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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냥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다...
2017년 03월 10일 19시 40분  조회:3412  추천:0  작성자: 죽림

중동권 로열패밀리의 고급취미로 오늘날까지 명맥 유지


출시 20여 일 만에 사용자가 1000만 명에 육박한 포켓몬GO의 인기가 뜨거운 가운데, '사냥'이란 측면에서 매사냥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관통하는 과거판 포켓몬GO 라고 볼 수 있다. 일러스트 = 이진경 디자이너

[아시아경제 김희윤 작가] 얼마 전 비행기 좌석을 가득 채운 매 사진이 네티즌 사이에 화제가 됐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왕자가 여행을 떠나는데 함께 온 매 80마리를 태우기 위해 비행기 이코노미석을 사 좌석마다 매를 앉혀놓은 것. 좌석에 앉은 매는 안대로 눈을 가리고 편안한 여행을 즐겼고 이 풍경은 SNS를 통해 ‘매 팔자가 상팔자’, ‘매가 나보다 낫다’ 등 다양한 반응을 불러왔다.  

한편 국내 출시 20여 일 만에 선풍적인 인기를 타고 실내에 머물던 시민들을 거리로 나오게 한 ‘포켓몬GO’는 각 지역에 포진한 다양한 포켓몬과 거점에 자리 잡은 포케스탑(기본량 소진 시 유료 구매 아이템인 포켓볼 등이 5분 간격으로 제공되는 곳)을 토대로 현대판 ‘사냥’의 재미를 일깨워주고 있다.  

앞서 언급한 사우디 왕자의 ‘매’들은 무슨 연유로 비행기에 가지런히 앉아 왕자의 사냥 여행에 동행한 것일까? 그건 바로 그 매들이 왕자의 매사냥을 위한 '실사판 포켓볼'이었기 때문이다.

고구려 시대 고분 '삼실총' 벽화에서 나타난 매사냥 풍경. 고구려 때 이미 매사냥이 활발하게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사료다. 매사냥의 기원을 찾자면, 기원 전후 고조선 시대 만주 동북지방에서 수렵생활을 하던 숙신족(肅愼族)으로부터 습득한 것이 삼국시대로 내려와 성행했다고 전해진다.

매사냥은 선조들의 포켓몬GO?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사냥기술 중 하나인 매사냥은 매를 잘 훈련시켜 짐승을 사냥해오게 하는 사냥법으로 매(매목 매과의 송골매류) 뿐만 아니라 올빼미나 부엉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 재미가 어찌나 쏠쏠한지 과거 우리 조상들은 일응이마삼첩(一鷹二馬三妾)이라 하여 매사냥을 승마와 연애를 제치고 풍류의 으뜸으로 삼았다. 매사냥이 곧 조선판 포켓몬GO였던 것.
 
현대의 포켓몬GO유저들이 희귀 포켓몬과 포켓볼 충전을 위해 포케스탑 인근을 헤매는 동안 조선의 응사(鷹師, 매 부리는 사람)들은 꿩과 들짐승이 많은 산을 찾아다녔고, 현대의 포켓몬GO 유저들이 커브볼 연마에 여념이 없을 때 응사들은 매 훈련에 매진했다. 희귀 포켓몬이 거리에 불쑥 등장했을 때 잽싸게 포켓볼을 날려 잡는 희열을 응사들 역시 귀한 산짐승을 향해 날려 보낸 매가 매섭게 달려들어 먹잇감을 낚아챘을 때 느끼곤 했을 것이다.

잘 치장한 말 위에 올라탄 매 사냥꾼이 덤불 속 사냥감을 살피는 순간을 담아낸 단원 김홍도의 귀인응렵(貴人鷹獵). 지본담채, 31.7x51.5cm, 간송미술관 소장

매사냥의 역사  

선사 시대부터 시작된 매사냥은 삼국시대에 이미 우리나라 전역에서 널리 유행했는데 고구려 시대 고분인 삼실총 벽화에 매사냥에 나선 응사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있어 당시의 유행을 짐작케 하며, 백제는 일본 왕실에 매사냥 기술을 최초로 전해줄 정도로 매사냥의 종주국이었다. 일본과 중국은 이런 백제를 두고 응준(鷹準 매의 표준)이라 칭했다. 고려시대 충렬왕은 매사냥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매의 사육과 사냥을 전담하는 응방이란 관청을 설치해 매사냥을 체계적으로 육성했다. 비단 매사냥이 한반도에서만 유행했던 것은 아닌지라 충렬왕을 위시한 이후 왕들은 매를 잘 키워내 원나라에 조공 보냄으로 양국 우호를 다지기도 했다. 

고려 후기에는 매사냥 열풍에 힘입어 야생 매를 포획, 사육, 훈련하는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기술한 응골방(鷹?方)이란 책이 나왔는가 하면, 조선 초 태종은 아예 7일 동안 매사냥에 전념하느라 정무를 잠시 미뤄뒀을 정도. 조선왕조실록 태종대에만 그의 매사냥 에피소드가 145회 등장할 정도니 진정한 매사랑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매사랑은 그의 첫째아들 양녕과 셋째아들 세종대왕에게 고스란히 대물림 됐는데, 세종실록에도 매사냥 일화가 무려 125회 언급되나 주로 선왕인 태종을 모시고 매사냥에 나간 기록이라 매 사랑과 함께 깊은 효심을 엿볼 수 있다.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의 매는 영리하고 사냥능력이 뛰어난 세계최고의 명품 매로 통했다. 끈기와 집요한 승부근성으로 한번 포착한 먹이는 반드시 잡아채는 매를 통해 세종은 명나라의 군마 2만 5천 마리 조공 위협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나라를 구한 매 15마리 

아버지와 함께 매사냥을 즐겼던 세종 치세 8년, 별안간 명나라에서 말 2만 5천 마리 조공을 요구해와 나라가 도탄에 빠질 위기에 처하자 세종은 이를 막기 위한 고심 끝에 귀한 매를 준비하라 신하들에게 이른다. 명 황제 선종의 취미가 매사냥임을 알아낸 세종은 기지를 발휘해 잘 훈련된 매 3마리와 참매 12마리를 사신에게 보내 조선의 군사력을 경계하던 황제의 노기를 가라앉히고 환심을 샀던 것. 이후 명나라는 주기적으로 조선에 매 조공을 요구해왔고, 막대한 피해를 매를 통해 막아낼 수 있었다. 

아부다비에 위치한 공립 매 병원은 사냥 중 다친 매의 치료 및 재활, 미용을 전문적으로 시행하는 기관으로 매 소유주를 비롯, 관광객에게 선진 매 문화를 소개하는 역할도 해나가고 있다. 사진 = ADFH 제공

아부다비의 명소, 매 전용 병원 

이후 조선은 왜란과 호란을 거쳐 매사냥이 크게 쇠퇴했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고 나자 매사냥의 전통이 거의 사라져 오늘에는 전국에 2명의 응사만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앞서 매 좌석으로 비행기를 전세 낸 사우디아라비아는 매사냥이 활발하게 이뤄지며 잘 훈련한 매는 소유주의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지표로 통용되는데, 아랍에미리트에서는 개인 소유의 매 밀수를 막기 위해 매에게 여권을 발행하고, 비행기 탑승도 가능하다. 매가 사냥 중에 다치기라도 하면 즉시 매 병원에서 치료가 이뤄지며, 사냥능력 향상을 위한 고도의 매 재활프로그램도 운영 중인데 이 진기한 광경을 보기 위해 프라이빗 투어로 매 병원을 찾는 관광객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고. 가장 유명한 병원은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 공립 매 병원(Abu Dhabi Falcon Hospital, ADFH)으로, 1999년에 개원한 이곳은 최고의 매 치료, 미용, 훈련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왕자가 자신의 매사냥을 위해 비행기에 80마리의 매를 태워 화제가 됐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국가에서는 매사냥이 왕족, 부호들의 고급사냥문화로 중동국적기는 이코노미클래스 한정으로 매의 탑승을 허용하고 있다. 사진 = Reddit 캡쳐

지난 2010년 11월 아랍에미리트와 몽골, 한국 등 11개국의 매사냥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며 세계 각국의 독특한 매사냥 술이 주목받은 바 있는데, 80마리의 매를 비행기로 모시고 다니며 사냥에 나서는 아랍의 활발한 매사냥에 비해 국내 매사냥은 2명의 응사와 소수의 동호인을 통해 간신히 유지 중이다. 국내 출시 1주일 만에 이용자가 1,000만에 육박한 포켓몬GO의 인기에 비춰 과거 조상들의 사냥 문화가 무상히 사라져 가는 것을 불금한다. 

/김희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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