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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일본인의 손으로 윤동주 시비를 세우려 하다...
2017년 03월 11일 23시 20분  조회:4179  추천:0  작성자: 죽림




일본 지방자치단체가 윤동주(1917~1945) 시비(詩碑) 건립을 불허했다고 도쿄신문이 2016년 2월 5일 보도했다.

니시오카 겐지(西岡健治) 후쿠오카현립대 명예교수가 주도하는 일본 시민단체 ‘후쿠오카에 윤동주 시비를 설치하는 모임’은 시비를 후쿠오카(福岡) 모모치니시(百道西)공원에 세우려 했으나 지난해 여름 관할 구청으로부터 ‘불허’ 통보를 받았다.

구청 측은 윤동주가 후쿠오카에서 유명하지 않고, 후쿠오카 시에 공헌한 인물도 아니라며 불허 결정을 내렸다고 신문은 전했다. 윤동주 시비가 “시민의 교양에 값 한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윤동주 시비 모임은 일본의 대학교수와 시인 등이 지난해 2월 결성했다. 후쿠오카형무소 터와 가깝고 추도식을 해마다 열어온 모모치니시공원이 건립지에 어울린다하여 관할 지자체인 사와라(早良) 구청에 설립 허가를 요청했다.  

후쿠오카 시에 따르면 개인을 기리는 비는 9개 공원에 15기가 건립돼 있다. 시민들의 뜻으로 세운 중국인 문학가 등 외국인의 비도 있다.  

 
구청이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결정 당시의 한일 관계, 현 아베 정권의 성향 등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후쿠오카 시는 안보관련법이 심의 중이던 지난해 여름 태평양전쟁 관련 전시회의 후원자로 이름을 올려달라는 다른 시민단체의 요청도 거절한 바 있다. 

니시오카 교수는 “시비는 역사를 바로 보는 계기가 될뿐만 아니라 일본인의 손으로 세운다면 상호 이해도 깊어질 것”이라며 “비를 세우기 위한 모금 활동은 계속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나가사키(長崎)대 다카미 야스토시(高實康稔) 명예교수도 “나가사키 시의 경우 지난해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한 외국인 병사 추도비를 시민 제안으로 시유지에 세웠다”며 “공공장소에 시민의 뜻으로 전쟁의 기억이나 특정 인물을 기리는 비를 세우는 예는 일본에서 드물지 않으므로 (윤동주 시비 건립을) 다시 검토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만주 연변에서 태어난 윤 시인은 일본 교토(京都) 도시샤(同志社) 대학에서 유학하던 1943년 7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붙잡혀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광복을 6개월 앞둔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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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오꺼 겐지 교수의 메일입니다.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은 거치른 번역입니다. 참고하셔요.

(장호병 드림) 

 

福岡尹東柱詩碑てる関係者皆様

 

たせいたしました

尹東柱詩碑通信13をおりいたします

詩人河津聖恵氏講演には尹東柱むヒントがたくさんられています

また、<『尹東柱評伝部会発足いたしました

通信をおみいただいた感想をおりいただければいです

よろしくおいいたします

------西岡健治

 

<후쿠오카에 윤동주 시비를 세우는 모임관계자 여러분께

 

기다리게 했습니다.

<윤동주 시비 · 통신13호를 보내드립니다.

시인 카와聖恵씨의 강연에는 윤동주의 시를 읽는 요령이 많이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또한 < "윤동주 평전」 읽는 모임>이 출범했습니다.

<통신>을 읽어 주신 의견을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니시오 카 켄지

 

尹東柱詩碑通信13        (2016.4.24[]

  連絡先福岡尹東柱詩碑てる

814-0001 福岡市早良区百道浜1-5-5-603 西岡健治

      電話090-9792-7239 メールアドレスydj.shihigmail.com

 

<윤동주 시비 · 통신제 13 호 (2016.4.24 [])

연락처 후쿠오카에 윤동주 시비를 세우는 모임

814-0001 후쿠오카시 사와 라구 모모치 하마 1-5-5-603 니시오 카 켄지

전화 090-9792-7239 이메일 : ydj.shihi@gmail.com

 

くもなくくもなくごしやすい今日このです

さんいかがおごしでしょうか

この、「『尹東柱評伝部会準備いよいよ来週回会合つことになりましたこの今後どのように成長してゆくかしみにしておりますまた2追悼式後われました詩人河津聖恵さんによる尹東柱文学講演会内容活字になりました参加いただけなかった遠方々にんでいただければとっております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살기 좋은 요즘입니다.

여러분어떻게 지내십니까?

그동안 윤동주 평전」 읽는 모임을 준비하고 드디어 다음 주 제1차 회의를 갖습니다이 모임이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나갈지 기대하고 있습니다또한 2월의 추도식 후에 이루어졌던 시인 카와 聖恵 씨에 의한 윤동주 문학 강연회의 내용이 활자화되었습니다참가할 수 없었던 분이나 멀리 있는 분들에게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また先日韓国語九大学生より韓国語授業韓国福岡関係について発表することになりたちの韓国詩人である尹東柱について調べることになったので資料ってくださいという依頼がありましたさっそく資料りましたがこうして世代しでもがってけばといました

では尹東柱詩碑通信13をおけいたします

 

또한 얼마 전 한국어를 배우는 규슈 대학의 학생보다 "한국어 수업에서 한국과 후쿠오카의 관계에 대해 발표하게 우리의 팀은 한국의 시인인 윤동주에 대해 조사하기로 하였기 때문에 자료를 보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즉시 자료를 보냈는데 이렇게 젊은 세대에게 조금이라도 고리가 퍼져 가면 좋겠습니다.

그럼 <윤동주시비 · 통신제 13 호를 전해드립니다.

 

.報告事項

 

[1] 201625()

韓国大邱にある嶺南大学新聞部記者取材ました旧福岡刑務所りを案内していっしょに昼食めんちゃんこべました関係書類をコピーして

 

[1] 2016년 2월 5()

한국 대구에 있는 영남대 신문부 기자가 취재하러 왔습니다구 후쿠오카 형무소의 주위를 안내하고 함께 점심을 <국수ちゃんこ>에서 먹었습니다관계 서류를 복사하여 전합니다.

 

[2]

14RKB毎日放送テレビより尹東柱追悼式文学講演会模様がニュースとして報道されました

また、313にはじくRKB九州沖縄ドキュメント ムーブ尹東柱足跡番組いで――尹東柱でつなぐ日韓関係」(30放映されましたインタビュー出演された文芸評論家文教部長官だった李御寧教授尹東柱して日本のテレビ出演されたのははじめてではなかったでしょうか文芸評論家金宇鍾尹東柱尹仁石教授立教大学卒業生楊原泰子氏尹東柱など

 

2월 14, RKB 마이니치방송(텔레비전)에 윤동주 추도식과 문학강연회의 모습이 뉴스로 보도되었습니다.

또한 3월 13일에는 같은 RKB ‘큐슈 · 오키나와 다큐맨토무브에서 윤동주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프로그램 하늘을 우러러 – 윤동주의 시로 잇는 한일 관계(30)이 방영되었습니다인터뷰에 출연한 문예평론가이자 문교부 장관이었던 이어령 교수는 윤동주에 관해 일본의 방송국에 출연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을 것이다그외에문학평론가 김우종윤동주의 조카 윤인석 교수릿교대학 졸업생 楊原 야스코씨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 등.

 

[3] 2016.2.29()

韓国KBSSBSYTN三社<3記念日のニュースとして福岡尹東柱詩碑てる取材ました

旧刑務所側百道西公園って撮影していると警官二人がパトロールするでやってをしているのかと尋問しましたテレビ局側このにインタビューをしているといい、「(維持管理課柳本さんに許可をもらっているというとさらに書類っているかいてきました百道西公園でこんな質問けたのはめてでしたかが警察電話したということでした

 

한국의 KBS · SBS · YTN 3사가 <3·1절 기념일뉴스로 "후쿠오카에 윤동주 시비를 세우는 모임'을 취재하러 왔습니다.

구 감옥 측의 모모치 서쪽공원에 가서 촬영하고 경찰 두 명이 순찰 차량에서 와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심문했습니다방송사측에서 이 분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고 하였고유지관리과의 야나기모토 씨에게 허가 받은 사실이 있는가"라고 하면서 더 "서류를 가지고 있는가?"라고 물어 왔습니다모모치 니시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누군가가 경찰에 전화했다는 것이었습니다.

 

【4】2016.3.()

KBS(日本NHK該当より不滅青年尹東柱」(20002100時間番組放映されたとのことです友人よりメールで나도 방송을 보고 윤동주 시인에 대해 이해를 깊이하게 되었네連絡がありました

KBS(일본 NHK에 해당)보다 불멸의 청년 윤동주”(20:00-21:00, 1시간 방송)가 방영되었다는 것입니다친구를 통해서보다 이메일로 "나도 방송을 보고 윤동주 시인에 대해 이해를 깊이하게 되었네."라는 연락이 있었습니다.

 

Ⅱ.「『尹東柱評伝部会(30)西南学院大学開催されます。 

関心のあるどなたでも気軽にご参加ください

윤동주 평전 읽눈 모임의 제1회 (4월 30)가 서남하권대학교에서 개최됩니다.

관심 있는 분은 누구나 부담 없이 참가해주십시오.

 

詩碑建立のため献金をおせいただき有難うございます

시비 건립을 위한 헌금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624日現在総額1666,598です

2016년 4월 24일 현재 총액은 1,666,598엔입니다.

 

文学講演会部会などに献金使っておりません

   献金詩碑建立以外用途使場合相談させていただきます。)

문학 강연회와 회비 등에 헌금은 쓰지 않습니다.

헌금을 비 건립 이외의 용도에 사용하는 경우는 상담하겠습니다.)

 

Ⅳ.「福岡尹東柱詩碑てるのホーム・ページを開設いたしました。(今後さらに充実させてゆく予定です

  「http://sihifukuoka.webcrow.jp/

いのにでも紹介いただけるといです

 

후쿠오카에 윤동주의 시비를 세우는 모임의 홈페이지를 개설했습니다.(향후 한층 더 충실히 하고 갈 예정입니다)

http://sihifukuoka.webcrow.jp

아시는 분들에게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尹東柱作品論紹介

紹介する詩人河津聖恵氏講演尹東柱らされて分量いので、「える後半部分次回します

 

윤동주 · 작품론 소개

다음에 소개하는 시인 카와 聖恵 씨 강연 윤동주의 시와 삶에 대한 조명” 분량이 많기 때문에, ‘별을 헤는 밤론 (후반부)는 다음으로 돌립니다.

 

. 詩人河津聖恵氏講演尹東柱らされて

2016.2.13 西南学院大学チャペルホールにて

 

講師紹介河津聖恵さん詩人京大独文学科卒H氏賞現代詩手帖賞など受賞近著よりのうたを藤原書店2015、『パルレシア震災以後とは思潮社2015がある

 

시인 · 카와 聖恵 씨 강연 윤동주의시와 삶에 대한 조명

(2016.2.13 세이 난 가쿠 인 대학 '채플'작은 홀에서)

 

강사 소개 카와 聖恵 씨 (시인쿄토 대학 독문학과 졸업, H씨상현대시 수첩 등 수상근저에 "어둠보다 검은 빛의 노래를"후지와라 서점 2015, 빠루레시아 지진재해 이후이란 무엇인가』 思潮社(2015)가 있다.

 

강연 내용은 생략했습니다.

원문이 필요하셔서 신청하시면 메일을 그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장호병 드림

 


 

'후쿠오카시(福岡市), 윤동주 시비(詩碑) 건립 허가해야'

 

-일본 시민단체 재검토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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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아키라씨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제가 몇 년 전에 장 선생을 후쿠오카 형무소가 있던 자리에 안내한 적이 있었지요? 윤동주 시인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죠. '한국시인 윤동주의 시비(詩碑)를 건립하려는 시민단체의 요청이 인정되지 않았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장소는 현재의 구치소 북측 공원 같습니다. 유감이군요."
 
일본의 오랜 지인 '와타나베 아키라(渡邊章·69)' 씨가 구정 연휴기간 필자에게 보내온 이메일이다. 필자는 4년 전 그와 함께 후쿠오카 형무소 터가 있었던 니시진(西新) 사와라구(早良區) 모모치(百道)를 찾은 적이 있었다. 또 다른 일본인 '오츠보 시게다카(大坪重隆)'씨도 동행했었다. 와타나베 씨의 이메일에는 대서특필된 2월 4일자 서일본신문 기사가 첨부돼 있었다.
 
1877년 창간된 서일본신문(70만부 발행)은 후쿠오카 시에 본사를 두고 구마모토(熊本), 가고시마(鹿島), 나가사키(長崎), 오이타(大分) 등 규슈(九州) 지역 전체를 커버하는 유력매체다. 우리의 여러 신문이 이 내용을 다뤘으나 대체로 도쿄 신문에 보도된 기사 중심이었기에 서일본신문에 게재된 내용을 정리해본다.
 

 

전중(戰中), 후쿠오카시(福岡市)에서 옥사 한국시인·윤동주
 
시(市)의 공원에 시비(詩碑)인정 안 해.
 
지명도, 공헌 없다고 설명
 
'일한관계를 헤아린(忖度)것일까' 시민단체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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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본신문의 윤동주 시인 관련 기사

<앞의 대전(大戰)중에 후쿠오카시에서 옥사한 한국의 국민적 시인 윤동주(1917-1945)의 시비건립에 대해 예정지인 공원을 관리하는 시(市)가 "후쿠오카에서 유명하지 않고, 시에 공헌한 인물도 아니라서 허가할 수 없다"고 한 사실이 알려졌다. "평화를 염원했던 서정 시인으로 일본에도 팬이 많다"는 시민단체는 "정체하고 있는 일한관계를 헤아린 것일까?" 납득하지 않는다.>
 
보도된 기사의 제목과 도입부분의 내용이다. 후쿠오카 시와 일본의 시민단체가 서로 상반된 의견으로 맞서고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시민단체는 어떠한 사람들일까. 기사를 통해서 그들을 알아본다.
 
<일본의 대학교수와 시인들이 지난해 2월 16일 '후쿠오카에 윤동주의 시비를 건립하는 회'를 조직했다. 구(舊)형무소가 있었던 곳에서 가까운 곳. 추도식을 매년 개최하는 모모치(百道) 서공원이 건립지로 어울린다고 보고 공원을 관리하는 사와라구(早良區)에 타진했으나 지난여름에 '인정하지 않는다'는 연락이 있었다.>
 
본문이미지
후쿠오카 형무소가 옮겨간 자리에 세워진 구치소
윤동주 시인은 1945년 2월 16일 새벽 3시 36분 후쿠오카 감옥에서 청춘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윤동주 시인의 기일(忌日)을 맞아 민간인들이 순수한 마음에서 시비건립을 추진한 것이다. 일본인들만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발족한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다. '후쿠오카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의 창립자인 '니시오카 겐지(西岡健治)' 후쿠오카 현립대 명예교수를 비롯해서 일본인 교수·문인 등 10명이 발기인이다. 
후쿠오카 시는 어떤 이유에서 이를 거절했을까.
 
<사와라구 유지 관리과가 도시공원법과 공원 조례의 취지에 비추어 검토하고 "시민의 교양에 이바지한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판단했다. "일한의 정치적 문제는 관계없다"고 설명한다.>
 
과연 정치적 문제는 없었을까.
 
신문은 '역사적 가치를 판단해야한다'는 나가사키대학(長崎大學) '다카미 야스토시(高実康稔)' 명예교수의 의견을 게재했다.
 
<나가사키 시에서 지난해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한 외국 군인의 추모비가 시민의 발안으로 시유지에 완성하는 등 공공장소에 시민 유지(有志)가 전쟁의 기억과 특정인물에 관련한 비(碑)를 세우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다. 시인으로서의 문화적 가치는 물론 '치안유지법은 무엇이었는가?'를 후세에 전하는 역사적 가치도 냉정하게 파악하고 다시 검토해주기 바란다.>
 
서일본신문은 시비건립위원회 대표인 '니시오카(西岡)' 명예교수의 멘트를 끝으로 기사를 마감했다.
 
<'시비(詩碑)는 역사적 사실을 바로 보는 계기가 되고 일본인의 손으로 건립한다는 것은 상호이해도 깊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유감이다. '비는 시민들의 기부로 건립할 계획이며 모금활동을 계속 하겠다'라고 말한다.>
 

 

서일본신문 윤동주 기사 16회 연재해
 

 

1994년 서일본신문은 <빼앗긴 시혼(詩魂) 발굴, 윤동주의 옥사(獄死)>라는 타이틀로 16회에 걸쳐 윤동주의 인생 역정(歷程), 시의 세계 등을 연재했다. 필자는 연재기사 중에서 '우리말 수난'과 '조국 소멸의 위기감' 부분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윤동주 시인이 가장 중요시하고 그가 어느 곳에 가더라도 지니고 다녔던 책은 한국의 유명한 국어학자인 최현배(1894~1970) 씨가 쓴 '우리말본'이다. 윤동주가 한글 시(詩)를 쓰게 된 것은 그의 은사인 최현배 씨의 사상에 공감을 했기 때문이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윤동주가 연희전문에 입학하여 처음 쓴 '새로운 길(1938년)'이라는 시다. 이 시는 학우회지 문우(文友)에 발표됐다. 젊은이의 건강한 활기와 청아한 마음이 가득 들어있다.>
 
<자기나라의 언어사수가 조국의 독립과 민족문화 회복에 있어서 최후의 요새라고 본 조선 반도의 사람들 ―
그것에 반해 그들의 언어를 소멸시켜서 내선일체화(內鮮一体化) 정책을 완성시키려고 했던 일본의 위정자들 ―
 
윤동주는 양자의 마찰이 치열했던 시대에 한글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80년대 초반부터 일본에서 알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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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 전시회에 모인 일본인들(2015년 2월 규슈대 / 사진: 오츠보 시게다카씨)

윤동주 시인이 일본의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4년 그의 시집(詩集)이 출판(記錄社)되면서 부터이다. 방송에서의 최초보도는 1988년 2월 ‘NHK 라디오 한글강좌’이다. 1990년 故이바라기 노리코(茨木則子, 1926~2006) 시인의 글 '윤동주에 대하여'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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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바라키 노리코 시인(사진: 야후재팬)
<'청춘의 시인' 윤동주― 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인기 있는 시인. 수난의 심벌, 순결의 심벌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장본인. 일본유학 중 독립운동의 혐의로 체포되어 1945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7세의 나이로 옥사(獄死)한 사람. 옥사의 진상도 의문이 많다. 일본의 젊은 간수는 '윤동주가 사망 당시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고 했다.>
 
일본의 언론과 지식인들이 윤동주를 애도하고 시비를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리도 이들에게 박수를 보냄은 물론 동참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후쿠오카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이어서 한국 관광객들이 아주 많이 가는 곳이다. 이를 감안해서라도 후쿠오카 시(市)는 시민단체가 추진하고 있는 윤동주의 시비 건립을 재고해야 한다. 
특히, 2017년은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후쿠오카 시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
 
과거의 아픈 역사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미래를 위한 척도이기 때문이다.

 


윤동주 시비

위치 : 충남 천안시 목천면 독립기념관 (겨레의 탑에서 좌측 아래 도로변)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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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尹東柱 1917∼1945)

 

시인. 아명은 해환(海煥). 북간도(北間島) 명동촌(明東村) 출생. 기독교 장로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였다. 1925년 명동소학교에 입학, 1929년 문예지 《새명동》 발간에 참여하였고, 1931년 대랍자(大拉子)의 중국인관립학교를 거쳐 1932년 용정(龍井)의 은진중학교(恩眞中學校)에 입학하였다. 1935년 평양(平壤) 숭실중학교(崇實中學校)로 옮겼으나 신사참배문제로 폐교되자, 용정의 광명학원(光明學院) 중학부 4학년에 편입하였다. 1938년 서울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문과에 입학, 1939년 산문 <달을 쏘다>를 《조선일보》에, 동요 <산울림>을 《소년》지에 각각 발표하였다. 1942년 일본 리쿄대학[立敎大學(입교대학)] 영문과 입학, 그해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동지사대학)]으로 전학하였다. 1943년 귀국 직전에 항일운동을 한 혐의로 송몽규(宋夢奎)와 함께 체포되어 2년형을 받고 규슈[九州(구주)] 후쿠오카형무소[福岡刑務所(복강형무소)]에서 복역중 1945년 옥사하였다. 그의 시는 초기 시부터 마지막 작품으로 보이는 《쉽게 쓰여진 시》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적 변모를 드러내고 있다. 초기 시 《겨울》 《조개껍질》 《버선본》 등에서는 암울한 분위기와 유년적 평화를 지향하고 있으며, 후기 시 《서시》 《자화상》 《별 헤는 밤》 등에서는 역사감각을 지닌 자아성찰을 보여준다. 그는 자전적이고 내성적인 시, 그리스도교 신앙에 바탕을 둔 실존적 윤리의식, 그리고 시대와의 갈등에 성실했던 민족의식을 나타낸 시를 썼으며, 이러한 주제를 고도의 상징과 은유적 기법으로 독특하게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한국시사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유해는 용정에 묻혔고, 1968년 연세대학교에 시비가 세워졌다.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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