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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최소한의 언어로 최대한의 세계를 담아야...
2016년 12월 25일 19시 39분  조회:2641  추천:0  작성자: 죽림

詩창작 실기에 대한 단상- 김경수 



1.詩는 왜 쓰며 어떤 사람이 시인이 될 수 있는가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詩를 삼백수쯤 알게되면 한마디로 사악함이 없다고 했다 (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 詩는 사람에게 모든 사물을 바로 보게 하며 또한 시로서 새나 짐승, 풀, 나무들의 이름도 많이 배우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詩學>에서 詩가 인간의 감정을 "카타르시스"해준다고 하였다. 
허균은 정신이 빼어나고 음향이 밝으며 격이 높고 생각함이 깊으면 가장 좋은 詩가 된다고 했다. 

심덕잠은 詩란 사람의 천성과 정서를 조정하고 인간관계를 향상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익은 詩는 교화(敎化)하는 것이니 힘써 그 뜻을 전달해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인간이 잃어버린 순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가지고 있는 순진성을 올곧게 되살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물의 본질을 직시하는 것이며 시가 가지고 있는 타성의 길을 벗어나는 일이며 삶이 가지고 있는 허위성을 깨트리는 일이다. 

싸륵 싸륵 /설탕이 녹는다 / 그 정결한 투신 / 그 고독한 용해 
아아 / 심야의 커피 / 암갈색 심연을 / 혼자 / 마신다 

詩를 왜 쓰느냐란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이 詩가 그와 같은 회의나 해답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생활이 무엇 때문에 사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사업이 무엇을 위해 성의를 바치는 것도 아니다. 그와 같은 이유나 목적의 일반적인 것에 구속되는 일이 없이 성의를 집중하는 것에서 구체적인 삶의 보람과 생기가 살아나는 것이다. 

굳이 詩가 무엇이며 왜 쓰느냐고 따지면 그것은 일상적인 언어의 저 편에서 불 가시적이며 구체적인 진실에 접하려는 노력이며 그와 같은 노력을 통해서만 우리는 싱싱하게 살아가는 인간 그 것과 그것의 진실을 우리의 것으로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빈 것의/ 빈 것으로 결집한/ 세계는 고드름 막대기로/ 꽂혀 있는 겨울 아침에/ 세계는 마른 가지로/ 타오 
르는 겨울 아침에/ 허지만 세상은/ 빈 것이 있을 수 없다/ 당신의 서늘한 체념으로 채우지 않으면/ 신앙의 샘 
물로 채운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나의 창조 의 손이/ 장미를 꽂는다/ 로오즈리스트에서/ 가장 매혹적일 조 
세피즈, 블르느스를/ 투명한 유리컵/ 중심부에 빈 컵의 중심부에 창조의 손으로 장미를 꽃을 수 있는 자에게 
세상은 한결같이 충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한 창조적 작업도 '오늘 쓰다만 시는 오늘의 꽃봉오리 내일 
피게될 꽃송이는 내일의 신의 플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 박목월. 무상의 역정 


2. 詩를 처음 쓸 때 지녀야할 마음가짐은 무엇인가 

누구나 詩를 쓸 수 있다. 詩란 詩적 재능이 있거나 또는 어떤 종류의 사람 즉 시인 만이 쓸 수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생각을 나타낸 글 가운데 산문이 아닌 운문의 형태로 된 것이면 모두가 詩이다 누구나 이런 형태의 글, 즉 詩를 쓸 수 있다. 
문제는 詩에는 좋은 詩와 그렇지 못한 詩, 또는 잘된 詩와 그렇지 못한 詩가 있다. 곧 詩를 쓸 줄 모른다는 말은 잘된 詩를 쓸 줄 모른다는 말이다. 

詩를 쓸 바에야 또는 써야 될 바에야 좋은 詩, 잘된 詩를 쓰고싶기는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좋은 詩 잘된 詩를 쓰기는 어렵다. 일정한 습작기간을 거치지 않고는 좋은 詩를 쓸 수 없다. 詩를 쓰는 일, 詩를 창작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과 좋은 詩를 써야겠다는 욕망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곧 처음부터 좋은 詩를 써야겠다는 과욕이 좋은 詩를 쓰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다. 그런 과욕이 우리의 사고를 흐리게 하고 우리가 가진 무한한 재능을 잘못 낭비하게 한다. 시인이 詩를 쓰는 것은 좋은 詩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기의 생각을 詩라는 형식의 글로 표현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좋은 詩가 되고 안 되고는 그런 행위의 결과일 뿐이다. 
글로 표현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다. 글로 표현하고 싶다는 욕망과 좋은 詩를 쓰고 싶다는 욕망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것은 창조하는 즐거움과 창조된 결과를 탐하는 것과의 차이만큼이나 다른 것이다. 좋은 詩는 결과에 욕심을 두지 않는, 아는 체 하거나 흉내 내지 않는, 거짓 없이 쓴 글에서 나온다. 


3. 詩의 착상은 어떻게 하는가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 늙은 나무를 만났다. 수도승일까, 묵중하게 서 있었다. 다음날 조치원에서 공주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어귀에 그들은 떼를 지어 몰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은 어설픈 과객일까, 몹시 추워 보였다. 공주에서 온양으로 우회하는 어느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는 문을 지키는 파수병일까, 외로와 보였다. 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묵중한 그들의, 침울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 박목월. 나무 

매우 산문적이고 일상적인 어투로 쓰여진 이 詩는 시상을 착상한 후 그 詩가 점점 한편의 완성된 서정시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눈에 보듯 선연하게 보여주고 있어 인상적이다. 
이 시상의 계기는 산문에 대한 시인의 관찰력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 관찰은 지나치게 예리하거나 논리적인 고찰보다는 시인이 사물을 보는 선한 태도에서 비롯한다. 나무를 바라보다가 문득 추울 것이라 느낀다. 시인의 이러한 자연과의 교감은 이내 발전하여 나무를 늙은 수도승과 어설픈 과객과 동일시하게 되며 지상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서 있는 나무의 모습에서 인간 존재의 초월성을 읽어낸다. 

'하늘 문을 지키는 파수병'이 그것이다. '아아 고독한 모습' 이라는 매우 진부한 표현도 이러한 詩적 계시의 순간을 통과하면 갑자기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원래 에피파니는 동방의 세 박사의 베들레헴 내방을 상징하는 예수의 공헌을 뜻하며, 비유적으로는 어떤 사물이나 본질에 대한 뜩박의 통찰이나 발전을 뜻하는 말로 사용된다. 

위의 詩에서 시인은 나와 나무의 일체감을 '놀랍게도' 라고 말한다. 그 놀라운 일체감이 바로 詩정신이 아닐까, '묵중한 그들의, 침울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이 詩적 화자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려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 나무' 곧 그의 인격이 된 것이다. 이처럼 詩의 소재와 에피파니의 순간은 우리 주변 도처에 널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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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치꽃 아욱꽃 ―박용래(1925∼1980)

상치꽃은
상치 대궁만큼 웃네.

아욱꽃은
아욱 대궁만큼

잔 한잔 비우고
잔 비우고

배꼽
내놓고 웃네.

 

 

이끼 낀
돌담

아 이즈러진 달이
실낱 같다는

시인의 이름
잊었네.




아욱 잎은 국 끓여 먹고, 상추 잎은 생것을 쌈으로 먹고. 먹을거리로만 그 잎을 보아 온 사람들은 상추와 아욱도 꽃이 핀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기 쉬우리. 때는 한여름, 해는 저의 긴 날을 늘어지는 걸음으로 지나고 있었을 테다. 마루에 앉아 ‘잔 한잔 비우고/잔 비우’며 건너다보는 마당 텃밭에 ‘상치꽃은/상치 대궁만큼 웃네.//아욱꽃은 아욱 대궁만큼’ 웃네. 남겨진 대궁마다 함초롬히 상추꽃 아욱꽃, 화자가 보기 좋은 높이로 피었으리. 
 

 

화자는 ‘배꼽/내놓고 웃네’. 자기 집에 있는데 무더운 날에 옷을 대충 걸친들 어떠랴. 화자는 러닝셔츠를 가슴께로 훌떡 걷어 올리고 있을 테다. 어쩌면 웃통을 벗고 있을지도. 상추와 아욱도 ‘배꼽/내놓고 웃네’. 꽃은 식물의 배꼽, 씨앗의 근원이라네. 꽃이 없으면 세대에서 세대로 어찌 이어지리. 그러니 상추와 아욱의 꽃은 임부의 자랑인 불룩한 배인 것, 그 배꼽인 것. 꽃 핀 텃밭을 정답게 완상하며 술을 마시는 나른한 흔쾌함이 ‘이끼 낀/돌담’부터 편치 않은 정조로 바뀐다. 하루 이틀 전까지 이어졌을 장마에 이끼 무성해진 돌담은 볕이 안 들어 축축하리라. 그 위로 저물어가는 하늘 동편에 실낱같은 달이 뜨고, 문득 ‘이즈러진 달이/실낱같다는’ 시구가 떠오르는데 그 ‘시인의 이름’ 떠오르지 않고. 어떤 부분은 더 선명하고 어떤 부분은 더 가물가물한 명정 상태에서 왠지 화자의 기분이, 술 잘 마셔놓고, 자욱이 가라앉는 듯. 

박용래의 시들은 최소한의 언어로 최대한의 세계를 담는 게 미덕인 시의 전범으로 삼을 만하다. 독자는 그 간결한 시들이 우아하게 이끄는 정답고 소박한 세계에서 가슴 아릿한 원초적 향수에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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