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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란 무경계 세상에서 희노애락의 꽃을 꽃피우는 행위이다...
2017년 04월 24일 17시 32분  조회:2505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적 여유의 회복을 위해

                                                       박수연(문학평론가) 




  


한 계절의 시를 평하는 자리는 꽤나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무수히 많은 작품량이 일차적 이유이기는 하지만, 작품들의 갈래도 그렇다. 시들은 좀처럼 동일한 지평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시가 개성적 서정장르인 이상 각각의 작품이 특이성을 실현하는 것은 속성상 필연적이라고 해도, 최근 한국 시단의 모습은 개별자들의 무한한 각축장인 듯 보인다. 그것을 나는 어느 자리에선가 시의 바로크라고 롤러본 적이 있다. 


그 규정은 고무되어야 할 측면에서는 시적 자기 영역의 성실한 개성 탐구를 의미하지만, 그 반대 측면에서는, 바로크의 장인들이 절대왕정에 주박되어 있었듯이 자본에 휩쓸린 문화적 자기부정을 의미한다는 말이었다. 전자의 측면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다채로운 해석적 글을 통해 애정을 표한 바 있다. 


최근의 시비평은 주로 섬세한 시 언어의 결을 따라가면서 의미(도달할 수 없는 기의의 세계)를 해석하고 그로써 비핑에 구두점을 찍었다. 이 구두점은 비평의 미학적 기준에 대한 확실한 자기 표현은 아니었을까? 글이 종결되는 순간 미끄러지던 기표들은 의미 해석을 가능케 하는 하나의 고정점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해석 자체가 이미 일정한 주관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보면, 최근의 시비평이 비판과 평가를 결여한 해석에 머무르고 있다는 비판은 한편으로는 옳고 한편으로는 그르다. 


시의 지속적 갱신에 기여할 수 있는 비평적 질문의 필요성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그 비판은 충분히 납득되는 바가 있지만, 해석 자체로서 시의 의미론을 입증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에서 보면 그 비판은 그다지 정곡을 겨냥한 것이 못 된다. 왜냐하면 해석에 이미 평가가 포함된 것이겠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의 비평이 한 측면의 관점만을 대변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특징이 되었다면, 그렇다면 문제삼아야 할 것은 오히려 근대적 개인 신화의 현재적 실현은 아닐까? 말하자면 여전히 주체라는 문제 설정이 결여되거나 과도한 형태로 문학 영역에 제기되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시에 대한 시대의 규정성이란 바로 이것의 객관적 요인을 뜻하는 것이겠다. 근대적 개인주의 신화의 한 면이 서정시의 개성으로 실현될 때, 이 개성이란 곧 시적 주체의 발언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 발언의 방향과 수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 난맥상에 있다고 해도 불가능한 것은 아닌데 먼저 이야기해 보고 싶은 것은 여성시인들의 작품이다. 


< 황해문화> 2005년 봄호는 여성 시인들의 시만 수록하고 있다. 편집자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가 아닐 수 없는데, 시인틀은 김혜순, 허수경, 이경림, 이수명, 김선우, 이기성 등이다. 이쯤 되면, 다앙하면서도 활달한 언어로 한국 시단의 여러 갈래에 피를 돌게 하고 살을 입힌 시인들이 모여 있다는 평가가 나올 만도 하다. 다양한 언어라고 했듯이, 실로 이들의 시를 여성 시인들의 시라는 말로 묶기에는 작품들의 진폭에 큰 낙차가 있다. 가령,



나는 언덕을 쓰다듬는다
나는 언덕의 젖꼭지를 문다
나는 하늘과 땅 사이 희멀건하게
벗겨진 언덕의 엉덩이를 가려보려고
손수건을 펴고 앉는다

---중략---

나는 저녁 산책을 마치고 사지가 잘린 언덕을
불쌍한 가슴처럼 두 팔에 싸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김혜순, 「산책」부분



에서처럼 대지모신의 상처를 보듬는 시가 있고 ,



휴게소 녹슨 탁자 위를 기어가던 까만 자벌레
둥글고 광막한 지평선 두리번거리다 허공을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상행과 하행의 고속도로는 마주보며 질주하고
한낮 주유소의 사내는 검은 기름 탱크를 깔고 앉아 졸고 있는데
뱉어낸 가느다란 실을 입에 꼭 물고 매달린 자벌레.

백미러에 쨍쨍하게 반사되는 빛, 한 겹씩 동그랗게 몸을 말아
안간힘으로 기어오르는 눈먼 자벌레의 이글거리는 표정으로 목이 쉰
사내는 다시 트럭에 오른다. 닳아버린 타이어에 찌그러진 그림자가 깔려 있다.

검은 고속도로가 다시 끈적하게 펴지고
폐타이어 가득 실린 트럭이 허공에 매달려 있다.

슬픔을 모르는 흰 손이 천천히 허공을 흔들고 있다.
-이기성, 「슬픔」전문




에서처럼, 현실의 검은 삶을 막막한 이미지로 빚어내는 시도 있다. 서정시가 시인의 내면을 드러내는 언어라면, 김혜순과 이기성 사이에는 넘지 못할 어떤 선이 있다. 그것은 외적 대상에 대한 묘사의 태도에서 나타나는데, 김혜순이 안타깝게 대상을 품에 안는다면 이기성은 냉정하게 그것을 관찰한다. 여기에 물론 좋고 나쁨이 있을 수는 없다. 이것은 대상과의 거리를 표시할 뿐이다. 


그래서 김혜순이 대상과의 일체감을 표현함으로써 여성성 자체의 힘과 아픔을 노래한다면, 이기성은 결코 일체화될 수 없을 듯한 대상을 통해서 세계의 슬픔을 노래한다. 세계에 대한 이 차이 나는 대응의 표현에 있어서 김혜순이‘꼼지락거리고, 물고, 만지고, 입술을 대고’등의 용언을 사용한다면, 이기성은‘두리번거리고, 안간힘을 쓰고, 찌그러지고, 끈적한’등의 용언을 사용한다. 김혜순이 재생의 국면에 주목한다면, 이기성은 불모의 순간에 집중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그러므로 여성의 언어라는 말로 포괄될 수 없는 굴곡을 갖는 언어들이다. 이것은 차라리 여성의 언어를 넘는 언어이다.


허수경은 그 사이에서 여성의 대지모신적 넉넉함을 노래하지만(「고요하게 손을 뻗다」), 그것을 부유하는 실재의 애매모호한 대상으로 표현함으로써 도달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동그라미」의 “달팽이”는 그 안타까움을 실체화하고 있는 징후적 대상에 해당할 것이다. “누군가 달팽이에게 말을 좀 걸어 주오/빗장을 걸 듯 말을 걸어/달팽이를 어느 어수선한 집 안으로 들여보내 주오"(「동그라미」)라는 진술은 그 도달할 수 없는 세계를 향한 애절한 호소이다. 


이에 대비해서 이수명의 시를 볼 수 있다. 이른바 기표의 미끄러짐이라는 명제가 적절하게 표현되고 있는 그의 일련의 시들에 비해 「검은불 붉은 불」과 「그를 매달았다」는 그 언어 놀이의 강도가 훨씬 딜하지만, 여전히 의미의 확정성에 대한 저항의 시편들이라는 인상이 크게 다가오는 작품들이다. “불의 어깨 위로 불이 내려앉는다. 검은 물 위로 붉은 불이 붉은 불 위로 검은 불이 내려앉는다. 검은 붙이 붉은 말을 하고 붉은 불이 검은 말을 한다. 엉겨붙는 이 들쭉날쭉한 말들을 닫을 수가 없다. 말에는 문이 없다."(「검은 불 붉은 불」) 와 같은 진술은 그것을 직접 표현한 경우이다. 


'말들을 닫을 수 없을 때’시의 언어들은 끝없이 의미의 기원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데, 이 또한 대상의 참된 세계에 대한 호소라고 할 수 있다. 대상 세계에 도달하려 하되 도달하지 못하는 운명이 곧 허수경의 언어들이 전달하고 있는 운명이다. 허수경이 그것을 격정적 언어로 만들어낸다면 이수명은 그것을 이지적 언어로 만들어낸다. 이 둘 사이에도 대상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경림과 김선우는 어떨까? 이경림에게는 우선 비애가 있다. 이 비애는 하나의 대상과 그것을 둘러싼 존재들의 무정함으로부터 비롯되는데, 「외등」이 그 관계의 비정성을 묘사한다면 「검은 문」은 그 비정성의 본질을 묘사한다. “검은 선팅된 저 자동문 안/언듯 보이는 것//회색의 계단......회색 벽...... 회색 바닥......회색 천장....../천장에 붙은 형광빛 해....../......닫힌 엘리베이터"(「검은 문」)와 같은 언어는, 안이한 선택이기는 하지만 세계의 비애를 충분히 전달한다. 여기에는 어찌할 바 모르는 주체의 안간힘 같은 것이 있다. 


“도대체 어떤 무지막지한 힘이" (「바람이 하도 모질게 부니」) 세계를 움직이는지 알지 못할 때 그 안간힘이 나온다는 것은 시인이 세상을 그렇게 살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무지막지한 힘 앞에서 속절없이 쓰러져가는 존재들에 비하면 이런 태도야말로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비애의 냉정함을 뛰어넘는 능력이 있다.


김선우에게는 비애를 넘어서 긍정으로 향하는 생명의 커다란 힘을 발견할 줄 아는 시선이 있다. 「어떤 출산」은 죽음마저도 삶의 따뜻함으로 감싸서 피를 돌게 한다. 죽음이 삶을 덮을 때 무정함이 나온다면 그 반대의 경우에 사랑이 세계를 덮는 것인데, 후자에는 개별의 삶이 그것 자체로 충만한 경지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김선우 특유의 사랑법이다. 이 사랑은 주체와 타자의 경계를 없애는 사랑이며, 그 무경계로서 세상을 꽃피우는 행위이다.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그대가 꽃피는 것이/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내 몸 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라고 말할 때 그 무경계의 확산과 깊이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 여섯 명의 여성 시인들이 냉정과 열정의 언어들로 대상을 관찰하거나 대상의 불가능성을 이야기할 때, 혹은 대상과 주체의 경계 지우기를 노래할 때 시들은 그 관계의 궁극에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관계의 궁극이란 사건들의 출발점에 해당하는 것인데, 관찰은 그 출발점을 아예 바라보지 않는 태도이고, 불가능성이란 어떤 좌절에 해당하며, 경계 지우기란 주체의 소멸과도 통하는 것이다. 이것이 근대적 인식론의 폐해에 대한 심미적 비판일 수는 있지만, 서정시의 개인 주체적 성격에 호응하는 것인지는 더 따져볼 문제임에 틀림없다. 시에서 주체는 과연 지워질 수 있는 것인가?


류외항의 시는 그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변을 제출한다. 「바다조곡 」( <실천문학> 2005. 봄)이란 시다. 바다와의 점층적인 합일을 거쳐 드디어 바다를 넘어서는 주체의 행위가 있고, 그 결과 이루어지는 우주의 신생이 있다. 여기에서는 걸코 지워질 수 없는 주체의 능력에 주목해야 하는데, 그것이란 각 연의 첫째 행들인 “내가 바다에 이르렀을 때” “내가 바다에 한 발을 내밀었을 때” “내가 바다에 다른 한 발을 내밀었을 때” “내가 바다에 가슴을 내밀었을 때” “내가 바다메 입술을 내밀었을 때” “내가 바다에 들어 우주의 반대편으로 떨어질 때”로부터 비롯되는 우주의 탄생을 가져오는 힘이다. 


주체가 존재한다면, 이렇게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다. 그렇지만 그것을 근대적 주체중심주의로 읽어서는 곤란하다. 류외향이 말하는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 세계의 움직임이 드디어 나를 떠나서 그대에게로 들어가는 일의 시작이다. 여기에는 탈주체중심주의와 주체중심주의의 상관이 있다 . 주체에 대한 이런 인식은 최근의, 특히 무의식에 의탁한 시적 진술들에 비교해서 볼 때 독특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여성시인들의 시는 언제부터인지 무의식의 언어에 갚게 집중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무의식에 의탁한다는 것은 그것대로 생애의 또다른 국면을 펼쳐 보인다는 점에서 배척될 수 없는 일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것을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오면, 주체의 망각과 개성의 소멸을 불러오지 말란 법도 없다. 현재 한국의 여성시가 넘어서야 할 분수령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되는 때에, 류외항의 시는 그에 대한 분명한 응답이다.

여성 시인들이 삶과 죽음과 재생을 냉정과 열정으로 보여주는 틈에, 선배 시인들에게 삶은 무엇이었을까? 두 경향이 대략 손에 잡힌다 <문학동네> 2005년 봄호에 발표된 황동규, 조정권의 시와 <시작> 2005년 봄호의 최하림과 신대철의 시다. 두 개의 대비되는 세계 인식을 위해 두 작품을 인용해보겠다.



여기저기 볏짚단들이 가을을
가을을 들어 세우고 있는 들녘에서
까마귀들이 날고 경운기가
털털털 나락가마를 싣고 간다
우리는 고개를 수그리고 따라간다
만 가지 감회 서린 어스름이 시시각각
색조를 달리하면서 우리 뒤를 따르고
시간도 시간들도 따라간다
빈 들이 시간들을 끌어당긴다
---중략---
수확이 많고 적고를 불문하고 지금은
그러할 때이다 한 해 농사가 끝나고
남은 날들도 거의 가고 있으므로
저렇게 새날들이 서둘러 오고 있으므로
-최하림 「저녁 종소리」 부분



소멸해가는 존재들의 숙명에는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그럴 때 “새날들이 서둘러 오”는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 삶의 재생 국면이 다름아닌 순리의 법칙임이 조용히 기록되는 이 시는 같은 지면에 수록된 신대철의 시와도 상통한다. “생의 감각을 넘어서면 바람도 제자리로 돌아가는가, 고독도 죽음도 제자리로, 우주 어디로?" (「흰새」)라고 말하는 신대철의 생사 감각은 최하림의 그것과 거의 동일한 세계에서 형성된 것이다. 두 편의 시에서 삶의 비장함이 도드라지는 것은 죽음마저도 긍정하는 그 갚은 의미의 언어들이 독자들에게 울려 퍼지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문학동네> 2005년 봄호에 실린 황동규와 조정권의 시에는 일상적인 긍정의 세계관이 작용한다. 여기에는 비장미 대신 경쾌함이 있다. 황동규의 오랜 시작법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조정권에게도 그것은 세계를 보는 새로운 프리즘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듯하다. 그런데 이 둘의 경쾌함은 사실은 다분히 시적 진술의 방식에서 기인한다. 


“눈썹 바로 앞에서 나무 하나가 몸을 홱 뒤틀어/간신히 충돌을 피해준다./전신 한차례 출렁! 잠시 나를 잊었다./그만 발길 되돌려?/이런, 백자 유약 같은 외길인데!/그대로 걷는다. 허방들이 촉각에서 해방된다. 촉각들이 놓여난다./안개 속이 훤하다,"(「안개 속에서」) 와 같은 진술은 생의 심각함을 묘한 경쾌함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 유머는 “어제는 잎 다 떨구고 있는 저녁비/혼자 가게 했다./거적때기 밑에 꺼져 있는 햇빛./거 누구요./거 뉘시요....../땅거미가 먼저 나와 있다."(「이 마음의 걸(乞)」)라고 말하는 의뭉스러움과 통한다. 이것은 어떤 여유에서 비롯될 것이다. 이 여유가 시의 행 사이에 여벽을 만들어낸다.


젊은 시인들에게서는 이런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의 성공과 실패를 따져볼 수는 없지만, 시의 언어에 갚이를 부여해주는 한 방법으로 이 여유를 생각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비장함도 마찬가지인데, 젊은 시에 그게 점점 사라지는 듯하기 때문이다. 이 사라짐의 근원적인 원인으로 시적 주체의 상실이라는 측면을 지적하는 것은 그리 잘못된 일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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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주하림(1986∼ )

나는 그것들과 작별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나는 그것을 향해 가요
―배수아 ‘북쪽 거실’

혐오라는 말을 붙여줄까
늘 죽을 궁리만 하던 여름날
머리를 감겨주고 등 때도 밀어주며
장화를 신고 함께 걷던 애인조차 떠났을 때
나는 사라지기 위해 살았다

발 아픈 나의 애견이 피 묻은 붕대를 물어뜯으며 운다
그리고 몸의 상처를 확인하고 있는 내게 저벅저벅 다가와
간신히 쓰러지고는,
그런 이야기를 사람의 입을 빌려 말할 것만 같다
‘세상의 어떤 발소리도 너는 닮지 못할 것이다’

네가 너는 아직도 어렵다는 얘기를 꺼냈을 때
나는 우리가 한번이라도 어렵지 않은 적이 있냐고 되물었다
사랑이 힘이 되지 않던 시절
길고 어두운 복도
우리를 찢고 나온 슬픈 광대들이
난간에서 떨어지고, 떨어져 살점으로 흩어지는 동안
그러나 너는 이상하게
내가 손을 넣고 살며시 기댄 사람이었다     
        
 

 

‘한번이라도 어렵지 않은 적이’ 없었단다. 결국 ‘사랑이 힘이 되지 않던 시절’이 오고. 두 사람은 자기를 ‘찢고 나온 슬픈 광대들이’ 되어 서로 물고 뜯기도 했을 테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누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없는 가난. 그래도 나만큼 가난하고 나보다 약한 ‘너는 이상하게/내가 손을 넣고 살며시 기댄 사람이었다’. 그랬건만 떠났다. 누추하다 못해 혐오스러운 현실에 ‘늘 죽을 궁리만 하던 여름날’. 애인은 떠나고 애견은 발을 다쳐 ‘피 묻은 붕대를 물어뜯으며’ 울부짖는다. 만신창이가 돼 쓰러져 있는 화자에게 개가 다가와 풀썩 몸을 눕힌다. 그 슬프고 불안한 눈빛이 무슨 말을 하는 것 같다. ‘세상의 어떤 발소리도 너는 닮지 못할 것이다’. 이런 말 아닐까. 내겐 당신밖에 없어. 세상 어떤 발소리도 대신할 수 없는 당신 발소리를 잃지 않게 해줘. 
 

 

이 시가 실린 시집 ‘비버리힐스의 포르노 배우와 유령들’은 몸도 마음도 집시인 화자들이 거침없이 펼치는 성적 판타지가 인상적이다. ‘미찌꼬의 오르가즘은 모든 것을 병든 기관지처럼 빨아들이고 뱉어내지 굶주림에 지친 채로 오, 미찌꼬, 미찌꼬’(시 ‘미찌꼬의 호사가’)같이 요사스러운 매력을 뿜는 시구가 즐비한데, 간간 ‘왜 네 영혼은 영혼이 들지 않는 아픈 몸만 골라 떠도니’(시 ‘텍스처 무비’)같이 단아한 시구가 열을 가라앉히고 숨을 돌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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