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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시의 나라로 던질때 진저리치며 받아주는 이, 그 누구?!...
2017년 08월 22일 00시 41분  조회:2108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에 대한 몇 가지 생각()

나 태 주(시인 ․ 공주문화원장)

 

 

4. 하늘이 주는 문장

 인간의 언어로 표현된 문학작품 가운데 가장 정제된 형식의 예술이라면 그것은 다름 아닌 시이다. 시는 그 출발부터가 표피적인 언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인간 내부 깊숙이, 정신 내지는 무의식 세계의 언어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니까 시에 동원되는 언어가 영혼의 언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는 꾸며서 아무렇게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의 문장 가운데는 불가항력의 요소가 들어있다. ‘바로 그것’의 표현이어야 되는 고칠 수 없는 면이 있다. 대체 불가능한 엄격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고칠 수 없는 문장이요 하늘이 내려준 문장이라 할 것이다.

 

연아 반갑다

 

오월이 가는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여름이 오는 것을

네가 알려주네

 

연은 마음의 친구

 

소리 없이 왔다가

향기로만 남기고 떠나는

연은 마음의 벗님네.

 

 이 시는 얼마 전에 쓴「연」이란 제목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앞의 두 연은 그냥 꾸며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부분, 시인조차도 고칠 수 없는 통제되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뒤의 두 연은 충분히 고칠 수 있고 다른 말로도 대체 가능한 표현이다. 바로 앞의 두 연이 신의 영역에 관한 표현이고 뒤의 두 연이 인간 영역의 표현이기에 그러하다.

 이렇게 표현된 시는 독자에게로 가서 단순한 의사 전달의 기능을 넘어선 정신적 치유의 기능까지를 갖는다. 시를 읽는 사람들(독자)이 ‘아, 그렇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생각을 가지면 이것이 감동이 된다. 감동이란 놀라운 것이다. 이 감동이 바로 인간에게 행복감과 만족감을 주는 다이돌핀(엔도르핀보다 4천배 강력한 호르몬)이란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 요인이 된다고 한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독자 입장에서 꽃과 내가 하나라는 생각, 시(시인)와 내가 하나라는 생각, 나아가 다른 사람(독자)과 내가 하나라는 생각은 감동을 낳는다. 이 감동은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하고 고달픈 마음의 위로를 주고 행복감을 주고 자존감을 높여준다. 이런 기능을 바로 시가 하게 된다면 그것은 대단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독자에 대해서 비판자나 공격자나 고문자가 아니라 위로자, 동행자, 선량한 이웃, 도반道伴의 위치에 서야만 한다. 이런 안목에서 예로 들어볼 수 있는 시가「행복」이라는 시이다.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우리가 평소 꿈꾸고 생각하듯이 ‘행복’이란 것은 그다지 크거나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우 사소한 것이요, 우리들 가까이에 있는 '그 무엇'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쉽게 깨닫지 못한 것이 어리석은 일이요 오류일 뿐이다. 가령,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나의 행복의 바탕임을 선뜻 처음부터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렇게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사실(현실, 조건)을 아는 것도 하나의 자그만 깨달음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기 자신이 이미 행복한 사람인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각성과 인정은 또 정신적 치유기능을 낳는다. 짧은 언어조합인 시가 여기까지 이르게 되면 그것은 결코 단순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시는 대단한 것이 되며 상당한 힘을 지닌 예술형식이 되는 것이다. 

 

 

5. 시인이 받는 두 가지 유

 시인의 길을 오래 동안 가는 길이다. 평생을 시와 함께 가는 길이요, 외롭고도 힘든 길이다. 고달픈 길이다. 이 길을 지속적으로 가기는 힘들다. 이렇게 오래 동안 시를 쓰다 보면 두 가지의 유혹을 받게 된다.

 하나는 시를 그만 쉬고 싶은 유혹이 그것이다. 아예 시를 버리고 딴 길로 가고 싶은 생각도 갖게 된다. 그만큼 시의 길은 소득이 시원찮아 자기와 타협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점을 방지하기 위해 시대에 대한 열정이나 애정이 필요하다. 시에 대한 초심을 잃지 않고자 하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 시에 반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시에 대한 첫사랑을 늘 상기할 필요도 있겠다.

 시인의 길에서 자칫 한번 딴 길로 가면 제자리로 돌아오기가 어렵다. 돌아온다 해도 떠났던 그 자리가 아니다. 엉뚱한 자리에 멀쑥하니 돌아가기 마련이다. 시가 달라지고 사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의 유혹은 빨리 유명해지고 유혹이다. 이럴 경우, 독자와 야합하고 세상과 타협하게 된다. 시인으로 살면서 유명한 시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그래 자칫 시낭송가들에게 어필하는 시, 독자들에 널리 읽히는 시, 유행을 따라가는 시, 상업주의와 결탁한 시를 쓰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정도가 아니다. 이런 유혹을 이기고 시의 본래의 길을 가도록 해야 한다. 어렵지만 그렇도록 해야 한다. 진짜 시인이 유명해지는 건 세상과 야합해어 유명해지는 게 아니라 자기가 평생 갈고 닥은 시 작업의 결과에 의해서 유명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전에 보다는 사후에 더 유명해질 수도 있는 일이다.

 시인이 시로 쓰는 것은 시인 자신의 개별적인 경험, 특수한 삶의 흔적이다. 이것이 시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가서 세상 속의 보편성과 맞아 떨어질 때 감동적인 시가 되고 그런 시를 남긴 시인은 유명해진다.

 독자들이 너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도 그렇다고 생각을 할 때 그 지지가 시인의 영광으로 이어진다.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시인은 한눈팔지 말고 자신의 길을 가고 또 가야 할 일이다. 모름지기 시인은 이상 두 가지 유혹의 오솔길을 요리요리 피하고 나아가 진정한 자기의 시와 만날 때 성공한 시인이 된다고 본다.  

 

 

6. 언어의 연금술

 시가 인간의 생각과 느낌을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언어예술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말같이 되지 않아서 걱정이다.

 시의 바탕은 물론 시인의 생생한 삶이고 경험이다. 여기서 잡다한 돌멩이 같은 언어가 나온다. 사실이미지다. 이것이 시인의 마음속에 들어가 감정과 기억으로 저장된다. 감정이미지다. 이 감정이미지는 시인의 용광로에서 충분히 녹아지고 걸러져 순금과 같은 생각과 느낌으로 탄생되어야 한다. 이렇게 태어난 생각과 느낌은 다시 시적인 언어를 만나 시로 재탄생된다.

 매우 괴롭고 지루하고 짜증나는 과정이다. 빠져나오기 어려운 협곡 같은 과정이다. 이를 정리하면 삶․경험(사실이미지)→ 감정․기억(감정이미지)→ 시(시적인 이미지)가 된다.

 시가 되는 삶이나 경험은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있는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이다. 이것이 슬펐다, 좋았다와 같은 정선과정을 거쳐 감정으로 정리 되고 드디어 시인만이 갖는 구체적인 언어, 즉 이미지를 만나 시로서 표출되게 된다. 이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시는 박목월의 「윤사월」이고 박용래의 「저녁눈」이다.

 

송화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 박목월,「윤사월」전문

 

 이 시에는 다만 <송화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와 <꾀꼬리>와 <산지기 외딴집/ 눈 먼 처녀>만 있을 뿐 시인은 없다. 시인은 시 밖에 있다. 그러나 외딴 봉우리도 꾀꼬리도 눈 먼 처녀도 시인과 무관하지 않다. 더 정확하게는 시인의 생각과 느낌과 무관하지 않다. 바로 시인의 생각과 느낌을 대변해주는 대리인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 감정의 대리인. 언어로 나타난 감정의 대리인이 바로 시이고 시의 이미지이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 박용래,「저녁눈」전문

 

 박용래의 시는 좀 더 단순하면서 꽉 짜여진 듯한 작품이다. 네 개의 일정한 행으로 되어 있는데 각각 앞뒤에 공통적인 언어조합이 들어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과 <붐비다>가 그것이다. 그 사이에  ‘말집 호롱불→ 조랑말 발굽→ 여물 써는 소리→ 변두리 빈터’가 끼어든다. 

 이러한 장치는 매우 역동적이며 시각적인 것으로 마치 글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 컷의 사진을 차례로 돌려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영화의 장면 전화 같기도 하다. 이 시에도 여전히 시인은 시 밖에 있다. 그렇지만 시에 등장하는 모든 사물(이미지, 언어)은 시인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과 다르지 않다. 바로 시인 자신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번번이 시를 쓸 때 시인이 느끼는 괴로움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이 좋은 이미지를 만나 시로서 정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마치 구름이 강물을 향해 빗방울을 던지는 행위와 같다. 구름은 강물을 향해 빗방울을 떨어뜨리지만 바람을 만나 엉뚱한 곳에 떨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야말로 빗방울이 강물로 떨어져서 금세 강물의 일원이 된다는 건 행운에 가까운 일이다.

 그처럼 시인이 시적인 언어를 시의 나라를 향해 던질 때 좋은 시로 태어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고 행운에 가까운 일이다. 거기에는 마땅히 아픔이 있고 상처가 있고 쓰라림이 있게 마련이다. 식물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 꽃이듯이 언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시의 언어이다. 꽃은 또 하나의 아픔이며 상처이며 쓰라림이다.

 시인이 시의 나라로 시를 던질 때 진저리치며 받아주는 그 누군가가 있을 때 우리들의 시는 생력을 갖고 영원한 시로 태어나게 된다. 아, 이것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박용철의 「시적 변용에 대하여」 같은 글에는 이런 곡절이 잘 나타나 있다. 스스로 참고할 일이다.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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