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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시인" 윤동주와 "부끄러움" 찾아낸 마광수
2017년 09월 07일 00시 48분  조회:2260  추천:0  작성자: 죽림
 

 

<윤동주 연구> 서문 / 마광수 정지용의 서문이 붙은 윤동주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처음 간행된 것은 1948년이다.그러나 해방이 가져다준 감격의 소용돌이속에서 오 랫동안 잊혀져 왔던 윤동주를 문학적으로 재평가하고,그에게 정당한 위치를 찾아주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였다.
윤동주의 생애는 지극히 짧은 것이었다.그는 1917년 12월30일 북간도 용정 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의 맏아들로 태어났다.그의 집안은 학문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고 애국정신이 강했으며 경제적으로도 넉넉한 편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함경북도 회령에서 간도로 이주하여 개척사업과 교육사업에 공헌한 지도적 인사였고,아버지 또한 학교 교원으로 일했다고 돼 있어 지사적 기개가 넘친 집안임을 짐작케 한다.그리고 조부와 부친이 똑같 이 그곳 교회에서 장로직을 맡은 것으로 보아 윤동주의 성장배경에는 가정적 으로 기독교적 분위기가 상당히 강했던 것 같다. 아동잡지 `어린이'의 애독자였던 그의 어릴 적 이름은 해환이었다.1931년 명 동 소학교를 마치고 중국인 관립학교에서 공부하다가 1935년 평양 숭실중학 교에 전입했다.그러나 숭실중학교가 신사참배문제로 문을 닫고 일본 사람 손 에 접수되자 용정으로 돌아와 광명중학교에 전입하였다. 그즈음부터 동시를 많이 써서 `카톨릭 소년'지에 `빗자루'(36년) `병아리'(36년) 등을 `동주'란 이름으로 발표했다. 1938년엔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여 1941년 11월에 졸업한다. 이때 스스로 추려 뽑은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자비출판하려 했으나 일본경찰의 단속을 걱정한 스승 이양하의 만류로 단념하고 후일 1942년초 `평 소동주'란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했으며 동년 4월 일본 동경의 입교대학 영문과 에 입학했으나 가을에 경도의 동지사대학 영문과로 전학하였다. 1943년 여름방학에 귀국하려던 그는 고종사촌 송몽규와 함께 사상범으로 체포 되어 고문섞인 취조를 받았다.결국 그는 1945년 2월16일 28세의 나이로 운명하고 만다. 그는 한.일합방이후에 태어나서 민족광복을 맞이하기 직전에 죽었다.

그가 시를 썼던 시대(1936년~1943년)는 모든 사람들이 시를 외면했던 때였다.중.일전쟁과 대동아전쟁의 소용돌이속에서 그가 즐겨 바라보던 하늘에서는 공습경보가 울리 고 있었고 거리에는 군가가 흘러넘쳤다. 그의 시 곳곳에 나타나는 `부끄러움'의 이미지,그리고 <병원>이나 <위로> 같은 작품에서 보이는 소외의식에 넘친 절망적인 몸부림은,이러한 시대상황속에서 창백하고 무기력한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자기자신을 한탄하는 윤동주의 처절 한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에 자연을 소재로 한 상징적 어구들이 자주 보이는 것도 그 당시 문학인 들에게 만연했던 현실도피,자연귀의의 사조와 아주 무관하진 않다. 그러므로 윤동주는 저항시인이아니라 순수한 휴머니스트로 보아야 한다는게 나의 생각이 다. 그의 시 어느 곳에도 저항의 기백은 나타나 있지 않다. 그가 옥사한 것은 어찌 보면 군사독재시절 이한렬군이나 박종철군의 죽음과 견주어질 만한것으로서 시 대를 잘못 태어난 양심적 지식인의 억울한 비명횡사라고 보는 편이맞을 것이다. 그는 깊은 애정과 폭넓은 이해로 인간을 긍정하면서도 실제로는 회의와 혐오로 자신을 부정한, 어찌 보면 결백증에 가까운 휴머니스트였다.그는 변변한 연애 한번 못해보고 낭만적인 폭음 또한 멀리했던,당시로 보면 `시인답지 않은 시인' 이었다. 기독교 가정에 기독교 학교로만 일관한 그의 환경이 그를 청교도적 죄의식으로 이끌어갔을 것이라고 생각된다.남에 대한 애정이 곧 자기자신에대한 자괴감과 부정의식으로 변모하는 그의 인생관이 그의 시 곳곳에 나타나 있다. <투르게네 프의 언덕> <간(肝)> <쉽게씌어진 시> 같은 작품이 그 보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윤동주를 투쟁적 이미지의 저항시인으로 보지 않고 회의적 휴머니스트로 본다고 해서 그의 시의 가치가 깎여지는 것은 아니다.무엇보다도 그는 스스 로에 진짜로 `솔직한'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시의 가치가 정치적 사회적 상황과 함께 생각될 수는 없다.시는 시인의 자기 통찰과 자기연민,그리고 본능적 욕구의 대리배설로 이루어질 때 한결 진솔한 감동을 준다.그런 점에서 볼 때 윤동주의 저항은 끊임없는 자기 내면 또는 본능적 자의식과의 투쟁이었다.이러한 `투쟁'이야말로 진정한 `저항'이 되는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스스로의 시인기질에 따른 시인으로서의 역할을 잘 자각하고 있었던 그는 시가 정치나 이데올로기에 참여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그는 자신의 욕구와 비애를 시창작을 통해서 극복하려고 했으며 철저한 자기분석을 통해서 자아의 변증법적 발전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가 목표했던 저항의 대상은 외부로부터의 물리적 압박이나 조국의 현실이 아니라 바로 자기자신이었다.<자화상> <참회록> <또 다른 고향> 등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그의 내적 투쟁의 기록을 역력히 읽을 수가 있다. 특히 그의 시에 나타나는 자학적이며 자기부정적인 이미지의 대표적 보기를 들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앞서 말했듯 `부끄러움'이란 시어가 나오는 작품이 10편이나 되는데,이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시인들이 표피적 정서나 표피 적 이데올로기(또는 사상)만을 좇는 경향과 비교해 보면 가히 파격적이리만큼 독특한 문학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무언가를 `부르짖거나' `가르치거나' `과장적으로 흐느끼는' 대신 스스로를 `발가벗기고' 있는 것이다.물론 윤동주의 `발가벗기'는 다분 히 실존적 현학의 냄새나 종교적 형이상성의 냄새를 풍기는 발가벗기이다.그 래서 좀더 자신의 심층아래로 내려가 본능적 욕구를 발가벗기는 데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은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그렇지만 그는 `퓨리터니즘'이라는 옷을 태어날 때부터 두텁게 입을 수밖에 없었고 또 그 당시 지식인들의 정신적 정황이 본능보다는 관념에 치우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윤동주는 `발가벗기'정도만 가지고서도 우 리 문학사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본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문학은 이광수류의 계몽적 시혜주의에서 한 발자욱 도 못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윤동주 시의 또 다른 장점은 그가 어느 계파나 유행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의 독자적 시세계를 구축해 나갔다는 사실이다. 1930년대라면 대부분의 시들이 정지용류의 감각적 서정주의나 카프식의 정치 적 이데올로기시,둘중 하나일 때였다. 또 자연을 노래한다고 해도 전원주의적 회고주의가 고작이었고 윤동주처럼 자연을 내적 갈등의 상징으로 응용한 시인은 없었다.남들이 모더니즘이니 초 현실주의니 하고 외국의 유행사조에 민감해 있을 때 그는 다만 일기를 써나 가는 형식으로 경향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의 심경을 담담히 고백해 나갔던 것이다. 나는 문학은 문학일 뿐 그것이 문학이상의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여기서 말하는 `엄청난 힘'이란 문학이 혁명가나 사제의 역할까지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문학은 문학 나름대로의 `힘'을 어찌됐든 가지고 있다. 그 힘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요,정신중에서도 이성에 속하 는 것이 아니라 감성이나 감각 또는 본능에 속하는 것이다.그러므로 문학은 정치나 이데올로기처럼 단기간에 효력을 나타낼 수는 없다.문학의 효력은 서 서히 나타나 인간의 의식자체를 변모시킨다. 여기서 말하는 `의식'이란 이성과 감성,본능과 도덕이 합쳐서 이룩되는, 보 다 통체적인 직각(直覺)의 양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윤동주는 옥사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절대로 `총각귀신'이 되고 싶지 않았 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이상하게도 `투사'보다는 `유약하지만 솔직한 사람' 을 한 시대의 상징적 희생물로 만드는 일이 많다.윤동주는 바로 그러한 역사 의 희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일제말 암흑기, 우리 문학 의 공백을 밤하늘의 별빛처럼 찬연히 채워주었다. (마광수 저 <윤동주 연구>[철학과현실사 발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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