 현대의 대도시보다 과학적인 숲을 더 좋아한다.

한국 사람은 철새의 방문이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서울을 뚫고 지나가는 한강변에 일년에 두 번 한국의 지바오가 도시 위로 날아갈 수 있도록 특별한 공원을 옮겨 놓았다.

 

 그것은 정말로 새들의 숙소이다. 
거기에는 수십 종이 있다.

강물 줄기를 따라서.

도시 한복판에. 현재는 새들이 서울에도 찾아온다.

새들은 더러운 초현대의 대도시도 마다하지 않는다.

새들은 자기 취미에 맞는 숙소를 발견한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가지는 은자들처럼 고독 속에 위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중세기 말에 세계를 발견하기 위해 떠났던 서양인들은 한국을 알지 못하였다.

포르투갈인, 영국인, 프랑스인, 화란인은 인도, 중국, 모든 태평양의 섬, 일본은 발견하였으나 한국이 존재하는 것은 알지 못하였다.

 

포르투갈과 화란의 항해자들은 자주 일본에 가곤 하였다.

그들은 한국 근처의 바다를 지나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알지 못하였다.

프랑스인은 월남에 자리잡았다.

그들은 한국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였다.

 

한국은 서양의 항해자에 의해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1653년 루이 14세 때 하멜이라고 부르는 화란인이 36명이 수부와 함게 한국 해안에서 조난을 당한 것이다.

 

화란으로 돌아간 하멜은 미지의 땅 한국에 대해서, 즉 은자의 나라 사람들의 생활에 대하여 썼다.

새로운 민족의 발견은 감동적인 것이었다.

 

 

 

 

한국에 있어서의 신(神)

 

그처럼 오랜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은 오늘날 전 세계의 민족에게 알려지고 경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교황 장 폴 2세는 서울에 내리면서 한국의 땅에 입을 맞추고 찬사를 보냈다.

 

그것은 1984년 5월 3일이었다.

말할 수 없이 중요한 사건이다.

기독교국이 최고의 사제, 로마의 거룩한 형제, 지상의 모든 기독교도의 정신적인 수령이 이날 한국에 온 것이다.

 

사제들이란 하늘과 신성이 흘러 땅 위에 기울어지는 강이다.

교황의 도래와 더불어 한국에는 신이 온 것이다.

4천만의 한국 사람에게 신은 하늘에서 내려와 교화으이 현존으로서 그들 곁에 임한 것이다.

 

한국에는 약 백만의 가톨릭 신자가 있다.

신교도는 4백만이고 불교도, 유교도, 도교도, 샤머니스트는 3천 5백만이나 된다.

교황에 대한 가장 감동적인 환영은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들은 기독교의 교회는 그이 어린이들이ㅡ 어머니일 뿐 아니라 교회에 속하지 않는 어린이들의 어머니라는 것을 한국인은 알고 있다.

 

3천 5백만의 한국의 비기독교 신자들도 교황이 그들의 거룩한 아버지임을 마음속 깊이 느낀 것이다.

그 영접은 아주 열광적이었다.

 

한국인들은 언제나 관용의 종교를 실천으로 옮기며 살아왔다.

민족이 창시자가 가르쳐 준 것처럼.

어느 날 산꼭대기에 세워진 절에서 두 여승이 나에게로 접근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아름다왔다.

머리를 깎고 승려복을 입고 있었다.

나에게 인사를 한 후 그들은 눈을 하늘로 들고 십자가를 그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당신네들은 불료이 여승들인데……왜 십자가를 긋습니까?」하고 나는 물었다.

 

「당신네들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은 단신과 당신의 종교에 대한 존경의 표식입니다」하고 그들은 대답하였다.

그들의 파벌주의가 없는 점과 관용성이 나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모든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이 두 여승이 십자가를 그은 것과 같은 마음으로 교황을 맞이하였던 것이다.

 

교황은 한국의 백 3명의 순교자들을 시복하기 위해서 한국에 온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예외적인 일이다.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2세기 전에 불과하다.

그 이상은 아니다.

현재 약 백만의 가톨릭 신자밖에 없는데도 그 민족 중 백3명의 남자와 여자가 시복을 받은 것이다.

 

성인들이 수에 있어서 한국은 단숨에 성성의 정점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한국보다 성인이 많은 나라는 오직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뿐이다.

한국인은 4위에 이른 것이다.

그것은 절대적인 기록이다.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분명히 백 3명의 순교자들 덕분이다.

 

오직 순교자와 성인만이 그러한 성스러운 업적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순교자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의 동반자들이다.

순교자들의 피는 천국에의 열쇠이다.

기독교 신앙을 위하여 죽은 백 3명의 한국인들은 오늘 날 천사와 천사장 세라핀과 더불어 하늘나라ㅏ 그리스도의 오른쪽 곁에 있다.

성인들은 예수 곁에서 인간의 변호사이며 중개인이다.

 

오늘날 한국은 한국을 찬양하는 지상의 모든 민족에 의해서만 알려져 있는 성이 아니고 성 바질, 성 니콜라, 성 조지와 그밖의 다른 위대한 성인들과 하나님 오른쪽에 자리잡은 백 3명의 한국인에 의해서 하늘에서도 알려져 잇다.

 

지상에 퍼져 있는 수만흔 가톨릭 신잗르은 그들의 달력 속에 한국의 백 3명 성인의 이름을 적어 넣는다. 그들은 그 성인들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들은 한국의 성인들에게 하나님의 곁으로 불러주기를 간청할 것이다.

순교자들에 의해서 얻어진 성성은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모든 기독교 교회는 다 순교자의 유해 위에 세워졌다.

 

이 유해가 없이는 미사를 드리기 위한 제단은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1984년  5월에 교황에 의해 시성된 백 3명의 한국 순교자 중 반은 여자이다.

어린이나 여자들이 순교의 시련을 겪는 것은 남자의 경우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성인들 가운데 우리의 어머니가 된 수십 명의 한국 여성들은 최후의 심판 덕분에 우리에게 그러한 기회를 더 많이 주게 될 것이다.

 

그리 많지도 않고 그러럼 짧은 시간 동안에 사도들에 의해 기독교도가 된 오래 된 나라의 성인의 수를 한국이 능가한 것은 어찌 된 일일까?

 

그것은 분명히 그들이 극동의 조그만 반도에서 5천년 동안 겪어온 용기, 평화에 대한 사랑,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인 것이다.

 

스페인의 여왕이 미국을 발견하기 위해서 항해 중인 컬럼버스에게 이렇게 썼다.

「똑 바로 항해하라.

 

만일 네가 찾고 있는 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너의 용기를 보상하기 위해서 신이 그 대륙을 창조할 것이다」.

 

이따금 나는 미국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크리스토프 컬럼버스의 신념에 보상하기 위해 일부러 미국을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기울어질 때가 있다.

 

신은 그들의 동포에게 용기를 주기 위하여 백 3명의 한국인을 당신 ?? 하늘나라로 부른 것이다.

그들은 준엄한 투쟁을 해왔다.

그들이 기다리던 시련은 엄하다.

 

한국의 적은 지금 수도 서울에서 30킬로미터 되는 곳에 있다.

모든 한국인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

무장을 하고. 왜냐하면 그들은 극동에 있어서의 자요세계이 초병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한국 사람들이 정당한 일을 수호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모든 인류와 관련된 정의, 그러나 그들은 동맹자를 필요로 한다.

시장에 있서서만이 아니라 하늘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한구」(Hanku)의 축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북한을 점거한 붉은 군대는 나의 나라를 침입하여 예속화시켰다.

그때 이래 나는 땅 없이 살아왓다.

추방되어 조국 없이 …….

 

이따금 나의 조국에 대한 향수는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에 최소한 지도로라도 조국을 보아야 한다.

 

나는 지도를 펴고 루마니아를 찾는다.

그 달처럼 둥근 나라는 동유럽 다뉴브강의 북쪽 교황의 조국인 폴란드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내가 태어난 마을은 어떤 지도에서도 그 이름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 마을은 너무나 작다.

그것은 하나의 부락이다.

그러나 어느 지도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답고 중요한 마을이 그 마을 바로 곁에 있다.

 그 이름은 「한구」이다.

 

 

 

 

내가 지도에서 한구라는 이름을 발견할 적마다 나는 손가락을 그곳에 가져다 댄다.

그러면 나는 집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고양, 한구. 그것은 마술적인 이름이다. 한구, 그거은 내가 잃어버린 조국이다.

 

나는 지금 한구는 한국 문자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한국말 알파벳의 똑같은 문자가 내 고향인 루마니아의 나라이름과 유사하다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나는 그 원인을 알 수 없다.

그러나 해마다 10월 9일이면 나는 모든 한국인과 더불어 한구라는 마술적인 이름으로 이날의 축제를 지낸다.

 

* 제1장 〈한국 찬가〉(Eloge de la Coree)는

 미발표 신작으로 불어판에 앞서 최초로 공개되는

산문시이다.

 

 


 

 

 

 

 • 지은이   C.V. 게오르규

 • 옮긴이   민희식

 • 출판사   범서출판사

 • 년도      1984

 • 쪽수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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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2 프랑스 초현실주의 시인 - 루이 아라공 2017-04-18 0 5249
2071 프랑스 시인 - 레미 드 구르몽 2017-04-18 0 5147
2070 영국 계관시인 - 테니슨 2017-04-18 0 4046
2069 프랑스 시인 - 로베르 데스노스 2017-04-11 0 4341
2068 프랑스 시인 - 브로샤이 2017-04-11 0 3785
2067 프랑스 시인 - 자크 프레베르 2017-04-11 0 5319
2066 윤동주가 사랑했던 시인들 2017-04-10 0 3671
2065 "내 귀는 소라껍질/ 바다소리를 그리워하네"... 2017-04-10 0 5086
2064 프랑스 시인 - 장 콕토 2017-04-10 0 5603
2063 프랑스 시인 - 생 종(존) 페르스 2017-04-10 0 4070
2062 미국 시인 가수 밥 딜런는 누구인가... 2017-04-03 0 4635
2061 노벨문학상 타고 침묵으로 일관하다... 2017-04-03 0 3391
2060 스페인 시인 - 히메네스 2017-04-02 0 3683
2059 스페인 시인 - 미겔 에르난데스 2017-04-02 0 4077
2058 동요 "반달"의 작곡가와 그리고 룡정 2017-04-02 0 3501
2057 영국 계관시인 - 벤 존슨 2017-03-30 0 3283
2056 영국 형이상학파 시인 - 존.던 2017-03-30 0 5638
2055 80세, 공부와 시쓰기가 인생 끝자락의 제일 큰 행복이라고... 2017-03-23 0 3203
2054 77세에 등단, 80세에 詩集 출간... 2017-03-20 0 3475
2053 80세에 첫 詩集... 2017-03-20 0 3388
2052 윤동주의 시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있다... 2017-03-18 0 3478
2051 정병욱 큰 보람= "윤동주의 시를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린 일" 2017-03-18 0 4372
2050 [고향문단소식]- 화룡 출신 최룡관시백 "하이퍼시창작론" 출간 2017-03-17 0 3118
2049 일본 민주주의 녀류시인 - 이바라키 노리코 2017-03-12 0 4410
2048 천재시인 李箱의 시작품 뮤지컬로 재탄생하다... 2017-03-04 0 3072
2047 프랑스 시인 - 페기 2017-03-01 0 4593
2046 일본 시인 - 혼다 히사시 2017-02-23 0 3660
2045 남아메리카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 칠레 녀류시인 -미스트랄 2017-02-22 0 5515
2044 페루 시인 - 바예호 2017-02-22 0 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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